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기술
모티머 J.애들러 외 지음, 민병덕 옮김 / 범우사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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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 한 번은 그 학기 주교재의 목차를 쓰라는 시험문제를 내신 교수님이 계셨다. 문제를 받고서야 '그러고 보니 교수님이 목차를 중시하긴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 후회를 하는 동시에 '그렇다고 어떻게 이런 문제를 내신다냐' 뜨악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고 보니 기본적 독서도 제대로 못 하는 제자들 때문에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싶다.

저자가 꼽는 독서의 수준은 네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에서 익히는 수준의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정도. 두 번째가 바로 목차 등을 보고 책의 개요를 파악하는 단계인 ‘점검 독서’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분석 독서인데, 저자는 분석 독서까지는 일반 독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이라고 한다. 즉 목차를 통해 책 개요를 파악하는 과정은 책 좀 읽으려면, 게다가 샅샅이 알아야 할 주교재였다면 당연히 마쳐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이 저자는 여기까지가 기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많은 이들이 첫 단계의 초보 독서 수준만으로 책을 읽는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200여 페이지에 걸쳐 책 읽는 법을 소개할 이유도 없었겠지.

점검 독서는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써먹을 만한 방법이다. 책 앞뒤 소개 문구를 보고, 목차를 살피고, 머리말과 일부 페이지를 읽어보아 살 만한 책인지 알아보는 과정을 말한다.

다음, 분석 독서에 대한 설명이 가장 기니 조금 자세히 보겠다.

의욕적으로 밑줄도 치고, 여백에 생각도 써넣고 하라는 얘기에 일단 주춤. 난 안 읽은 듯 깨끗하게 읽는 습관이 있는데.... 예쁜 책에 미운 내 글씨 써넣기 싫은데.... 요건 메모 기능이 잘 구비된 전자책이 보편화되면 그때 생각해봅시다. 지금으로선 절대 못 하겠어요.

저자가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잘 수용하고, 키워드를 발견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찾고,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분석 독서이다.

책을 읽을 때는 비평이 필요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주제를 찾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독자가 실패했다는 이유로 엉터리 비평을 받는다면 책과 책의 저자는 무척이나 억울할 것이다. 책에 있는 내용을 무조건 믿고 절대적으로 책을 존중할 필요도 없지만 정당하지 못한 비판도 삼가야 한다.

좀 다른 얘기이기는 하지만 어제 신문에서 본 금태섭 변호사의 사설이 떠오른다. 신자유주의의 대부격인 ‘밀턴 프리드먼’의 책을 읽어보면 너무나 정연하고 흠잡을 데 없는 논리 전개에 훅 넘어갈 지경이라고. ‘복지가 경제를 망친다, 대기업 최고경영자가 터무니없는 수입을 올리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을 아름답게 펼친다고. 그런 ‘남의 편’의 생각을 들어보고 잘 이해했을 때 ‘우리 편’의 논리도 공교해진다는 글이었다. (우리 편, 남의 편 나누어 적으로 여기며 싸우라는 뜻은 물론 아니다. 그저 서술 상 편의를 위한 표현일 뿐.)

마찬가지로 책을 읽고 비평을 할 때도 ‘왠지 느낌이 마음에 안 들어.’가 아니라 책 속 주장을 잘 이해한 연후에 어떤 점이 타당하지 않은지 조목조목 비평을 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참고 도서에 대한 얘기도 있는데..... 나는 어려운 책에 도전하기 전에 주석서를 읽곤 하는데 그러지 말라고 하시네. 사실 올해는 철학책을 읽겠다고 결심했고 첫 번째 책으로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이 땡기지만 엄두가 안 나 개요서만 두 권째 읽는 중이었다. 두 번째 책은 열 페이지 남짓 읽고 헤매는 중이었는데 중단해야겠다. 좋은 핑계거리!

여기까지가 분석 독서에 대한 이야기고 마지막 최고 수준 독서는 신토피칼 독서이다. 다른 관련서를 찾아 읽고 연관 짓고 스스로 해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랄까. 연구자에게는 꼭 필요한 독서법이다. 상당한 내공과 책 전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해 단번에 쉽지는 않겠지만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독서.

