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책들을 함께 병행해서 읽다보니 이 책을 거의 2주 정도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 동양과 서양의 건축 양식을 비교하는 이야기들이 나왔었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서양 쪽 얘기를 좀 더 해본다. 앞 부분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서양 문화에서 수학이라는 것이 여러 부분에서 기반이 되는 학문이라는 것이었다. ‘만약에 수학이 없었다면 과연 서양의 건축이 이 정도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을 때 그 대답은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였다. 이 책에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축물들이 사례 이미지로 여기저기 수록되어 있는데 수학이 없이는 그런 거대한 규모를 만들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좀 거창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수학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건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닐듯 하다.


뒤이어 나오는 내용 중 상당수는 동 저자의 다른 책인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읽어봤던 내용에 약간의 부연 설명이 추가된 정도의 느낌이라 복습한다는 느낌으로 비교적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다만 판테온과 석굴암을 비교하는 내용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본 것처럼 느껴졌다. 저자는 본문에서 어떤 거창한 고고학적인 증거까지는 없지만 지극히 건축가적인 시각에서 독자들이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야기를 통해 두 건축물과 그 특징들을 비교하였다. 또한 두 건축물이 다양한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지어진 것임을 느끼게 해준다. 독자인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떤 건축물도 그냥 아무렇게나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규칙과 질서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어떤 기하학적인 규칙일수도 있고 다른 것들과의 관계를 조화롭게 이루기위한 것일 수도 있다.

문득 이런 말이 생각났다.

˝무엇이든 다 존재의 이유가 있다.˝

이건 비단 이 책에 나온 건축물만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 제각기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사람이든 문화든 건축 양식이든 종류를 불문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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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웠다는 ‘비열‘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저자는 분명 초등학교 때 배웠다고 하는데 왜 독자인 나는 난생 처음 듣는 것 같은 느낌은 뭘까. 본인의 과학 공부가 부족한 탓이다. 단순히 문송하다고 하면서 넘길 것이 아니라 과학 공부를 하는 게 좋겠다.

아무튼 쓸데없는 사설이 길었고,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비열‘이란 비열하다고 할 때 쓰는 그 비열이 아니고 단위 질량의 물질의 온도를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지칭하는 말이다. 저자는 이 비열의 개념을 통해 물과 흙, 즉 바다와 땅의 비열의 차이가 기압의 차이를 발생시켜서 바람이 부는 원리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가 이것을 책에서 언급한 이유는 뒤에 나오는 삼각돛이 만들어낸 공간적 혁명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함인듯 하다.

이후 이어질 삼각돛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추가로 더 다뤄보겠다.

서양 문화에 내재된 수학을 향한 뿌리 깊은 믿음은 건축, 음악, 그림 등에서 구체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 P125

 기원전 100년경에 로마의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그의책 『건축 10서De architectura』에서 건축물의 ‘비례의 중요성‘을 이론적으로 강조했다. - P125

원은 하나의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을 연결한 도형이다. 예를 들어서 삼각형을 설명하려면 세 점의 위치라는 세 가지 정보가 필요하지만 원은 하나의 점과 반지름 길이라는 두 가지 정보만 있으면 정의 내릴 수 있다. 원은 여러 기하학 도형 중에서 가장 단순한 정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완전함과 근원의 상징으로 원이 사용된다. - P128

최초의 종교 건축인 ‘괴베클리 테페‘에서도 평면도는 원의 모양을 띠고 있으며, 이후로도 원은 가장 원초적인 공간의 상징으로 발전해 왔다. 어쩌면 인류가 모닥불을 피우고 불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앉은 이후, 아니면 그보다 먼저 하늘의 해와 달이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본 이후로 원은 인류의 의식 속에 가장 원초적인 도형으로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 P128

우리나라의 ‘강강술래‘라는 춤은 동그란 보름달 아래에서 동그랗게 원형으로 손을 잡고 빙빙 도는 춤으로, 가장 원시적이면서 본능적인 춤 문화다. 원형으로 빙빙 돌면서 추는 춤은 아프리카 원주민부터 아메리카 인디언까지 거의 모든 시대와 문화권에 있다. 원은 이렇듯 시대와 지역을 뛰어 넘어서 힘을 가지고 있는 기하학이다. - P130

