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이야기에 이어서 악랄한 토비들에게 털린 시진 사람들은 구이민을 중심으로 토비들에 대응하기 위한 민병단을 조직하는데 함께 하고자 하는 인원들이 예상보다 굉장히 많았고, 지원자들의 인력 풀 또한 다양했다. 향후 어떻게 이야기가 이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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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단을 조직하고 난 뒤 토비들과 크게 한 판 붙을 것처럼 이야기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러브라인이 형성된다. 개인적으로는 약간 뜬금없는 전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갑작스레 상황이 전환되어 ‘어 갑자기 이건 뭐지?‘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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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잠시 언급한 러브라인은 린바이자와 천야오우간의 것이었는데,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보면서 어느정도 납득이 갔다. 이 둘의 부모님들은 이들의 교제를 반대한 나머지 이들이 속한 환경을 따로 분리시키는 지경에 이르는데, 그 결과 천야오우는 다른 도시로 보내지고, 린바이자는 여학생 전용 학교로 보내진다. 이 와중에도 당사자인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고... 아무튼 이런 식의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스토리가 계속 이어진다. 어찌보면 러브라인도 결국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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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위에서 언급했던 민병단과 토비들간에 전투가 발발하는데 여기 일일이 밑줄 치진 않았지만 참으로 처절하게 싸우는 장면들이 나온다.

민병단이 토비들을 쫓아내며 승리를 거두자 앙심을 품은 토비들은 계략을 써서 민병단의 우두머리격인 구이민을 납치하려 시도하고 결국 그들의 계략은 성공한다.

한편 시진에서의 사건과는 별개로 구이민의 아들인 구퉁녠은 선뎬이라는 지역에서 묘령의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처음에는 얼핏 사귀는 사이처럼 지내다가 어느날 구퉁녠이 가지고 있던 돈이 다 떨어지게 되자 그 여자는 일자리를 소개시켜준다는 명목으로 구퉁녠이 알아보지도 못하는 영어 계약서에 싸인하라고 한 뒤 그를 호주에 일꾼으로 팔아버린다.

보면서 참 살벌하고 무서운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비단 소설 속만의 얘기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잘해주는 사람을 오히려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었다. 괜히 잘해주는 게 아니라 사소한 이유든 어떤 커다란 이유든 간에 잘해주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잘해주는 미끼를 덥썩 물지 않도록 언제나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스스로가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그냥 생각없이 살면 당하게 된다. 그러니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나의 생각과 정신줄을 단단히 붙들어 매야 한다. 오죽하면 옛 속담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산다‘ 같은 얘기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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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산다‘고 썼는데 뒤이어 읽다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 하다. 린샹푸가 인질로 잡힌 구이민을 구하러 토비들의 소굴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토비들의 대장인 장도끼라는 사람한테 칼에 맞아 죽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 처음부터 장도끼가 린샹푸를 죽이려 하진 않았지만 린샹푸가 장도끼를 공격하려하자 장도끼는 가차없이 린샹푸를 제압해서 죽여버린다.

린샹푸가 장도끼를 공격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토비들이 준 간을 먹었는데 그 간이 구이민의 간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구하러 간 인질의 간을 자신도 먹었으니 웬만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멘탈이 완전히 나가고도 남을만 했던 것 같다.

달리보면 린샹푸가 이성의 끈을 놓고 감정에 이끌려 죽음을 자초한 것으로 보일수도 있겠으나 한가지 주목할 점이 칼에 맞아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얼굴은 웃고 있어서 장도끼를 비롯한 토비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것을 보면 죽는 순간까지도 린샹푸의 정신만은 온전하게 살아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독자인 내가 뒤에 나오는 내용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로 한 가지 안타까웠던 건 장도끼가 린샹푸에게 했던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이었다. 즉, 린샹푸가 먹었던 간이 구이민의 간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상대방이 무슨 얘기를 하든 간에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섣불리 상대방의 얘기에만 의존하여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구이민은 민병단을 서른 명으로 구성할 계획이었는데 뜻밖에도 지원자가 200명을 훌쩍 넘었다. 숲이 크면 별별 새가 다 있는 법이라고, 부잣집 도련님부터 집 없는 거지, 번듯한 사람부터 불량배까지 두루 있었다. 토비한테 납치됐던 시진의 인질 스물두명 가운데에서는 열아홉명이 지원했다.

