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청년 시절에 자신이 읽었던 유물변증법 관련 책에 나왔던 명제들을 몇 가지 소개했었다. 오늘은 그 명제들에 기반하여 그 유물변증법 관련 책에 나왔던 내용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유물변증법에 토대를 둔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저자도 책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독자인 나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 이거 굉장히 논리적으로 잘 들어맞네‘ 라는 생각과 함께 ‘굉장히 과학적인데‘ 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하지만 저자는 앞서 언급했던 명제들은 단지 과학의 사실일 뿐이라는 점을 얘기하면서 ‘자연의 사실에 부합하는 원리를 가진 철학이라고 해서 진리인 건 아니다.‘ 라는 말로 마르크스 역사이론의 환상(?)에 잠시나마 빠져있던 나를 포함한 독자들을 착각에서 건져 올린다.

뒤이어 인문학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잠시 나오는데, 이는 책의 앞에서도 지속적으로 언급했던 것이기도 했다. 여기서의 핵심은 과학은 객관적 진리를 찾는 것인 반면에 인문학은 단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큼 ‘그럴법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최근 함께 읽고 있는 유현준 교수의 《공간이 만든 공간》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저자가 건축가라서 건축관련 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책은 알라딘의 책 분류 기준으로 교양 인문학으로 분류되어 있는 책이다. 지금 대략 4분의 1정도 읽은 상태인데, 이 책을 읽다보면 물론 과학적인 것에 근거한 얘기들도 나오지만 의외로 저자께서 그럴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추론하는 내용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최근 독서를 통해 이러한 것들을 경험하다보니, 유시민 작가가 위에서 언급한 ‘그럴법한 이야기‘라는 용어가 독자인 나의 마음에 더 와닿게 느껴졌다. 유현준 교수의 책을 읽다보면 ‘그럴법한 이야기‘들을 종종 만날 수 있기에, 《공간이 만든 공간》이라는 책의 분류가 교양 ‘인문학‘으로 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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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 열역학 법칙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여기에는 제1법칙과 제2법칙이 있는데 저자는 제2법칙에서 언급되는 ‘엔트로피‘라는 것을 키워드로 글을 풀어나간다. 정확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어느정도 공부에 손을 놓지 않았던 분들이라면 문이과를 불문하고 과학관련 지문에서 한 번 쯤은 접해보았을 개념인데,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비록 과거에는 난해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오랜만에 봐서 반갑게 느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사람도 오랜만에 봐야 반갑지 맨날 보면 오히려 지겹지 않은가. 아무튼 이 엔트로피 개념으로 우주의 무질서 현상을 설명하는데, 특별히 모양이 같은 동전 100 개를 사용해서 엔트로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된 예시가 인상적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예시에 나온 숫자나 확률들을 계산해가며 읽는 소소한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이후에 엔트로피와 열역학 법칙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무질서한 사회현상 같은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본문 내용에 따르면 엔트로피 현상의 끝은 결국 우주의 종말로 귀결되는데, 물론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일어날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자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살아있는 동안 각자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나갈 것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권한다.

이 책의 전반적인 모토 가운데 무신론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종교가 없는 무종교인들에게는 마음에 크게 걸릴 것이 없겠지만, 종교가 있는 특정 종교인들에게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이나 본문에 소개되는 과학자들의 말이 약간은 불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특정 종교가 있는 분들의 경우 그 종교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는 저자가 삶의 의미를 스스로 알아서 찾아나가라는 말과는 살짝 배치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데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저자가 말하는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나가라는 말이 굳이 종교적인 이유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얘기는 좀 달라질 수도 있겠다. 다만, 저자나 과학자들의 전반적인 논조가 신은 없다는 것을 전제로 논지를 전개해 나가기에 앞서 내가 언급했던(약간은 불편하다는)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야기가 잠시 곁길로 샜는데 어쨌든 인생은 각자 알아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결국 좋은 게 아닐까 싶다. 예전에 어떤 다른 책의 리뷰에서도 썼던 말인데 결국 인생은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말도 문득 떠올랐다. 복잡한 과학 법칙들을 얘기하다가 결국에는 이렇게 단순한 결론으로 돌아오는 걸 보니 어쩌면 나라는 인간은 단순함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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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관련 내용이 끝나고 다음 챕터이자 마지막 챕터인 수학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영국의 수학자인 하디가 수학을 두 가지로 분류한 것이었다. 저자의 용어를 빌리자면, 하나는 하찮은 수학이고 다른 하나는 진정한 수학이었다. 근데 본문을 읽다보면 아이러니하게도 하찮은 수학은 실용적인 반면 진정한 수학은 아름답기만 할 뿐 쓸모가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 가보도록 하겠다.