한다. 단순한 원의 ‘판테온‘ 공간과 달리, ‘하기아소피아‘에는 같은 형태의 돔이 다른 스케일로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다. 중앙에는 평면상 반지름 A 크기의 원 세 개가 중첩되어 나타나고, 그 주변으로 중앙의 돔보다 크기가 작은 반지름 a의 원이 분포되어 있는데 반지름 A대 a의 비례는 3대 1의 값을 가지고 있다. - P130

3이라는 숫자는 기독교 문화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서양에서 3은 완전한 숫자를 나타낸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은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개의 다른 존재가 하나의 하나님이라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가지고 있다. 서양 음악에서 화음을 만들 때 음을 세 개 겹친 3화음을 쓰는 이유도 같은 데서 연유한다. - P130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주요 공간의 평면에 두 개나 네 개가 아닌 세 개의 원이 쓰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주요 돔의 바깥쪽으로 복도를 형성하고 있는 돔은 위아래 각각 네 개씩 있는데, 숫자로 보면 평면에 보이는 중앙 홀에 있는 세 개의 원과 복도에 있는 네 개의 복도 원을 합쳐서 일곱 (3+4=7)개의 원이 평면에 그려질 수 있다. 7이라는 숫자는 기독교 문화에서 하나님이 주신 숫자로 알려져 있는 숫자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 켜는 촛대의 초 꽂는 곳도 일곱 개고, 신약 성경에 언급되는 대표적인 교회도 일곱 개 나온다. - P130

단면을 살펴보면 이 모든 돔위에 한 개의 돔이 얹혀 있다. 따라서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숫자는 1, 3, 7이다. 이 숫자들은 성경적으로 보면 모두 성스러운 숫자다. 유일신, 삼위일체, 일곱 촛대 같은 숫자의 상징과 같은 숫자다. - P132

같은 형태의 돔을 다른 크기의 규모로 변형 후 반복해서 사용하는 방식은 수학의 프랙털fractal 이론과 유사하다. 프랙털은 단순한 규칙을 가지고서 복잡한 모양을 만드는 ‘차원 분열 방법‘으로, 자연의 불규칙한 현상을 해명하는 카오스Chaos 이론의 설명에 이용된다. - P132

이러한 프랙털처럼 ‘하기아소피아‘의 평면도는 중앙에 보이는 원이 크기가 줄어든 형상으로 주변부에 반복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최초에 하나의 원으로 시작한 ‘판테온‘에서 프랙털 원리로 복잡하게 발전한 모습이다. - P132

이같이 로마의 ‘판테온‘에서 이스탄불의 ‘하기아소피아‘로 이어지는 건축 디자인에서 보이는 수학적인 진화는 콘스탄티노플(현 터키의 이스탄불)의 지리적인 위치 때문이다. 로마에 비해서 콘스탄티노플은 그리스에 가깝고, 그리스는 로마보다 수학적으로 앞서서 발전한 문화였기 때문이다. 그리스 멸망 이후 그리스의 많은 학자가 동로마 제국으로 들어오게 되고 따라서 문화 전반적으로 좀 더 발전한 수학이 나타나게 되었다. - P132

서양에서는 건축 공간의 문제 해결을 항상 기하학적인 측면으로 풀어 나가려 했기 때문에 단순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좀 더 복잡한 수학적 방법이 채택되었다. - P137

서양 건축의 수학숭배는 영국의 건축가, 고전학자, 수학자, 천문학자로서 런던의 ‘성 바울 성당‘을 디자인한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의 저서 「파렌탈리아Parentalia』에 잘 나타나 있다.

"기하학적인 형태는 불규칙한 형태보다 더 아름답다. 정사각형, 원형이 가장 아름답고, 포물선과 타원형이 그 다음이다. 두 개의 선이 만났을 때 아름다운 경우는 오직 두 가지밖에 없는데, 하나는 수직으로 만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행을 이루었을 때다."