이 책을 신토피칼 식으로 읽는다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참고도서는 <북배틀> <책을 읽는 방법>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정도다. 하지만 독서 카테고리에서 찾아보면 훨씬 많은 책이 등장한다. 그 많은 책들을 모조리 점점 독서를 하고 수십 권을 추려내어 분석 독서로 비교 분석 들어가면 저세상의 모티머 애들러 씨에게 책 잘 읽는다고 칭찬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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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하거나 통제되거나 - 소셜 시대를 살아가는 10가지 생존법칙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 김상현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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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가 기존 매체와 다른 점은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발신할 수 있어서 쌍방향 의견 교환이 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처음 새로운 매체가 나올 때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열리리라 기대를 했으나 결국 주도자, 권력자는 따로 있게 된다. 글자가 만들어졌을 때, 활자가 나왔을 때도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널리 전파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일부 사람들의 글만 인쇄되고 퍼졌고, TV, 신문, 라디오 등의 매체도 일부가 힘을 갖고  좌지우지하며 치우친 주장을 전개하게 되었다. 소셜 네트워크는 과연 지금까지와는 다를까?

자고 일어나면 업데이트되고 새롭게 쏟아져나오는 디지털 기기에 뒤쳐질까 염려하고 따라잡기 급급해하기 전에 디지털 기기와 소셜 미디어의 성격을 먼저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총을 사용한 살인사건이 있을 때 총이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사람이 총을 이용해서 사람을 죽인 것이기는 하지만 총은 생명체를 죽이기에 적합한 - 여기서는 '편향성'이라고 표현한다- 도구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어떤 편향성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지 않고 무작정 소유하고 사용하려 들다가는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저자는 디지털과 소셜 미디어의 편향성에 농락당하지 않기 위해 10가지 항목에 주의할 것을 제안한다.

- 첫 번째 주의사항은 삑삑대며 24시간 우리를 불러대는 디지털 기기에 끌려다니지 말 것. 항시 접속 상태로 매여있지 말라는 경고. 이럴 걸 읽으며 그래, 왜들 매여 사는 거야, 비웃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도 종일 접속 상태인 나를 볼 때... 스마트폰까지 있으면 어찌될까 스스로도 걱정스럽다. 지금은 집중해서 해야할 일이 있으면 노트북 없이 카페 구석에 처박혀서 해결하는 등의 방법을 쓰는데, 스마트폰이 있으면 그마저도 못 해내지 않을까 못 미덥다.

- 가상세계에서 살지 말고 현실을 볼 것.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이 순간을 찍어서 트위터에 올리고 트친들과의 대화에만 몰두하는 현상을 경계한다.

- 0과 1로만 이루어지는 디지털은 우리에게 늘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무심코 0이냐 1이냐, 흑이냐 백이냐에 말려들어 양분하고 선택하는 데 급급하지 말라. 중간도 있으며 잡음과 있는 것이 세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복잡한 의문에 대해 원하는 답만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웹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일단 답을 찾은 후엔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없다고 느끼겠지만 그 답은 맥락을 상실한 것이기 십상이다.

- 온라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것. 인터넷에서의 익명성이란 사실상 낯선 도시에서의 익명성과 비교해도 훨씬 보안성이 떨어진다. 현재 내가 어느 사이트에서 뭐라고 했는지 언젠가 들통라리라고 생각하고, 오프라인에서보다 더 신중하게 한마디 한마디를 입력할 필요가 있다. 기꺼이 책임일 마음이 없는 말이라면 애초에 디지털 영역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

- 인터넷 친구를 이용하려 들지 말 것. 어쩌면 현실 세계에서도 잊기 쉬운 조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인 레벨에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듯 한데, 인터넷 기업들은 어떤 사이트에 사람이 좀 모여들면 그걸 상업적으로 이용해보려고 애를 쓰고, 그렇게 되면 소셜 커뮤니티는 붕괴를 향하게 된다는 거다. 아이러브 스쿨도 그래서?

- 열 가지 다 다루지는 못했는데, 어쨌든. 10개 조언 중 마지막은 스스로 프로그래밍 할 수 있어야 프로그래밍 당하지 않는다!

남들이 만들어 주는 대로만 기뻐하며 받아 쓰다가는 그들 또는 기계가 원하는 대로 처분될 수 있다, 인데 요건 솔직히 내 문제가 아니란 얍실한 생각이 든다.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가르쳐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해도 난 이미 다 자랐고 (남들 보기엔 덜 자란 것 같겠지만) 내가 교육 전문가도 아니니 이걸 가르쳐라, 저걸 가르쳐라 할 것도 아니고...  

제목을 보면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프로그램 당하지 말고 프로그램 하라'가 아닐까 싶지만 어려우니까.... ^^;; 일단 이전의 아홉가지 주의사항만이라도 염두에 두고 인터넷을 사용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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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본심 - 스탠퍼드 교수들이 27가지 실험으로 밝혀낸
클리포드 나스.코리나 옌 지음, 방영호 옮김 / 푸른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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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실험도 컴퓨터로 하는 시대로구나.
원래 밝히고자 했던 심리적 의문에 대한 해답보다 사람들은 기계며 컴퓨터에 대해서도 감정을 느낀다는 점이 도드라지는 실험들이 아닐까 싶다.
컴퓨터가 작업에 도움을 많이 주면 빚 진 기분을 느낀대나 뭐라나.
어이  X-note, 내가 너한테 그런 부채감 느낄만큼 잘 해줘봐 쫌. 

