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어팩은 소위 말하는 ‘설렘‘ 아이스크림을 담는 형태의 팩이다. 플라스틱 입구가 달려있어서 뚜껑을 손으로 돌려 딴 다음 입을 대고 먹으면 되니 훨씬 편리하다. 정재민처럼 어린아이들이 먹다가 흘릴 일도없다.
회사를 다닐 때는 몰랐는데 장사를 시작해보니 이런게 쉽지가 않았다. 누구든 대신 결정을 내려주지 않는다. 뭐든지 혼자 알아서 해야 한다. 원래 내가 벌인 일은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마인드를 갖고 살아왔지만, 이러한 결정들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일단 조금은 더 지켜보기로했다. 아직 장사를 시작한 지 열흘밖에 안 됐으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야지. 며칠 장사하고 말게 아니니까.
이것저것 하나씩 새로 늘리고, 시도를 해보는 게 재밌었다. 잘 된다는 보장이 없기에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설렘이 더 컸다.
켈달법, 멜링 시험, 닌히드린 시험, 밀론 시험, TBA 값시험, 염산, 황산, 질산, 붕산, 에테르, 포름알데히드, 알데히드, 지방산, 글리코겐, 수중유적형의 유화 식품, 아밀라아제, 리파아제, 프로테아제, 펙티나아제, 나이아신, 엽산, 티아민, 리보플라빈 등등. 눈에 익지 않은 단어들이었다. 몇 개를 제외하면 처음 보는게 대부분인 듯했다.
그런데도 문제를 푸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익숙하지 않아도 문제를 읽다 보면 뭐가 뭔지 알 수 있었고, 정답에 이르렀다.
일 자체에 즐거움이 있으니 욕심도 더 커졌다.
예전에는 이따금씩 허황된 망상이나 하다가 현실에 지친 나를 술과 인스턴트식품으로 달래고 잠들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자기 전까지도 일에 대한 생각을 하며 열정을 불태운다. 과거의 생활이 점점 잊히고, 새로운 삶에 익숙해져 간다.
"그래도 해야지. 안 되면 되게 해야지. 솔직히 자격증들을 보유하나 하지 않으나 내가 가진 능력은 똑같거든? 이거 공부한다고 뭐 더 새롭게 많이 알게 되는 상황이 아니란 말이야? 그래도 사람들한테 어필하려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표현하려면 자격증만큼 확실한 게 없잖냐." -하긴, 그건 그렇다. 나도 회계사 딱지 없으면 누가 일 맡기겠냐.
슬러시용 사과즙과 포도즙은 기존에 판매하는 것보다는 농도가 낮았다. 마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일즈 포인트가달랐다. 슬러시는 건강을 위해 먹는게 아니다. 일단 시원하고 맛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고농축 즙은 맛만 따지면 사람에 따라 다소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슬러시용 즙은 비율을 낮춰 순하고 달달한 맛을 냈다. 덕분에 마진율도 조금 높아지긴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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