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촌 놈들이 반란을 일으켜 구이민을 빼돌렸습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저희 둘을 꽁꽁 묶었고요. 저희는 이로 줄을 끊고 도망쳤습니다."
"모조리 죽여. 닭 한마리도 살려두지 마라."
토비는 집집을 돌아다니며 보이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눈에 띄는 대로 물건을 빼앗은 뒤 집에 불을 질렀다. 치자촌이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천융량이 비석 앞에서 주민들에게 말했다. "구차하게 살 수 밖에 없다면 차라리 장도끼 무리와 결전을 벌입시다."
날이 어두워졌을 때 그들 사이에는 더 이상 너와 나의 구분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울면서 돌아가지 않겠다고, 치자촌 사람들과 함께 장도끼 무리를 죽여 원수를 갚겠다고 말했다.
스님은 천융량에게 자신들 일곱 명은 장도끼의 횡포를 참을 수 없어 시진을 공격하기 전에 떨어져 나왔다고 털어놓았다.
스님이 말했다. "이 난세에는 농사를 지으면 토비한테 약탈당하거나 죽고, 토비가 되면 약탈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천융량이 대꾸했다. "난세에 토비로 사는 게 창피한 일은 아니지만, 아무리 토비라도 선한 마음을 가져야지요."
"이 원한을 안 갚겠다는 게 아니라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스님이 은표를 세어본 뒤 흥분해 말했다. "총과 탄약을 걱정했더니 이렇게 오는 군요."
한의사들은 썩은 살을 제거하지 않으면 새 살이 돋기 어려우니 독성과 부식성이 강한 승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승약, 그러니까 수은과 초석, 백반 등을 승화시킨 약을 약방에서 받아와 구운석고와 곱게 간 뒤 구이민의 온 몸에 발랐다. 승약의 독성 때문에 구이민의 부패한 상반신이 완전히 문드러졌다.
승약으로 썩은 살을 제거해낸 뒤 한의사는 맵고 따뜻하면서 독이 없고 소염과 향균에 탁월한 마늘을 빻아 구이민의 몸에 발랐다.
"장도끼가 죽어가니 너희도 너희 길을 가라."
산길을 끌어가면서 천융량이 그들 세 사람에게 스님의 이름을 물었는데 그들은 모르고 천야오우가 알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샤오산이라고 알려주었다.
천융량은 조용히 몸을 일으킨 뒤 린샹푸 귀뿌리에서 뽑아낸 칼을 소맷자락에서 꺼냈다. 그러고는 탁자를 돌아 장도끼의 왼쪽 귀에 대고 나직하게 말했다. "칼도 돌려주지."
장도끼가 깜짝 놀라 은화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가 오른손으로 모제르총을 들었을 때는 이미 칼이 왼쪽 귀뿌리에 박힌 뒤였다.
한의사들은 분노는 간을, 기쁨은 심장을, 그리움은 비장을, 슬픔은 폐를, 두려움은 신장을 상하게 만든다면서 구이민이 혼절한 건 슬픔이 폐를 상하게 해서라고 설명했다. 감정이 끓어오르면서 폐의 기운이 꽉 막히자 진액이 흐를 수 없어 가래로 응결되고 기까지 엉겨 붙었다는 거였다. 한의사는 말린 대추와 사향, 청몽석, 천죽황, 월장석을 섞은 가루약으로 가래를 삭이고 막힌 기운을 풀었다.
오랫동안 망설인 끝에 구이민은 그래도 린바이자를 불러 아버지의 마지막을 보게 한 뒤 천천히 앞날을 상의하는 게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이민은 린샹푸 고향에서 다섯 사람이 왔는데 그중 한 사람은 죽은 채로 수레에 실려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희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기어코 따라나섰습니다."
"자네들이 편지를 받기 전에 그는 이미 세상을 떴네."
"큰 형이 길에서 돌아가신 것도 비를 몇 차례 맞아서예요."