구이민은 민병단 수장으로 성도에서 주보충이라는 사람을 초빙했다. 주보충은 청나라 의용군에서 십장을 맡았고 환계군벌의 서북군에서 연대장을 지낸 인물이었다. 그가 가마에서 나왔을 때 시진 백성들은 백발에 흰 수염을 기른, 몸집이 크고 눈빛이 형형한 쉰 살 정도의 남자를 보고 놀랐다.

주보충이 입을 열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민병단은 잡화점이 아니므로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다.

민병단은 약방보다 더 꼼꼼하게 물건을 골라야 한다면서 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고 선언했다.

"총알에는 눈이 없으니 총알이 갈 길을 내주십시오."

"사부님, 총알 보셨습니까?"
"아니, 눈을 감고 있었어."
"저는 봤습니다. 머리 위의 그릇이 깨진 다음에 날아왔습니다. 총알이 어떻게 나중에 올 수 있죠?"

천야오우는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린바이자도 집중력을 잃기 시작했다. 화로 속 불꽃처럼 뜨거운 천야오우의 눈빛에 그녀는 천야오우가 변했고 자신도 변했다는 걸 알았다.

"나라에는 국법이 있고 집에는 가법이 있습니다."

"밥부터 먹이고 한숨 재운 다음에 가법을 시행하게."

"아궁이에서 재를 가져와 채찍 맞은 곳에 뿌리세요. 그러지 않으면 독이 오를 수 있습니다."

"이미 구씨 집안 사람이야. 혹시라도 이 일이 새어나가면 어떻게 고개를 들고 살겠니."

"팔자는 전생에 정해지는 거란다."

"원청이 가짜이니 샤오메이와 아창이라는 이름도 가짜겠지."

천융량이 말했다.
"지금 주변 100여리 에서는 시진의 목공소와 린샹푸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형님이 말씀하신 샤오메이와 아창도 틀림없이 알 겁니다."
천융량이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그들이 시진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 같네요."

처음에 시진을 원청이라고 멋대로 확신했던 게 잘못 같다고 , 원청은 시진이 아니라 다른 곳인가 보다라고 했다.

"천명을 따르는 수밖에요."

13년 동안 어머니가 누구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던 린바이자가 리메이롄이 떠나자 자기 어머니를 떠올렸다.

린샹푸의 기억이 샤오메이를 불러냈다. 샤오메이가 그의 눈앞에 나타나고 샤오메이의 얼굴과 음성, 체온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하지만 닿을 수 없기에 그의 가슴은 순식간에 상실감으로 뒤덮였다.

열여섯살의 천야오우는 린바이자와 헤어진 뒤 완전히 낙담해 매일 얼빠진 표정으로 치자촌 물가에서 시진 쪽을 바라보았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내일 날이 밝을 때까지 밤새 보호해주소서. 주님, 음식을 주시고 저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즐거움이 주님의 은총입니다."

"주님, 제게 평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린바이자는 일주일이 지난 뒤 마침내 눈물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한참동안 엉엉 울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홍수처럼 흘러넘쳤다. 만감이 교차하고 슬픔이 흘러넘쳤다.

린바이자가 중서여숙에서 그들 자매와 만났겠다고 생각하자 린샹푸는 무척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불붙는 듯했던 상황은 일시적이었을 뿐,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해졌다.

집이 텅 비자 린샹푸의 마음도 휑하게 비어 갔다.

그런데 생전의 남편을 원망할 때조차 그녀는 그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여자에게는 어떤 남자든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원수와 만나니 분노가 치솟는구나."

