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니 자연스럽게 대변인인 제사장이 권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제사장은 신전을 건축해 준 왕에게 하늘에서 내려 준 적통성을 부여한다. 신전 건축을 통해 정치적 왕과 종교적 제사장이 상호 인증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 P218
높은 곳은 권력을 창출한다. 높은 곳을 만든 다음에 그곳에 가게 해 주는 건축 장치는 계단이다. 그리고 그 계단을 장악하는 사람은 권력자다. 지구라트를 지은 사람들은 계단을 통해 권력을 창출하고 그 권력을 통해 나라를 통치하는 힘을 만들어 낸 것이다. 계단은 이처럼 권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장치다. - P218
우리는 권력을 나타내는 다양한 건축물에서 계단을 볼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의 하단부에도 계단이 있고, 자금성에도 황제가 있는 건물은 수십 개의 계단 위에 위치한다. 우리나라의 법원이나 검찰도 계단 위에 있는 건물을 선호한다. - P218
우리에게 권력의 상징인 높은 건물이 없는 데는 산악 지형이 많기 때문에 건축물의 구축술이 크게 발전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성을 보더라도 대부분이 ‘산성‘이다. 힘들게 평지에 해자를 파고 성을 짓기보다는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악 지형을 이용해 대충 토성만 쌓아도 방어가 되니 굳이 평지에 성곽을 짓지 않은 것이다. - P219
우리나라의 계단은 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것보다는 지형이나 기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주를 이룬다. - P220
우리나라 기후는 계절풍의 영향으로 장마철이 있는 몬순기후였기 때문에 땅이 습했고 그래서 주거 공간은 땅의 습기에서 자유로올 수 있도록 약간 높이 들린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다 보니 몇 개의 단을 올라서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를 가진다. - P221
일반 주거에서 계단이 많이 보이게 된 것은 현대에 접어들어 도시로 인구가 집중하면서부터다. 한국전쟁 이후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평지만으로는 주거지가 해결되지 않자 경사지에 주거지가 들어가는 달동네가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주거 공간속에 계단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 P221
계단이 건축적으로 힘을 잃게 된 것은 엘리베이터의 발명 때문이다. 엘리베이터가 도입되면서 고층 건물이 가능해졌고 사람들은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계단을 거의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 P221
우리의 외부 환경에서 계단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무장애 설계라는 시대적인 요구로 인해 비상계단 이외의 계단은 멸종 위기에 처했다. - P222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서 계단이 있는 곳은 사람이 보호받는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계단이 많은 이화동, 경리단길 등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계단은 시대에 따라 권력을 창출하여 사람을 억압하기도 했고, 때로는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면서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건축 요소다. - P222
건축가 지오 폰티는 계단은 두 개의 다른 공간을 연결해 주는 멋진 건축 요소라고 말했다. - P222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속 주인공 키팅 선생님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책상 위에 올라가라고 요청한다. 작지만 수십 센티미터 커지는 그 시점의 변화가 엄청난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다. - P222
우리가 아는 20층 넘는 고층 건물은 카네기가 개발한 강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건축디자인이다. 물론 그러한 고층 건물이 가능했던 것은 오티스 엘리베이터를 발명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고층을 지어도 걸어 올라가기 힘들어서 사람이 살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 P229
엘리베이터와 강철, 이 둘이 만나면서 우리가 사는 고밀화 도시가 만들어진 것이다. - P232
