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탄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탄소의 화학적 성질을 정치학 언어로 표현한 저자의 비유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런 식으로 과학을 배우면 문과출신들도 과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듯 하다. 어떤 복잡한 수식이나 산식이 아니라 직관적인 의미로 딱 와닿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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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환원주의‘라는 키워드가 나오는데 이것이 굉장히 폭넓게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분야를 막론하고 학문의 세부분야가 굉장히 잘게 쪼개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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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0에 밑줄 친 문장 중에 ‘단어의 뜻이 문맥에 따라 달라지고 문장의 의미와 느낌이 언어의 장벽을 넘을 때마다 미묘하게 바뀐다‘는 말은 읽으면서 굉장히 공감이 갔던 구절이었다. 이 책에 나온 사례는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뉘앙스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는데, 꼭 여기 나온 단어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들 중에서도 ‘아‘다르고 ‘어‘다른 것처럼 미묘한 차이가 문맥 속에서 점점 증폭되어 의미에 커다란 변화를 유발시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참 말이라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에 관한 얘기들이 잠깐 등장한다.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저자는 양자역학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 양자역학이라는 것을 이해해보고 싶다는 일념하나로 물리학자 김상욱 님이 쓰신 책의 내용에 근거하여 독자들에게 양자역학 관련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한 가지 실험이 나오다가 끝나는데 이어지는 부분은 다음 포스팅에서 더 다뤄보도록 하겠다.


탄소는 왜 생명의 중심이 되었을까? 과학자들이 찾은 답을 정치학 언어로 번역하면, 탄소는 ‘유능한 중도‘여서 성공했다. - P188

중도는 좌우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가끔 치우치는 경우에도 슬쩍 편을 드는 정도에 그칠 뿐 극단으로 가지는 않는다. 열정이 있어도 몰입하지 않으며, 원칙을 지녔지만 독선에 빠지지 않는다. 싸움을 먼저 걸지는 않아도 누가 싸움을 걸면 피하지 않는다. 무능한 중도는 극단에 휘둘리지만 유능한 중도는 좌우를 통합한다. 탄소는 유능한 중도의 대표 사례다. 사람으로 치면 성격이 온화하고 태도가 유연하다. 남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지만 필요할 때는 원만한 관계를 맺는다. 남이 원하는 것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무엇이든 되는 쪽으로 일을 만들어 나간다. - P188

탄소는 전자를 공유할 기회가 오면 거부하지 않지만 남의 전자를 함부로 탐하지는 않는다. 원자핵과 전자가 비교적 가까이 있어서 잘 깨지지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어떤 경우에도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한 것은 아니다. 모든 면에서 어중간하다. 바로 그런 성격 덕분에 탄소는 생명 탄생의 주역이 되었다. - P189

생명이 존재하려면 DNA처럼 안정한 분자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분자의 안정성이 지나치면 안 된다. 때로는 분자를 쪼개어 새 분자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탄소는 그런 분자를 만들기에 딱 좋다. 탄소는 신중하다. 다른 원자가 달란다고 해서 너무 쉽게 전자를 내어주면 생명을 이루는데 적합한 원자들을 만나도 결합하지 못한다. 욕심이 지나쳐 아무 원자하고나 함부로 결합해도 마찬가지 위험이 있다. 그렇지만 인색한 것은 아니다. 전자에 대한 탐욕이 아주 강한 수소가 다가오면 너그럽게 안아준다. 그렇게 해서 탄소와 수소결합이 생명체의 분자를 이루게 되었다. - P189

탄소는 ‘리버럴‘하다. ‘부족본능‘ 따위는 없다. 자기네끼리도 잘 뭉치고 다른 원소와도 잘 어울린다. ‘우리‘와 ‘그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탄소끼리 뭉칠 때나 황·인·산소·질소와 결합할 때나 껴안는 힘이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고도 서로 다른 여러 원자 사이를 오간다. 종류가 다른 여러 원소와 이중·삼중으로 결합하기도 한다.
탄소를 함유한 분자는 탄소 원자 하나가 수소 원자 4개와 단순하게 결합한 메탄부터 놀랍도록 긴 인체 DNA까지 구조와 종류가 무한히 다양하다. 생명을 빚어낼 원소로 탄소만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없다. 우주의 다른 행성에 생명이 있다면, 거기서도 탄소가 주인공일 가능성이 높다. - P190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순수한 탄소결합물인데 결합 방식이 살짝 다르다. 그것이 둘의 운명을 갈랐다. - P190

