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들이 자랑하는 그 신규라인업 방향을 예상해 볼까? 내가 보기엔 분명 DC 모터일거야. 인버터를 적용하는 타입이거나 더 나아간다면 브러시따위의 어테치먼트를 제거한타입을 내놓을 거야. 내가 장담하지." "그래도 대단한 것 아닙니까? 그쪽이 웃기지 말라고 하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사실 모른다. 몰라서 그렇게 받아친 거다.
"그래. 힘 좋고 고장 적은 DC모터를 유도전동기처럼 쓸 수 있으니까 장점 하나는 분명하지."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연구가 끝난 기술을 조합하는 것뿐이야. 고작 그런 성과를 가지고 시장을 뒤집어 놓겠다니. 정말 지나가던 개가 웃겠군."
"지금 우리 상태로는 안 돼. 현실적인 한계는 명확해. 아무리 기존의 기술을 조합한 것뿐이라고는 했지만 놈들이 내놓을 제품과 시중 제품과의 격차는 뚜렷해."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깐 오만석.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현실, 한계, 격차.
"새로운 모터라는 건 엄청난 연구 개발비가 들어가는 놈이야."
"우리 연구시설과 인력으로는 고작 시중 모터 수준을 따라잡는 게 한계야. 그걸 아니까 나도 욕심을 부렸던 거고. 별의미 없겠지만 미래에 어떻게 될지도 알려줄까?" "네." "한 2년 후쯤엔 중소기업모터 수준은 뛰어 넘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때면 이미 엘전은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겠지." 오만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격차는 점점 벌어질 거야. 지금 우리로서는 모터에 어설픈 투자를 하는 것보다 그냥 엘전의 모터를 사서 쓰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야."
"당신이 만들고 싶은 모터! 그걸 위한 충분한 지원을 해준다면......." 가방을 들어 올리는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오만석. 숨이 가파왔다. 그래서 남은 숨으로 겨우 마지막 단어를 입 밖에 낼 수 있었다. "....그땐 승산이 있습니까?" 오만석의 눈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오늘 아침 대표와 차미선이 있는 자리에서 우린 하나의 협의를 했다. 만약. 엘전과 싸울 만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가 긍정한다면 모터연구 투자 계획은 철회. 그건 오만석이 현실도 모르는 이상주의자거나 거짓말쟁이라는 뜻과 같았으니까.
한국공조는 오만석의 등에 권한과 책임을 지우고 그의 앞길에 넉넉한 연구 자금이라는길을 깔아줄 것이다.
난 확신한다. 지금껏 수많은 조직에서 물위에 뜬 기름처럼, 아니, 물 위에 홀로 타오르는 불꽃처럼 섞이지 못했던 그였지만. 자조 섞인 눈빛과 목소리로 현실, 한계, 그리고 격차를 입에 올릴 수 있는 오만석이라면. 자신을 믿는 조직. 그리고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이끄는 그라면. 이번엔 다를 거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