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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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쉰다섯 번째 책.

 

★★★

 

<당신의 손끝>; 무모하고 얼마간 자초한 불행을 지금껏 겪은 모든 악몽(36)’이라 말하는 효원의 행동에 공감이나 동정이 가질 않는다. 효원은 수강생을 약탈하고 경험도 없는 학원 운영에 무작정 달려든다. 학원 강사로서의 경력과 학원장의 업무는 별개의 문제다. 심지어 말미엔 본인의 허락도 없이 주영의 그림을 이용한다. 이런 얌체짓에 담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까. 하는 짓은 얄밉지만 연민을 가져 주세요, 일까. 아니면 이 뻔뻔한 여자 좀 보세요, 일까. 효원에게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말이 면죄부가 되어줄까.

 

<태양 아래 반짝이는>; 거의 헐벗기 쉬운 한여름 바닷가라는 공간 배경은 화자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적절한 무대로 보인다. 동료, ‘시현과의 일탈적 행동으로 탄력받은 화자는 내면의 파괴 본능을 서서히 불러일으킨다.

화자는 직업 윤리를 저버림으로서 자신의 틀, 자신을 옭아매는 사회적 의무를 파괴하고 고의적인 불륜 관계로 타인을 파괴하고자 하며, 동시에 그녀가 속했다고 믿는 계급의 벽을 파괴하려 한다. 이런 파괴적 행동은 여인의 진짜 정체, 본질을 알고 난 후 형태를 바꾼다. 화자가 여자의 이용 가치를 얼마간 셈하고 있지 않았을까.

 

<피아노>; ‘버린 것이지만 아직도 내 소유라고 주장하는 인물의 이야기다. ‘혜심이 집착하고 있는 건 피아노 자체보다 피아노 의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피아노 의자에 보관된 아이들의 편지를 되찾으려 한다. 그 편지들엔 자신의 역사에 얽힌 기억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준용이의 편지가 소중한 주인공이 정작 당사자인 준용에 대해서는 냉정한 아이러니를 통해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 이야기로 읽힌다.

 

<그 아이><마스크는 통행증>; 짧은 분량이지만 당대의 현실이 잘 반영된 르포타주이다. 훗날 시대를 연구하는 통속 자료나 사료로서의 의미도 보였다.

오늘날 비틀린 소비 문화를 보여준 <그 아이>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이런 혼란과 공포의 시간들조차 추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통행증은 마스크>는 짜증과 불안의 정서가 잘 보였다.

 

<익명의 마왕으로부터><유령의 집>; 소품으로 읽히는 두 작품은 공허한 작품들이다. 아이디어를 제외하고는 달리 보이는 게 거의 없다.

<익명의 마왕으로부터> 진짜 악인(성격)이 아니라 악당(역할)일 뿐인 마왕의 하소연이 재치있고 위트 있게 들려진다. 이런 낭창낭창한 톤이 작가에게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유령의 집>귀신들린 집이야기를 하나 써야겠다는 욕구와 끔찍한 이미지 하나로 밀고나간 작품이다. 실패한 자영업자 이야기로 읽기엔 부족하다. 이야기에 나오는 공간은 정확히 이 아니다.

 

<모자이크> 과연 무엇이, 어디까지기 진짜 나일까, 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다. 가까이서 보면 색의 조각일 뿐이지만 거리를 두고 보아야 형체와 명암 등이 비로소 보이는 모자이크 화()처럼 여러 모습의 나, 여러 가면을 쓴 나, 결국 그 총체적 합으로서의 가 실제로 존재하는 임을 말하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화자는 모자이크(blur)라는 익명뒤에 숨어 은밀하면서 집요한 폭력을 휘둘러 한 이난을 파멸로 이끈다. 모자이크(익명)는 화자를 보호하고 숨겨준다. 그 뒤에서는 안전이 보장된다. 그러므로 일탈이 가능하고 비난과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자아 탐색과 폭력의 이야기가 잘 안 붙어 산만하게 읽힌다. 전시된(보이는) 모습과 실재하는 모습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고루하다. 소재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작가의 솜씨도 그렇다. 작가의 고유한 시선이나 새로운 목소리가 없어 보여 지루하고 식상한, 개성 없는 작품으로 읽었다. 어디선가 빌려온 문장도 한몫한다. 여러 모습들을 연출하는 화자의 모습은 부캐페르소나보다 정신분열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한 듯 보인다.