탄소 원자 하나가 다른 탄소 원자 3개와 같은 평면에서 손잡으면 흑연이 된다. 어떤 탄소 원자도 아래나 위로 입체구조를 만들지 않아서 조금만 힘을 주면 층과 층이 미끄러져 떨어진다. 이런 성질 덕분에 흑연은 연필심으로 만들어져 화가와 작가와 과학자들이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고 다듬고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미술과 문학과 과학의 발전에 흑연만큼 큰 기여를 한 물질이 또 있을까? - P191

탄소 원자 하나가 다른 탄소 원자 4개와 결합해 3차원 구조를 만들면 다이아몬드가 된다.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가 상하좌우 모든 방향으로 뭉쳐 균질한 결정을 이루고 있어서 다른 물질로는 자를 수 없을 만큼 단단하다. 시야를 흐리는 불순물이 전혀 없어서 굴절된 빛을 영롱하게 내뿜는다. 사람들은 그 단단함과 영롱함에 영원한 사랑에 대한 소망을 투사했다. - P191

똑같은 탄소인데도 결혼 예물이 된 다이아몬드가 부여받은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는 증거는 없다. 남자가 보유한 권력과 재산의 크기를 증명하는 수단으로는 훌륭했지만 그 영롱함으로 사랑의 환희를 북돋운 건 짧은 순간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책임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사랑을 빛바래게 만든 시간에게 물어야 한다. - P191

‘중도 성향‘ 원소는 탄소 말고도 많다. 그런데 왜 하필 탄소였을까? 주기율표의 탄소 바로 아래에 규소(Si)가 있다. 규소는 탄소와 마찬가지로 최외곽 껍질에 전자 4개가 있다. 지구에 산소 다음으로 많아서 생명 탄생의 주역 자리를 두고 경쟁할 만하다. 그러나 규소는 최외곽 껍질이 3층이라서 전자와 핵의 거리가 탄소보다 멀기 때문에 자기네끼리 결합하는 강도가 탄소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복잡하고 긴 사슬을 만들지 못하며 다른 원자와 안정된 결합을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규소 원자 하나가 수소 원자 4개와 결합한 실란(SiH4)은 상온에서 자연발화하고 만다. 게다가 탄소보다 덩치가 커서 산소와 이중결합을 이루기 힘들다. 산소를 이용해 다른 규소 원자와 그물망처럼 연결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유리 재료로 쓰는 규산염이다. 규소는 한 번 규산염 구조에 들어가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주기율표의 중간에 있지만 규소보다 더 크고 무거운 게르마늄·주석·납이 생명을 빚을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 - P192

내 몸은 탄소가 중용의 도를 지킨 덕분에 존재한다. 탄소를 함유한 물질은 검은색을 띠는 경우가 많다. 탄소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알고 나자 검은색에 대한 느낌이 달라졌다. - P192

나는 과학의 사실에서 별 근거 없는 감상을 함부로 끌어내는 습관이 있다. 과학 공부를 해도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문과다. - P192

과학자는 과학의 사실을 그저 사실로만 대한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물질의 구조와 성질이 원자의 결합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특별한 감정을 품지 않는다. - P193

화학자와 물리학자는 ‘환원주의‘還元主義(reductionism) 논쟁을 하지 않는다. 화학자가 양자역학을 원래 자기네 것인 듯 가져다 쓰고 물리학자가 거리낌 없이 화학 책을 쓴다. 하지만 누구나 환원주의를 환영하는 건 아니다. 인문학자와 사회생물학자들은 감정을 불태우면서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 P193

화학이 환원이라는 연구 방법의 필요성과 장점을 잘 보여준다고 판단 - P193

환원은 분야를 불문하고 널리 사용하는 연구 방법이다. 특별히 내세우진 않지만, 인문학자도 널리 쓴다. - P193

환원은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나누어 단순한 것의 실체와 운동법칙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환원주의는 이러한연구 방법을 모든 대상에 적용하려는 경향이나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 P193

복잡함과 단순함은 상대적 개념이라는 데 주의하자. 복잡한 것은 단순한 것으로 나눌 수 있고, 단순한 것은 더 단순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 P193

예컨대 소금이 물에 녹는 것은 ‘비교적 복잡한‘ 현상이다. 물의 산소 원자가 음전하를 띠고 수소 원자가 양전하를 띤다는 것과 소금 결정을 구성하는 나트륨 원자와 염소 원자가 각각 전자 하나씩을 방출하거나 영입해 전하를 띠는 것은 ‘비교적 단순한‘ 현상이다. - P194

비교적 단순한 현상으로 비교적 복잡한 현상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원은 강력한 연구 방법이다. 그 방법을 널리 적용하는 연구방법론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 P194