기억에 남는 내용은
남들에게서 진솔한, 혹은 구체적인 대답을 이끌어내려면
질문자가 먼저 자신의 경우에 대해 털어놓고 질문하기.
그래서 네이버에서 블로그 씨가 맨날 저는 이래요, 저래요 하면서 그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건가보다. 자기 얘기 하고 질문할 때랑 그냥 맹송맹송 질문만 던질 때랑 답변률을 비교해 봐도 흥미로울지도,

비판을 많이 하는 경우 비판하는 존재(여기서는 컴)를 부정적으로 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똑똑하다고 판단한다고 한다. 비판하고 똑똑해보일 것인가, 좋은 게 좋은 거지 넘기며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할 것인가. 어려운 문제네... 
 

우울할 때 유쾌한 목소리를 내는 컴퓨터와 작업을 했을 때는 차분한 목소리로 지시하는 컴과 함께였을 때보다 성과가 나빴다. 그러니까 우울할 때면 활기찬 모임에 나가기 싫어지는 게 맞는 거겠네. 우울에는 함께 가라앉을 존재가 필요하다는 거다.  단 여기서 주의할 사항은 '당신 우울해 보여요. 슬퍼보여요.'하고 콕 찝어 말하면 역효과 난다. 그냥 말없이 그 분위기만 함께해 주기가 답.

사실 마케팅을 위한 연구라 평소 행동과 심리로 연결지으며 읽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강하게 어필하지는 못하지 않았나 싶은데,  그래도 실험에 관련된 연구자들 이름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서 괜한 친밀감에 끝까지 넘겨보긴 하게 된 듯하다. 여기서 제법 언급되는 문영미 교수 책을 재밌게 읽은 경험이 있어서....  관계에 얽매여서.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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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일까? - 대중문화 속 법률을 바라보는 어느 오타쿠의 시선 대중문화 속 인문학 시리즈 1
김지룡.정준옥.갈릴레오 SNC 지음 / 애플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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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동화는 사건이 해결되며 깔끔하게 이야기가 끝날 수 있지만 그들을 현실에 데려다 놓으면 그럴 수가 없다.

드라마는 끝났어도 감옥엘 가느냐 마느냐 하는 형법 문제, 얼마나 배상해야  할지 하는 민사 문제, 그리고 헌법에서 뭐라고 하는지를 구질구질하게(!) 따져보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한 번 헐크로 변해 소동을 피우고 동산과 부동산을 파괴했으면 민형사상 책임이 따르고 공권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나서서 악한을 처단하느라 기물을 파손했으면 뒷수습도 해야만 한다.

해리포터의 빗자루나 알라딘의 양탄자 같은 탈 것은 초경량 비행장치에 해당하므로 비행이 가능한 구역에서 사전 승인을 얻어, 고도제한을 지키며 날아야 한다. 태권 브이가 도로를 달리고 싶다면 번호판도 달고 교통 법규도 지켜야겠고.

이런이런... 법이란 게 온통 규제 투성이라 지구를 지킬 수가 없네?

위의 사례들은 일견 그렇게 보이겠지만 그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은 원래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 말이다. 

이를테면 하늘에서 떨어진 ET를 국가에서 강제로 막 데려간다?

이럴 때 법을 좀 알고 있으면 당당하게 대처할 수 있다. 공유지에 떨어진 소유가 없는 것은 주운 사람이 임자고, 특별한 필요에 의해 국가가 압류하려 할 때도 대가를 지불하고 가져가야 한다. 이걸 알았음 애들 맘 고생이 덜했을 텐데...

억울한 계약때문에 울고 있는 이들에게도 법은 구세주다. 애초에 불합리한 계약은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실엔 있을 수 없는 일을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실제 우리 생활에 접목하여 생각해 볼 부분도 많은 책이다.

특히 마지막 피터 팬이 웬디 또는 웬디의 손녀와 결혼할 수 있는가 이야기는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대답은 우리나라에서는 불가. 혈통주의에 기반한 속인주의 원칙을 고집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피터 팬은 무국적자로 살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할 수 없다. 사실 동화의 배경은 영국이고 영국은 속지주의에 따라 국적을 갖게 되므로 피터 팬은 좀 힘들지 몰라도 적어도 피터 팬의 자녀는 국적과 인권을 지킬 권리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의 수많은 불법체류자들, 그들의 아이들은 우리나라에서는 국적을 얻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피터 팬도 우울하게 만드는 나라랄까...

