사람이 느끼는 공간이라는 개념은 물질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연산해내는 정보라는 것 - P140
산토리니섬에 가면 바위섬에 만들어진 어촌이 있다. 산토리니가 아름다운 이유는 우선 집들의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섬에서 거대한 토목 기계도 없이 사람의 손으로 흙을 퍼 날라 지은 집이다 보니 땅의 모양을 바꾸지 못하고 대신 건물의 모양을 땅에 맞추어 만들었다. - P142
김정운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리스펙트는 ‘당신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 생각이 틀렸다고 인정하고 나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는 상태‘라고 한다. - P147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에서 일하는 것은 즐겁다. - P147
월급이 적고 야근이 많아도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리처드 마이어 Richard Meier 사무실에서 경력을 쌓는 시간은 즐거웠다. - P147
자신의 일터가 동료를 리스펙트 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 P147
조각보는 옛 어른들이 옷을 만들다 남은 천 조각들을 하나하나 바느질해 붙여 콜라주처럼 만든 보자기다. - P153
디자인은 장식이 아니라 필연적인 이유에서 나올 때 아름답다. - P155
아름다운 디자인은 필연적인 이유에 앞서 아름다운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 P155
건축만이 주는 유일한 감동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중력을 이기려는 노력이 보여서다. - P157
아치는 중력을 이기는 모습이 우아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곡선으로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 P166
위대한 건축가 루이스 칸은 이런 이야기로 아치를 설명하기도 했다. "벽돌은 아치가 되고 싶었다. 그러자 건축가가 아치는 비싸서 안 된다고 말했다. 그 말에 벽돌은 슬퍼졌다." 그만큼 아치는 만들기 어려운 건축양식이기도 하다. - P166
아치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로마시대의 건축이다. 로마인들은 기후가 각기 다른 전 유럽에 건축물을 지으면서 벽돌 아치라는 그들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통일감을 만들었다. 로마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아퀴덕트 같은 교량이나 콜로세움은 아치 구조로 만들어졌다. - P167
아쉽게도 현대건축에서는 대부분 철근콘크리트나 철골 기둥에 수평으로 얹힌 직선의 보만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곡선의 아치 구조는 찾아보기 힘들다. - P167
서울에서 아름다운 아치 구조를 원 없이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옥수동, 금호동 한강변에 있는 두무개길이다. 두무개길은 2층으로 만들어져 있는 강변에 위치한 도로다. 서쪽으로 가는 길은 지붕이 없고, 동쪽으로 가는 길은 서쪽으로 가는 길이 위에 지붕처럼 올라가 있다. 그리고 이 길은 수십 개의 콘크리트 아치 구조로 받쳐져 있다. - P167
가장 좋아하는 달은 6월이다. 대학의 방학이 시작되는 달이기도 하고, 날씨가 아직 더워지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춥지도 않아 옷차림이 가벼워진다. - P171
주말의 여의도를 추천한다. 사무 시설이 밀집한 여의도 거리는 주말이 되면 텅 빈다. 여의도는 대형 건물을 위한 공간이어서 인도 폭도 넓다. 그곳에 의자를 놓고 있는 가게에 초여름 주말 저녁에 들어가면 텅 빈 여의도를 내 것처럼 즐길 수 있다. - P171
터널에서 후진은 불가능하다. 시간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시간을 뒤로 갈 수도 옆으로 갈 수도 없다. 항상 그 흐름에 몸을 맡겨 앞으로만 가야 한다. - P175
터널은 뒤로 들어와서 앞으로만 간다.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공간에 있지만 시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 P175
우리는 배꼽을 보면서 배 안에 복잡한 내장 기관을 상상하곤 한다. - P176
도시의 배꼽은 맨홀이다. 맨홀 뚜껑 아래는 복잡한 상하수도 시설과 전기 라인이 들어가 있다. 도시라는 생명체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모든 혈관과 내장기관은 땅속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것을 상상하게 하는 것은 맨홀 뚜껑이다. 우리가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맨홀은 보이지 않는 공간과 보이는 공간의 경계를 나누는 또 하나의 웜홀이다. - P176
건축에서 내려다보는 공간은 권력을 갖는 공간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볼 수 없고 나만 그 사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관음증을 만족시키는 공간이다. 그래서 펜트하우스가 비싸고, 회장실은 높은 곳에 있고, 우리는 상관을 높은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P178
한옥 마당이 특별한 것은 방으로 둘러싸여 있고 대청마루, 툇마루, 처마 같은 중간층의 공간이 있어서다. 그래서 옥상이 특별해지려면 ‘옥탑방‘이 있어야 한다. 옥탑방이 들어설 때 비로소 옥상은 한옥의 마당이 된다. - P180
방이 옆에 있는 옥상은 마당이 되고, 평상은 대청마루 대용이다. 현대 도시에서 한옥과 가장 비슷한 공간은 옥탑방이다. - P180
다른 식물과는 다르게 이끼가 자라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끼는 곧 시간이다. 이끼는 나무나 풀보다 더 척박한 곳에서 자란다. 자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면에서 이끼는 쇠의 녹과 비슷하다. - P184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작품은 거대한 철판이 아름다운 곡면으로 휘어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작품의 백미는 철판을 가까이서 보았을 때 철판 표면에 슨 녹에 있다. 그 작품이 전시된 환경에 따라서 그 녹의 종류가 다르다. - P184
