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가 되어 이 잡지를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 찾아보니 수년전부터 이 바닥에서 나름 자리잡은 문학잡지인듯 한데 개인적으로는 이번 호로 처음 접해 본다.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아직은 모르지만 어찌됐든 읽으면서 하나라도 더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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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소설가 하가람 님의 리뷰가 2개 나온다. 찬찬히 읽어보면서 해당 책을 직접 읽어보지 않았음에도 마치 그냥 다 읽어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가가 느낀 핵심만 딱 집어서 리뷰에 녹여주셨는데 개인적으론 난생 처음 보는 책 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과 핵심 메시지에 금방 익숙해질 수 있는 리뷰였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소설 리뷰는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같은 깨달음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문가의 리뷰를 보면서 나 자신이 그동안 썼던 리뷰는 어땠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잠시 가져봤다. 그냥 느낌가는대로 마구 갈겨쓰진 않았는지 반성해보게 되었다. 리뷰에도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정형화된 규칙이나 규범같은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이게 수학이 아니라 문학리뷰이기에 획일화된 정답은 없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바닥만이 가지고 있는 어느정도의 노하우라는게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난 이런 것들과 관련하여 따로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는지라, 글을 쓰는 법 같은 책을 참조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간혹 리뷰글을 보다보면 이런 글쓰기 노하우와 관련된 책들이 올라오는 것들을 보게 되는데 어쩌면 그런 책을 읽었던 분들도 내가 지금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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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후에는 소설가 장류진 님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몇 년 전에 이 분이 쓰신 ‘달까지 가자‘라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인터뷰 내용에 좀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인터뷰 내용 중에 《연수》라는 작품에 나오는 일부 글귀들이 인용되어 있는데, 아직 이 작품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인용된 문장만으로도 그 감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참고로 여기서 연수는 ‘운전연수‘ 를 의미하는 듯 보인다. 처음에는 잘 몰라서 주인공 이름이 연수인가 했다가 인터뷰 내용을 통해 내 생각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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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이라는 책에 대해 시인, 평론가, MD 이렇게 세 분이 비대면 채팅 형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추석 무렵에 이 책을 읽어봤던 터라, 소위 말하는 업계 전문가 분들은 이 책에 대해 어떤 관점으로 보고 느꼈는지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독자인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겹치는 부분도 있었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한 내용들도 일부 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한 예로 소유정 평론가 님이 말씀해주신 p.37에 밑줄친 부분은 독자인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 신선하게 느껴졌다.

또한 책 내용과는 별개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여기 비대면 채팅에 참가하신 MD분이 알라딘 해외소설 담당MD 라고 나와서 이름을 보니 어디선가 얼핏 들어본 분 같았는데 Axt 에서 보게 되어 신기하기도 했다.

특별히 p.47에 밑줄친 내용 중에 알라딘 MD님이 말씀해주신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이라는 작품이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과 대비해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잘 몰랐던 책 중에 읽어볼만한 책을 추천 받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채팅형식으로 이루어진 독서 전문가들의 대화를 통해 읽어볼만한 책을 추천 받는 것도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다.


뒤이어 나오는 글은 공학박사이자 작가이신 곽재식 교수님이 쓰신 행복과 관련한 글이다. 어떤 광고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이런 말이 들어간 광고가 있다. 독자인 나도 글을 읽으면서 곧장 생각났던 CM송이었다. 이 노래와 관련해서 행복이란게 어떤 건지를 말씀해주고 계신데 읽으면서 공감이 많이 갔던 내용이었다. 관련 내용에 밑줄도 몇 개 그어보았다. 아마 공감하실 분들이 많이 계실거라고 생각한다.

