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에만 유현준 저자의 책을 무려 5권이나 읽었다. 책들간에 서로 겹치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읽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시간이었다.

오늘 읽는 이 책은 기존의 책들과는 약간 느낌이 다른 책이다. 알라딘 분류 기준으로 내가 앞서 읽었던 책들이 교양 인문학의 범주에 속해있었다면 오늘 시작하는 이 책은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이 책에 대한 다른 분들의 리뷰를 잠깐 봤었는데 이 책도 저자가 저자의 다른 책들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공간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얘기에 근거해 책의 목차를 살짝 훑어봤는데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공간들도 물론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공간들도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공간으로의 여행을 떠나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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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p.100, 101에 밑줄친 문장에서 저자의 깨달음을 엿볼 수 있었는데, 여기 일일이 적지는 않았지만 본문에 나오는 간단한 일화들을 통해 저자가 쓴 책에 나왔던 생각들이 어디서부터 유래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쓴 글은 결국 자기가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것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쓰고보니 당연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문득 이런 속담도 생각났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즉,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다. 이를 조금 달리 말하면 내가 경험한대로 내 말이나 생각이 튀어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래서 가급적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느끼려나보다.


p.109에 밑줄 친 이중 벽에 대한 설명은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이 디자인 한 ‘MIT 채플‘이라는 교회의 독특한 벽 구조에 대한 것인데, 이를 통해 소리가 증폭되는 원리에 대해 잠시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사람은 일생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 P13

책, 영화, 음악, 미술 등 예술도 한 사람을 이루는 모태가 된다. 이런 모든 경험이 모여 한 명의 사람을 만든다. - P13

시간을 보낸 공간도 그 사람을 만든다. 이 책은 나를 만든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 P13

우리가 소개팅에 나가서 할 말이 없으면 가족과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본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그 사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P13

내가 지내온 공간들과 좋아하는 공간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마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 P13

나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것 - P14

같은 공간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된다. - P14

‘아는 만큼 보인다‘ - P14

버려진 장난감은 그대로는 별 가치가 없지만,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 세상에 하나뿐인 장난감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나만의 가치,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첫걸음이었다. - P16

우리의 도시는 부서진 장난감 더미와도 같다. 곳곳에 쓸모없는 공간들, 버려진 공간들, 쓰레기 같은 건축물들뿐이지만 그 와중에도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건축가의 눈으로 보면 도시에는 재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 P16

공간에 나만의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배운다면 이 도시는 새롭게 재창조될 수 있다. 해외로만 여행을 갈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이 일어나는 여기서도 당신만의 새로운 공간을 ‘발명‘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추억을 만들 수 있다. - P16

이 책을 읽고 여러분만의 공간을 찾고 주변에 나누기를 바란다. 남들이 정한 ‘핫 플레이스‘만 찾아다니는 것은 기성품만을 소비하는 것과 같다. - P17

골목길 계단처럼 별 볼 일 없는 도시의 요소도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통해 바라보면 특별한 공간이 된다. - P25

동화 속에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파랑새 - P28

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의 마지막 주택 건축물, 카사 밀라Casa Mila. - P31

나는 여전히 보라색을 좋아한다. - P31

계단참은 계단 위층과 아래층을 연결하는 평탄한 공간을 말한다. - P55

과거 학교에서처럼 지금도 계단실은 도시 속에서도 숨겨진 공간이다. 계단실은 주로 창문이 없다. 창문이 없는 공간은 비밀스럽다. 벽으로 둘러싸인 계단실은 때로는 방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계단실은 연인들의 연애 공간으로 쓰이기도 한다. - P58

나는 공간을 감정과 연관시켜 기억한다. 다양한 공간과 그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한의원 약초 서랍처럼 여러 개 있다. - P87

디자인을 할 때는 내가 그 공간에서 어떠한 느낌을 받기 원하는지를 먼저 생각한 후 그 서랍에서 필요한 공간을 찾아 대입하는 식으로 작업한다. - P87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기억들이 나를 먹고살게 한다. - P87

이곳(보스턴의 뉴베리 스트리트)의 특징은 인도의 한 자리에서 두 개의 가게를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 P99

이 거리(보스턴의 뉴베리 스트리트)를 통해 가게 입구의 수가 걷고싶은 거리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5년에 출간한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쓴 이벤트 밀도 개념은 뉴베리 스트리트 Newbury Street 덕분에 구상하게 된 것이다. - P99

바라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불쾌할 수 있다는 것 - P100

보는 것은 권력 및 인간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 P101

내가 즐겨 가던 가게가 사라지는 것은 일종의 수몰지역 난민이 되는 기분이다. 가게가 사라지면 나의 추억과 그 시절 그 시간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 P101

홍대나 가로수길의 임대료가 비싸서 원주민 가게가 떠나는 것이 안 좋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스타벅스나 유니클로 같은 다국적 기업만이 앵커 테넌트 Anchor Tenant가 아니다. 그 지역에 오래된 가게도 앵커테넌트다. 우리의 기억과 함께 묶여있는 장소가 앵커 테넌트다. - P101

요즘은 우리의 기억들이 각종 홈페이지와 연결되어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내 사진을 올리면 그 공간이 나의 추억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추억이 연결된 장소가 고향이다. 그런 홈페이지가 내 고향이다. 그래서 싸이월드가 폐쇄되었을 때 우리는 일종의 ‘디지털 난민‘이 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 P102