‘모든 사물이 대립물의 통일인 것처럼 사회는 대립하는 계급의 통일이다. 사회 변화의 동력은 대립하는 계급 사이의 투쟁이다. 수온이 섭씨 100도에 이르면 액체가 기체로 변하는 것처럼 사회주의 혁명 투쟁이 양적 축적을 계속하면 사회가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때가 반드시 온다. 자본주의 사회가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다.‘ - P243

진지하게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물변증법에 토대를 둔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은 과학과 비슷해서 비판할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 P243

양자역학에 비추어 보면 유물변증법은 더 과학적으로 보인다. 양성자와 전자는 양전하와 음전하를 띤 대립물이며, 원자는 그 대립물의 통일이다. 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것도 그렇게 볼 수 있다. 모든 입자가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고, 대립물의 투쟁이 물질의 변화를 야기한다는 것도 옳다. - P244

그러나 이 모두는 과학의 사실일 뿐이다. 자연의 사실에 부합하는 원리를 가진 철학이라고 해서 진리인 건 아니다. 자신들이 만든 청사진대로 사회를 개조하려고 행사하는 폭력을 그 철학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건 더욱 아니다. - P244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한 후 마르크스주의 역사이론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고 유물변증법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 P243

인문학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산물임을 다시 확인한다. 인문학의 과제는 객관적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큼 ‘그럴법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다. - P244

인문학의 임무는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유용한 ‘담론‘을 생산하는 것이다. - P245

나는, 품격 있는 문장보다 뜻을 쉽고 명료하게 전하는 문장이 좋다. 취향이 그런 것을 어찌하겠는가. - P245

열역학 제1법칙은 다들 알 것이다. 어떤 물리적 과정이 일어나도 물리계의 에너지 총량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에너지는 운동에너지 · 위치에너지 · 복사에너지 · 열에너지 등 모든 형태를 아우르며, 절대 틀리는 일이 없기 때문에 ‘에너지 보존 법칙‘이라고 한다. - P246

아인슈타인의 방정식(E=mc²)에 따르면 에너지와 질량은 서로 넘나들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질량까지 에너지에 포함하여 에너지 보존법칙은 항상 성립한다고 말한다. - P246

열역학 제2법칙은 제1법칙처럼 딱 떨어지는 형태가 아니지만 우리 우주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을 법칙이다. 모든 물리적 과정에서 엔트로피는 증가하지만 아주 드물게 감소하는 경우가 있어서 ‘엔트로피 증가 법칙‘이 아니라 ‘엔트로피 법칙‘ 이라고 한다. - P246

엔트로피는 여러 일상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데, 나는
‘무질서도‘가 제일 이해하기 쉬웠다.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우주는 점점 더 무질서해져 언젠가는 어떤 질서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 P247

엔트로피에 대한 여러 정의 중에서 ‘서로 구별되지 않는 멤버의 수‘를 선택했다. 문과 감성에 그나마 와닿는 것 같아서다. - P247

엔트로피를 이야기할 때는 1번부터 100번까지 동전 가운데 몇 번 동전이 앞면이고 뒷면인지 따질 필요가 없다.
3개만 뒷면인 경우 뒷면이 나온 동전이 23.46.92번이든17.52.81번이든 상관이 없다. 의미 있는 것은 ‘서로 구별되지 않는 멤버의 수‘뿐이다. - P248

