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도둑
마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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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조금은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기대보다는 궁금증 때문에 집어 든 책이었다. 가볍게 읽기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저스트 라이크 헤븐’이란 영화는 재미있게 본 것 같아. 자신의 아들을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한 사람의 글은 어떨까. 뭐 그런 것들이었다. 소설책을 고를 때 항상 먼저 작가에 대해 살펴보는데 특히 우연히 혹은 뒤늦게 글을 쓰게 된 사람들의 소설은 더 궁금해서 읽게 된다.

한 마디로 따뜻한 성장소설이다. 뜻하지 않게 요즘 성장소설을 많이 읽게 되는데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책들이 성장소설이라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림자가 닿으면 상대 그림자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소년. 처음에는 그 특이한 능력으로 특별한 일을 겪게 되거나 판타지 같은 일들이 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소설은 잔잔하다. 커다란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소년에게는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주변에 일어나긴 하지만 그것을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는다. 소년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자신이 가진 능력을 차분하게 받아들인다.

소년은 성장해서 의대에 들어간다. 이십대의 그에게는 혼자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가 있고 사랑과 우정 사이를 왔다 갔다하게 하는 소피라는 여자 친구가 있다. 그리고 둘도 없는 고향친구 뤼크가 있다. 그들은 힘겹고 고단한 의대생활을 하지만 틈틈이 우정을 키우고 추억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특별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들이 그들에게 펼쳐진다.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일지 모른다. 모두의 인생은 하나하나 특별하기 때문이다. 지금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들의 이야기가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고향에 있는 친구의 이야기 같고 오늘 점심에 같이 밥을 먹은 친구의 이야기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질감 없이 그들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읽어 가게 된다. 아니 그들과 같이 파스타를 먹고 자동차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간다.

소년이 특별했던 이유가 ‘불행을 느낄 수 있다는 거였’다고 이브 아저씨가 말을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불행까지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 그것이 그림자 도둑의 실체였다. 그림자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은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공감하고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그런 능력은 누구나 어느 정도 가지고 있지만 결핍되어 있는 사람도 많은 게 사실이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기. 그것은 자신에게 힘겨운 일일지 모르겠지만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소년은 그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브 아저씨는 소년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이제는 다 커버린 소년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편지를 남긴다.

‘내가 나중에 행복해지는 것이 엄마의 가장 큰 바람이고, 내가 좋아하는 직업을 찾았으면 하는 것이 엄마의 소원이며, 내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내가 좋아하고 또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엄마가 나에게 갖고 있는 모든 희망을 이루는 것’

이 소설은 어렸을 적에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어머니와 단 둘이 살게 되는 한 소년의 성장기이다. 소년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원망하고 동시에 절망하는 어머니의 슬픔을 위로하기도 하며 묵묵히 지켜보기도 한다. 가족이라고는 서로밖에 없기에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다.

드라마나 다른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에피소드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한 반복되어도 지겹지 않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약간의 궁금증, 두근거림, 그저 미소, 그리고 약간의 슬픔, 마지막의 따뜻한 바람. 가슴이 살짝 아프지만 인생은 늘 그러함의 순환이라는 걸 느끼며 오히려 편안하게 책을 덮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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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 산다는 것 - 우리 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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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지막으로 합평 받을 시를 제출해야했다. 시창작실습 수업은 전공필수였고 소설을 쓰려는 나에게 시는 너무 어려웠다.

마지막이니까, 나는 편하게 쓰자고 마음먹었다. 내 속에서 증식되는 문장에 괴로워하는 것을 묘사함, 이 나의 마지막 시였다. 한 마디로 내 시는 시가 아니라는 평을 받았다. 예상했던 지적들이 었고 오히려 문장에 대한 고민들이 기특하다는 말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 수업 시간이 떠올랐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 인데 나는 그 시창작수업을 떠올리고 있었다. 소설창작을 논하기 전에 해야 할 문장에 대한 고민을 두통이 일 정도로 많이 하게 했던 수업이어서인지, 열일곱 명의 소설가들의 글을 읽으며 나는 그 교실의 풍경을 떠올렸다. 교수님의 말씀과 내가 썼던 일기인지 시인지 모를 문장들과 서로의 시에 대해 비판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들과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던 순간들이 뒤섞여 떠올랐다.

