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1에 두번째 밑줄친 부분에서 ‘나‘(소설 속 화자)와 크누텐의 생각이 서로 교차하는 장면이 있는데 얼핏 보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전지적 작가시점인 작가가 ‘나‘와 크누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각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일상에서는 말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인데, 각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아주 교묘하게 잘 표현해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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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에 첫번째 밑줄친 부분에서는 크누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묘사하다가 갑자기 마지막 부분에서 주어가 갑작스럽게 ‘나‘로 전환되는데, 개인적으로 욘 포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런 갑작스런 주어의 전환이 빈번하게 나오는 것을 봤던지라, 이런 미세한 부분들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을 잘 따라가는 것이 욘 포세의 작품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욘 포세의 다른 작품을 처음봤을 때는 이러한 것들을 그냥 무심코 아무 느낌없이 넘겼었는데, 이제 한 4권 째 읽다보니 기존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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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에 밑줄 친 부분은 읽다가 갑자기 번뜩 전율이 느껴졌다. 뒷 부분을 좀 더 읽어봐야 겠지만, 이 세상 사람인줄 알았던 크누텐이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 간의 대화 속에서 크누텐이 마치 현생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뉘앙스를 느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러한 상상에 이르게 된 것은 욘 포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본 결과 욘 포세만이 갖고 있는 그 특유의 느낌을 체득하였기 때문이다. 이거는 이성이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종의 직관같은 거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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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 첫 번째 밑줄 친 부분에서 뜬금없이 노란 우비를 입은 크누텐의 아내가 어머니(?) 라고 하면서 내용이 전개된다. 갑자기 이게 뭔가 싶다. 이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나는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불안감이 엄습하여 나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 불안감이 엄습해 온 것은 바로 지난 여름이었다. - P8

난 무엇이든 해야 한다. 이 불안감이 그치질 않는다. 아마 내가 글을 쓴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 P8

나는 서른 살을 넘겼고, 내 삶에 이룬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이곳에서 어머니와 같이 산다. 불안감이 엄습해 온 것은 바로 지난여름이었다. - P9

나는 무엇이든 해야 했고, 그 불안은 너무나 거대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아주 갑작스레 떠올랐다. 그것은 그 불안감이 엄습해 온 이후였다. 나는 무언가를 해야만 했고, 그 불안을 떨쳐 내야만 했다. 사실 이전까지는 이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전까지는 내가 글을 쓰게 될 가능성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 불안감은 특히 해질 무렵이면 계속해서 엄습해 온다. 하루 중 가장 좋은 때였지만, 이제 해질 무렵은 아주 불안하다. 아주 끔찍하게 불안하다. - P10

어쩔 수 없이 무언가 할 일을 찾아야 했고,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글쓰기가 불안을 떨쳐 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이 떨쳐낼 수 없는 불안은 내가 글을 쓰면 줄어들지 모른다. 어쩌면 모든 것이 달라지지 않을까. 어쨌든, 글쓰기가 한두 시간이라도 불안감을 떨치게 해주지 않을까 모르겠다. 이 불안감을 견딜 수 없는 까닭에 나는 이 소설을 쓰고 있다. - P10

나는 내 삶에 이룬 것이 별로 없다. 어쩌면 그것이 어머니를 걱정스럽게 만드는지도,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녀를 걱정하게 만들지는 않는 것 같다. 일례로 그녀는 나에게 이제 너도 직장을 알아봐야지, 기타를 퉁기며 다락방에 앉아있을 순 없잖니, 라고 말하지만, 그런 말을 할 때에 그녀가 엷은 미소를 지으니, 난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 P11

나는 크누텐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게 내가 두려워해 왔던 거지, 하고 크누텐은 생각한다. 그렇지만 일어날 일이었다는 걸, 옛 친구를 마주치는 건 당연히 일어날 일이었다는 걸 난 알고 있었어, 그리고 난 예전과 다름없는 것처럼 보여, 하고 크누텐은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무슨 말을 꺼낼까를 생각하는데, 우리가 많은 걸 함께했던 건 아주 오래전 일이야. 무슨 말을 꺼낼까 우린 더 이상 공통점이 없을 텐데, 그렇지만 뭐든 말을 꺼내야 해, 이야기를 나누는 거 그게 바로 내가 두려워해 왔던 일이야, 하고 크누텐은 생각한다. - P11

무슨 말을 꺼낼까, 뭐든 말을 꺼내야 하는데, 이 순간을 두려워해 왔지, 일어날 일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 P14

나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은 일이 어렵진 않을거라고 느낀다. 잘 풀릴 거야, 아이들이 잘 풀리게 만들어 줄테지, - P15

그녀는 크누텐이 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으며, 내 이름이 보드가 아니냐고 말한다. - P15

그 보트하우스가 저쪽에 있어, 내가 말한다.
그래, 저기서 우린 많은 시간을 보냈지, 크루텐이 말한다. - P16

그나저나 레이테에 살던 스베이넨이 죽었다며, 크누텐이 말한다.
몇 년 되었지, 내가 말한다.
스베이넨도 참 별난 사람이었어, 크루텐이 말한다. - P16