100개 모두 앞면인 그룹의 멤버수는 하나뿐이다. 100개 모두 뒷면인 그룹도 그렇다. 이 그룹은 엔트로피가 가장 낮다. 달리 표현하면 질서가 완벽하다. 무질서가 전혀 없다. 무질서도를 높이지 않고는 배열을 바꿀 방법이 전혀 없다. - P248

뒷면인 동전의 수가 늘어나면 무질서도를 유지한 채 바꿀 수 있는 배열의 수도 늘어난다. - P248

누가 개입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전 100개 모두 앞면이거나 뒷면인 고도의 질서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그러나 앞면과 뒷면이 각각 50개씩인 그룹은 아무렇게나 동전을 쏟아도 쉽게 만들어진다. 아무도 개입하지 않으면 무질서도가 높아진다는 뜻이다. - P249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대상은 대체로 저低엔트로피 상태다.  - P249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다. 무질서도가 매우 낮다. 늘 보던 것과 같아서 무엇도 특별히 눈길을 끌지 않는다. - P249

도시의 질서는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에너지를 투입해서 만들었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기 때문에 무질서한 고高엔트로피 상태인 것은 사람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건물의 유리창이 깨져 있거나, 도로에 종이상자가 굴러다니거나, 네거리에 자동차가 뒤엉겨 있거나, 전신주가 기울어져 있으면 금방 알아차리고 누구한테 책임을 물어야 할지 생각한다. 높은 수준의 질서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도시의 질서는 책임을 맡은 누군가가 강력한 의지로 개입해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P250

높은 수준의 질서를 이룬 것은 그 무엇도 저절로 또는 우연히 생길 수 없다. 입자들이 우연히 뭉쳐 거미줄을 만들지는 않는다. 흙이 우연히 달라붙어 컵이 되는 일도 없다. 원숭이가 아무리 컴퓨터 키보드 위를 뛰어다녀도 베스트셀러 소설이 나오지는 않는다. 큰 자루에 부품을 넣고 흔드는 방식으로는 자동차를 조립하지 못한다. 종이에 아무렇게나 먹물을 뿌려서 난초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 거미줄·컵·소설·자동차·난초 그림은 특별한 형태의 생명활동이 개입해 자연의 입자를 특별하게 배열했기 때문에 생겼다. 저엔트로피 상태인 모든 것은 강력한 힘이 개입했다는사실을 알려준다. - P250

엔트로피 법칙을 안다고 해서 크게 좋을 건 없다. 하지만 모르는 것보다는 분명 낫다. 특정한 종류의 오류와 불행을 피할수 있기 때문이다. - P250

엔트로피 법칙은 내게 ‘세상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거부할 수 없는 것은 순순히 받아들이라‘고 조언했다. 그 충고를 받아들이면 열정을 헛되이 소모하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다. - P250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확실히 천재였다. 열역학 법칙을 몰랐던 시대에 영구기관을 망상이라고 비판했다. 영구기관은 외부에서 한 번만 동력을 공급하면 스스로 영원히 작동하는 기관이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포부나 떼돈을 벌겠다는 욕망을 품고 도전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열역학 법칙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 P251

열역학 제1법칙에 따르면 어떤 기관도 외부에서 공급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없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열효율 100퍼센트인 열기관은 만들 수 없다. 모든 열기관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무질서도가 낮은 형태의 고품질 에너지를 무질서도가 높은 형태의 저품질 에너지로 바꾸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열기관은 주기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해 주어야 일을 한다. - P251

열역학 법칙을 알면 재산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수많은 사기꾼이 영구기관 프로젝트로 투자를 유치해 돈을 가로챘다. 영원히 혼자 작동하는 바퀴부터 물로 달리는 자동차를 거쳐 연료를 공급하지 않아도 전기를 생산하는 물 분해장치까지, 영구기관 아이템은 다양했다. 제대로 일하는 특허심사기구는 영구기관 관련 특허 신청은 아예 심사를 하지 않는다. - P251

뜨거운 커피는 마시는 동안 미지근해진다. 아무리 정리해도 집은 어질러진다. 화를 낼 필요가 없고 화내봤자 소용도 없다. ‘엔트로피 법칙 때문이다!‘  - P252