소설창잡법에 대해 모두 글을 썼지만 그들의 소설이 모두 다르듯 창작법의 내용도 형식도 작가의 개성이 두드러진다. 너무 심심해서 문장들을 만들다 그 속에 단어들을 잡고 이야기를 연결연결 시키는 박민규, 헌책방의 책 속에 나온 오래된 수강신청서 두 장을 보고 프로파일러 하듯 두 명의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김애란,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모으며 바로 다음다음의 한 조각만을 생각하듯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김인숙, 자꾸만 잊어서 포스트잇에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메모해 놓는 윤성희 등 창작론이라고 딱딱하게 말하지만 이 글은 소설가라는 목적을 향해 가는 이들에게는 궁금한 작가들의 글쓰기 습관이나 철학, 혹은 그들 소설의 뒷이야기들이라고 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결코 창작론이라는 어려운 접근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에게 있어서 소설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내고 그들은 살아간다. 내 소설 속에서. 처음 만드는 것은 나이겠지만 그들은 점점 생명력을 얻어 스스로 움직인다. 나의 문장으로 만들어 놓은 공간 속에서 내가 만든 인물이 스스로 생각을 가지고, 때로는 나에게 물음을 던지고, 거부도 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숨 쉬게 하는 것.

그러면 나는 소설을 왜 쓰는 건가. 무엇을 쓰고 싶은가. 물음을 던진다. 문장들이 막힐 때마다 인물들을 만들지 못해 커서가 백지 위에 떠다닐 때 나는 내가 소설을 쓰는 목적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아직 자신있게 말을 할 수 없다.

한 편의 소설을 한 편의 시로 쓸 수 있을 때 잘 쓰인 소설이라는 말. 시인이신 교수님에게 마지막 수업 시간에 들었던 말이다. 그리고 이 책 속에서 다른 소설가가 이런 말을 한다. 소설 쓰기의 정답은 ‘은유’라고, 소설을 쓰고 나서 그것을 한 단어로 은유할 수 있는가. 한 문장으로 표명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나는 시가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시가 전공필수가 된 이유도 시를 공부하지 않으니 문장이 엉망이 되어서라는 말. 내가 겪어보았을 때도 소설가의 창작법의 가장 기본이자 당연한 것은 문장을 다듬는 일이다. 시를 쓰는 과정은 무던히도 문장을 다듬고 고치고 버리고 하는 것이고 그러한 훈련이 있은 후 쓴 소설과 그런 고민 없이 쓰인 소설은 분명 다르다.

온통 글쓰기에 관한 수업만으로 가득 찬 시간표를 가지고 있었을 때, 나의 머리는 넘쳐나는 문장들로 어지러웠다. 나의 일상 하나하나가, 스쳐가는 풍경 하나하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나에게 문장으로 만들어졌다. 하고 싶지 않아도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문장으로 스캔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시가 아닌 시에 썼던 것처럼 파스타처럼 자장면처럼 끊임없이 문장들을 삼키고 토해냈고 목에 걸렸고 위장은 터질 듯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감각을 잃은 지 오래다. 문장은 지루하고 어떤 것을 보아도 깜박이는 커서만 허공에 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다른 소설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창작수업이 떠오른 건 다시 나의 문장들과 싸워야 하지 않을까 라는 스스로의 독촉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젠가는 나도, 소설창작법이라는 주제로 글을 쓸 수 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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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섬 밀리언셀러 클럽 119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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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32명의 사람이 있다. 그 중에 여자는 단 한 명.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스친다. 그녀는 여왕이 될 것인가. 성적 노리개가 될 것인가.

40대의 기요코는 두 가지 경계를 넘나든다. 그 섬에서 유일한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들은 그녀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동시에 기회만 있으면 어떻게든 그녀를 통해 욕정을 해소하려고 한다.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된다.