요즘은 사업가들이 부실한 기업들을 인수 합병해 직원을 정리 해고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 일을 한다. 그 일을 시작한 사람이 모건이다. 그에게는 새로운 발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부자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그런 그가 주목한 사람이 에디슨이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했고, 모건은 이 전구가 록펠러의 등유 램프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실현되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 P232
과거에는 고래잡이를 많이 했는데 그 이유는 고래의 몸에 있는 기름을 램프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 P234
포드의 소꿉친구인 윌리엄 할리와 아서 데이비슨은 자전거에 내연기관을 설치한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을 만들었다. - P234
밀턴 허시는 포드의 생산 라인 방식인 포디즘을 이용해 허시 초콜릿을 만들었다. - P234
이제 미국 국민은 포드가 만든 자동차에 록펠러가 만든 휘발유를 넣어 달리고, 카네기가 만든 강철로 지은 고층 건물에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 후 저녁에는 모건이 만든 발전소 전기를 이용해 에디슨이 만든 전구를 켜고 지내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 P235
건축의 기본은 비가 세지 않게 하는 ‘방수‘다. - P238
생명체는 과거의 흔적을 DNA 속에 간직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안에 숨겨져 있다. 사람이 사는 집 역시 진화하지만 과거의 흔적을 내포하고 있다. - P238
인류 역사 초기의 동굴 주거는 주거의 줄기세포와 같다. 동굴 주거 안에는 이미 인간 주거 조건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우선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변 동물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줄 동굴 벽이 둘러쳐져 있다. 입구는 하나만 있어서 보안상 유리하다. 불을 가운데 두어 보온하였고 음식을 익혀 먹었다. 사람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불을 쳐다보며 쉴 수 있었고, 벽화를 그려서 주거 공간을 장식했다. 지금 대략적으로 살펴본 동굴 주거 공간의 일곱 가지 특징이 이후 농경 사회에도, 산업 사회에도, 지금의 정보화 사회에도 우리의 주거 공간에 동일하게 나타난다. - P239
뇌과학자 이대열은 ‘지능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 내렸다. - P240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저서《총 균 쇠》에서 ‘대륙의 모양이 가로로 기냐 세로로 기냐‘라는 간단한 지리적 사실을 가지고 복잡한 인류 역사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 P241
유라시아 대륙은 가로로 길기 때문에 농업 발생 초기에 주변 지역으로 전파되기 쉽다는 것이다. 대륙이 가로로 길면 동서 방향으로는 위도가 같아서 기후대가 동일하다. 자연스럽게 이쪽 지역에서 성공했던 종자가 아웃으로 전파되기 쉬운 것이다. - P241
반면 아프리카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은 남북으로 길어서 조금만 위아래로 이동해도 기후대가 달라져 농사에 실패할 확률이 많았다. - P241
지리적인 조건이 인류의 문명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 - P241
문명이 발달하려면 많은 사람들 간에 생각의 교류가 있어야 한다. 도시는 생각이 교류하는 장소를 제공한다. 따라서 문명 발달에는 도시 형성이 필수적이다. 씨족 단위로 움직이는 유목민족에게서 혁신적인 발명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세계사에서 들어 본 적이 없다. 모든 혁신적 아이디어는 도시민들에게서 나왔다. - P242
고밀화된 도시는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전염병이 돌면 사람은 흩어지고 도시는 와해된다. 따라서 도시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려면 전염병이 없는 시스템이 필수다. - P242
최근 연구 논문에 의하면 비가 내릴 경우 지면의 바이러스가 발표되면서 작은 알갱이 상태로 옆으로 전달된다고 한다. 따라서 잦은 비는 바이러스의 전염을 유발한다. - P242
비가 적게 오는 건조기후대는 전염병의 전파가 적은 장점이 있었다. 지대가 습한 경우 세균의 번식도 용이하다. 따라서 상하수도 같은 위생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도시에 전염병이 돌지 않으려면 습한 기후보다는 건조한 기후가 유리했다. - P243
최초의 문명은 건조기후대에서 시작되었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북으로 북으로, 비가 오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 P243
로마는 ‘아퀴덕트‘라고 불리는 수도교를 이용해 수로를 건축해서 시골의 깨끗한 물을 도시에 공급하는 시스템을 최초로 만들었다. 이러한 상수도 시스템 덕분에 습한 로마에서도 위생적인 도시를 만들 수 있었다. - P244