우리들 각자는 ‘질서정연하고 특별한 원자 배열‘이다. 어떤 사람과 배열이 똑같은 원자 집합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 우리 모두는 현재의 무질서도를 유지한 채 원자 배열을 변경하기가 몹시 어려운, 엔트로피가 극도로 낮은 원자 그룹이다. 영구기관을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이러한 저엔트로피상태를 영원히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화와 죽음이 필연이라는 말이다. - P252

나는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며 내가 한 모든 말과 행위가 완전히 잊힐 것임을 받아들인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에게 의존하지 않고 마지막 시간까지 내 인생을 내 생각대로 밀어 갈 작정이다. 존재의 의미와 삶의 목적을 찾는 일을,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고 도덕과 규범을 세우는 작업을, 누구에게도 ‘아웃소싱‘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확인한다. - P253

혼자면 모든 것이 더 힘든 법. 피하고 싶은 일도 남과 함께 하면 두려움과 아픔이 줄어든다. - P253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죽어 없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 모든 생물이 그렇다. 지구와 태양, 별과 은하, 우주 전체도 같은 운명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 P253

기차 경적은 일정한 높이로 소리를 낸다. 그렇지만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서 들으면 기차가 다가올 때는 소리가 높고 지나가고 나면 낮아진다. 소리는 공기 밀도가 바뀌면서 만들어내는 파동 현상이다. 음파는 파장(마루와 다음 마루사이의 간격)이 짧을수록 높게 들리고 파장이 길수록 낮게 들린다. 기차 경적이 일정한 음파를 내는데도 다르게 들리는 것은 기차가 다가올 때는 파장이 짧아지고 멀어질 때는길어지기 때문이다. 경적의 높낮이 차이를 알면 기차의 속도를 계산해낼 수 있다.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도플러 Christian Doppler(1803~1853)가 이 현상을 발견했다. - P254

빛도 파동이기 때문에 도플러 효과가 나타난다. 같은 빛도 다가올 때는 파장이 짧아지고 멀어질 때는 파장이 길어진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가 노란색 빛을 방출한다고 하자. 그 빛이 관측자에게 접근할 때는 파장이 짧아져 파란색 쪽으로 이동하고 멀어지는 경우에는 빨간색 쪽으로 이동한다. 이것을 각각 청색이동과 적색이동이라고 한다. 빛의 도플러 효과다. - P254

미국 캘리포니아 윌슨 마운틴 천문대 연구원 휴메이슨 Milton Humason(1891~1972)과 허블Edwin Hubble(1889~1953)은 1920년대에 별과 은하를 관측하다가 놀라운 사실 두 가지를 발견했다. 첫째, 은하들은 모두 적색이동을 보인다. 모든 천체가 우리한테서 그리고 서로에게서 멀어져 간다는 뜻이다. 둘째, 멀리 떨어진 은하일수록 적색이동의 정도가 심하다. 먼 은하일수록 더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차 경적의 높낮이 차이를 파악하면 기차의 속도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빛의 적색이동 정도를 측정하면 은하들이 달아나는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 이 발견은 빅뱅과 우주의 가속팽창 가설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가 되었다. - P255

엔트로피 법칙을 투사해 보면 우리 우주는 어떤 방식으로든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행복한 결말을 보여주는 시나리오는? 없다. - P255

첫째는 ‘빅 칠‘Big Chill(열 죽음)이다. 우주는 끝없이 팽창하고 은하들은 더욱 빠르게 멀어져 우주 너머로 사라진다.
모든 은하가 그러하듯 우리 은하도 더 고독해진다. 별이 사라지고 블랙홀마저 증발한다. 물질은 모두 흩어져 입자로 돌아간다. 우주는 소립자만 고르게 분포한, 특별한 질서라고는 없는 곳이 된다. 우주 전체가 동일한 온도 값을 가진 최고 엔트로피 상태에 도달한다. - P255

