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본성상 감각의 쾌락에 이끌리도록 되어 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쾌락과 고통의 계산]은 이런 말로  시작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이러한 이유로 외적 대상은 각 개별자의 욕망의 특수한 대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욕망의 대상을 소유하기 위해 인간은 폭력을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과 힘을 겨루며 갈등한다. 이에 따라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계산 능력이 반드시 필요해지는 것이다. - P176

쾌락을 좇는 인간이 타인을 차례로 파괴하지 않는다면, 이는 오늘날 넓은 의미에서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기초를 이루는 평판 때문일 것이다. 평판은 ‘모든 인간의 결합된 힘이 각 개별자를 대신하여 작동하게 되는 근거다. 평판은 천성적으로 부여받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게끔 하는 미덕 같은 것이 아니다. 세속의 인간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평판이다. 그 평판의 대상이 자신의 관심인 한에서 말이다.  - P176

지루함은 한가지 운동의 지속에서 비롯되는 반면, 쾌락은 운동의 다양성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세 시간 이상 쾌락을 지속시키고자 한다면, 오히려 지루함만 불러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 P179

행복이란 아름다움에 비례하는 객관적인 수치이지만, 여기에 사랑의 정열이라는 가중치가 반영되면 전적으로 주관적인 수치가 되기 때문이다. 《연애론》에서 가장 중요한 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17장의 제목이 "사랑이 아름다움을 압도하다"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 P183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사랑이라는 대상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모든 신선한 아름다움" 으로 이루어져 있다. - P183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은 사랑하는 대상의 변모된 모습을세밀하게 바라보는 데 집중한다. - P185

스탕달적인 소설(적어도 대중적으로 가장 분명하게 알려진평가를 따르자면)은 명확한 플롯이 전개되는 가운데 뚜렷한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각자의 열정을 추구하는 이야기이다. 반면 사적인 기록에서 스탕달은 형체도 방향도 없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의 흐름 속에서, 자기 삶의 근본과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을 찾아 나간다. - P188

《뤼시앵 뢰뱅(Lucien Leuven)》의 원고 여백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가 적혀 있다. "아무리 훌륭한 사냥개라도 사냥꾼의 총성이 울려야만 사냥감을 물어 올 수 있다. 사냥꾼이 총을 쏘지 않으면 사냥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소설가는 주인공의 사냥개와도 같다." - P192

스탕달이 옹호한 가치는 자신의 특수한 본질(과 한계)을, 주변 환경의 특수한 본질 및 한계와 비교하는 데서 나오는 존재론적인 긴장에 있다. 존재는 정확히 엔트로피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미립자처럼 어떠한 형태나 연결도 없는 순간과 충동으로 소멸하고 만다. - P197

스탕달은 개개인이 각자 에너지보존법칙 혹은 지속적인 에너지 재생의 과정을 따라 자신을 실현하기를 원한다. 결국어느 경우에는 엔트로피가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결국 우주에 은하수들과 함께 남는 것은 허공을 떠도는  원자들의 소용돌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수록, 이러한 자기실현은 더더욱 엄격한 하나의 명령으로 주어진다. - P198

《앙리 브륄라르의 생애》에서 그(스탕달)는 행복을 맞닥뜨린 순간 그 감정을 묘사하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을 대신하고 만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데 항상 실패하기 마련이다." - P207

진정한 디킨스는 그가 인격화시킨 악과 그로테스크한  캐리커처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고 해도,
그가 그려 낸 천사 같은 희생양과 희망적인 존재는 여전히 무시하기 힘들다. 선한 인물이 없으면 그 반대의 인물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이 두 성격의 인물 모두를 서로를 연관하는 구조적인 요소들로, 이를테면 튼실한 건축물의 방벽과 들보처럼 파악해야만 한다. - P220

옛 시대의 많은 아름다운 것들 많은 추한 것들이 사라져 갔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서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발전해 왔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의 태양 아래에서는 기괴하고  미성숙한 것들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 P234

호손, 멜빌의 작품에서 죄악의 존재가 기이하고 실체 없으며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었음에 비해, 트웨인의 작품에 나타나는 죄악은 청교도 윤리의 단순한 다소 기초적인 판본처럼 보인다. 타락과 은총이라는 극단적인 청교도의교리가 여기에서는 마치 잊지 않고 칫솔질하기처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명확하고 합리적인 규칙으로 변한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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