인문학은 인문학이고 과학은 과학일 뿐이다. - P197

우리는 과학혁명의 문을 연 과학자의 이름과 생애를 안다. 코페르니쿠스, 튀코 브라헤Tycho Brahe(1546~1601), 케플러, 갈릴레이 같은 이들이다. 뉴턴은 그들이 발견한 모든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물리학을 정립해 과학혁명을 궤도에 올렸다. 그 혁명을 이끈 연구방법론이 바로 환원주의였다. - P197

과학자들은 흔히 호모 사피엔스가 찾아낸 지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로 원자론을 꼽는다. ‘세계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생각해낸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 발견을 이끌어낸 질문이다.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답을 찾으려면 크고 복잡한 세계를 작고 단순한 것으로 끝없이 쪼개야 한다. 과학의 역사는 환원주의 연구방법론의 위력을 결과로 증명했다. - P198

학문이 끝없이 작은 단위로 갈라진 것도 환원주의 연구방법론과 관계가 있다. 생물학·화학·물리학은 과학의 큰 갈래다. 분야마다 다양한 세부 학문이 있다. 예컨대 생물학에는 동물학·식물학 · 미생물학 · 분자생물학 · 세포생물학·유전학·진화생물학·사회생물학 등이 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유전학 내부로 들어가면 생물학자도 다 알지 못할 정도로 많은 전문분야가 있다. 인문학도 그렇다. 경제학·정치학·사회학 인류학·철학·역사학 · 언론학 등은 큰 갈래일 뿐이다.
경제학 안에 미시경제학 · 거시경제학· 재정학· 경제통계학·수리경제학·노동경제학 · 금융경제학 · 무역학 · 보건경제학·환경경제학·경제지리학 등 여러 분야가 있고, 분야마다 경제학자도 잘 모를 세부 전공이 펼쳐진다. 모두가 복잡한 대상을 단순한 것으로 쪼갠 탓에 생긴 현상이다. - P198

환원주의가 추동한 학문의 세분화와 전문화 현상은 인문학과 과학을 가리지 않았다. - P199

만사가 그렇듯 환원주의도 위험 요소가 있다. 가장 중대한위험은 복잡한 것을 설명한다는 원래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단순한 것을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가장단순한 수소의 원자 구조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누가 부정하겠는가. 그러나 우주의 구조와 운동법칙을 설명할 수 있어야 수소의 원자 구조를 아는 것이 온전한 의미를가진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 P199

복잡한 것을 설명하는 임무를 수행하려면 연구자가 자신이 몸담은 세부 학문의 경계를 넘어 다른 분야의 연구 성과를 습득하고 다른 분야의 연구자와 소통해야 한다. 설명하려는 대상이 우주든 사회든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그래야 환원주의가 훌륭한 연구방법론이 될 수 있다. 윌슨은 그런 노력을 가리켜 ‘통섭‘統攝(consilience)이라고 하면서 - P200

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는 것은 지성의 가장 위대한 과업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지식의 파편화와 철학의 혼란은 실제 세계의 반영이 아니라 학자들이 만든 것이다. 통섭은 통일統一(unification)의 열쇠다.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사실에 기반을 둔 이론을 연결해 지식을 ‘통합‘해야 한다. - P200

학문의 갈래를 가로지르는 통섭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소수의 과학자와 철학자가 공유하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에 지나지 않지만 과학이 지속적으로 성공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지지해 준다. 인문학에서도 힘을 발휘한다면 더 확실한 지지의 증거가 될 것이다. 통섭은 지적 모험의 전망을 열어 주고 인간의 조건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 P200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 ‘consilience‘는 철학자 윌리엄 휴얼 William Whewell(1794~1866)이 1840년에 출간한 『귀납적 과학의 철학』에서 처음 사용했다. 망각의 운명을 선고받고 역사의 심연에 가라앉고 있던 그 말을 윌슨이 건져 올렸다. - P200

통섭은 환원주의를 수단으로 삼아 지식을 통합하는 것이다. - P201

분석은 과학적 방법으로 하지만, 통섭은 언어로 해야 하기에 과학과 인문학이 모두 필요하다. 진리를 따라 과감하고 자유롭게 학문의 국경을 넘나들어야 한다. 진리는 철새처럼 어느 정도 정해진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생물학에서 나온 문제가 경제학과 정치학을 거쳐 심리학과 수학에 정착한다. 사회학의 문제가 행정학 · 법학 · 기상학·화학·음악의 영역까지 뻗어 간다. - P201