곽재식 교수님이 써주신 행복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을 나만의 언어로 풀어보자면 행복은 그림자처럼 잡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바로 느껴지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고통스러운 것을 참고 한다기보다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공부 그 자체에서, 그 과정에서 행복해하고 있는 나 자신이 되는 게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이게 참 듣고 보면 뭐 대단한 건가 싶기도 한데 실제 삶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이 어디 멀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는 글쓴이의 말이 왠지 모르게 공감되는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닐듯 하다.

이 다음에 나오는 글은 시인이자 여러가지 N잡을 갖고 계신 강혜빈 님의 글이었다. 이분이 생각하는 이번 호의 주제인 ‘갓생‘의 정의에 대해 볼 수 있었는데, 신선한 느낌이 들 정도로 뭔가 새로우면서도 공감이 되었다. 뒤에 이어서 써주신 글들을 읽으면서 굉장히 시간을 알차게 쓰고 계신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에 밑줄친 문장이 이분의 열심을 대변하는 것 같다.

‘몸이 강제로 전원을 끄고 기절할 때까지.‘

새해 다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버릇처럼 되뇌는 말이 있다. 갑작스레 기쁜 일이 생기거나 예기치 않게 사랑에 빠지는 순간, 들뜨는 기분이 될 때면 생각한다. 평정을 찾자, 현혹되지 말자. 나는 두 눈을 감고 그것의 이면에 대해 생각한다. 아름다운 벚나무 아래에는 반드시 시체가 묻혀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 P11

개체로서는 의미를 갖지 못하는 불완전하고 불가해한 단편(片)들이 모임으로써 하나의 완성체가 되는구나, 그 완성체를 분해하면 무의미한 단편으로 돌아간다. - P12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모여 아름다움이 된다. 아름다움은 불완전하고 불가해한 단편들로 모인 허상. 아름다움은 없음. - P12

그래, 어리석다. 홀릴 것을 알면서도 왜 벚꽃 길을 피할 생각은 않는지, 결말을 알면서도 왜 꼭 그곳으로 발을 디디고야 마는지, 그리하여 곤경에 처하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깊은 마음 저편에서 나는 그가 사랑스럽다. 무엇이 사랑스러우냐 하면 이 어리석은 사람이 또 다짐하고,
후회하고, 실패하리라는 게, 여러 번 속아 넘어간 것에 기꺼이 몸을 던질 수 있다는 게, 현혹될 수 있다면 무서움쯤은 잠시 눈감아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그것이 못 견디게 사랑스럽다. - P12

「도덕적 혼란」은 도시에서 내연 관계로 지내던 넬과 티그가 시골에 내려와 적응하는 1년여의 시간을 다룬다. 그들은 폐허와 다름없는 오래된 농장과 집을 값싸게 구입하여 그곳을 재건한다. 처음 넬의 눈에 시골은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이처럼 아름다웠던 봄은 이제껏 없었어,
하고 넬은 생각했다."(205쪽) 넬은 이 아름다움을 유지하고자 한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집과 농장을 가꾼다. - P15

농장이 한 사람의 내면이라면 그것을 가꾸어 나가는 방식은 삶의 태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 P16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까. 내 손을 더럽히지 않고, 상대방도 다치지 않은 채 안온하게 한곳에 정착하여 살아가는 방식이. 아무런 죽음의 대가 없이 깨끗한 농장을 꾸리는 일이. 내연 관계에 있는 남자와 가족이 되길 원하면서도, 그의 아내를 다치지 않게 하고 평화롭게 내 호칭을 찾아가는 방식이. 소설은 냉정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도끼를 쥐어야만 한다고 말이다. - P16

‘나는 육식 동물이야. 그녀는 이상할 만큼 초연한 태도로 생각했다.‘(247쪽)

스스로를 육식 동물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모든 것은 명료해진다. - P16

그 뒤로 이어지는 소설의 마지막 문단은 단숨에 그녀의 미래를 그려낸다.

