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샌드위치 주식회사를 차리다 - 스무 살 새내기들의 좌충우돌 주식회사 경영
가메카와 마사토 지음, 김정환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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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영학부 3한년이 된 주연 양은 자신의 선택들을 경영학적 관점에서 돌아본다. 3학년쯤 되니 이젠 뭐든 전공에 대입시켜 보는 습관이  생긴 모양... 한창 그럴때지. ㅎㅎ
일단 경영학이란 무엇인가 대해 간단히 말해 <Plan Do See> 라고 정의한다. 조금 늘리면 Plan-Do-Check-Action.
경영이나 어떤 일의 진행에 앞서 수단을 선택,계획하고, 행동하고, 돌아보고, 실행하는 관리단계이다.
그럼 세상의 거의 모든 행동이 여기에 들어가는 것 아닌가?  어쩌면 세상의 모든 학문들이 이건 내영역이야 라며 다투고 있어서, 더 넓은 의미로 자기 학문을 정의하려 애쓰는  건 아닌지...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 전략을 세우기 위해선 SWOT 분석이 필요하다. S: Strength, W: Weakness, O : Opportunities, T : Threats,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기회와 위협을 살펴 계획하고 실현한다. 이런 것을 대입과 연결지어 가깝게 느끼도록 설명한다. 이 책의 대상이 중고등학생이나 대학 새내기 정도이니 잘 와닿을수도 있겠다 싶다. 내 경우는 그 때를 떠올리기가 까마득해서 헷갈려지는 면이 있는데...  그래서 불평 할 나같은 독자를 위해서 회사의 경우를 예로 들어 제대로 하는 설명도 빼먹지 않고 착실하게 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은 안 해도 좋다.  
 
책 제목에 나오는 샌드위치 주식회사는 1학년 축제때 운영했던 샌드위치 가게이다.
내 경험을 떠올려보면  (역시 너무 오래 전 일이나 힘겹게) 축제때 학생들이 여는 가게들은 그냥 즐기는 수준, 적자나 안 나면 다행~ 정도로 하지 않았던가... 싶은데,  이 책의 서클에선 운영비 확보를 위한 가게라서 반드시 이익을 내야하며, 거창하게도 주식회사를 설립(!)해서 시작한다.
한 주에 5천원 씩으로 회원들에게 주식을 판매하고, 축제가 끝나면 원금과 배당금을 돌려주고 남는 돈은 써클의 운영비로 사용하는 사업다운 모습이다. 각 부서별(생산, 홍보, 구매, 관리)로 사람을 배분하고 주연이는 사장이 되어 조직을 관리한다.
경영 마인드로 무장해서 시작하긴 했지만 첫 사업이다보니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이 발생한다. 재고 관리가 제대로 안 되기도 하고, 생산이 못 따라와주거나, 갑자기 결원이 생기는 등.
그 과정에서 주식회사에 대한 설명, 사업도메인, 예산, 생산, 재고관리, 조직운영, 인간관계, 사업제휴...등 꽤 많은 이론들을 함께 설명한다.
주연이가 1학년땐 딸딸 암기만 해서 답안을 써냈지, 제대로 이해는 못하던 아이라서 다른 애들이 살짝 구박하면서 다시 설명해준다는 설정이 정감간달까, 귀엽달까.
그런데 내가 보기엔 그 작은 조직에 관리만 하는 이들이 과연 셋이나 필요했을까 싶다. 생산이 못 따라오면 주연이나 다른 관리팀 애들도 끼어들고,  재고 관리도 빨리빨리 해서 재료 사러 같이 뛰어다니고 했어야 하는데 말이지... 샌드위치 만들고 서빙하고 홍보하는 애들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주연이는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일하는 애들을 보며 경영학 강의를 하고 있던 걸까.... 아무래도 내 마인드는 관리직이나 오너가 아니라 생산, 실무 쪽인가보다. 경영관리만 하는 사람들이 노는 걸로 보이는 걸 보니. -.-;;
 
주연이는 교수들이 가르쳐줄 땐 이해가 안 갔는데 친구들이 알려주면 더 쉽다며 의아해한다.  주연이의 입을 통해 교수들의 결단력 부족,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매달리는 문제 등도 살짝 꼬집고. 그애의 입으로 말해도 실은 저자의 생각이니까,,,, 이 책의 저자인 가메카와 교수의 수업은 과연 어떨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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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북스 2009-03-20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좋은 책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불안과의 싸움 - 세상에서 나를 지켜주는 위로의 심리학
앨버트 엘리스 지음, 정경주 옮김 / 북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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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방심해서 뜨거운 냄비에 손을 데인 경우를 생각해보자. 뜨거움을 느끼고 깜짝 놀라 호들갑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손을 뗐지만 손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화끈거린다. 그런데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면?  손이 어떤 꼴이 되어도 모르기 십상일 터이다. 뜨겁다고 느끼는 것은 더 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경고음이다.

