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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
김병운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평점 :
작가의 두 번째 작품집이다. 술술 잘 읽힌다. 재미도 있다. 얼핏 보기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작가가 더 할 수 있는 게 과연 없었을까.
독자들은 보통 첫 소설 이후의 작품을 대할 때 마음가짐이 다르다. 책을 대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독자는 뭔가를 기대한다. 얼마나, 뭐가 변했을까. 발전, 아니면 후퇴? 물론 그냥 그 자리에 있어도 되지만, 난 김병운이라는 작가가 앞으로 더 나아가길 바랐다.
일곱 편의 단편들이 실렸는데 화자가 거의 작가다. ‘엄마’와 화자와의 관계가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된다. 삼촌-조카(영적 어른-아이)의 관계도 거듭 등장한다. 화자 옆엔 성격도 역할도 비슷한 confiance들이 버티고 있다. 그들은 화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화자의 삶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각성의 힌트나 적절한 조언을 준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첫 책과 크게 다르지 않을뿐더러 이 책 안의 단편들도 ‘초록은 동색’ 이상은 아니다. 전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을 읽었을 때, 퀴어 소설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퀴어들의 사랑 타령에 지칠 때 쯤이어서 그런 감상이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도 그럴까.
여전히 퀴어들은 소수자의 입장이지만 그들 사회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도 ‘계급’, 내지는 ‘주된 흐름’이 존재한다. ‘다수’와 ‘소수’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팔리거나 안 팔리거나’. 그게 가장 가시적인 단서일 테지만 그 외의 조건들도 수두룩하다.
사회적인 조건들은 어떨까. 소수 중에서도 어느 정도 안정된 퀴어들은 분명 존재한다. 커밍아웃을 어느 정도 이뤄냈고 그 후폭풍도 없거나 이겨냈다. 가족들, 특히 ‘엄마’의 지지를 받는 것은 정말 중요하게 보인다. 잘 지내던 남자 친구와 뜻밖의 이별을 겪었을 때 성정체성이나 지향성에 상관없는, 순수한 의미의 절친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고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기꺼이 어울릴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소위 ‘주류’ 게이들. 김병운이 그리는 인물들은 (아쉽게도) 딱 그 안에 존재한다.
하지만 잊기 쉬운 게,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의 아웃사이더들, 그 경계선 위에 있거나 저 밖에 존재하는 퀴어들(소수 안의 소수들)도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트랜스젠더, 크로스드레서, 양성애자, HIV 감염자, 십대 퀴어, 기타 등등. 이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작가가 시도 정도는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HIV(<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오프닝 나이트>), 청소년 퀴어(<교분>) 등이 언급되는데 딱 그 정도다. 그냥 제스처일 뿐이다.
좀 더 나가보자. 작품집의 포문을 여는 <봄에는 더 잘해줘>는 타인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고 쟁취한 사랑 이야기로 불쾌한 감상을 남긴다. 이기적인 화자는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사소한 일이다>에도 등장한다. 또한 인물이 신고 있는 운동화가 나이키인지 뉴밸런스인지 굳이 언급하지 않을 수 있으나 화자가 앞두고 있는 ‘시술’이 뭔지는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교분>에서도 이렇게 어물쩍 얼버무린다.
본(本) 이야기 밖에 다른 화자를 관찰자로 두는 건 요즘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흔히 보이는 구성인데(이른바 ‘복고’ 트렌드로 보인다), 필요하고 적절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멋 부리는 것에 그친다. 오히려 산만하고 포커스를 흩트리는 부작용만 낳는다(<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그리고 <오프닝 나이트>에선 정치성, PC적 사고가 일종의 강박, 모난 돌처럼 느껴져 불편했고, 교훈극이나 홍보 영화처럼 보이는 <크리스마스에 진심>은 dramatize에 실패한 작품처럼 읽혔다.
동성애자 캐릭터가 단역으로나마 등장했다는 이유로 퀴어 소설로 분류되는 작품들이 존재했다는 건 매우 가까운 과거의 일이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창작자도 소비자도 많다. 퀴어 문학 시장의 이런 괄목할만한 성장은 그동안 무수한, 도전적인 시도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쯤하면 된 걸까. 여기서 멈춰야 할까. 작가들이 고민할 대목이다. 게이라이프의 청사진을 제공하는 것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그 뒤의 그늘을, 일반적 퀴어(웃기는 표현이지만)의 범주를 벗어난 어둡고 비밀스럽고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도 터부시 되는 삶의 여러 양상들을 더 파고들 것인가.
그저, 독자로서 내 눈이 아주 조금 더 높아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