 

<조망> ‘수하라는 인물이 가장 눈에 띈다. ‘그들만큼 내가 행복해지는 게 어려우니, 그들이 자신만큼 비참해져야 한다고(165)’ 생각하는 수하는 똑같이 불행해지길 바라는, 물에 잠기자 모든 것이 공평해졌다고 생각하는 수하는 평균의 기준을 행복이 아닌 불행에 두는 사람이고, 너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쌤통의 심리(schadenfreud)를 자명히 드러낸다.

이야기 속에서 이라는 소재는 과거의 소거, 천지개벽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갖는다. 이는 삶에 reset이 가능하다면, 다음의 (다시 시작한) 삶은 괜찮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좀 장황하다. ‘수하의 과거 경험과 현재를 중첩시키는 건 보기에 그럴싸하지만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아 그저 기교에 불과해 보인다. 아이의 등장도 뜬금없고 세상에 대해 거의 악의에 가까운 열패감을 갖고 있는 수하가 건네는 위로도 공감이 어렵다. 작품 자체도 공산품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모호하다.

여러 면에서 김애란의 단편 <물속 골리앗>괴 비슷한 점이 많은데, 다른 작가와 비교하는 건 예의가 아닌 건 알지만 두 작품을 비교하게 되면 이 작품의 허점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작가가 말하는 조망이 眺望인지 -’인지, 제목에 부연도 필요해 보인다.

 

<딸과 깍 사이> 이 책 안에서 가장 모양새가 잘 나온, 가장 만족한 작품이었다. 직장에서 사형선고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여자가 짝사랑하는 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다는 이야기다.

단순하고 지루한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의 고뇌와 실제적인 경제력을 해결해 주지만 전혀 즐길 수 없을뿐더러 혐오할 수밖에 없는 성격의 업무에 대한 애증이 로맨틱한 감정과 잘못 보낸 전체 메일 같은 사건 등으로 잘 포장됐다. 직장인으로서의 번민이라는 외부적인 면과 짝사랑이라는 내면적인 면을 양립시키면서도 서로 부딪힘 없이 잘 조화시킨 구성이 인상적이며, 유연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솜씨도 좋아 보인다. 원한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뜨개질이란 소재도 실수나 실패에 얽매이지 않는 관대함, 또 다른 기회와 가능성을 위한 것 같아 유용하고 적절해 보인다. 이야기의 온도도 10도 정도 올려주는 데 기여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좋았고 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현실적인 노동, 삶의 고단함, 노동 현장의 인물들과 그 주변의 이야기가 많다. 좀 더 현실에 밀착한, 현실 지향의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부희령의 작품집 을 생각나게 하는데, 부희령의 이야기들보다 피상적이고 얄팍하지만, 작가가 지향하는 바를 고려한다면 심각하게 거슬리는 점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작품들마다 관통하는 일관적인 core가 있어, 표제를 의식하게 된다. 행동의 의도, 선의와 악의, 그리고 그것이 오해되고 곡해되는 양상들이 읽히는데, 작가의 실제 지향점이 이곳에 있지 않을까 싶다. 작품집 전체를 아우르는 이런 통일된 감각은 작품들의 완성도를 떠나 모종의 미적인 균형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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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온 소년
개럿 카 지음, 이은선 옮김 / 북파머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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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쉰네 번째 책.

 

★★★☆

 

아일랜드의 바닷가 작은 마을에 아이가 한 명 발견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정적이고 성실한 어부 앰브로즈가 입양을 결정한다. 옛날 표현대로라면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빤히 알 정도로 워낙 작은 공동체라 앰브로즈의 섣부른 행동이 스캔들을 부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앰브로즈 부부는 아이에게 브렌던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마을 사람들은 아이에게 바다에서 온 소년이란 별명을 붙여준다.

 

브렌던이 이끄는 뭔가 신비롭고 영적인 이야기가 예상되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드라마틱한 오프닝에 비해 아이는 평범하게 자라고 이야기의 중심도 아니다. 앰브로즈와 크리스틴부부는 투철한 공동체 의식에 가족애까지 겸비한 모범적인 사람들이다. 부부의 아들 데클란이 브렌던에게 질투를 느끼지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배경으로 서로 아끼고 존중할 줄 아는 이웃들이 등장한다. 소위 빌런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착한 소설이다.