"큰형은 어쩔 수 없어도 도련님까지 비를 맞으시면 안 되죠. 옛 말에 비가 관 뚜껑을 때리면 자손은 이불이 없다고 했잖아요."
시진의 풍습으로는 친척만 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외부인은 관을 보면 피해야 나중에 불운을 입지 않는다고 믿었다.
린샹푸가 어렸을 때는 톈다의 목말을 타고 늘 둘이 함께 마을과 벌판을 돌아다니더니 이제는 나란히 누워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뿌리를 향해 돌아가고 있었다.
시진의 나이 든 사람 중에는 샤오메이와 아창의 어린 시절을 지켜본 사람도 있었다.
그들 둘은 다른 아이들, 혹은 보통의 어린 시절로부터 중간에 창호지를 발라 놓은 듯 동떨어져 있었다.
완무당 시리촌의 지씨 집에서 태어난 샤오메이는 열 살 때 시진 선씨 집안에 민며느리로 들어갔다.
아창은 선가의 외동아들로 본명이 선쭈창이었다. 아창은 그의 아명이었다.
미래의 시아버지는 온화한 얼굴로 일어나 그녀 아버지에게 앉으라고 권했지만, 미래의 시어머니는 말없이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 순간 그녀는 겁이 났다.
수선집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샤오메이의 모습에 미래의 시어머니는 너무 활발한 여자애인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면 깔끔하고 청초한 외모는 또 마음에 들었다.
탁 트인 경치가 눈앞에 펼쳐지자 열 살 샤오메이의 눈이 기쁨에 물들었다. 금싸라기 같은 눈빛은 저녁 무렵 시리촌에 도착했을 때에야 그녀 눈에서 사라졌다.
푸른색 꽃무늬 옷을 입은 샤오메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완무당에서 온 시골 소녀가 아니라 선뎬에서 온 도시 소녀 같았다.
샤오메이가 자기 집에 들어온 뒤 첫날 아침을 눈물로 시작하자 시어머니는 아무래도 불길하니 이 철없는 아이를 완무당 시리촌으로 돌려보내야겠다고 남몰래 생각했다.
엄격한 시어머니는 입으로 뱉지 않았을 뿐 전부 눈과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다.
샤오메이는 선가에 들어온 지 한 달 뒤부터 바느질을 배웠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기술을 샤오메이에게 전수하겠다는 결정은 시어머니가 민며느리를 받아들였다는 의미였다.
시어머니는 샤오메이가 영리하고 손재주도 좋다는 걸 발견했다. 2년을 배운 아들의 솜씨를 샤오메이는 두 달만에 뛰어 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샤오메이는 자신의 온화한 시아버지도 데릴사위로 들어왔음을 알게 되었다.
샤오메이는 넓은 완무당에서 길러진 활발한 천성을 시진 선가에 들어온 뒤 푸른색 꽃무늬 새 옷에 응축해 가슴 깊이 묻었다.
아창은 멍하니 정신을 딴 데 팔 때가 많았다. 대문턱에 앉아 샤오메이를 위해 망을 볼 때도 그랬기 때문에 조만간 들통날 확률이 높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샤오메이를 잊은듯 해도 두려움은 확실히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의 단편적인 대화 속에서 샤오메이는 불행이 다가오고 있음을, 자신을 완무당 시리촌으로 보내려 하고 있음을 예감할 수 있었다.
"넌 아직 정식으로 시집온 게 아니니 이혼장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다시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말을 수정했다. "이혼장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지."
"네가 아직 어리고 무지한 걸 생각해 당장은 돌려보내지 않으마."
그렇게 고비를 넘긴 뒤 샤오메이는 다시는 검붉은 옷장을 열지 않았다. 이후 옷장은 샤오메이에게 음침한 무덤처럼 느껴졌고 한때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꽃무늬 옷도 그 무덤 속에 매장된 듯 했다.
열두 살이 된 샤오메이는 그토록 좋아하는 꽃무늬 옷을 입고 시어머니 앞을 당당히 지나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샤오메이는 이미 금싸라기 같은 눈빛을 잃어버린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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