 

참! 제목에 던진 질문을 살펴보면, 저자는 데스노트의 기능을 알고 썼다면 살인죄라고 하고 있다.

데스노트에 이름을 쓴다고 처벌받는다면 '인형에 바늘 꽂으며 저주하는 것도 처벌감이야?'라고 속으로 궁시렁대는데 저자가 곧 그 얘기도 꺼내며 차이점을 설명하려 애쓴다.

<과학적으로 데스노트의 기능에 대해서는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이름이 적힌 사람들이 지금까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죽는 상황을 묘사해 적었을 때 대상은 써진 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것은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라고.

어라? 계약 무효에 대해 설명하면서 <현실의 법은 마법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해놓고? 민법에선 인정 안 하고 형법에선 인정하면 쓰나....

이름을 쓰니 죽은 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건지, 아니면 누군가 뒤에서 수작을 부린 건지 어찌 아나...  탐정 갈릴레오의 유가와 교수 같은 사람이 나와서 이 사건은 데쓰노트라는 신비로운 노트로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켰지만 뒤에서 실제로 어떤 짓을 해서 사람이 죽게 됐는지, 진짜 살인자는 누구였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해주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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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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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어딘가의 연구팀에서 힘든 일을 겪을 때 욕을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고 한다. 맞아, 그럴 것 같아, 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을 때 욕하고 불평하고 화를 내고 싶은데 주변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느니, 다 마음 속에 있다느니, 좋은 말로 달랠 때,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신이 암에 걸린 건 당신이 암을 원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억울할지도 조금은 상상이 된다.

정말로 긍정성은 병이 피하가게 하고 왔던 병도 물러가게 하는가, 에 대해 저자는 결코 그런 사실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데이터가 갖춰지지 않다고 한다.

긍정적 사고는 기업에서, 사회에서 불이익 당하는 사람들의 이의 제기하는 입을 막는 도구로도 이용된다.

'해고 당한 것도 당신이 긍정적이지 않아서이다.' '다음 좋은 직장을 간절히 갈망하면 될테니 오히려 기회이다.' '당신의 가난도 당신이 부를 갈망하지 않아서이다.'

이런 식으로 긍정성의 옹호는 불평을 금지하는 동시에 피해자를 교묘하게 질책한다.

긍정적 사고 시크릿의 영역은 개인의 자기개발용으로, 기업의 동기유발 강좌로, 사회의 문제를 보지 않고 없는 셈 치는 용도로, 그리고 교회 부흥의 도구로까지 퍼졌다.

저자는 긍정주의와 교회가 관련된 시초를 칼뱅주의에 대한 반대에서 찾는다. 엄격한 자기 관리와 절제를 강조하고 완수하면 복이, 그렇지 않을 경우 벌이 내릴 것이라는 두려움에 대한 반대 이론으로 사랑의 하나님, 원하는 대로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했는데 그것이 과도하게 증식했다. 이제는 심지어 하나님은 내가 바라는 대로, 아니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종이라는 듯한 태도까지 보인다. 대형교회에서 죄와 보혈에 대한 설교는 미뤄두고 축복만 강조하는 경향이 우리나라 특유의 민간 기복신앙과의 결합 탓이라고만 여겼었는데 미국에서 온 사고법이었던가... 

그런가하면 독재국가나 공산주의 사회에도 긍정론이 퍼져나가는듯한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그곳은 예전부터 애초에 체제에 대한 불평이 금지되었고 부정적 묘사를 담은 책, 어두운 이야기는 허용되지 않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즉, 긍정적 생각만 허락되는 곳은 어떤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대형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같은 곳이라고 하면 심한 표현일까?

사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간절히 바라면 된다는 긍정론을 줄기차게 듣다보면 '그럴 리가 없잖아.' 하는 생각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긍정주의는 틀려먹었어'를 300여 쪽 읽다보니 그래도 확신하고 꿈을 갖는 건 좋은 거잖아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고백에 혹자는 역시 난 삐뚤어졌다고...^^;) 

그렇지, 좋은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긍정적 사고가 문제라고 강하게 외친 이유는 '비판적 사고'를 막기 때문이다. 사회적 부조리에 눈감고 환경 개선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험신호를 무시하고 돌진하다 큰 사고를 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긍정 사고가 아니라 실패와 성공의 가능성을 꼼꼼하게 짚어보며 조사하고 준비하는 태도다. 

 

처음에 말한 실험, 늘상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에게는 욕을 했을 때 기분이 나아지는 효과가 없다고 한다.

역시 긍정적 생각은 전혀 없이 맨날 부정적 생각만 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세상에는 위험과 기회가, 죽음의 확실성과 커다란 행복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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