불안도 뜨거움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고의 역할을 한다. 이거 좀 위험해보며, 불안한데... 하는 느낌이 들때면 조심하게 되고,  다른 길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불안을 느낀다는 것도 정상적인 일인 것이다.

그렇게 설명해놓고는 제목은 불안과의 싸움이라니? 불안을 느끼는 게 건강하고 정상적인 거라면서?

이 책에서 저자가 싸움의 대상으로 삼는 불안은 정상범위를 벗어난 '지나친 불안', '비합리적인 공포'이다.

너무나 두려워서 정상적인 행동을 못하게 하고, 심신을 망가뜨리는 불안. 그런 불안에 대해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정면돌파이다.

저자가 경계하는 태도는 불안과 싸우지 않고 적당히 회피하는 태도이다.

 

불안과 싸워 이기려면 먼저,  <비합리적인 불안을 논박>한 후  <불안의 대상에 가까지 다가가라>고 하고 있다.

비합리적인 커다란 불안을 따박따박 논박해서 자기가 얼마나 쓸데 없는 불안감으로 고민하고 있는지 스스로 깨닫고 마음 속으로 이겨낸 후 

그 불안한 일을 <직접 시도>해보거나 다가가보아서 걱정하던 만큼 최악의 일은 없다는 것을 확인하라.

하지만 그렇게 겁낼 일은 아니라고는 생각해도 막상 시도해 볼 엄두가 안 날 수도 있다. 그냥 이대로 피하면서 살지. 뭐... 하면서.

그럴때 해야할 일은 그 불안을 해소했을 때 얻을 <이익을 생각하기>

해소하지 못했을 때의 <손해를 헤아려보기>

예를 들어 저자가 강하게 느끼던 불안이 여자에게 말걸기~인데, 그 불안을 감수하고 행동헤 옮긴다면 무슨 이익이 있는지는 말 안해도 다 알겠지?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을 때의 손해는 평생 혼자 늙어가기.... 

그런게, 이런 방식이 의사와 대면하는 상담없이 책만 읽고서 될란가 몰라.... 싶던데

저자도 그 점을 지적한다. 불안에 대한 반박을 실시해도 마음 한편으로는 자신을 비난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면서 함께 되새겨야 할 방법을 또 제시한다.

잘못된 결과에만 실망하고 <자신을 비난하지 말기>

단순히 '이번 일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 이렇게 했을면 좋았을텐데. 잘못 판단했네. 다음엔 잘 해야지...' 정도로만 생각해야지, '그렇게 멍청한 행동을 하다니 난 완전 틀려먹었어~'라고 하면 안된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나는 실존하는 유일무이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라는 건데, 그래. 이건 충분히 알겠는데 여기에 이어서 나오는 이야기가 글쎄  그 관점을 남에게도 적용하라는 것.

즉, <타인도 비난하지 말기>이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이해하라, 개론적으로는 이해가 가는데, 그 예로 글쎄 히틀러같은 사람에 대해서도 그의 행동을 비난하고 사람을 비난하지 말란다.  최근 제일 용서 안되는 사람으로 바꿔보자면 강호순이 한 짓은 나빠도 강호순이란 사람 자체가 아주 글러먹은 사람인 건 아니라는 거? 이거이거, 이런 식으로 생각하라니 쉽지 않은 주문인데....  싸운다는 건 역시 쉽지않은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 어쩌면 많은 경우 불안을 회피해버리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자신이 무언가가 두려워서 회피하며 살고 있는지  어떤지 깨닫지도 못하고 누리는 평안보다 불안감을 느끼며 도전하는 쪽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안을 느끼지 않으려고 안전만 추구하는 나에게 저자는 다시 강조한다. 