[아마도 그녀는 이 농장 생활을 통해 술수에 능해질 것이다. 아마도 어둠의 일부를 흡수하게 될 것이다. 어둠은 결코 어둠이 아니라 지식일 수도 있다. 그녀는 다른 이들이 조언을구하러 오는 여성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응급 상황에 처했을 때 그녀에게 연락할 것이다. 그녀는 소매를 걷어올리고 감정 따위는 생략해버리고 피에 흠뻑 젖고 냄새가 나는 의무를 무엇이든 완수할 것이다.](247쪽) - P16

여러 개의 미래형 문장으로 이루어진 결말은 넬의 미래가 그녀와 전혀 달라 보이던 로블린의 삶을 따라 흘러갈 것을 암시한다. 언뜻 농장 생활에 완벽히 적응한 것으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기묘하게도 낙관적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리고 나오는 마지막 문장. "그녀는 능숙하게 도끼를 다루게 될 것이다."(247쪽) - P17

도끼로는 스스로를 해할 수 없다. 도끼는 대상을 가까이서 겨냥해야만 하는 도구이니까. 내가 살기 위해 무언가는 반드시 상처받고 피를 흘린다. 산다는 것은 매 순간의 작고 큰 도끼질의 연속이라는 것, 견고한 경계선을 가진 안전지대는 무수한 핏자국으로 이루어진 영토의 또 다른 말이라는 것을 그녀는 체득하게 된 게 아닐까. - P17

"아무것도 기르지 말게."
"살아 있는 놈들을 키우면 죽는 놈도 나올 걸세." (216쪽) - P17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삶의 이치라면 초연히 받아들여야 할까. 내 것을 지키기 위해 도끼를 쥐는 일이 두렵다면, 차라리 누군가 내 머리를 베어줬으면 하는 것은 그래서인가. - P17

스스로 ‘난 이런 사람이다‘라고 정의내리고 있던 것들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계속 흘러가며 변한다는 사실 - P24

인생에는 여러 길이 있지만, 어떤 길이든 정답은 없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선택해서 나아가면 될 뿐이라는 걸요. 때로는 이 길과 저 길이 갈라졌다 합쳐지기도 하고, 예상에 없던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도 생각지 못했던 아름다운 호수를 발견하게 되기도 하니까요. - P24

하지만 사실 인생이라는게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고 이 길로 가려고 마음먹었다가 다른 길로 빠질 수도 있고 결국 길이 합쳐지기도 하잖아요. - P25

사실 계획대로, 예상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죠. 막연해서 무서웠던 일들도 막상 부딪쳐보면 의외로 할 만한 경우가 제법 있고요. 오히려 좋아, 같은. - P25

누구나 다 하는 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어딘가에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도저히 못할것 같던 마음이 정말로 옅어지는 것 같았다.
(「연수」, 31쪽) - P26

‘잘했어‘는 좋은 결과를 보여줘야만 들을 수 있는 말 같고, ‘잘할 거야‘는 내가 잘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 같은데 그 기대에 못 미칠까봐 걱정하게 되는 말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잘하고 있어‘라는 현재진행형인 이 말이 좋다고 평소에도 생각하고 있어서 소설에 쓰게 되었습니다. - P27

사람마다 ‘공정하다‘라는것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있고 거기에 또 엄청 집착하잖아요. 내 기준에 공정하지 않아 보이면 부당하다 생각하고, 인정하지도 않고요. 그런 것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 P28

문학이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다 - P30

"그래도 나한테는 이게 제일 귀하고 중요해. 너처럼." - P31

‘사이‘ 역시 또 하나의 키워드가 될 수 있겠네요. 제목에서 보자면 아침 ‘그리고‘ 저녁인데, 이 ‘그리고‘에 해당하는 부분이 쓰이지 않은 삶인 거잖아요. 전부 말할 수 없는 일생의 많은 부분들을 하나의 부사로 압축하자면 ‘그리고‘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 P37