그리고 크누텐은 물론, 늘 그런 식이지, 아내는 그 친구를 그런 식으로 바라봐야 했겠지. 그 친구를 다시 보는 눈빛이 이상했단 말이야, 하고 생각한다, - P18

그 친구를 다시 만나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걸 두려워해 왔지, 하고 크누텐은 생각한다, 하지만 우린 긴 여름휴가에 어딘가 가야 했으니, 쓸 돈은 얼마 없는데,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있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드니까, 부득이하게 옛 친구들을 다시 마주쳐야만 했지, 그걸 두려워해 왔어, 아내는, 왜 그 친구를 그렇게, 그런 식으로 쳐다보아야 했을까, 하고 크누텐은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몸을 돌려 크누텐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 P19

그리고 나는 그가 날 만나서 반가워하고 있으리라 짐작한다, 그리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고, 반가웠으리라고, 나는 짐작한다, - P19

그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것은 우리 둘 다 원한 바였다. - P20

끌낚시 : 배로 낚싯줄을 수평으로 끌면서 수면 가까이의 고기를 낚는 일 - P21

나는 끌낚시를 하며 크누텐과 내가 어릴적에 함께 놀곤 했던, 페인트칠이 되지 않은 낡은 보트하우스를 지나친다. 그러자 크누텐이 살던 언덕 위의 하얀 집이 눈에 들어온다. - P21

그 작은 섬 외곽에서 낚시한다면 내륙에선 누구도 목격할 수 없어서, 그것이 내가 그 작은 섬에서 낚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인 듯싶다, 난 사람들이 날 보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코 그랬던 적이 없다, - P22

지깅`을 하는데 입질이 없다. 아마 오늘 저녁엔 물고기를 낚지 못하지 싶다. 그렇지만 멋진 저녁이다. 나는 불안한 기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무언가가 날 덮쳐 오는데,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불안한 기미가 느껴진다. 멋진 저녁이다. 부드럽고, 따스하다. 불안감이 느껴진다. 불안이 날 엄습해 오고 있다.

`지깅(jigging) : 낚싯줄이나 미끼를 문 바늘을 낚아채고 가라앉히기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 - P23

저기 멀리 두 대의 배가 있고, 둘은 서로 몇 미터 떨어져 있다. 그 보트들은 가만히 떠 있다. 나는 지깅을 한다. 배들 중 하나가 내 쪽으로 향한다.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한다.
배들 중 하나가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 나는 계속해서 지깅을 하고, 다른 쪽을 쳐다본다. 불안감이 강력해지고 있다. 나는 돌아보고 싶지 않다. 선외 모터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들린다. 나는 돌아보아야 한다. - P23

내가 몸을 돌리자, 그녀가 내게 손을 흔드는 것이 보인다, 크누텐의 아내가 내게 손을 흔드는 것이 보인다, 크누텐의 아내가 플라스틱 배의 선미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 P23

무언가 말을 꺼내야 한다,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뭔가 평범한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 P24

나는 그녀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순 없다, - P26

이건 역겨워 보여요, 그녀가 말한다 저는 익숙합니다, 내가 말한다 - P31

당신은 말이 별로 없군요. 그녀가 말한다.
그래요.
여기 출신 사람들은 다 그런가보네요. 그녀가 말한다.
뭐, 일종의 규칙인 모양이죠.
난 여름 내내 여기 머물 것 같아요, 그녀가 말한다.
당신은 여기 이제 막 온 겁니까?

그녀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당신들‘이 아닌
‘당신‘이라고 말하고 그녀는 ‘우리‘가 아닌 ‘난‘이라고 말한 것을 알아차린다, 나는 그녀에게 크누텐이 저기 해안가에 서 있은 지 오래되었다고, 어쩌면 그가 우리에게 합류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고, 잘은 모르겠지만, 말해야 할 것만 같다. - P36

대구는 떼를 지어 다니지 않으니까, 내가 말한다.
자녀와 대구 둘 다 그렇지, 크루텐이 말한다.
당신 짓궂어, 크누텐의 아내가 말하고는 웃음을 터뜨린다. - P40

그녀의 눈이, 그녀의 눈이 이제는 어디에나 있다, 하늘 위에, 피오르 너머에, 이 불안감, 예전에 나는 이와 같은 것을 결코 느껴본 적이 없다. 그녀의 눈. - P41

크누텐과 나는 늘 함께였다. 매일 그랬다. 크누텐은 떠났고, 내가 그를 쫓아가며 불렀지만 그는 떠나 버렸다. 나는 크누텐의 아내와 마주쳤다. 그것은 내가 크누텐과 다시 마주한 바로 그날이었다. - P42

청재킷에 노란 우비를 입은, 크누텐의 아내. 어머니가 아래층을 서성거리고 있다. 그녀는 텔레비전을 보고, 장을 본다. 어머니. 그녀는 장을 본다. 전에 장을 보던 것은 나였는데, 이제 나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 P43

대체 무슨 일이니, 라고 어머니는 말한다. 그렇게 틀어박혀 앉아 있을 수만은 없잖니, 라고 그녀가 말한다. - P43

기타. 내 기타가 보인다. 내가 장만한 첫번째 기타가 떠오른다. - P43

그렇지만 우선은 우리가 ‘우리 보트하우스‘라고 이르던 곳에서 연습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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