무인도로 표류한 서른 한 명의 남자와 여자 한 명. 이라는 상황만으로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더구나 작가가 기리노 나쓰오 아닌가! 무인도를 ‘도쿄섬’이라 부르며 나름대로 ‘생존’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파리 대왕’이 떠오르기도 하고 미드 ‘로스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유일한 여자 기요코의 시점과 섬에서 왕따가 된 와타나베의 시점, 그리고 마지막 생각지 못한 인물의 시점까지. 그저 호기심으로 책을 집어 들었는데 이야기는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그저 욕정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을 기요코는 책 속의 단어로 말하자면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서바이벌 능력’을 발휘한다. 물고기를 잡고 먹을 것을 구하고 도구들을 만드는 일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혼자서만 살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사람들에게 거짓말도 해야 하고 배신해야하고 뻔뻔함도 마음껏 발휘해야한다. 생존하기 위해 여러 형태를 보이는 남자들의 캐릭터들 속에서 기요코는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그것을 헤쳐 나간다. 와타나베처럼 모난 행동으로 따돌림을 당하지도않고 오라가와 만타처럼 미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다른 젊은 남자들보다 풍성한 몸매를 유지하며 이누키치와 신짱처럼 병균에 감염되지도 않는다.

유명한 기리오 나쓰오의 소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번역 때문인지 문체가 특별히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섬에서 유일한 여자로 몇 년을 섬에서 산 기요코는 연약하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고독하거나 불안함들도 모두 생존을 위해 잊은 듯 하다. 그녀에게는 오직 살아남아서 그들이 살 던 ‘큰 섬’으로 가야 한다는 목적만이 가득하다. 섬에 남아 있는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조금씩 변해간다.

여전히 구조될거라고 믿는 사람들, 포기하고 섬에서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 정신을 놓아버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리고...

호기심이 생긴다면 그냥 일단 읽는 것이 이 책을 가장 재미있게 읽는 방법일 것 같다.

참고로, 이 소설이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이 더욱 흥미롭다. 실제 무인도에서 유일한 여자로 7년을 살았던 인물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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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인생 - 어진 현자 지셴린이 들려주는 단비 같은 인생의 진리
지셴린 지음, 이선아 옮김 / 멜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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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니, 제목부터 심심하다. 표지에 있는 인자한 듯, 조금은 천진한 듯 한 표정의 노인. 사실 노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가르침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건 순전히 내가 겪은 노인들에 관한 편견 때문이다.

‘왜 사는가?’ 저자는 처음에 그 흔한 물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 진부하다. 아니 사실 사는 것 자체가 지긋지긋하다. 고 느끼고 있던 나날들이었다. 이런 뻔한 물음을 하다니 제목만큼이나 재미없다. 그러나 이상하다. 조근조근 말하고 있는 저자의 글에 문득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나는 왜 살고 있는가? 삶의 어려운 순간마다 나에게 물었을 그 물음에, 나를 더 살게 해주었던 그 물음을 지금 이 순간 되풀이하고 있다. 명백한 답을 할 수 없다. 완벽한 문장으로 말을 할 수가 없다. 저자의 말을 더 듣고 싶어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나보다 70년 전에 태어난 저자의 말들에, 더구나 타국에서 태어나 자란 저자의 말에 백퍼센트 집중할 수는 없었다. 그가 중국의 지성이라고 불리고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룬 것은 이력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앞에서 나는 그저 깃털같이 가볍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학자가 옳은 말을 한 들 듣는 사람이 공감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나는 나의 무식함도 가벼움도 인정한다. 그리고 그의 문장들의 반은 내 머릿속을 그저 걸어 들어왔다 나가버렸음을 인정한다. 고전과 명언들을 들먹이며 비유하는 그의 말을 다 소화해 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글들은 모든 인류에게 보여지는 것 이라기보다는 중국사람이라는 독자에 한정되어 쓰인 글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가 중국과 비슷한 유교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조금은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유교 그 자체에도 불만스런 부분이 많기에 들어오자마자 흘러나가는 문장이 많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으며 머리가 맑아지지도 인생철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만한 자극도 받지 못했다. 핑계를 대자면 젊은 사람들에게는 좀 공감되는 부분이 부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자 어린 내가 대청마루에서 조용조용하게 소소한 이야기를 해주는 할아버지에 대한 가상추억을 가진 것만 같아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100년 가까이 산 저자가, 상상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도 이렇게(아니 어쩌면 그렇기에) 평온한 글들을 쓸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마음이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나도 몇 십 년 뒤 노인이 되어서도 저렇게 평온하게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저자처럼 부지런히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인생을 길게 보자는 생각에 여유가 생긴다. 뭐, 인생, 그거면 되지 않을까. 나답게 깃털처럼 가볍게 결론을 내본다. ‘90을 앞두고도 인생을 모르겠다’ 고 말하니 나는 오죽할까. ‘왜 사는가’라는 물음은 진부하게 들리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은 숙제라고 생각하고 답을 알 수 없지만 그 질문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명확하게 해주는 그 물음표들을 가슴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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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주의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분홍주의보
엠마 마젠타 글.그림, 김경주 옮김 / 써네스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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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난 사랑을 하고 있어. 그건 내가 아직 세상의 일부라는 뜻일거야.