이다지도 착해 빠진 소설이라니.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고 독자를 조바심 내게 만드는 국면도 거의 없다. 이런 느슨한 소설이 과연 재미있을까.

 

충분히 재미있다. 시작하자마자 이야기에 푹 빠져서 읽었다. 초반 원고만 보고 출판사들이 경쟁했다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닌 듯하다. 이 작품의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인물들이 생생하다는 말은 식상하지만 그 표현 외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가족에 헌신하면서도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앰브로즈는 현재의 아재세대의 특징들을 답습한다. 친정아버지와의 애증과 갈등을 억눌러야 하는 크리스틴이나 아버지를 두고 입양된 형제와 경쟁하는 데클란도 저러지 말았으면 하면서도 이해가 간다. 혼기를 놓쳐 병든 아버지와 함께 집에 남은, 크리스틴의 언니 필리스는 또 어떤가. 자매의 고집불통 아버지 유넌또한 충분히 동정이 간다.

 

이야기는 이들 가족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아우르고 데클란도, 브렌던도 성장하지만 이 작품은 가족 소설에 더 가깝게 읽힌다. 여기에 브렌던을 둘러싼 마을의 소문, 형제 간의 질투와 경쟁, 장래에 대한 고민과 방황, 부양과 간병의 문제, 가장의 실직과 죽음 등의 사건들이 미묘한 균열과 파장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들은 당황하거나 갈등하고 싸우기보다 타협하고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쪽을 택한다. 이들에게 과거는 있으나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개인적인, 혹은 가족을 둘러싼 걱정이 있으나 그건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이다. 그들은 현재에, 그리고 그들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한다.

 

반목이나 갈등보다 삶 자체에 주안점을 둔 이야기는 문득 의심이나 회의가 들거나 난데없는 궁지에 몰렸을 때, 우리가 그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묻는다. 이 착해 빠진 이야기는 위기 자체는 심각하지만 인물들이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차라리 경쾌하다. 삶의 허들을 쉽게 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태도는 안일하기보다는 현명해 보인다. 어마어마한 태산 앞에서 좌절하느냐, 한 걸음이라도 산을 향해 다가가느냐는 우리의 결정이고 이는 곧 용기의 문제로 귀결된다.

 

대도시가 배경이었다면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폐쇄적인, 다소 고립된 느낌의 바닷가 마을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처럼 보인다. 풍광 묘사도 생생하지만, 작가는 바다 위에서의 조업 현장을 매우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다. 번역 과정에서 난관이 있었을 법도 한데, 매끄러운 우리말 문장으로 옮겨온 역자의 능력과 수고 또한 언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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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헌터스
폴 윤 지음, 황은덕 옮김 / 산지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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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에서 포로로 살아남은 북한 청년 요한이 송환을 거부하고 브라질에 가서 정착하고 삶을 일구는 과정에 관한 작품이다.

 

인물의 지독한 고립감과 외로움, 조용하고 차분하며 나른한 분위기와 서정적인 문체, 함축적이고 시적인 문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쟁 이후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데, 보다 주목하고 있는 건 일그러진 세계사나 한국 역사의 비극이 아닌 그 파장의 영향 아래 놓인 개인의 삶, 기억으로서의 개인의 역사이다. 바로 지금, 여기의 내 모습이 가끔 새롭고 생소한, 낯선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느낌이 타국의 이방인인 요한을 통해 드러난다. 여기까지 어떻게 이르게 되었을까 여정을 톺아보지만 아찔하면서도 남은 기억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놀라는 요한은 현재에 집중한다. 요한이 보기에 타인의 삶 역시 미지의 우주이다. 그런 개인들이 모인 브라질 바닷가 동네는 기억들이 쌓인 과거의 공간이자 현재 삶의 현장이다. 요한의 삶은 지속된다. 낯선 사람들에게서 친절과 호의를 받으며, 그 자신도 타인을 향해 손을 내미는 요한의 이야기는 작가가 나중에 발표한 단편 작품 <보선>과 많이 겹친다.

 

이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리뷰나 칭찬에도 불구하고 내겐 다소 불편한 지점이 있었다.

일단 번역.

 

당시 북한의 평범한 민가(民家)정원이란 단어가 흔했을까. 작가가 ‘garden’이란 단어를 썼어도 번역자는 마당이라고 옮기는 게 옳지 않을까.

