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민은 민병단을 서른 명으로 구성할 계획이었는데 뜻밖에도 지원자가 200명을 훌쩍 넘었다. 숲이 크면 별별 새가 다 있는 법이라고, 부잣집 도련님부터 집 없는 거지, 번듯한 사람부터 불량배까지 두루 있었다. 토비한테 납치됐던 시진의 인질 스물두명 가운데에서는 열아홉명이 지원했다.
구이민은 민병단 수장으로 성도에서 주보충이라는 사람을 초빙했다. 주보충은 청나라 의용군에서 십장을 맡았고 환계군벌의 서북군에서 연대장을 지낸 인물이었다. 그가 가마에서 나왔을 때 시진 백성들은 백발에 흰 수염을 기른, 몸집이 크고 눈빛이 형형한 쉰 살 정도의 남자를 보고 놀랐다.
주보충이 입을 열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민병단은 잡화점이 아니므로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다.
민병단은 약방보다 더 꼼꼼하게 물건을 골라야 한다면서 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고 선언했다.
"총알에는 눈이 없으니 총알이 갈 길을 내주십시오."
"사부님, 총알 보셨습니까?" "아니, 눈을 감고 있었어." "저는 봤습니다. 머리 위의 그릇이 깨진 다음에 날아왔습니다. 총알이 어떻게 나중에 올 수 있죠?"
린바이자도 집중력을 잃기 시작했다. 화로 속 불꽃처럼 뜨거운 천야오우의 눈빛에 그녀는 천야오우가 변했고 자신도 변했다는 걸 알았다.
"나라에는 국법이 있고 집에는 가법이 있습니다."
"밥부터 먹이고 한숨 재운 다음에 가법을 시행하게."
"아궁이에서 재를 가져와 채찍 맞은 곳에 뿌리세요. 그러지 않으면 독이 오를 수 있습니다."
"이미 구씨 집안 사람이야. 혹시라도 이 일이 새어나가면 어떻게 고개를 들고 살겠니."
"원청이 가짜이니 샤오메이와 아창이라는 이름도 가짜겠지."
천융량이 말했다. "지금 주변 100여리 에서는 시진의 목공소와 린샹푸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형님이 말씀하신 샤오메이와 아창도 틀림없이 알 겁니다." 천융량이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그들이 시진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 같네요."
처음에 시진을 원청이라고 멋대로 확신했던 게 잘못 같다고 , 원청은 시진이 아니라 다른 곳인가 보다라고 했다.
13년 동안 어머니가 누구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던 린바이자가 리메이롄이 떠나자 자기 어머니를 떠올렸다.
린샹푸의 기억이 샤오메이를 불러냈다. 샤오메이가 그의 눈앞에 나타나고 샤오메이의 얼굴과 음성, 체온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하지만 닿을 수 없기에 그의 가슴은 순식간에 상실감으로 뒤덮였다.
열여섯살의 천야오우는 린바이자와 헤어진 뒤 완전히 낙담해 매일 얼빠진 표정으로 치자촌 물가에서 시진 쪽을 바라보았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내일 날이 밝을 때까지 밤새 보호해주소서. 주님, 음식을 주시고 저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즐거움이 주님의 은총입니다."
린바이자는 일주일이 지난 뒤 마침내 눈물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한참동안 엉엉 울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홍수처럼 흘러넘쳤다. 만감이 교차하고 슬픔이 흘러넘쳤다.
린바이자가 중서여숙에서 그들 자매와 만났겠다고 생각하자 린샹푸는 무척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불붙는 듯했던 상황은 일시적이었을 뿐,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해졌다.
집이 텅 비자 린샹푸의 마음도 휑하게 비어 갔다.
그런데 생전의 남편을 원망할 때조차 그녀는 그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여자에게는 어떤 남자든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명심하게. 철천지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네. 자네들은 토비가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 성문을 사수해야 해."
순식간에 정육점의 칼과 철물점의 칼이 사라지고 재봉소의 가위까지 사라졌다.
토비들은 하늘을 찌르는 듯한 함성을 듣고 새까맣게 몰려나오는 무리를 보고는 놀라서 사방으로 달아났다.
"주 단장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 사부님을 단장으로 임명하셨고, 사부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저를 단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이제 제가 죽어가니 단장직을 회장님께 넘깁니다...... 사부님과 제 묘비에 ‘단장‘ 이라고 새겨주십시오."
구이민은 모제르총을 건네받은 뒤 쑨펑싼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런 다음 모제르총을 들고 밖으로 나가,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쑨펑싼의 죽음을 알렸다. 조금 전까지 시끌벅적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쥐 죽은듯 조용해졌다.
"절대 분란을 일으키지 마세요. 무사히 넘기려면 참는 게 최고입니다. 그래야만 화를 면할 수 있어요."
뱀을 잡으려면 급소를 찌르고 도둑을 잡으려면 그 왕을 잡아야 한다
"돌아가서 너희 성안의 사람들에게 알려라. 우리는 장도끼의 부하로 구이민을 납치해가니 우리 연락을 기다리라고 해."
명성이 자자한 시진 상인회 회장 겸 민병단 단장인 구이민이 토비에게 납치되었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에 시진은 엉망이 되었다. 시진 백성들은 너무 놀라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버지, 아버지, 저 좀 구해주세요......" 하지만 울음과 비명으로는 호주 광산에서 헐벗고 굶주린 채 중노동에 시달리게 될 그의 운명을 바꿀 수 없었다.
"시진에 민병단은 없어도 구이민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회장님은 구해와야지요. 다만 모두의 목숨을 버리면서 구할 수는 없습니다. 천년 된 시진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는 없어요."
구이민이 나중에 모집한 민병단 병사는 대부분 타향 출신으로 원래 빈둥거리며 지내다가 밥이라도 얻어먹을 생각에 지원한 사람들이었다. 재난이 곧 닥칠 듯해 살길을 모색하던 중 생각지도 못하게 짭짤한 수입이 생기자 그들은 반색하며 받아들였다.
"재물운이 들어올 때는 대문으로도 막을 수 없지."
‘나뭇잎은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고 사람은 죽으면 고향으로 돌아간다‘
"온 몸이 피투성이셨어. 맞아 죽기 일보 직전이라고. 완전히 넋이 나간듯 했고."
"시진 상인회 구이민 회장은 차치하고, 다른 인질이라 한들 어떻게 구하지 않을 수 있겠나."
생명의 빛이 꺼지는 순간 그는 딸을 보았다. 옷깃에 주황색 꽃을 단 린바이자가 중서여숙의 복도에서 그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듯 옛일이 줄줄이 떠올랐다. 눈이 얼어붙었을 때 린샹푸가 커다란 봇짐을 지고 딸을 가슴에 안은 채 그의 집으로 들어왔던 모습이 제일 많이 떠올랐다. 그런 광경들이 비 내리는 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하나씩 나타났다가 끊어지고 또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눈앞이 흐릿해진 것 같아 손으로 문질렀을 때에야 천융량은 자신이 울고 있는 걸 알았다. 그는 눈물을 닦은 뒤 린샹푸의 귀밑에서 칼을 뽑아냈다. 그러자 웃고 있던 린샹푸의 입이 다물어졌다. 천융량은 피 묻은 칼을 보며 린샹푸에게 말했다. "이 칼은 장도끼에게 돌려줄게요." 그게 천융량이 살아서 린샹푸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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