세라의 작품에서 녹슨 철은 시간과 기후가 만든 결과다. 마찬가지로 이끼도 시간과 기후가 만든 결과다. - P185
이끼는 햇볕이 너무 들어도, 습도가 낮아도 자라지 못한다. 적절한 그늘과 습도에서 천천히 자라는 식물이 이끼다. - P185
어느 곳이 되었건 이끼가 많은 곳은 특별하다. 이끼가 있는 공간은 이끼의 양만큼 소외되고 조용하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 P185
그리스 산토리니를 갈 여건이 안 되면 부산 감천마을에 가면 된다. - P186
산토리니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형태는 다양하나 재료가 통일되어서다. - P186
감천마을은 지형에 맞춰 건축된 작은 건물들의 모양이 제각각이다. 그래서 형태가 다양하다. 그런데 백색으로 통일된 산토리니와 달리 감천마을은 색상도 다양해서 언뜻 보면 오색찬란해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강렬한 색상은 회색 도시에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환기시키기도 한다. - P186
우리나라는 티베트 민족과 더불어 파랑, 빨강, 노랑 같은 원색 계열을 전통적으로 선호한다. - P187
감천마을은 산토리니와 공간 구성이 닮았고, 색상이 다채로운 한국식 산토리니라고 할 만하다. 감천마을은 ‘컬러의 도시‘다. - P187
스위스를 갈 여건이 안 되면 산정호수를 가면 된다. - P188
우리나라에는 호수가 많지 않다. 북유럽은 빙하가파고 나간 자리에 눈이 녹은 물이 담겨져 호수가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보다는 남쪽이어서 빙하가 없었다. 노년기 지형이다 보니 호수가 많지 않다. 그런데도 특이하게 커다란 호수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산정호수다. - P188
나는 건축가가 최고로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어떤 때는 배우가 부럽다. 누구나 한 번의 인생을 살지만 배우는 영화 속 배역에 따라서 여러 개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 P190
우리가 배우가 아니라서 여러 인생을 살지는 못하지만 비슷하게나마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면 된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 살아보면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 P191
완전히 다른 사람의 공간에 들어가 살면서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을 하는 것 - P191
두 개의 다른 사람 집에서 지내다가 오는 것은 두 개의 다른 인생을 짧게 체험해보고 오는 경험일 것이다. 그것이 에어비앤비의 매력이 아닐까. - P191
텅 빈 공항 대합실은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처럼 넓은 체적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 P192
우리가 어디서 이런 체적의 공간을 즐겨 보겠는가? 여기는 에어컨도 잘 나온다. 21세기 땅끝 마을은 해남이 아니라 국제공항이다. - P193
나는 쇼핑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공항 면세점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이 공간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공간처럼 느껴져서다. - P194
보통 해외에 나가려면 여권을 들고 국내 공항의 검색대를 통과한다. 그리고 내가 여행하는 나라의 여권 검색대를 통과해야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론적으로는 인천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고 나서 다른 나라의 검색대를 통과하기 전의 공항 면세점 공간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공간이다. - P194
건축적으로 왠지 공항은 정치적 국경과 국경 사이의 미지의 세계라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는 외국인들과 함께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밥을 먹고, 쇼핑을 하며 보낼 때는 뭔가 어느 국가도 아닌 존 레넌이 <이매진 Imagine> 노래에서 이야기하는 국경도 종교도 초월한 세상에 있는 듯하다. 건물 안에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큰 자유를 느끼게 되는 공간이다. - P195
누군가와 손을 잡으면 같은 공간도 다른 의미의 공간으로 바뀐다. 시간도 바뀐다. - P199
어린 시절을 보낸 공간을 가까운 사람과 함께 찾아가보는 것도 좋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 누군가를 만날 때 마주하는 모습은, 자신도 상대방도 이미 성장통을 겪으며 변화한 상像이다. 나를 만나기 전 그 사람의 과거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어려서 살던 동네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과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 P201
조각가는 청동상을 만들 때 틀을 만들고 쇳물을 부어 조각상을 만든다. 우리가 조각상을 보지 못하더라도 조각상의 틀만 보아도 만들어진 조각상을 상상해볼 수 있다. 과거 내가 살던 공간은 ‘나‘라는 조각상을 찍어낸 거푸집 틀과 같다. - P201
누군가의 어릴 적 공간을 보면 그 시절의 그 사람을 상상해볼 수 있다. 한 사람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공간을 보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를 보는 것이다. 그 공간은 공룡의 화석처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조금 더 알게 해줄 것이다. - P201
예전에 살던 동네를 혼자서 가보는 것도 좋다. 그곳에 가면 물리적으로는 예전과 같은 공간이라도 다르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내 몸이 커져서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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