칼날의 반사(178)’란 빛이 반사되는 건지, 아니면 어떤 상()이 반사되는 걸 의미하는지 명확해야 하지 않을까.

그저 한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의 문체가 번역하기 힘들었다는 건 쉽게 상상이 간다. 역자 후기를 보면 이 작품에 대한 번역자의 애정이 오롯이 드러나는데, 그것과 번역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애정과 열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다. 시적인 리듬과 겹겹의 의미는 번역을 거치며 뻣뻣하고 건조하고 얄팍해졌다. 단지 해석에 지나지 않는 문장들이 많이 보인다. 번역자가 무려 소설가다. 소설을 쓰는 일과 해외 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최근에 나온 작가의 다른 책 벌집과 꿀을 보면 쉽게 비교가 된다.

 

작가에게도 한계가 보이는 듯하다.

요한이나 이라는 이름을 가진 북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런 이름들이 북한에서 보편적일까? 이름은 그렇다 치자.

작가가 당시의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아닐까 강한 의심이 드는 지점이 왕왕 있었다. 혈통만 한국계일 뿐인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많은 상상력을 동원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 특히 한국의 독자들은 상상이 아닌 정확한 정보나 사료(史料)를 기대하며 이 책을 펼친다. 이 소설은 본격적인 역사 소설과는 거리가 있지만 역사적 사실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작품은 과거의 요한과 현재의 요한이 교대로 등장하는 열여덟 개의 챕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과거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치 지구 상, 미지의 다른 나라를 무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래의 문장은 183쪽에 나오는 것을 옮긴 것이다.

 

- 그해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도착했다. 그러다가 한국이 분단되었고 몸통 한가운데를 따라서 영토가 나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의 항복은 1945년의 일이고, 휴전선으로 한반도가 절단 난 건 1953년의 일이다. 두 사건 사이에 무려 8년의 세월이 있다. 그런데도 마치 연이어 생긴 일처럼 다루고 있으니, 한국의 독자들은 이상하다 생각해도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역사에 생소한 해외 독자들의 눈에는 과연 이 문장이 어떻게 읽힐 것인가.

이어지는 이야기에 관련한 역사적 사실에 작가가 부연하고는 있지만 이 문장만으로는 오독과 오해의 소지가 충분하지 않을까.

 

한 술 더 떠, 요한의 과거 고향의 기억을 더듬는 부분에 오렌지 과수원이 등장하고 있다(200). 당시에 오렌지 농장이 가능한 일인가. 그것도 한반도 북쪽에서.

 

벌집과 꿀의 느낌이 좋아서 펼친 책이다. 그 때의 감상에 비교하면 이 책은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형식과 내용이 임팩트 있게 할 말만 하고 빠지는 압축된 형식의 단편에 더 어울리는 듯하다. 예상과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작가에 편에서 핑계를 만들자면 작가가 한국계이긴 하지만 한국인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미국인 소설가가 한국에 대해 쓴 소설이다. 그렇다고 오류를 가능한 실수로 덮어버릴 수 있는가.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의 질문은, ‘디아스포라 문학의 확장이란 칭찬 일색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답을 궁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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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요, 투우사여 암실문고
페드로 레메벨 지음, 임도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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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게임을 할 땐 늘 실수할 위험이 있으니까. 무엇보다 세상엔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까. (255)

 

피노체트독재 시절의 칠레. 식탁보 따위에 손자수를 놔주며 벌어먹고 사는 늙은 게이(혹은 트랜스젠더) ‘앞집 미친년 로카가 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무장 테러로 독재 정권의 전복을 꾀하는 지하 저항세력의 핵심 요원 카를로스’. 로카가 아는 카를로스란 이름은 본명도 아니고 로카는 앞집 미친년이지만 앞집 미친년이 아니다. 극 중 누구도 그녀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로카와 카를로스는 서로 어울리는 상대일까. 손에 실과 바늘을 들기 전엔 잘 나가던 드랙 퀸이었던 로카는 무식한 촌년이고 이미 바닥을 친 늙은 퇴물이다. 반면 카를로스는 이십대 초반의 푸릇푸릇한 나이에 똑똑하고 잘생기기까지 한 대학생이다. 무엇보다 로카는 뼛속까지 동성애자이지만 카를로스는 그렇지 않다. 우연히 만난 카를로스에게 홀딱 빠진 로카가 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으로 시작된 그들의 관계(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까.