‘몸의 기상예보’라는 단어를 들여다본다. 그 단어가 마음에 든다. 사랑을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우리 몸의 변화들을 글과 그림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 우리 몸에 분홍주의보가 발령된다. 봄날의 꽃가루처럼 우리 주위에는 고백의 말들이 떠돌아 다닌다. 제대로 말도 못하고 재채기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봄! 이다.

그들은 같은 베개를 베고 거대한 고래가 나오는 꿈도 함께 꾼다. 그러나 불안하다. 봄은 불안정하다. 그는 혹은 그녀는 안녕, 하고 간단하게 돌아서 버릴 것 같다. 불안한 마음에 내가 먼저 돌아서 버릴까하는 슬픈 생각도 한다.

꿈을 꾼다. 분홍주의보 속에서 그들은 꿈을 자주 꾼다. 커다란 집이 몸속에 들어와 그들은 두둥실 떠다닌다. 그는 혹은 그녀는 서로의 몸속에 품고 있는 집의 창문을 들여다본다. 서로에게 화분을 주고 잘 자라는지 지켜봐 준다. 서로의 몸속이 푸르고 싱싱하게 변화되는 걸 느낀다. 그는 혹은 그녀는 점점 서로의 어두운 부분도 들여다보길 바란다. 미로같이 복잡한 숲을 여행하길 바란다. 하지만 두렵다. 숲이 우거지는 만큼 그들이 가진 그늘에 길을 잃을까 두렵다. 그래도 그들은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아직은 분홍주의보니까.

해적선이 등장한다. 그들은 세상 속에 납치되기를 두려워한다. 말이 많은 세상, 둘만의 침묵의 세계 속에, 그것으로 충분했던 세계에서 온갖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으로 납치될까 두렵다. 어쩌면 숲이 지겨워졌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숲에서 바다로 그들은 여행을 다녀할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손을 잡아주고 푸른 수염과 입술을 만지려고 시도한다. ‘사랑은 아마도 한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서 아주 오랫동안 여행을 하는 일일 거야’그들은 그 말의 의미를 온 몸을 깨닫는다. ‘한 사람에게 내 심장을 만지게 해 주는 일이란 내 가슴의 피를 만져보도록 하는 거’ 서로의 뜨거운 피에 놀라기도 하고 흉측한 거리가 생기기도 한다. 가을이다. 사랑이 농밀하게 익어가고 있다.

그들을 납치했던 해적선이 좌초되고 그 배에 실려 있던 서로의 감정들도 모두 깊은 바다 속에 잃는다. 사랑으로 인해 가질 수 있었던 풍부한 감정들이 이별 속에 모두 휩쓸린다. 결코 그 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 네가 출석하지 않는 삶은 수업을 시작하지 않을 거라는 말로 서로의 존재가 서로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노래한다. 이별의 가능성을 알고 서로의 삶에 있어서 서로가 가지는 존재의 무게감에 두려움에 떨지만 그러한 것들이, 서로의 뜨거운 심장을 만져보고 서로의 비밀의 열쇠를 꿀꺽 삼켜 본 자들은 삶을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안다. 분홍주의보는 여전히 오늘의 날씨를 존재하게 하고 그들은 서로의 숲 속에서 노래하는 새들을 만난다.

여전히 그들은 침묵의 세계 속에서 서로의 눈으로만, 잃어버린 시간의 감각 속에서 존재할 수 있다. 두려움에 떨게 했던 각자의 비밀의 문은 이제 서로에게 연결되는 길이 되어준다. 사랑은, 사랑은 분홍주의보와 함께 변화무쌍한 날씨를 생성하게 하고 한 사람의 존재를 변화시킨다. 달콤한 꿈뿐만이 아니라 피를 흘려야 하는 고통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사계절이 다 지나고 다시 새로운 계절이 돌아왔을 때 깨닫게 된다.

봄이다. 나는 다시 그런 사랑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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