저는 이 소설을 통해 인물들이 꼭 한 번씩 턴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다시 받는 식의 대화가 얼마나 다정한지를 알게 되었어요. 내 말을 타인이 한 번 더 곱씹어주었을 때 안정감이랄지 설명할 수 없는 친밀함 같은 게 있잖아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에서 그런 게 느껴졌어요. - P38

그러고 보면 나의 인생이지만, 그저 나로서가 아니라 어떤 관계 속의 나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로 나만의 인생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제게는 어떤 관계 속에서 의미 지어지는 나, 변화하는 나의 모습이 (아직까지는) 중요한 것 같아요. - P43

이 책의 문장들은 어떤 꾸밈이나 장식을 모두 제거하고 단순한 구조만 남아 가장 근본적인 인생의 본질에 대해 묻는데,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결국 읽는 이가 완성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백지 같은 여백 속에서 누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 해석을 더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그렇게 깊은 울림이 더해져 가장 구체적인 소설이 되는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읽어서 더욱 의미 있고 빛날 수 있었어요. 책이 두세배로 두꺼워졌다는 말씀, 너무너무 공감합니다. - P47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생각도 많이 났는데요, 이 책이랑 극단적인 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한사람이 태어나서 늙어가기까지의 일대기 속에서 생의 온갖 지리멸렬하고 구질구질하고 군더더기 가득한 오만 감정과 군때, 모든 생의 순간과 느낀 것을 낱낱이 적나라하게 써내려가는 점이 이 책과 정반대의 지점에 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이 책과 같은 질문으로 수렴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우리 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질문이었는데 그런 다른 문체의 소설과 이 책을 함께 읽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 P47

광고는 어차피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날씬한 몸매의 아이돌이 설탕 덩어리인 탄산음료를 마시라고 하고, 어지간한 부잣집 자식이 아니면 결코 엇비슷하게 꾸밀 수도 없을 것 같은 널찍한 집에서 신혼부부를 연기하는 광고 모델들이 나와 전자제품을 사면 이렇게 살 수 있다는 양 제안하는 것이 광고의 세계다. - P49

예쁜 무늬의 포장지 안쪽에는 변색된 표정의 사람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모든 것을 잊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행복할 수 있어요. 행복할 수도 있다고요"라고 부르짖는 느낌이었다. - P50

행복은 남이 이루어주거나, 외부의 무엇인가가 나에게 일구어주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내가 스스로 찾는 것이다.
내가 행복하거나, 행복하지 않은 것이지, 무엇인가가 나를 행복해지게 해줄 수는없다. 내 상태를 불행 상태였다가 행복상태로 바꾸어주는 것이 나 자신 말고 따로 있지는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P51

행복은 내가 삶을 사는 방법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온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나에게 행복해지라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오만한 명령이다. - P51

나는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인생의 과정이 행복이라고 누가 말한다면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있다. 과정이 행복이라니, 그 말도 좀 질리도록 반복해서 들어본 말 같지만, 그래도 인생의 과정이 행복이라는 말 속에는 경험과 공감과 뿌듯함과 약간의 후회가 서려 있는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는 말은 그렇지 않다. 그말은 오히려 행복이 무엇인지 느껴보지도 못한 사람이 막연히 무지개 끝에 있을 황금단지나, 구름 위에 있는 신비의 궁전을 떠올리며 허상 속의 행복에 매달리는 모습에 더 가까운 것 같다. - P52

인생의 마지막 목표가 행복이기 때문에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야 한다거나, 무슨 숨겨진 삶의 비법을 찾아야만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처량하다. - P52

행복은 어려운 목표고, 멀리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욕망 속에서 갈구하며 달려들어야 하는 대상이 된다. 행복이 인생의 목표라서 끝없이 달려들어야 하는 것이라면 어쩐지 괴로운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말하자면, 세상이 거대한 행복 찾기 스파르타식 합숙학원 같은 곳이고, 잘못하면 밤마다 기합을 받아야 하며, 매달 시험을 쳐서 상위 10위권 안에 드는 사람들에게만 상으로 진정하고도 완벽한 행복감을 주는 마약을 먹여준다는 이야기 같지 않은지? - P52