당신이 저지른 실수 중에서 가장 못난 실수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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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답하다 - 사마천의 인간 탐구
김영수 지음 / 알마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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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답한다는 제목은 사기 속에서 다룬 위대한 인물들이 난세에 답을 제시하고 타개해 나간 사람이란 의미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단 지금을 빗댄 것이라는 의미로 더 와닿는다.

그런데 지금이 난세라면....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지 않나? 대체 왜 영웅이 안 나타나는거야!

그 이유를 알고 싶으면 사기를 읽으라. 사기의 분량이 부담스러우면 일단 이 책을 읽든지... ^^ 

 

사기는 독특한 구성 - 당시의 비판대로라면 난잡한 구성으로- 되어있어서 한 인물에 대한 언급이 이곳저곳에 등장하곤 한다. 일례로 항우에 관해서 처음에 서술할 때는 긍정적인 면만 보여주나, 뒷쪽에서 다른 사건을 언급하면서 부정적면, 다른 관점을 보여줌으로써 인물이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하고 독자 스스로 그가 어떤 인간인지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편으론 당시 주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았던 사마천 자신의 사관을 살짝 숨겨두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대놓고 말했다간 금서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관점을 여러차례에 걸쳐 등장시키면서 독자가 깨닫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이 책도 그 형식을 따라 각 주제에 따라 앞의 인물이 다시 등장하곤 한다. 그렇제만 인물을 다각도로 보여주기 위한 구성은 아닌듯.  

방송에서강의하면서 각각의 주제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다보니 저자가 각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인물은 여러번 나온 것이 아닐까... 추측해뵨다.

 

사기를 텍스트로 하여 사마천 이전의 위인, 현자, 간신 등을 다루는 책에서 제법 다루고 있는 현대의 인물이 있으니, 바로 저우언라이이다.

진시황의 유적을 설명하면서 언급하고 있는데, 1970년대부터 진시황릉을 발굴하자는 건의가 많이 있었으나 저우언라이 수상은 이를 물리친다. 대량의 수은이 들어있다고 추정되는 진시황릉 발굴은 과학기술이 완벽해질 때를 기다려 후손에게 맡겨야 한다면서. 

이부분을 읽을 때 제일 부러웠다고 할까... 속상했다고 할까. 이에 비해 세계 최고의 졸속 발굴이 우리나라 무녕왕릉 발굴이라는데, 3시간 만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현재는 그 당시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사죄하는 몇몇은 당시 상당히 낮은 지위에 있던 - 당시엔 책임 질만한 위치가 아니던- 인물이라는데, 어차피 빨리 결과를 내고 싶어했던 하면 된다던 당시 우리 나라 최고지도자 탓 아니겠는가.  

어쩌면 사기의 내용은 너무나 옛날이라, 약소국 정나라의 재상 자산이 어떤 정치를 펼쳤네, 이런 일화가 있네... 해도, 옛날엔 현명하고 너그러운 정치인도 많았어...라고 멀게 느낄 수 있는데 저우언라이는 현대의 인물이라 우리의 현실과 더 비교된 것 같다.  

 

사기 내의 인물 중에서 이런 태도 멋지네... 라고 느낀 경우도 물론 있다. 제나라 위왕인데 추기의 충고를 듣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첫째. 왕 앞에서 대놓고 충고하는 사람에게는 1등상을 준다.

둘째, 글을 올려 왕의 잘못을 바로잡는 사람에게는 2등상을 준다.

셋째, 사석에서라도 왕의 잘못을 지적하여 그 이야기가 왕의 귀에 들리면 3등상을 준다.

그는 모든 비판의 소리에 귀기울였고, 잘못을 바로잡았다. 그러자 1년만에 더 이상 지적거리가 없어졌다고 한다.

비판에 대해 , 혹은 옳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돌아봐야지 대해 입을 막고 (키보드 두드리는) 손가락을 꺾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외치고 싶어지는 부분이었다. 

 

어려울 때도 유머를  잃지 않던 인물들, 어찌보면 건방지게 충고하는 인재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중용하는 열린 지도자, 약국이어도 당당한 태도, 청렴한 관리, 조화롭게 합께 잘사는 경제관,  개혁의 방법론 등 이 시대에 적용해도 좋을, 아니 적용해야만 하는 전 분야에 결친 지혜가 사기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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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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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읽어봐야지 싶은 책이었는데,

영화가 개봉한단 소식에 그렇다면 영화를 먼저 보고 읽어야겠다 - 책으로 읽은 거 영화로 봐서 만족스러운 경우는 드무니까-라고 미루어왔는데 어쩌다보니 개봉 직전 그냥 책을 읽게 되었다.