 

늙고 무식한 촌년인 로카는 오히려 현명하고 용감하고 우아하다. 카를로스가 로카를 (어느 정도는) 이용을 했더라도 로카는 카를로스를 진심으로 (거의 충심을 다해) 사랑한다. 자신이 연인에게 이용될 가치와 희생될 덕목을 갖고 있다는 걸, 시작부터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카를로스와 그 집단의 의도와 목적, 수단에 대해 온전히 무관심한 척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카를로스는 로카를 사랑했을까.

로카에 대한 카를로스의 감정은 감사와 연민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다가 사랑으로까지 여겨지는 감정을 보이지만, 엄연한 착각일 뿐이다. 그렇다고 카를로스가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나쁜 놈이냐. 그렇지 않다. 카를로스는 로카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녀의 안위를 걱정한다. 모든 일을 비밀로 하고 그 일에 대한 대화를 최대한 삼간다. 로카에 대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 지금 있는 그대로, 당장 보이는 대로의 모습으로 그녀를 인정한다.

 

독재 정권과 시위대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86년의 칠레를 무대로 하지만, 관련한(정치적인) 장면들은 별로 없다. 그녀가 한 모든 정치적인 행동은 오직 카를로스를 위해서였다. 카를로스도 그녀를 자신의 일에서 되도록 멀리 떼어놓으려 한다. 조국의 현 상황에 눈을 뜨라고 보채는 일도, 그렇지 못함을 나무라는 일도 없다. 이런 태도가 로카와 갈등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서로를 위한 배려는 결국 서로에게 옳은 것이었다.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로카는 끝까지 순진한 게이로 남는다. 하지만 그녀의 내부엔 조용하고 느리지만 확실한 어떤 움직임이 느껴진다. 의뢰받은 식탁보를 전달하러 방문한 국회의원 저택에 느껴지는 어떤 반감, 도심에서 맞닥뜨린 최루가스, 우연히 끼게 되는 여성들의 집회 들은 그녀에게 모종의 자극이 된다. 남성의 육체에 여성의 삶을 사는 정체성의 약점이 위기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는 수단이 되는 아이러니도 정체성(경계)의 모호함, 현실의 혼란을 암시하는 것 같다.

 

칠레의 당시 정치적 상황이나 등장인물들을 보면, 약간이라도 서스펜스 두드러지는 스파이 소설 같은 장면을 예상할 수도 있겠으나, 그저 언급하거나 짧게 보여주고 만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러브스토리로 일관한다. 마치 사랑에 오로지 그것 말고는 모두 방해 요소일 뿐이라고 조용히, 그러나 절절히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소설의 대부분이 로카의 삶과 내면에 집중되어 있지만, 독재자의 모습이 막간처럼 등장하는데, 상상하는 그런 모습(실제로 피노체트의 독재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자자했다고)이 아닌, 그저 생활에 찌들고 와이프의 바가지에 지쳐 있으며, 테러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경이 곤두선 늙다리정도로 묘사되고 있는 게 재미있다. 알고 보니 한심하고 게으른 늙은이인 피노체트와 알고 보니 그냥 나약하고 평범한 인간인 로카를 나란히 놓고 그저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대유(代喩)하는 장치로 보인다.

 

소설에 표현된 사회, 국가적 상황들이 그 시절의 대한민국과 닮은 점이 많아 겹쳐 보였다. 당시의 우리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들(특히 영화)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가난한 고학생을 뒷바라지하는 호스티스나 우연히 시위대를 돕다가 위장취업한 운동권 대학생(학출)과 사랑에 빠지는 여공. 우울한 분위기. 결국 배반하는 남자들. 여자들의 결말은 언제나 불행하고(정신병원에 갇히거나 자살), 소비되고 버려지는 여성성, 불쌍한 여자들을 앞세운 이야기들.

로카의 결말은 어떨까. 약간은 열려 있고 조금은 약간 행복에 기울어 있어, 저런 클리셰들에서 비껴나 있다. 그녀는 함께 쿠바로 가자는 카를로스의 제안을 거절한다. 카를로스를 사랑하지만 그 한계를 무엇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로카는 자신이 준 사랑을 되돌려받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진짜 사랑을 누군가에게 주었다는 사실만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보다 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에 임하는 그녀의 용기와 현명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강렬하고 아름다우며 슬프지만 희망적인 마지막 장면은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오랫동안 벅찬 여운으로 남는다.