그러므로 나는 행복이란 대부분이 잃어버리고 있어서 극소수만 차지할 수 있는 귀금속 같은 것도 아니고, 바깥에서 무엇인가가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며, 인생의 거창한 목표로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 단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 P52

행복은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골치 아픈 일을 동료들과 함께 힘겹게 풀어가는 도중에 잠깐 서로 나누는 실없는 농담 같은 것이라거나, 갑작스럽게 닥친 문제로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것이 있었는데 그래도 어찌저찌 대강은 해결되었다고 생각할 때 느껴지는 후련한 느낌 같은 것이다. - P52

별것 아닌 일인데도 잘 할 줄 몰라서 당황하고 있는 어린이를 보았을 때 어른이라면 누구나 친절하게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그 느낌이 행복이고, 그 어린이가 문제가 해결되어 얼굴이 밝아진 것을 보면 뿌듯해지는 것이 행복이다. - P53

인생을 살면서 시간을 보람차게 활용하고 생산적인 일을 많이 하는 삶의 태도를 요즘 말로 "갓생"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런 삶이 정말로 갓생이라는 말의 어감에 어울리게 되려면, 행복해지려고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P53

나는 사람들이 아침에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자기전에 매일 일기를 쓰고, 주말마다 시간을 내어 새로운 악기나 외국어를 배우는 일들을 할 때, 그런 일들이 감내하면 언제인가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에 참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좋겠다. 나는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일기를 쓰고, 악기와 외국어를 배우는 동안 행복하기를 바란다. - P53

내 앞에 주어진 삶을 그 많은 일을 할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고, 그 여러 가지 기회에 많은 꿈과 함께 도전하는 재미를 느끼는 시간은 행복한 삶에 잘 어울린다. - P53

돈을 많이 모으게 되었거나, 높은 지위로 승진한 자리에 오른 목표에 도달했다고 해서, 보통 그것만으로 그 사람이 갓생을 산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갓생이라는 말 역시 행복해지는 삶이 아닌, 행복한 삶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 P53

삶 속에서 어떤 단어가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나는 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 P55

우연은 얼마나 흥미로운지. - P55

애초에 갓생이란 일상에서 소소한 성취감을 얻는 일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을 뜻한다. 생산적인 삶을 칭하는 MZ세대의 유행어로, 학업 및 운동 등을 열심히 하는 것을 아울러 말한다. - P55

(MZ는 너무 광범위하지만) 일명 MZ들은 짬나는 시간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퇴근 후에 인플루언서로 활동,
이모티콘을 만들어 부수입을 내는 등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한 가지 일로는 치솟는 물가상승률과 집값을 따라잡을 수 없는 탓일까. 혹은 주 직업에서 얻는 가치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메타버스처럼 자아실현 ‘모드‘를 전환하는 일종의 문화현상일까. - P55

자아의 분화는 나라는 존재가 다양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음, 비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브랜드마케터인 내가 망하면, 플로리스트인 나로 다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 P55

그렇다. 나는 자꾸만 쫑긋쫑긋움직이고 있다. 움직임이란 고여 있지않고 멈춰 있지 않는 운동성이다. 그것은 세포분열을 떠올리게도 한다. ‘갓생‘이란 어쩌면 자아의 ‘쪼개짐‘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알록달록한 롤리팝이 쪼개지듯. - P57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고 시도하는 에너지는 또 다른 내가 있기에 가능하다. 또 다른 ‘나‘들은 월요일의 나, 화요일의 나, 수요일의 나・・・・・・ 마침내 일요일의 나로 나뉜다. - P57

일사불란하게 오늘의 임무를 해낸다. - P57

몸이 강제로 전원을 끄고 기절할 때까지.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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