역시 영화는 못 보겠다, 이건... 책으로 읽었으니까라는 이유가 아니라 너무 우웩~스러울 것 같아서.  지저분한 오물 천지 묘사며, 시체가 썩어나는 거리며... 너무 상상하며 읽었나보다. 결말부분이 차이가 있는 모양이라 좀 궁금하긴 한데... 이 영화를 보고 나와선 며칠동안 밥도 못 넘기는 건 아닐까.... 뭐,내 식탐이 그 정도에 굴할  없긴 하지만 말이다.

어느날 한 남자가 아무 이유없이 시력을 잃는다. 그 후 그 남자가 - 볼 수는 없지만 - 볼 수 있는 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실명이 전염되고, 전염된 자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전염된다.

정부는 실명한 그들을 철거예정이던 정신병원 건물에 모아놓고 관리한다.

"정부는 정부의 정당한 의무로 간주되는 행동을 긴급하게 이행할 수밖에 없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은 현재의 위기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주민을 보호가기 위한 조치였다."라고 거듭 방송하지만 사실 병의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고, 전염이 두려워 아무도 접근해서 연구할 수도 없으니, 실명바이러스(?) 보균자들의 사망과 함께 실명병도 사라지길 바랐던 것일게다.

그러니 그 건물 안엔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만 모여서 지내게 되는 것인데...

다른 사람이 보지 않을 때 사람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주인공인, 의사의 아내- 그 안에서 유일하게 눈이 보이는 그녀는 그 모습을 속속들이 관찰하게 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믿고 있고, 자신도 보이지 않으니 마음대로 행동하고 수치심을 잃어간다. 그런데 오히려 앞이 보이는 그녀는 그 모습을 보기가 민망하고 고통스럽고 처참한 기분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보이는 나를 봄으로써 인간은 인간답게 된다는 이야기인가.

여기에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이 나타나고, 인간답기 위해선 그에 저항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있는 병실인 우병동 1호실 사람들이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단순하게 그들이 소설의 준주인공이니까... 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의사 아내의 시선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시선이란 꼭 육체적인 시각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터.

우여곡절 끝에 정신병원에서 나온 이들은 첫번째 눈먼 사람의 집을 차지하고 있는 어떤 작가를 만나게 된다. 그 작가는 자신의 집을 다른 이에게 빼앗기자 비어있던 그 집에서 현재에 대한 기록을 남기며 지내고 있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은 작가라며 자신조차 볼 수 없는 글을 남기는 무의미한 짓을 한다. 자신은 비록 시력과 함께 이성도 잃은 사람에게  자기 집을 빼앗겼지만 현재 사는 집의 주인이 나타나자 원주인과 타협하여 이성적으로 상황을 해결하고자하는 모습을 보인다. 왜 어떤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먹고 자고 싸고 섹스할 생각만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이성을 기대하고 눈먼 육체에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나오는 걸까. 그게 바로 자신을 보는 시선의 유무가 아닐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을 보는 눈. 그것은 아마 눈멀었어도 눈멀지 않을 수 있는 모양이다. 이 소설대로라면 극히 일부 사람의 경우에만.

 

그냥 한번 너희들을 시험해본 거야...라는 듯이 모두들 이번엔 아무 이유없이 눈 멀었던 순서대로 앞을 보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성인이 된 후 한 시기동안 이런 실명상태를 거치게 되고 그동안 남을 믿고 의지해야하고, 다른이들은 이런 시기를 거치는 사람을 도와야만 한다면 어떨까? 이타심과 배려심이 깊어지지 않을까?

'어둠 속의 대화'라는 체험전이라고해야하나... 그런 것이 있는데(우리나라에선 예술의 전당에서)  아주 캄캄하게 해놓고 시각장애인들의 상황을 겪어보도록 만든 전시이다. 경험해보면 꽤나 느끼는 것이 많다던데 그런 느낌을 위한 재앙이었던 걸까? 이 재앙 후 사람들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삶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그런데 꼭 실명이 아니더라도 '인생 끝'이라는 느낌의 고통스런 시기를 많은 사람들이 겪게 되지만 그 시기를 지난 후 성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망가져버리거나 악해져버리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쓸데없는 상상같기도 하다.

