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구입해놓고 다른 책들로 인해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못 읽다가 드디어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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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주인공 시점인듯 보여지는 주인공이 좀 이상하다. 처음에는 자기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했다가 좀 더 뒤에서는 자기가 그림을 못 그린다고 한다. 주인공에게서 정신 분열의 기운이 느껴지는, 약간은 무서운 느낌이다.

흐름에 따라 쭉 읽으면서 주인공이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없이 자기 스스로 타인을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쪽으로 생각하는 우울증(?) 비슷한 정신이상 상태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혹시 그래서 책 제목이 ‘멜랑콜리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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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어서 읽다보니 작년에 읽었던 욘 포세의 다른 작품들과 이야기의 소재만 다를뿐 전반적인 특징들은 비슷한 양상을 보여준다. 동일한 혹은 유사한 문장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고, 독자인 나는 반복되는 이러한 문장들을 계속 읽으면서 주인공의 ‘생각 혹은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스며들게 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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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라스는 어떤 술집에 들어가서 희고 검은 천이 자신의 주위에서 빙빙 도는 것을 보게 되는데, 주변 정황을 보면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기 보다는 주인공 자신의 관념 속에서 나온 착시현상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독자인 나의 주관적인 느낌을 조금 보태자면 희고 검은 천은 선과 악을 상징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느낌의 근거인즉, 이것이 나오는 배경이 웨이트리스가 있는 어느 술집인데 그 웨이트리스가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를 지속적으로 유혹하는 듯한 장면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근데 뒤이어 읽다보니 p.87에 밑줄 친 부분에서 이 희고 검은 천이 흰자와 검은 눈동자가 있는 ‘사람의 눈‘을 상징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앞에서 나온 내재적 의미와 동일한 건지 아니면 약간 다른 건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뭐 이런 식으로 해석해볼 수는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Hans Gude(1825~1903), 노르웨이 낭만주의 화파의 화가.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서 회화를 가르치며 젊은 노르웨이 화가들을 양성했다. - P11

아돌프 티데만(Adolph Tidemand, 1814~1876). 노르웨이 낭만주의 화가. 노르웨이의 신화와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유명하며, 노르웨이 왕실로부터 작위를, 프랑스로부터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 P12

구데와 티데만을 제외하고 나처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P12

빙켈만 씨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집주인의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 P14

나는 화가다. 나는 화가라스 헤르테르비그이며,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의 유명한 교수, 한스 구데의 제자다. - P15

Lars Hertervig(1830~1902). 노르웨이의 거친 풍경 속에 환상성을 담아낸 것으로 유명한 화가.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후원자를 만나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서 회화를 공부했으나, 동료 화가들의 냉대를 받으며 정신병을 얻었다. 사후 12년인 1914년에 오슬로에서 열린 ‘1914년 기념회전‘에서 재발굴되어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다. - P14

나는, 젊은 청년,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아들, 퀘이커교 신자, 화가 지망생이었으며, 바로 한스 가브리엘 부크홀트 순트의 후원으로 독일 뒤셀도르프의 예술 아카데미에 유학을 왔고, 그 유명한 한스 구데의 제자가 되어 풍경화가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다. 나는 그림을 정말 잘 그린다. 나는 다른 일은 몰라도 그림 하나만큼은 잘 그릴 수 있다. - P15

Hans Gabriel Buchholdt Sundt(1800~1881). 스타방에르 지역에서 조선소를 운영한 사업가로, 헤르테르비그가 견습생으로 능숙한 솜씨를 발휘하는 것을 눈여겨보고 그에게 교육의 기회와 미대 후원금을 제공했다. - P15

오늘은 한스 구데가 내 그림을 보기 위해 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스 구데가 하는 말을 들을 용기가 없다. 만약 한스 구데가 나더러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사람, 그림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림을 더 그릴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고, 다시 화가 지망생으로 살아야 한다. 나는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내고 싶다.  - P16

알렉산데르 셸란(Alexander Kielland, 1849~1906) 노르웨이 작가. 좌파정신에 입각한 소설과 산문을 썼으며, 헨리크 입센, 비에른셰른 비에른손, 요나스 리와 함께 ‘노르웨이 4대 작가‘로 불렸다 - P25

당신은 내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열대여섯 살밖에 되지 않는 소녀가 당신 같은 남자와 함께 단둘이한 방에 있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설마 정말 내 질문이 이상하다고 여기는 건 아니겠죠? - P48

