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에 나오는 게임인 스타크래프튼과 리니즈의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실감나게 볼 수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는 잘나가던 주인공 서우진의 회사 V&V소프트에 한차례 위기가 찾아오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차피 바뀔 미래라면, 나는 미래에 끌려다니는 것보다 내가 이끄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간사해서 좋은 환경을 경험하고 나면, 나쁜 환경을 견디질 못하거든. 한국 서버의 빠름을 느낀 손님들이 한국 서버를 찾기 시작하면, 피시방 업주들도 어쩔 수 없이 한국 서버의 사용료를 내고 가맹할 수밖에 없을 거다.
한 번은 우연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우연이 겹치고 겹쳐, 서너 번이 반복되는데도 우연이라고 우기면 그건 그냥 병신이다.
PK는 Player Killing의 줄임말이다. 리니즈는 캐릭터가 죽으면 랜덤하게 보유 아이템이 바닥에 떨어진다. 이 요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지만, 반대로 게임의 몰입도가 곱절로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다.
"수정 작업하던 거 싹 중지시키세요. 괜히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와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습니다."
위기를 피해갈 수 있으면 피하는 게좋다. 하지만 그러다 게임의 본질이 훼손되면 그땐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올지도 몰랐다. "재심사는 넣지 않겠습니다."
"리니즈는 이번 기회에 연소자 관람불가 게임으로 노선을 잡겠습니다."
그러나 그 포화는 어쨌거나 리니즈와 관련 없는 층에만 부정적으로 작용했을뿐. 리니즈의 주 고객층인 2040 연령대엔 오히려 관심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슬라임 레이스는 말 그대로 슬라임이라는 몬스터가 펼치는 달리기 경주다. 특이사항은 경주 시작 전에 게임 머니를 배팅할 수 있다는 것인데, 쉽게 말해서 게임 속 경마장 컨텐츠라고 생각하면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절은 폭력이라면 독하게 제재를 때렸지만, 이런 사행성 컨텐츠는 버젓이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었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 나를 건드리면 어떤 꼴이 되는지를.
"맨날 사고 치는 놈 따로있고, 수습하는 놈 따로 있다니까."
"한수야. 이건 회유 같은 게 아니라 네게 기회를 주는 거야. 발을 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그걸 받든, 안 받든, 상관없이 일은 터지게 돼 있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죽어 나가는 건 너나, 나 같은 힘 없는 놈들이겠지."
"이참에 다시는 재기할 수 없도록, 날개를 꺾어둬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잊은 게냐? 너와 용호는 형제다." "혈육이라도 제게 칼을 겨눴다면, 그때부턴 적일 뿐입니다." "이런 모습은 나를 똑 닮았구나. 이것만큼은 닮지 않기를 바랐건만.......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요즘 들어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절절히 체감하고 있었다. 왜냐고? 뻔한 거 아니겠나. 한시적으로 무료오픈이 결정된 스타크래프튼 : 배틀넷 때문이지.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스친다. 나는 은행 대출을 단순히 금융적인 부분에서 접근했다. 금리가 높을 땐 대출을 내면 안 된다. 이건 단순명료한 논리지만 어디까지나 자본가의 관점이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서민의 관점에선 금리가 어떻든 간에 대출을 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었으니까.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한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었구나.
빌딩 입구에는 초조하게 주변을 서성이는 업주들이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밖에 계신 분들께 말 좀 전해주세요. 클라이언트는 내일 새벽부터 홈페이지에서 배포할 테니까, 이만 업장으로 복귀하시라고요." 김영동은 의외라는 표정이 되어 나를 돌아본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아도 해야죠. 저분들은 생계가 걸린 문제라면서요."
"사람이 많으면 돈이 몰리고, 그렇게 몰린 돈은 또 사람을 불러모으는 법이죠."
기억났다. 서용호와 친분이 있다던, SG그룹의 삼남인가 하는 놈이었다. 피아식별이 이미 끝난 이상, 웃으며 대해줄 필요는 없었다.
몰래 빼돌린 게 아닙니다. 그쪽 회사직원들이 처우 불만으로 뛰쳐나온 걸, 제가 포용한 거죠. 놈의 말을 처음엔 헛소리로 치부하고 넘겼지만, 그 후로 몇 번 곱씹어보니 아예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내가 직원들 처우에 더 신경 썼다면, 그때의 개발자 대규모 이탈을 막을 수 있었을까?
"죄송하지만, 저는 무슨 일이든 납득이 돼야 움직이는 스타일이라서요."
"안 된다고 지레짐작해서 포기해 버리면,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오지 않습니다." "아......." "저는 제가 말했던 미래를 현실로 만들 것이고, 지금은 그 계획의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보고 온 나는 알고 있었다. 플랫폼은 단순히 사람을 많이 모으는것 만으로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백번 양보해서 여러분 말이 맞는다쳐도, 경기를 봐줄 팬이 없으면 프로선수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이 말을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모두가 입술만 질끈 깨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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