 

어쩌면 평범한 퀴어 로맨스에 단지 인물과 배경에 변화를 준 것뿐인데, 마치 완전 다른 시도, 새로운 장르인 듯 감상이 특별하다. 시인이자 퀴어 논픽션 작가, 조형 예술가였던 작가의 유일한 소설이라고 한다. 유난히 시적인 문장들이 슬픈 왈츠를 추며 다양한 감정을 독자의 피에 새겨 넣는다. 한동안 로카와 카를로스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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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지키는 일
조미해 지음 / 강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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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미>는 이 작품집 안에서 가장 말 할 거리가 많다. 완성도를 떠나 작품을 볼 수 있는 관점이 다양해 보이는데, 이야기가 품고 있는 여러 개의 씨앗은 토론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을 듯하다.

이 작품은 남녀 모두에게 능욕당하고 소비되는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처럼 읽히는데, 동시에 정체성의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한다. 정체성이 뒤섞이고 경계가 모호해지자 사라지는 개인의 고유성, 독자성, 개성. 이런 틈바구니에서 폭력이 어떻게 싹을 틔우는지 보여준다.

 

인물들의 기 싸움이상은 아닌 <선을 지키는 일>은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를 두지 못한 데서 오는 이야기라기보다, 질투와 욕망, 고유성과 개성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처럼 보인다. 읽는 내내 작가의 포커스가 살짝 어긋나 있는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의 이미지를 이야기로 형상화하는 데 실패했다고나 할까.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을 모방하려는 도플갱어의 이미지는 사람의 모습을 모방하는 더미(dummy)’와 흡사해 보여서, 앞의 <더미>와 소재는 함께 하되 맥락은 달리하는 이야기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소재가 잘 쓰이지 못한 느낌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제목과는 달리 부끄러운 마음을 모르는인물을 통해 선의를 가장한 악의, 선의가 타인에게 악의로 가닿는 오해의 순간을 말하려 한 것 같은데, 그러기엔 서준이란 인물이 너무 민폐 캐릭터라 공감이 잘 가지 않는다. 맹랑하고 이기적이고, 어린 아이 특유의 순수함을 가장한 사악함마저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화자에게 동정심이 들 정도였다.

 

그 외,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유령과 조우하는 딸의 회고담인 <남태평양에는 쿠로마구로가 산다>, 장례 화장(化粧)을 소재로 삶과 죽음을 대비시킨 <마스카라>, 삶의 통제권, 결정권에 대한 이야기인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상실과 이별 후의 슬픔과 방향 없는 분노를 통해 자기 통제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비 내리는 밤에 우리는> 등이 실려 있다.

 

처음 접하는 작가다. 이 책 역시 서점을 탐험하다가 발굴했다.

 

작품들 마다 경제성이 돋보인다. 최소한의 재료로 차려낸 음식 같다고나 할까. 발화점에서 멀리 가거나 크게 부풀리지 않으면서 사건과 감정을 중첩시켜 이야기를 키워나간다. 그 과정에 호기심과 긴장을 효과적으로 불어넣는 솜씨가 꽤 좋다. 호기심을 일으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건 작가의 분명한 장점처럼 보인다.

 

반면 임팩트가 있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건 아쉽다. 작품들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감상의 폭이 모두 고만고만하다. (이 작품집엔 수상작이 무려 세 개나 실려 있다)

서사 진행이 덜컹거리는 지점이 있다. 매끈하지 못하다고 해야겠다.

작품들마다 다양한 소재가 나오는데, 작가가 그것들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의문이 들곤 했다. 내 느낌인데, 단순히 인터넷을 뒤져 조사한 자료에 의지한 것처럼 보이는 구석이 있다. 그런 소재는 한계가 있다. 작가들이라고 모든 삶을 경험해 볼 수는 없을 테지만 한계를 한계처럼 보이지 않게끔 하는 것 역시 작가의 능력이다.

목적이 불분명한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을 왜 썼는지, 무슨 말을 하려고 썼는지 모호한 건 독자로서 내 수준이 낮은 때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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