크리스토퍼 렌의 이 문장은 서양 건축가들이 수학적 기하학을 통해서 완벽하고 신성한 절대미를 추구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 P137

최근 들어서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프로그램해서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복잡한 디자인을 만드는 파라메트릭parametric 건축 분야도 나와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형태가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알고리즘을 통해서 더 복잡한 형태를 만들어 냈을 뿐, 근본적으로 ‘수학적 논리의 결과물로 나온 형태‘라는 면에서는 전통적인 서양 건축 공간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이들 건축물에서는 곡선의 모양도 직관적으로 그려진 선이 아니라 컴퓨터에 값을 타이핑해서 작도作圖할 수 있는 기하학적인 곡선이다. - P140

불교의 불상은 그리스 조각상이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정복과 함께 전파되면서 전이된 양식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태생적으로 불상이라는 양식은 그리스 조각상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 P142

우리가 절에 가면 마당에서 볼 수 있는 탑도 불교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화장을 한 후 만드는 인도의 전통 무덤이 전파된 것이다. ‘유골을 봉안해 흙이나 돌로 높이 쌓아 올린 분묘‘라는 뜻을 가진 고대 인도의 범어인 ‘스투파Stupa‘, ‘투파‘라는 말을 음역해서 탑파塔婆가 되었고, 탑파가 줄어서 탑이 된 것이다. - P144

공간은 사람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고, 반대로 생각은 건축 공간의 디자인을 결정하기도 했다. - P145

결국 자연환경이라는 부모는 사람의 생각과 건축 공간이라는 두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생각과 건축 공간은 같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자녀처럼 공통된 성격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상호 영향을 미친다. 공간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공간을 만든다. - P145

기후, 농사법, 공간의 성격 그리고 이를 통해서 만들어진 생각, 이 네 가지는 때로는 한 방향으로 영향을 주고, 때로는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수천 년간 고유의 문화적 특징을 형성해 왔다. - P145

동서양의 문화적 특징의 차이는 그림에서도 잘 나타난다. 서양의 그림에는 ‘황금 분할‘이 폭넓게 사용되어 왔다. 캔버스 속의 모든 요소는 황금 분할이라는 수학적 요인에 의해서 조심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이집트 미술의 경우 완벽한 비율을 찾았고, 그 상태가 완벽하기 때문에 더이상의 발전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집트는 같은 스타일의 건축과 미술이 수천 년 동안 계속해서 반복되어 만들어지고 그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 P147

수학적 황금 비율을 중요시하는 서양과 달리 동양의 경우에는 ‘여백의 미‘가 중요시되었다. 동양화에서는 실제로 그려져있는 대상물만큼이나 그 배경으로 남겨지는 여백도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풍토는 노자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동양화에서 나타나는 사물(figure)과 배경(ground)의 상호 보완적이고, 상호·관입적이며, 균형 있는 흐름은 앞서 살펴본 바둑의 패턴이나 동양 건축물의 평면에서 보이는 것과 유사하다. - P147

동양의 산수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원경遠景과 근경近景 사이에 중경中景을 그려 넣는 대신 여백으로 처리한다. 그림에 따라서 안개가 낀 모습으로 중경을 지우기도 한다. 이 같은 방식은 건축에서도 나타나는데, 동양 건축에서 자주 사용되는 낮은 높이의 담장이 그 역할을 한다. 낮은 담장은 내 대지 바로 앞에 있는 중간의 경치를 지워 버리고 가까이에 있는 정원과 멀리 있는 풍경인 산山만 보이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건물 내부에 위치한 관찰자의 투시도상에서 시각적인 여백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 P147

동양의 이러한 디자인은 수학적 황금 분할에 대한 고려 없이 진행된다. 서양 건축과 미술에서는 황금 분할의 역할이 큰 반면, 동양 건축과 미술에서는 만들어진 구조물보다 빈공간 혹은 여백이 더 중요하게 취급되어 왔다. - P148