지난날의 ‘학제적interdisciplinary 연구‘는 여러 분야 연구자들이 저마다 자기영역의 목소리를 보탠 ‘다학문적multidisciplinary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 통섭은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일관된 이론의 실로 전체를 꿰는 ‘범학문적transdisciplinary 접근‘을 요구한다. - P201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문학에 과학의 토대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1장에서 만났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그랬고, 우주와 생명과 인간을 하나로 묶은 TV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제작하고 같은 제목의 책을 쓴 천문학자 칼 세이건도 그랬다. 『엔드 오브 타임』의 절반을 인문학에 할애한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물리학자 슈뢰딩거를 만나게 된다. 그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생물학을 물리학으로 환원하려고 했다. ‘통섭‘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윌슨과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 P202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전문분야를 넘어 세계를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 P202

윌슨은 인문학을 사회생물학의 하위 분야로 통합하자고 하지 않았다. 인문학의 명제를 과학이 밝혀낸 생명과 인간에 관한 사실에 비추어 보고 과학의 토대 위에 인문학을 재구축하자고 했을 뿐이다. - P206

영어 ‘uncertainty‘는 여러 의미로 쓰는 단어다.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1901~1976)가 제안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Unbestimmtheit을 영어권 학자들이 이 단어로 옮겼다. - P210

인간의 언어로는 양자역학을 서술하기 어렵다. 단어의 뜻이 문맥에 따라 달라지고 문장의 의미와 느낌이 언어의 장벽을 넘을 때마다 미묘하게 바뀌기 때문이다. - P210

독일어 ‘Unbestimmtheit‘ (발음은 운-베슈팀트-하이트)는 동사 ‘bestimmen‘(베슈팀멘, 확정하다)에서 나왔다. 수동형 ‘bestimmt‘ (베슈팀트, 확정된)에 명사형 어미 ‘heit‘를 붙이면 ‘Bestimmtheit‘ (베슈팀트-하이트, 확정됨), 여기에 반대말을 만드는 전철 ‘un‘을 더하면 ‘Unbestimmtheit‘ (확정되지 않음)가 된다. ‘uncertainty‘는 가장 비슷한 영어 단어이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아서 물리학에서는 ‘불확정성‘으로 옮기고 인문학에서는 ‘불확실성‘으로 번역한다. 같은 단어인데도 맥락에 따라 다르게 옮기는 것이다. - P210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말의 유행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와 관련이 있었던 듯하다. - P210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입자의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알 수 없다. - P211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의심해서 나쁠 건 없다. 낡은 것을 의심해야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일이다. - P211

불확정성 원리는 인간 인식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다. 거꾸로 말해야 맞다. 양자역학은 고전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시세계의 운동법칙까지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 P211

수소 원자는 핵에 양성자가 하나 있고 그 바깥에 전자가 하나 있는 게 전부다. 전자는 원자핵 주변을 둘러싼 구름형태로 분포한다. 구름의 밀도는 그 위치에서 전자를 발견할 확률을 나타낸다. 핵에서 멀어질수록 구름 밀도는 낮아진다. 전자가 이런 식으로 분포한 것을 오비탈이라고 한다. 오비탈은 행성의 공전 궤도처럼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전자의 궤적이 부정확하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지점의 전자구름 밀도를 계산해서 특정 전자를 특정 위치에서 발견할 확률을 알아낼 수 있다. 전자를 정말 그곳에서 발견할 것이라고 할 수 없어서 정확하지 않다고 할 뿐이다. - P212

양자역학은 우리가 사물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음을 증명하지 않는다. 반대가 진실이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진정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 P212

불확정성 원리는 인문학에 ‘불확실성‘ 개념이 퍼지는데 영향을 주었다. - P212

물리학자들은 인문학자와 달랐다. 그들은 불확정성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물리학 자체가 지진 난 땅처럼 흔들렸다. 고전역학은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아는 데서 출발한다. 중력이 왜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어떤 물질의 위치와 낙하 속도를 알면 몇 초 후에 그것이 어디에 있을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총알처럼 수평으로 날아가는 물체의 운동도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서술하고 예측한다. - P213

고전역학의 세계는 결정론이 지배한다. 모든 것이 물리법칙으로 확실하게 결정되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안다. 그런데 입자들이 활동하는 미시세계에서는 고전역학의 결정론이 통하지 않는다. 경악스러운 사태였다. - P213

슬릿(좁고 긴 직사각형 구멍) - P213

입자인 전자가 접착제 바른 야구공처럼 날아간다고 생각하자. 두 슬릿 가운데 하나를 통과한 전자는 스크린에 달라붙어 세로 줄무늬를 두 개 만들 것이다. 그런데 결과가 엉뚱했다. 스크린에 세로 줄무늬가 여럿 생겼다. 고전물리학 실험에서 나타나는 파동의 간섭무늬 비슷했다. 하나의 전자가 파동처럼 두 슬릿을 다 통과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결과였다. 실험 결과에 대한 논리적 해석은 하나밖에 없었다.
‘전자는 입자이고 파동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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