"이건 전쟁이지, 연극 구경이 아니라고."

"명심하게. 철천지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네. 자네들은 토비가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 성문을 사수해야 해."

"토비를 잡으러 가자."

순식간에 정육점의 칼과 철물점의 칼이 사라지고 재봉소의 가위까지 사라졌다.

토비들은 하늘을 찌르는 듯한 함성을 듣고 새까맣게 몰려나오는 무리를 보고는 놀라서 사방으로 달아났다.

"주 단장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 사부님을 단장으로 임명하셨고, 사부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저를 단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이제 제가 죽어가니 단장직을 회장님께 넘깁니다...... 사부님과 제 묘비에 ‘단장‘ 이라고 새겨주십시오."

구이민은 모제르총을 건네받은 뒤 쑨펑싼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런 다음 모제르총을 들고 밖으로 나가,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쑨펑싼의 죽음을 알렸다. 조금 전까지 시끌벅적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쥐 죽은듯 조용해졌다.

"절대 분란을 일으키지 마세요. 무사히 넘기려면 참는 게 최고입니다. 그래야만 화를 면할 수 있어요."

뱀을 잡으려면 급소를 찌르고 도둑을 잡으려면 그 왕을 잡아야 한다

"돌아가서 너희 성안의 사람들에게 알려라. 우리는 장도끼의 부하로 구이민을 납치해가니 우리 연락을 기다리라고 해."

명성이 자자한 시진 상인회 회장 겸 민병단 단장인 구이민이 토비에게 납치되었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에 시진은 엉망이 되었다. 시진 백성들은 너무 놀라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버지, 아버지, 저 좀 구해주세요......"
하지만 울음과 비명으로는 호주 광산에서 헐벗고 굶주린 채 중노동에 시달리게 될 그의 운명을 바꿀 수 없었다.

"시진에 민병단은 없어도 구이민이 없어서는 안됩니다."

"회장님은 구해와야지요. 다만 모두의 목숨을 버리면서 구할 수는 없습니다. 천년 된 시진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는 없어요."

구이민이 나중에 모집한 민병단 병사는 대부분 타향 출신으로 원래 빈둥거리며 지내다가 밥이라도 얻어먹을 생각에 지원한 사람들이었다. 재난이 곧 닥칠 듯해 살길을 모색하던 중 생각지도 못하게 짭짤한 수입이 생기자 그들은 반색하며 받아들였다.

"재물운이 들어올 때는 대문으로도 막을 수 없지."

‘나뭇잎은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고 사람은 죽으면 고향으로 돌아간다‘

"온 몸이 피투성이셨어. 맞아 죽기 일보 직전이라고. 완전히 넋이 나간듯 했고."

"시진 상인회 구이민 회장은 차치하고, 다른 인질이라 한들 어떻게 구하지 않을 수 있겠나."

생명의 빛이 꺼지는 순간 그는 딸을 보았다. 옷깃에 주황색 꽃을 단 린바이자가 중서여숙의 복도에서 그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죽었는데 왜 웃고 계시죠?"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듯 옛일이 줄줄이 떠올랐다. 눈이 얼어붙었을 때 린샹푸가 커다란 봇짐을 지고 딸을 가슴에 안은 채 그의 집으로 들어왔던 모습이 제일 많이 떠올랐다. 그런 광경들이 비 내리는 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하나씩 나타났다가 끊어지고 또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눈앞이 흐릿해진 것 같아 손으로 문질렀을 때에야 천융량은 자신이 울고 있는 걸 알았다. 그는 눈물을 닦은 뒤 린샹푸의 귀밑에서 칼을 뽑아냈다. 그러자 웃고 있던 린샹푸의 입이 다물어졌다. 천융량은 피 묻은 칼을 보며 린샹푸에게 말했다.
"이 칼은 장도끼에게 돌려줄게요."
그게 천융량이 살아서 린샹푸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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