벌집이 6각형의 모습을 띠는 이유는 건축을 하는 방식에 기인한다. 벌이 방을 처음부터 육각형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벌은 자기 방을 만들 때 동그랗게 만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벌들은 나무껍질이나 썩은 나무를 턱으로 긁어 침으로 반죽해 물에 젖은 종이 같은 재질로 만들어서 집을 짓는데, 이때 벌들은 건축 재료를 가지고 와서 제자리에서 빙 돌면서 벽을 세우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혼자 해변가 모래사장에 주저앉아서 바닷물에 젖은 모래로 자기 주변에 모래성을 쌓으면 원형의 모래성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벌은 이렇게 원초적으로 원형의 방을 만든다. - P151

상상해 보자. 원 모양의 방을 만들고 바로 옆에 또 다른 원 모양의 방을 붙여서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또 다른 원모양의 방을 만든다면 어디에 놓게 될까? 자연스럽게 아래 칸의 두 원과 원 사이에 위치시키게 된다. 그렇게 줄지은 원형의 방들은 줄이 바뀔 때마다 반 칸씩 옆으로 밀리면서 쌓인다. 그리고 이들 원형의 방들이 중력에 의해서 서로 눌리게 되면 6각형의 모양이 만들어지고 그모양이 구조적으로 가장 안정정인 상태로 정착되는 것이다. 벌은 공중에 원을 만들었고, 원들이 합쳐진 집합체가 되면서 육각형체의 벌집이 완성된 것이다. - P151

반면에 개미집의 경우는 복잡한 미로 같은 형태를 띠면서 골목골목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치 관계의 회로망을 보는듯하다. 개미집은 지역에 따라서 땅속에 있는 경우도 있고 땅 위로 솟아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느 개미집이나 외부 형태는 중요하지 않고 내부에 네트워크로 구성된 연결망이 중요하다. 즉 방끼리의 관계가 중요한 건축이다.

극동아시아 문화는 유교가 지배적이었다. 사후 세계보다는 현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땅 위에서의 현실 삶에서 충忠이나 효孝 같은 관계를 중요시했다. 기둥 구조를 써서 기둥과 기둥 사이로 주변 환경이 잘보이는 동양의 건축은 땅과 연결되어서 집을 짓는 개미처럼 주변 환경과의 관계성이 중요시 되는 건축의 성격을 띤다. - P153

반면에 유럽은 이집트, 그리스, 기독교에서 공통적으로 사후 세계, 이데아의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위로부터 오는 형이상학적 원칙을 중요시 했다. 이들은 땅과는 관련 없이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관념적으로 무에서 새로운 법칙을 만든다. 이러한 문화적인 특징은 주변의 아무런 영향 없이 내제된 법칙에 의해서 허공에 집을 짓는 벌과 비슷하다. - P153

서양의 공간은 주변과의 관계를 맺지 않고 자족적이고 자기 완결적이기 때문에 벌집처럼 기하학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피라미드‘나 ‘판테온‘도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자족적인 법칙에 의해서 디자인되었다. 그리고 그 법칙은 수학적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렇게 서양의 종교적 공간은 기하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 P153

나일강은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강인데 이집트인들은 북쪽의 하류에서 살았다. 강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니 상류와 하류의 기후대가 다르다. 상류에서 폭우가 내려도 하류에서는 비가 오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류에서의 홍수는 급작스럽게 닥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이 세상 사건의 원인을 눈에 보이지 않는 데서 찾게 된다. 이집트인들은 별자리를 보면서 앞으로 다가올, 땅에서의 홍수를 예측했다. 별자리의 모양이 특정 기하학적 형태를 띠면 어김없이 홍수가 나타난다는 규칙을 발견한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이라는 형이상학적인 규칙이 땅의 형이하학적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게 됐을 것으로 보인다. - P154

반면에 중국 문명의 근원인 황하는 동서로 흐른다. 아무리 길어도 강이 비슷한 위도에 위치하기에 비가 많이 오는 우기가 같다. 게다가 황하나 양쯔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강의 하구가 동쪽에 위치한다. 그런데 계절풍이 가져오는 비구름은 주로 동에서 서로 이동한다. 그러다 보니 큰비는 강의 하구부터 내리는 경우가 더 많았고, 중국인들은 범람의 원인을 주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중국의 황하 문명은 현실에서의 원인을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주로 벼농사를 짓다 보니 관계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갖게 된 것이다. - P154