그렇군요. 헤르테르비그 씨는 헬레네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내가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도 알고 있습니까? 아무리 당신이 철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쯤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만. - P49

헬레네와 나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입니다!
빙켈만 씨가 험악한 눈초리로 나를 째려보았다. - P49

내뱉지 않았어야 하는 말을 했던 것이다. - P49

나는 당신이 그저 기분 좋은 말을 건네기 위해 나를 찾아오진 않았다는 걸 잘 알고있었다. 당신이 내방에 왔던 것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느낄수 있었다. - P57

내가 갈 수 있는 다른 곳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갈 곳이 있다. - P59

Malkasten. 1848 년에 발족한 뒤셀도르프 예술인연합. 여기서는 그 회합이 이뤄진 클럽하우스인 말카스텐하우스를 가리킨다. - P59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아는 사람과 마주치지 않기만을 바랐다. - P62

나는 말카스텐이 텅 비어 있기를 바랐다. 단 한 사람도 없이 오늘은 내가 난생 처음으로 말카스텐에 가는 날이다. 나는 말카스텐에 들어섰을 때 그곳에 내가 아는 사람이 없기를 바랐다. 말카스텐에 앉아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 P67

나는 혼자 있고 싶었다. - P69

내겐 돈이 있고,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할 것이다. - P71

알프레드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나도 술을 사야할텐데, 내겐 돈이없다. 내 수중에 있는 쥐꼬리만 한 돈은 모두 다른 이들에게서 받은 것이다. 나는술을 사서 마실 형편이 아니다. 내겐 돈이 거의 없다. 나는 술을 마시면 안 된다. 나는 돈을 모아야 한다. 내게 있는 돈은 모두 다른 이들에게서 받거나 빌린 돈뿐이다. 나는 생계와 학업을 위해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받는다. 나는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다. 하지만 한스 가브리엘 부크홀트 순트, 그는 돈이 많은 부자다. 내 수중에 있는 돈은 모두 그가 보내 준 돈이다. 나는 술로 그 돈을 없앨 수 없다. - P74

비켜! 나를 더 괴롭히지 말라고! - P76

내게서 평화를 빼앗기 위해, 나를 괴롭히기 위해, 그 희고 검은 천은 내 주위를 빙빙 돌고 있다. 그것은 내게 바짝 다가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 P76

희고 검은 천은 내게 바짝 다가와 나를 에워쌌다. 그 천은 내게서 멀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다가왔고, 다시 멀어지더니 내게 바짝 다가왔다. 천은 내게서 팔 하나 길이를 두고서 멀어졌다 다가오기를 반복했다. - P79

나는 희고 검은 천이 왔다 갔다 움직이는 그자리에 더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했다. 몸을 일으켜 소리쳐 볼까 나는 그 희고 검은 천을 쫓아내야 한다. 천이 나를 가지고 놀도록 가만히 놔둘 수는 없다. - P79

희고 검은 천이 내 주위에서 빙빙 돌았다. 나는 천을 움직이는 게 웨이트리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희고 검은 천을 조종하는 것은 바로 그녀이며 천이 재빨리 움직이거나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도 다 그녀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희고 검은 천이 내게 가까이 다가와 나를 에워싸더니 다시 멀어졌다. 그것은 내게 바짝 붙었다가 다시 멀어졌다. 천이 내게 다가와 펄럭이더니 나를 천 안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 P83

난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어. - P83

희고 검은 천이 내 주위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인다면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나는 희고 검은 천이 내 얼굴 앞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면 제멋대로 움직여도 개의치 않는다. - P84

희고 검은 천이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온다면 담배 연기로 그것을 쫓아낼 것이다. 파이프를 들어 올려 담배를 꾹꾹 눌러넣은 후 연기를 피워 그것을 쫓아낼 것이다. - P85

앞 테이블, 뒤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내게로 다가왔다. 희고 검은 옷을 입은채. 내게 다가온 희고 검은 천은 내 몸을 감쌌다. 그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희고 검은 천들이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내게로 다가오는 옷들, 나를 향해 움직이는 옷들, 천들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내게로 다가왔다. - P87

나는 말카스텐에 있고,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과 그들의 눈동자는 나를 향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눈동자는 나를 잡아먹으려고 했다. - P88