지금 싸이월드가 다시 회복하려고 하지만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싸이월드로 사람이 돌아오게 하는 것은 마치 안 좋게 헤어진 연인이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 P102

벽을 이렇듯 이중으로 만든 것은 음향적인 이유가 크다. 우선 구불구불한 벽은 음을 난반사하고, 바깥쪽 원형 벽과 안쪽의 물결치는 듯한 벽 사이의 빈 공간이 음향적 공명을 만들어낸다. 물결치는 듯한 벽돌 벽은 벽돌 사이에 공간을 두고 쌓아서 벽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으로 소리가 들어가 빈 공간에서 음이 증폭되어 나온다. 그래서 공간이 좁아도 깊이 있는 음향이 연출된다. 우리가 휴대폰의 작은 스피커를 종이컵에 넣으면 괜찮은 스피커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 - P109

공간이 어떠한 시퀀스를 가지고 진입했을 때 최종 공간에 다른 영향을 줄 수 있다 - P112

버려진 공간은 소중하다. 이 공간들은 모두 여러분이 써주기를 기다리는 공간이다. 버려진 공간이 여러분의 상상력과 만나면 대단한 장소가 된다. - P113

공간은 인간관계를 규정한다. - P114

누군가가 내 방을 통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느낌은 뭐랄까, 회장 비서실에서 잠을 자는 듯한 느낌이다. 공간은 사람의 관계를 규정하는 묘한 힘이 있다 - P115

부부가 같은 방을 사용하다가 한 명이 자리를 비우면 방의 냄새가 달라진다. 남녀가 다른 체취를 가지는데 두 체취가 섞인 것과 혼자만의 것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좀 그로테스크하지만 좁은 기숙사 방의 두 남자는 그렇게 각자의 체취로 공간을 함께 채색하는 밀접한 사이인 것이다. - P116

권력자의 공간은 원래 들어가는 절차가 복잡하다. 회장님 방은 비서실을 거쳐서 들어간다. - P116

1994년 스물다섯 살 때 내 별명은 ‘포틴 아워 fourteen hour‘였는데, 이유는 하루에 열네 시간을 스튜디오에 계속 앉아 있어서였다. 사실 거의 종일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모형을 만들었다. - P119

건축과 학생에게는 기숙사 방보다는 스튜디오 자리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매 학기가 시작되면 스튜디오의 의자와 책상을 꾸미는 데 돈을 아낌없이 썼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가장 많은 삶을 빚는 공간이다. 그곳이 좋아야 그 사람의 삶의 질도 좋아진다. - P119

고산병은 산소가 부족해 온몸이 쑤시면서 아픈 증상이 생기는데, - P127

누구나 머릿속에 가장 멋진 상황을 그리고 있는데 그것을 실제로 만났을 때는 그 감동이 더 클 것이다. - P129

엑스터 도서관은 거장 루이스 칸Louis Kahn이 미국의 명문 사립고 필립스 엑스터에 설계한 학생 도서관이다. - P131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이 예상하지 못하고 그냥 일상적인 건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안에 있는 반전의 공간에 감동과 충격이 더 컸다. 인생도 그렇다. - P132

전 세계 곳곳에 여러 가지의 피라미드가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티칼은 가장 경사가 급한 피라미드다. 그리고 색상도 가장 어둡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밝은 모래색이고 멕시코의 마야문명 피라미드들은 밝은 회색을 띤다. 그런데 티칼의 피라미드는 거의 검정색에 가까운 느낌이다. 어두운 톤의 색상 때문에 그 어느 건축물보다도 무게감이 느껴지고 급한 경사도 때문에 그 앞에 서면 압도되는 느낌이 있다. - P135

나중에 <아포칼립토Apocalypto, 2006>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 건축물(티칼)의 계단으로 제물로 바쳐진 사람의 목이 굴러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 계단을 기어 올라가서 높은 제단 위에 앉아본 느낌은 대단했다.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이 위에 올라선 제사장은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겠구나‘라고 느껴졌다. 수천 수만명의 사람이 쳐다보는 그 정점에 선 느낌이다. 요즘 세상 같으면 수만 명의 시선 집중을 받는 공연장의 가수나 TV 카메라 앞에 섰을때의 느낌과도 같을 것이다. - P135

건축은 일상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나는 건축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도시에 가서 한 달 이상 살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건축을 하나의 체험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36

호텔에 묵으면서 식당에서 밥을 사 먹어서는 안 되고, 그 동네 시장에서 장을 봐서 음식을 해 먹을 때 비로소 현지인의 마음으로 그도시를 느낄 수 있다. - P136

도시의 주요 장소가 걸어서 연결되어야 하며 다양한 크기의 외부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한 달동안 로마에 있으면서 배울 수 있었다. - P137

여행을 할 때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계획을 세우면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교과서를 읽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P138

여행을 하면서 그곳에서는 어디가 좋은지 전혀 모른 상태에서 여행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가서 정말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온 경우도 허다하다. 예를 들어 이스탄불까지 고생해서 갔는데 정말 스펙터클한 지하 저수조인 ‘예레바탄 사라이Basilica Cistern‘를 못보고 오는 것 같은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 P138

때로는 예상치 못한 나만의 경험을 얻기 때문에 무계획 여행의 매력을 거부하기 어렵다. 무계획 여행 덕분에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로마의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Church of St. Ignatius‘에 있는 안드레아 포초Andrea Pozzo의 그림을 본 것이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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