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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 산다는 것 - 우리 시대 작가 17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글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9월
평점 :
나는 마지막으로 합평 받을 시를 제출해야했다. 시창작실습 수업은 전공필수였고 소설을 쓰려는 나에게 시는 너무 어려웠다.
마지막이니까, 나는 편하게 쓰자고 마음먹었다. 내 속에서 증식되는 문장에 괴로워하는 것을 묘사함, 이 나의 마지막 시였다. 한 마디로 내 시는 시가 아니라는 평을 받았다. 예상했던 지적들이 었고 오히려 문장에 대한 고민들이 기특하다는 말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 수업 시간이 떠올랐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 인데 나는 그 시창작수업을 떠올리고 있었다. 소설창작을 논하기 전에 해야 할 문장에 대한 고민을 두통이 일 정도로 많이 하게 했던 수업이어서인지, 열일곱 명의 소설가들의 글을 읽으며 나는 그 교실의 풍경을 떠올렸다. 교수님의 말씀과 내가 썼던 일기인지 시인지 모를 문장들과 서로의 시에 대해 비판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들과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던 순간들이 뒤섞여 떠올랐다.
소설창잡법에 대해 모두 글을 썼지만 그들의 소설이 모두 다르듯 창작법의 내용도 형식도 작가의 개성이 두드러진다. 너무 심심해서 문장들을 만들다 그 속에 단어들을 잡고 이야기를 연결연결 시키는 박민규, 헌책방의 책 속에 나온 오래된 수강신청서 두 장을 보고 프로파일러 하듯 두 명의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김애란,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모으며 바로 다음다음의 한 조각만을 생각하듯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김인숙, 자꾸만 잊어서 포스트잇에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메모해 놓는 윤성희 등 창작론이라고 딱딱하게 말하지만 이 글은 소설가라는 목적을 향해 가는 이들에게는 궁금한 작가들의 글쓰기 습관이나 철학, 혹은 그들 소설의 뒷이야기들이라고 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결코 창작론이라는 어려운 접근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에게 있어서 소설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내고 그들은 살아간다. 내 소설 속에서. 처음 만드는 것은 나이겠지만 그들은 점점 생명력을 얻어 스스로 움직인다. 나의 문장으로 만들어 놓은 공간 속에서 내가 만든 인물이 스스로 생각을 가지고, 때로는 나에게 물음을 던지고, 거부도 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숨 쉬게 하는 것.
그러면 나는 소설을 왜 쓰는 건가. 무엇을 쓰고 싶은가. 물음을 던진다. 문장들이 막힐 때마다 인물들을 만들지 못해 커서가 백지 위에 떠다닐 때 나는 내가 소설을 쓰는 목적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아직 자신있게 말을 할 수 없다.
한 편의 소설을 한 편의 시로 쓸 수 있을 때 잘 쓰인 소설이라는 말. 시인이신 교수님에게 마지막 수업 시간에 들었던 말이다. 그리고 이 책 속에서 다른 소설가가 이런 말을 한다. 소설 쓰기의 정답은 ‘은유’라고, 소설을 쓰고 나서 그것을 한 단어로 은유할 수 있는가. 한 문장으로 표명할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나는 시가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시가 전공필수가 된 이유도 시를 공부하지 않으니 문장이 엉망이 되어서라는 말. 내가 겪어보았을 때도 소설가의 창작법의 가장 기본이자 당연한 것은 문장을 다듬는 일이다. 시를 쓰는 과정은 무던히도 문장을 다듬고 고치고 버리고 하는 것이고 그러한 훈련이 있은 후 쓴 소설과 그런 고민 없이 쓰인 소설은 분명 다르다.
온통 글쓰기에 관한 수업만으로 가득 찬 시간표를 가지고 있었을 때, 나의 머리는 넘쳐나는 문장들로 어지러웠다. 나의 일상 하나하나가, 스쳐가는 풍경 하나하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나에게 문장으로 만들어졌다. 하고 싶지 않아도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문장으로 스캔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시가 아닌 시에 썼던 것처럼 파스타처럼 자장면처럼 끊임없이 문장들을 삼키고 토해냈고 목에 걸렸고 위장은 터질 듯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감각을 잃은 지 오래다. 문장은 지루하고 어떤 것을 보아도 깜박이는 커서만 허공에 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다른 소설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창작수업이 떠오른 건 다시 나의 문장들과 싸워야 하지 않을까 라는 스스로의 독촉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젠가는 나도, 소설창작법이라는 주제로 글을 쓸 수 있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