나는 희고 검은 천이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더 이상 내 몸을 에워싸지 않았다. 이제 천들은 테이블 앞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천들은 돌아갔지만, 그들의 눈동자는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 P89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와 함께 앉아 있던 알프레드가 내 파이프를 가져갔다고 해도 그녀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내 파이프를 훔치지 않았다는 알프레드의 말만 믿을 것이고, 내게 자리에 앉으라고 말할 것이며, 내게 알프레드의 파이프에 손을 대지 말라는 말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말카스텐에서 서빙을 보고 있으며 여차하면 주인을 데려올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 그녀는 나를 밖으로 쫓아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말카스텐에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림도 못 그리는 알프레드는 힘들이지 않고 내 파이프를 손에 넣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 P90

당신은 왜 이 사람이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하나요? 웨이트리스가 물었다.
그건 이자가 그림을 못 그리기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그림을 한 점도 못 팔았어요.
그림을 팔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이자는 그림을 두 점이나 팔았어요. 노르웨이 예술인 협회에 팔았죠. 바로 그 때문에 이자는 자기가 그림을 꽤 잘 그린다고 착각하는 것 같아요. 알프레드가 말했다. - P93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어쩌면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니, 나는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나는 사물을 잘 볼 수 있다.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심지어는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조차도 볼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 - P93

오늘은 돈이 없어요. 오늘은 돈을 가져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곧 돈이 올 거예요.
후원자에게서. 알프레드가 말했다.
나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꼭 내가 후원자에게서 돈을 받는다고 말했어야 했을까. 부모님이나 친척이 아니라 후원자에게서 돈을 받는다고, 나의 부모님에겐 돈이 없다. 알프레드는 내가 가난한 집안 출신이며, 그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알프레드는 웨이트리스에게 바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 P94

자네는 여기 없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그만둬야해. 내 곁에 앉아 있던 사내가 말했다. - P97

타스타의 온화한 눈동자가 희고 검은 천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하얀 천은 그의 눈이 되었고 검은 천은 그의 동공이 되었다. 문득, 어디선가 갑자기 푸른 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눈동자와 눈가의 주름 뒤에서 얼굴이 만들어졌고 그것은 타스타의 얼굴이 되었다. - P98

헬레네는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다. - P99

그녀의 검은 미소는 내 발을 집어삼키고 놓아주지 않는 구렁텅이다. 나는 한쪽 발을 구렁텅이에 집어넣은 채 서 있다. - P99

나는 하얀 페인트칠을 한 창문을 향해 발을 옮겼다. 앞으로! 습지에서 발을 빼내고, 젖은 발을 질질 끌며 바다를 향해 걸었다. 습지를 향해 파도를 밀어 보내는 바다를 향해 앞으로 앞으로 걸었다. 이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시각각 다른 색으로 변하는 구름을 향해, 오랜 기억을 향해. - P100

나는 빙켈만 부인의 벌린 입과 두텁지도 가늘지도 않는 그녀의 입술에서 벗어나기 위해 걸었다. 감싸고 있는 입술은 내게 방문 뒤의 작은 다락방, 그곳이 내가 머무를 곳이라고 말했다. 내가 살 곳은 그곳. 나는 그곳에 들어갔다. - P101

그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면 어디선가 희고 검은 천이 스멀스멀 나타나 나를 에워쌀 것이다. 그것은 팔 하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내게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할 것이다. 마치 거뭇거뭇한 바다 위의 거뭇거뭇한 바위섬을 에워싸고 움직이는 파도처럼. - P110

원래 그런 사람이니 개의치 말라고. - P110

그냥 가만히 놔둬요. - P115

하지만 나는 지금은 무의미한 존재다. 가난한 퀘이커 교인의 아들, 자유 사상가의 아들, 인간 지스러기, 아버지와 똑같은 아들인 나는 독일까지 유학을 왔다. 화가가 되기 위해, 독일의 한스 구데 밑에서 공부하기 위해. 나는 라스 헤르테르비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라스 헤르테르비그. - P117

베르겐 : 노르웨이 서부의 베스틀란주에 위치한 도시. 무역과 해운업으로 17세기까지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였다. - P118

햇살이 눈부셨다. 빛이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외면의 빛과 내면의 빛을 말하며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면의 빛이라고 했다. - P119

아버지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 안에도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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