작가는 볼 수 없었다가 다시 보게 된 사람들이 어떠하리라 묘사해 줄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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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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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흔이 넘은 작가가 돌아보는 일생에 걸친 독서의 추억인데 엉뚱하게도 삐삐밴드의 <껌을 씹는 유쾌한씨를 보라>가 떠올랐다.  

껌씹는 방법도 여러가지 앞니로 씹기 어금니로 씹기 송곳니로 가르기 풍선도 불고... 처럼,

책읽는 방법도 여러가지 누워서 읽기, 엎드려 읽기, 소리내어 읽고 눈으로만 읽고, 돌려읽고, 읽은 책 또 읽고, 번개처럼 읽고, 삼단뛰기, 장애물 넘기...

겨울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려 읽는 안락함 (이건 잠들기 딱인디...) , 처음 학교에 가서 소리내어 읽어제낄때의 자랑스러움, 눈으로 읽다 깜빡 자신을 잊을만큼 빠져들던 추억들을 내 인생은 책이 있어 행복했고 깊어졌지... 하는 기쁨으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클뢰거가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활동적인 일이나 친구들과 즐길만한 일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내성적으로 책을 끼고 앉아 있는 모습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푹 빠져든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전기에서도 자신이 가야할 길을 보고, 심지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지하생활자의 주인공- 뻔뻔하고 째째하기 그지없는 그 작자에게서도 자신의 모습 중 일면을 발견한다.

여기서 나는? 하고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건 나의 이야기야 싶은 책이 있었던가?

어린시절 독서친구였던 동생에게 물어보면 하나 짚어줄 것 같아. 

둘이서 재밌게 본 동화에 <장난꾸러기 마디켄>이라고 있었는데(제목이 맞나 모르겠네) 주인공이 자매 중 언니 쪽이다. 엄청 말썽 피우고 동생에게 누명도 씌우고 동생 간식도  뺏어먹고....  내 동생이 그 이야기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같았다고 한 적이 있다. 동생이 언니에게 당할때마다 마구 공감하며, 이렇게 나쁜 언니는 혼나야 되는데,라고 생각하고.

'어이, 난 그렇게 말썽 피우지 않았거든?' 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동생이 그렇게 봤다니 뭐.

내 동생의 시선으로 본 내 이야기는 있는데 내가 받아들인 나의 이야기는....?

죽기 전에 전에 만나게 될까? 나이를 먹으면 근래의 일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어린시절이 더 생생하게 떠오른다던데,

할머니가 되면, 잊고있던 나만의 책이  떡 떠오르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저자도 - 물론 아직 체력이나 정신이나 건강하신 것 같지만 - 나이를 자시니 어린 시절 생각이 많이 나는 것인지 어린 시절의 책읽기에 대한 이야기가 책 내용의 대부분이다.  아이때의 느낌, 청소년시절의 시선으로 돌아가 당시의 감정에 푹 빠져 쓴 글 같다.

지금의 사람들은 아이나 어른이나 보통 자신이 읽어낼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책에 둘러싸여 있다.

저자의 시대는 그렇지 않았으니, 척박한 환경- 일제의 억압과 이어지는 전쟁, 전반적으로 열악한 독서환경 탓에 책이 없어서 읽던 책을 다시 곱씹어야만 했고, 빌려보고 돌려보느라 번개처럼 읽어내야만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빨리 읽든, 어려워서 머리를 싸매고 읽든, 읽었던 책을 또 읽든, 한권한권을 너무나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잘 전해진다. 

그렇지만, 또 그때의 감정에 너무 빠졌는지(!) 소개하는 책에 대한 해설이 너무 평범한 게 불만스럽다. 중고등학생에게 이런 책도 있단다~~ 라고 또래의 감정으로 돌아가 소개해주는 것 같은 내용.  전문성을 살려서 설명하면 너무 어려워질까 저어한 듯한 느낌.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음에 볼 책을 몇 권 체크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학교 졸업 전의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혹은 저자과 비슷한 연배의 - 근년보다 어린 시절 기억이 더 생생한 분들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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