이집트의 나일강같이 남북으로 흐르는 베트남 메콩강의 경우에는 왜 이집트 문명 같은 형이상학에 집착하는 문명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이유는 메콩강은 남북으로 흘러도 상류나 하류나 둘다 같은 열대 기후대이기 때문이다. 메콩강은 나일강처럼 다른 기후대에 걸친 강이 아니다. 우기가 오면 강의 상류나 하류나 모두 비가 내린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처럼 범람의 원인에 대해서 형이상학적인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P155

‘석굴암은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하학적인 건축물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양의 종교 건축물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판테온‘이고, 이후에 만들어진 ‘하기아소피아 성당‘ 같은 건축물도 단면과 평면은 원과 직사각형의 기하학으로 분석 가능하다. ‘판테온‘은 평면과 단면 모두 43.3미터 직경의 원이 들어가는 구성의 공간이다. - P157

‘석굴암‘은 직경 6.7미터의 원이 들어가는 평면과 단면을 가진다. 내부 공간의 형태를 보면 ‘미니 판테온‘이다. ‘석굴암의 기하학적인 디자인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통일 신라라는국가가 얼마나 국제적이었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오히려 폐쇄적이고 중국에만 의존했던 조선보다 해외와의 교류가 더 활발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 P157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허황옥 공주였다는 설화가 있다. 이런 이야기로 미루어 보아 한반도는 이미 바닷길을 통해서 인도, 페르시아, 유럽의 문화를 전수받을 수 있는 경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가 전파되면 건축에 반영된다. ‘석굴암‘은 서양 건축문화가 통일 신라 시대에 영향을 미친 결과물이라고 생각된다. - P157

‘판테온‘과 ‘석굴암은 유사하기도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첫째 ‘판테온‘은 비워진 공간에 위로부터 빛이 떨어지는 공간이다. ‘판테온‘은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인 ‘만신전‘이어야 했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신의 조각상을 둘 수 없었다. 그래서 공간을 비우고 빛으로 채웠다. 반면에 불교사찰인 ‘석굴암‘은 불상을 가운데에 두었다. 이보다 더 큰 차이점은 ‘판테온‘은 밖에서 보면 건축물로 보이지만, ‘석굴암‘은 건축을 마친 다음에 흙을 쌓아 덮어서 건물을 지워 버렸다는 점이다. 이것이 ‘석굴암‘이 특별한 가장 큰 이유다. - P160

건축에서 공간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벽이나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어서 공간을 구획하는 구축을 통해서 만드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땅이나 바위 같은 덩어리를 파내어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다. - P160

‘불국사‘와 ‘석굴암‘은 한 세트로 되어 있는데, 건축 설계를 한 김대성은 ‘불국사‘를 만들 때는 첫 번째 방식인 구축의 방식으로 만든 반면, ‘석굴암‘은 굴을 파내는 방식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석굴암‘도 석재로 구축하면서 만들었지만, 결정적으로 마지막에 건축물을 흙으로 다시 덮어서 굴처럼 만들었다. - P160

김대성은 ‘석굴암‘이 땅을 파내어 만든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이 같은 디자인은 ‘석굴암‘을 ‘음‘의 공간인 빈 공간으로만 만들려 한 김대성의 의도가 보인다. 건물의 외양이 보이게 되면 ‘양‘의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양의 공간은 이미 서측에 있는 ‘불국사‘에 완성되어 있다. - P160

우리는 ‘불국사‘와 ‘석굴암‘의 디자인을 통해서 설계자 김대성의 머릿속을 엿볼 수 있다. 김대성의 설계는 반대되는 것의 병치를 추구한다. 우선 토함산을 기점으로 동쪽에는 땅을 파내서 공간을 만드는 방식처럼 보이게 하여 음의 공간인 ‘석굴암‘을 만들었고, 서측에는 반대로 기둥과 보를 쌓는 구축 방식으로 양의 공간인 ‘불국사‘를 건축했다. ‘불국사 경내에 들어가면 마당에 ‘석가탑‘과 ‘다보탑‘이 보인다. ‘다보탑‘은 우리나라 수천 년 역사상 가장 화려한 디자인의 석탑인 반면, ‘석가탑‘은 미니멀한 디자인의 극치다. 두 개의 탑이 아사달이라는 한 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놀랍다. 이처럼 김대성은 반대되는 것을 한 쌍으로 만든다. - P161