둘째는 ‘빅 크런치 ‘Big Crunch (대함몰)다. 우주는 언젠가팽창을 멈추고 중력 수축을 하면서 빅뱅 이후 벌어진 과정을 거꾸로 밟는다. 은하들은 서로 가까워져 충돌하고 합쳐진다. 우주는 계속 수축해 빅뱅 초기의 초고온 상태가 되고자연의 네 가지 힘이 합쳐지면서 하나의 특이점으로 수렴해종말을 맞는다. - P255

셋째는 우주가 대폭발과 대함몰을 반복하는 ‘빅 바운스‘Big Bounce다. 이것도 하나 좋을 것 없는 시나리오다. 우리의코스모스는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 반복하는 탄생과 소멸의한 국면에 지나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팽창 · 수축하는 우주에서는 어떤 정보도 다음 주기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 우주의 은하 · 별 · 행성 · 생물· 문명은 새로운 우주가 태어나는 대폭발의 특이점을 넘지 못한다. 신이 우주의 태엽을 다시 감는다고 해도 우리 우주에 구원은 없다. - P256

엔트로피 법칙은 우주의 묵시록이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 P256

엔트로피 법칙은 영원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 우주에는 그 무엇도, 우주 자체도 영원하지 않다. 오래간다고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존재의 의미는 지금, 여기에서, 각자가 만들어야 한다. 우주에도 자연에도 생명에도 주어진 의미는 없다. 삶은 내가 부여하는 만큼 의미를 가진다. - P256

길든 짧든 사람한테는 저마다 남은 시간이 있다. - P256

호모 사피엔스에게 남은 시간은 더 길다. 태양이 부풀어올라 지구를 삼킬 때까지 50억 년이 있다. 우리의 후손이 혹시라도 그때까지 살아남아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데 성공한다면 태양과 지구에게 작별 인사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구 탈출에 성공한다 해도 빅 칠이나 빅 크런치를 견디지는못한다. 죽어 없어지는 게 나 혼자만은 아니라니 위로가 된다. 물론 이 모두는 쓸데없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인식 주체인 내가 죽고 없는데 호모 사피엔스가 생존하든 말든, 우주가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P257

해와 달이 번갈아 뜨고 계절이 돌고 화산이 터지고 땅이 갈라지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물리 세계는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하며 물리학은 그런 물리적 실재實在 (reality)를 설명한다. - P261

수학도 물리학처럼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수학적 실재‘를 서술하는 학문이라면 수학의 정리定理(theorem)는 수학적 실재에 대한 관찰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 수학자가 많다. 그들은 수학을기호와 논리로 하는 지적 유희로 간주한다. - P261

과학자는 수학을 우주의 언어로 여기며 물리 세계의 운동을 서술하는 데 필요한 수학을 선호한다. 그러나 수학자는 다르다. 우주와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 연구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 P262

수학자는 논문을 쓸 때 인간의 언어를 최소한으로만 사용한다. 수학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 P262

하디는 ‘하찮은 수학은 유용有用하지만 지루하고, 진정한 수학은 아름답지만 무용無用하다‘고 주장했다. - P263

‘수학이 과학의 여왕이라면 가장 쓸모없는 정수론整數論(number theory)은 수학의 여왕이다‘ - P263

학교에서 가르치는 산술·대수학·유클리드기하학·미적분학과 대학의 공학·물리학 전공자가 배우는 수학은 하찮은 수학이다. 일상의 일과 사회 조직에 큰 영향을 주는 수학, 경제학자나 사회학자가 쓰는 수학도 그렇다. 현대 기하학과 대수학·정수론·집합론·함수론·상대성이론·양자역학은 진정한 수학이다. 진정한 수학은 아름답지만 쓸모가 없다. 인류의 물질적 평안에 기여할 가능성이 없다. 유용성을 기준으로 보면 진정한 수학자는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그들이 있든 없든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 P264

하찮은 수학이 선도 행하고 악도 행하는 것과 달리 진정한 수학은 인간의 일상에서 떨어져 있다. 정수론이나 상대성이론이 전쟁 목적에 쓰인 경우는 없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이런 특성을 지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 수학자의 삶을 정당하게 여길 수 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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