도시가 형성되는 데 필요한 또 하나의 조건은 ‘물‘이다. 사람이 마시거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물이 없다면 도시가 형성되기 어렵다. - P244
만 년 전 지구는 빙하기였다. 기후학자들은 빙하기 시대에는 지역마다 기온차가 심해서 바람도 지금보다 훨씬 더 셌을 것이라고 한다. 농작물이 자라나려면 유기물이 풍부한 얇은 토층이 필요하다. 문제는 바람이 세서 그런 유기질 토층이 축척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빙하기 시대에는 농사가 어려웠다. - P245
한옥의 형태는 형이상학적인 이유가 아니라 필연적인 이유로 나온 디자인이다. - P247
우선 농경 사회에서는 수확한 벼를 탈곡하고 각종 작업을 할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운데 마당을 두고 주변으로 집을 지었다. 우리 조상들 집의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지 않다. 한옥의 마당은 정원이 아니라 작업장이기 때문이다. - P247
장마철처럼 비가 많이 오면 땅이 물러지기 때문에 벽돌을 한장씩 쌓는 조적식 벽을 세우기가 어렵다. 그래서 건축물은 최대한 가볍게 지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무거운 돌보다는 가벼운 나무를 주자재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무는 물에 젖으면 썩는다. 우리 전통 건축의 디자인은 나무를 물에 젖지 않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 P248
우선 나무 기둥은 하부가 물에 잠겨서 썩지 않게 주춧돌 위에 세웠다. 땅이 습하니 마루는 땅에서 들린 높이에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대청마루는 디딤돌을 밟고 올라간다. 나무 기둥이 비에 젖어서 썩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서까래를 길게 뽑아서 처마를 만들었다. - P248
지붕의 코너 부분의 처마는 대각선상에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처마보다 더 길어진다. 이 코너 부분을 ‘추녀‘라고 한다. - P248
처마의 길이가 길다 보니 그림자는 더 깊게 드리워진다. 그런 이유에서 코너 부분을 받치는 나무 기둥이 물에 젖으면 그늘에서 마르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처마를 들어 올리는 디자인을 해야 했다. 처마의 끝이 올라간 것은 코너의 나무 기둥에 햇볕이 더 들게 하기 위한 디자인이다. - P249
남쪽으로 갈수록 해의 입사각이 높아져서 위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처마는 더 급하게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보다 위도가 낮은 동남아시아 지역 지붕의 추녀는 더 급하게 올라간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처마의 곡선은 낮아진다. - P249
철저하게 경제적, 기술적, 환경적 제약을 해결하다 보니 나온 디자인이다. 모든 디자인은 문제 해결의 결과물이다. 한옥에 살던 우리는 지금은 건축 재료와 기술의 진화로 등장한 콘크리트와 보일러와 엘리베이터 덕분에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다. - P249
도시와 건축의 진화는 주어진 기후 속에서 문제 해결을 하는 지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 P249
환경의 변화는 삶의 형식을 바꾼다. 바뀐 경제, 정치 구조는 새로운 건축과 도시를 만든다. 새롭게 만들어진 건축환경과 도시환경은 다시 사람을 바꾼다. 바뀐 사람은 다시 정치 시스템을 바꾸고 사회조직을 바꾼다. 이는 다시 건축과 도시와 주변 자연환경을 바꾼다. 전체적으로 그 규모와 속도는 점차 빨라진다. - P250
기후가 바뀌면 건축과 도시와 사회가 바뀐다. 기후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이 시대에 진화의 수레바퀴는 우리를 어떤 사회와 건축과 도시로 이끌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P250
시대가 바뀌면 새로운 발명이 나오고 그것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마찬가지로 건축에서도 기술과 재료가 진화하면서 새로운 건축물이 만들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변화무쌍한 부분이 바로 창문이다. - P250
유리를 나타내는 영어 ‘glass"의 라틴어 어원은 ‘glaesum‘ 으로, 보석 중 하나인 ‘호박‘을 지칭한다. 고대부터 ‘유리‘는 투명하고 빛나는 물질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 P251
고대에는 백색 모래를 절구로 갈아서 질산칼륨과 섞은 다음 용광로에서 함모니트룸이라고 불리는 덩어리를 만들고 이를 다시 녹여 백색의 유리 덩어리를 만들었다. - P251
유리는 빛을 투과시킨다는 물질적인 특징 때문에 건축에서는 오래전부터 특별하게 사용되어 왔다. 그중 대표적인 케이스가 고딕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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