서로 반대되는 음과 양을 병치해서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것은 도교 사상의 핵심이다. 도교는 음양의 조화로 세상을 이해한다. 따라서 실제로 ‘불국사‘와 ‘석굴암‘은 불교를 위한 건축물이지만 건축 배치와 설계의 원리에는 도교 사상이 깔려 있다. 이처럼 통일신라의 문화는 상당한 ‘복합 문화‘였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불국사‘는 동서양 문화의 융합을 보여 주고 있다. - P161

통일 신라 시대에 이 같은 다양한 문화의 융합이 가능했던 것은 통일 신라의 수도가 경주에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경주는 한반도 남단의 바닷가에 가깝게 위치해 있다. 위치상으로 대륙에서 오는 문명과 해양에서 전파되어서 오는 문명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바다를 통해서는 기하학적인 서양의 건축 양식을 받아들여서 ‘석굴암‘을 디자인했고, 음양의 병치를 보여 주는 배치 개념은 중국 대륙을 통해서 들어온 도가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디자인한 것이다. - P161

흥미로운 것은 ‘석굴암‘ 이후 불교 사찰에 기하학적인 공간의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통일 신라 이후에 한반도를 통일한 고려의 수도가 개성에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륙과 해양의 접점에 있었던 통일 신라의 경주와 달리 개성은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서 대륙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더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국가의 중심축이 해양과 멀어지면서 대륙 문화와 해양 문화가 융합을 이룰 수 있는 모멘텀을 잃게 되었다. 물론 고고학적 근거가 없는 건축가의 상상일 뿐이다. - P162

이러한 지형적인 배경은 현대의 역사까지도 지배한다. 우리나라는 사회주의 이념과 자유주의 이념으로 대립하고 있다. 사회주의 이념은 과거 시베리아와 중국 대륙을 통해서 북한으로 전파된 이념이다. 반대로 자유주의 이념은 남쪽 바닷길을 통해서 전파되어 경상도를 중심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지형은 아직도 유효하다. - P162

다른 기후와 지리적 조건에서 다르게 진화해 온 두 문화 유전자는 교통수단이 발달하게 되면서 서서히 이종 교배를 통해 새로운 세대의 문화를 만든다. - P162

후추 같은 향신료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고기의 부패를 방지해 주는 기능을 했기에 고가의 생필품에 해당한다. - P167

고대 그리스 시대 사람들의 옷을 보면 모두 흰색 옷만 두르고 있다. 색상이 있는 옷감을 대량 생산할 기술이 없었던 것이다. 총천연색으로 각종 문양이 직조된 비단은 서양 사람들 시선에는 최첨단 제품에 해당한다. 흑백TV 보다가 컬러TV를 보는 차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품목들은 고가의 제품이어서 대량으로 수입하기 어려웠고 따라서 사회 전체에 문화적인 영향을 주기 힘들었다. 그저 일부 귀족들의 특별한 문화였을 뿐이었다. - P167

‘비열‘은 단위질량의 물질의 온도를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말한다. 비열이 높은 물질은 온도를 높이기가 어렵고 비열이 낮으면 온도가 쉽게 올라간다. - P168

물은 흙보다 비열이 높다. 따라서 낮에 햇볕을 똑같이 받으면 땅이 바닷물보다 온도가 빠르게 올라간다. 땅에 상승 기류가 생기면서 기압이 낮아지면 바다 위의 공기가 그 자리를 채우면서 바람은 바다에서 육지로 분다. 밤 시간이 되어 식을 때는 반대로 땅이 빨리 식고 바다는 천천히 식는다. 때문에 바람의 방향은 반대로 육지에서 바다로 분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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