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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주의보
엠마 마젠타 글.그림, 김경주 옮김 / 써네스트 / 2010년 2월
평점 :
안녕 난 사랑을 하고 있어. 그건 내가 아직 세상의 일부라는 뜻일거야.
‘몸의 기상예보’라는 단어를 들여다본다. 그 단어가 마음에 든다. 사랑을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우리 몸의 변화들을 글과 그림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 우리 몸에 분홍주의보가 발령된다. 봄날의 꽃가루처럼 우리 주위에는 고백의 말들이 떠돌아 다닌다. 제대로 말도 못하고 재채기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봄! 이다.
그들은 같은 베개를 베고 거대한 고래가 나오는 꿈도 함께 꾼다. 그러나 불안하다. 봄은 불안정하다. 그는 혹은 그녀는 안녕, 하고 간단하게 돌아서 버릴 것 같다. 불안한 마음에 내가 먼저 돌아서 버릴까하는 슬픈 생각도 한다.
꿈을 꾼다. 분홍주의보 속에서 그들은 꿈을 자주 꾼다. 커다란 집이 몸속에 들어와 그들은 두둥실 떠다닌다. 그는 혹은 그녀는 서로의 몸속에 품고 있는 집의 창문을 들여다본다. 서로에게 화분을 주고 잘 자라는지 지켜봐 준다. 서로의 몸속이 푸르고 싱싱하게 변화되는 걸 느낀다. 그는 혹은 그녀는 점점 서로의 어두운 부분도 들여다보길 바란다. 미로같이 복잡한 숲을 여행하길 바란다. 하지만 두렵다. 숲이 우거지는 만큼 그들이 가진 그늘에 길을 잃을까 두렵다. 그래도 그들은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아직은 분홍주의보니까.
해적선이 등장한다. 그들은 세상 속에 납치되기를 두려워한다. 말이 많은 세상, 둘만의 침묵의 세계 속에, 그것으로 충분했던 세계에서 온갖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으로 납치될까 두렵다. 어쩌면 숲이 지겨워졌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숲에서 바다로 그들은 여행을 다녀할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손을 잡아주고 푸른 수염과 입술을 만지려고 시도한다. ‘사랑은 아마도 한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서 아주 오랫동안 여행을 하는 일일 거야’그들은 그 말의 의미를 온 몸을 깨닫는다. ‘한 사람에게 내 심장을 만지게 해 주는 일이란 내 가슴의 피를 만져보도록 하는 거’ 서로의 뜨거운 피에 놀라기도 하고 흉측한 거리가 생기기도 한다. 가을이다. 사랑이 농밀하게 익어가고 있다.
그들을 납치했던 해적선이 좌초되고 그 배에 실려 있던 서로의 감정들도 모두 깊은 바다 속에 잃는다. 사랑으로 인해 가질 수 있었던 풍부한 감정들이 이별 속에 모두 휩쓸린다. 결코 그 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 네가 출석하지 않는 삶은 수업을 시작하지 않을 거라는 말로 서로의 존재가 서로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노래한다. 이별의 가능성을 알고 서로의 삶에 있어서 서로가 가지는 존재의 무게감에 두려움에 떨지만 그러한 것들이, 서로의 뜨거운 심장을 만져보고 서로의 비밀의 열쇠를 꿀꺽 삼켜 본 자들은 삶을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안다. 분홍주의보는 여전히 오늘의 날씨를 존재하게 하고 그들은 서로의 숲 속에서 노래하는 새들을 만난다.
여전히 그들은 침묵의 세계 속에서 서로의 눈으로만, 잃어버린 시간의 감각 속에서 존재할 수 있다. 두려움에 떨게 했던 각자의 비밀의 문은 이제 서로에게 연결되는 길이 되어준다. 사랑은, 사랑은 분홍주의보와 함께 변화무쌍한 날씨를 생성하게 하고 한 사람의 존재를 변화시킨다. 달콤한 꿈뿐만이 아니라 피를 흘려야 하는 고통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사계절이 다 지나고 다시 새로운 계절이 돌아왔을 때 깨닫게 된다.
봄이다. 나는 다시 그런 사랑이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