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중요한 역할을 내게 맡긴단 겁니까?" 가만히 듣고만 있던 장비가 의외라는듯 반문했다. "가장 위험하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여 장군께서 거절하신다 한들 원망할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숙고하여 결정 해 주시길 바랍니다." "거절은 무슨. 이 사람을 그리 믿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외다." 중임을 맡아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장비가 씩 웃고 있었다.
아, 이 짜식. 일절만 해야지, 이절 삼절까지 하려고 드네. "일절만 하자, 일절만."
평화롭다고 해서 아무런 일도 안 해도 되는 건 아니다. 단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다녀야 하던, 위급하던 때와 달리 좀 더 여유가 있을 뿐이지.
뭐가 문제이건 간에 해결하고 해결하며 또 해결할 거다. 그렇게 해서 형님의 세력이 망하지 않도록, 내 목이 잘리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할 거다.
"내가 구라치는 거 봤어? 노력은 또 모르겠지만 노오오력은 너흴 배신하지 않는다!" "와아아아! 노오오력이다! 노오오력하자!"
"백성 민(民)에 원할 원(願)이라... 듣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명확하게 파악되는 단어로군."
"호족을 적대하는 대신, 그들을 이용하십시오." "이용하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소인이 보니 장군께서는 호족을 냉대하며 그들에게 아주 자그마한 권한조차 주지 않고자 하시더군요. 장군께서생각하고 계시듯 호족은 분명 까다롭고번거로우며 때로는 모든 일의 걸림돌이되기도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호족은행정의 허리이며 인재의 양성을 위한 보고임과 동시에 산실입니다. 한 개의 성이라면 모를까 한 개의 주, 나아가 천하를 도모하기 위해선 그들의 도움이 필수적입니다. 그들이 얻기를 원하는 힘을 주십시오. 의무라는 강력한 재갈을 그들의 입에 물리면서 말입니다."
세 사람이 입을 맞추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였다. 서류를 꾸미고, 입을 맞추면 된다. 그러면 자신은 세금으로 푼돈을 약간 던져주고 나서 막대한 보상을 받게 되리라.
세상엔 모르는 채로 넘어가는 게 나은 일도 있는 법이다.
뒷마을 박 씨 할아버지네에서 자라 우리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됐던 민식이 형이 농사일을 돕겠다며 한 번씩 찾아왔을때, 형을 보고 웃던 동네 아저씨들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높은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대하기가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와서 돕겠다는 그 마음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은, 뭐 그런 거라고나 할까?
"출신, 경력, 나이...... 그 어떤 것도 보지 않고 그저 능력만을 보고 사람을 부린다는 장군의 그 배포에 소생은 그저감탄할 뿐입니다." "예?" "세상은 사람을 판단하기에 앞서 그의 출신을 보고, 가문을 보며, 경력과 나이를 두루 따진 이후에나 본연의 능력을 보기 마련입니다. 능력이 있으나 출신이 비천하고, 가문이 한미하여 빛을 못 보는 이들이 참으로 많지요. 하나 장군께서는 다르시니 앞으로 천하의 인재가 구름과도 같이 몰려들 것입니다."
내정에 관련한, 진짜 골치 아프고 복잡한 일은 제갈근이 전담해서 맡아준 덕분이다. 그냥 내가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농사에나 신경 쓰고 있으니 새삼 농부가 내 천직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진궁도 그랬지만 이 사람들도 그냥 유벽과 손견의 움직임 하나만으로 이 상황의 앞뒤 전후를 다 이해하고 있다. 괴물 같은 인간들이다.
"난세란 속고 속이는 전란의 시대이지요.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건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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