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큐를 위한 변명 - 대륙이 만들어낸 중국정신의 두 얼굴
이상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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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큐는 찌질한 주제에 큰소리나 치는 인간이다. 권력이나 물리적 힘에 쉽게 비굴하게 엎드리면서 구경거리만 찾는 그의 모습이 바로 평범한 중국 서민들의 전형적 모습이라고 루쉰은 보고 있다. 

널따란 대륙을 차지하고 호령하는 호탕한 모습으로도 묘사되는 중국인들이 어째서 한편으로는 그런 모습을 갖고 있을까. 보통 이는 천하를 통일한 천자의 전제통치, 폭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체득한 태도라 설명한다.

그렇다면 소위 천자라는 이만이 호방하고 아큐적 면이  없었겠구나... 할라치면 저자는 이번엔 천하와 천자라는 단어에 의심을 나타낸다.

광활한 온 세상을 진정으로 파악하고 이 곳은 천하이고 나는 천하의 주인이다라고 한 것이 아니라, 좁은 울타리 - 알고보면 그리 높지 않은 태산에 올라 내려다 본 범위 - 를 천하라 정의하고 그 곳을 다스리는 자를 천자라고 이름만 거창하게 붙였을 뿐이다. 자기를 비웃는 저들은 애고 자신은 어른이라며 제 혼자 우월하다 여기고 기분 좋아하는 아큐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멀게는 민중이 아큐 기질을 갖도록 한 원흉(?)이랄 수 있는 진시황에게서도 - 이사의 초기 건의와 후기 건의가 180도 다름에도 눈 감아버린 모습을 예로 들며 - 아큐 기질을 찾아내고, 인으로 군주를 교화할 생각은 없이 자기를 알아주는 군주가 없다고 한탄하는 공자도 아큐적이라 한다. 

아큐의 특징은 지찔함 외에 폐쇄성도 들 수 있다. 자기 외의 사람들 자기가 있는 곳 너머를 보지않고 눈을 감아버렸기에 자신이 최고인 세상에 안주할 수 있는것이다.

공자는 국가의 일은 그것을 언급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만이 논해야 한다고 했다. 정보를 접하지 못하면 (민중은) 눈을 뜰 수가 없다. 아큐에 가까워진다. 

그런 공자의 꿈을 실제로 이룬 것이 중국공산당이다. 중국에는 <내부참고>라는 중국공산당 기밀 정보지가 있다. 이 내부 참고도 여러 단계로 나뉘어 발행되어 최고위층와 말단 공산당원이 접하는 정보의 질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고위층이 모든 정보를 파악한 후 대중에게는 당에서 허락한 정보만 공개한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 시대. 1999년 중국의 네티즌- 왕민-들이 그런 공사의 이상향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파룬궁  수행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아 당이 감시를 피해 대규모 집회를 연, 중국 지도층에 충격적인 일이 발생한다.  중국 당국은 계속 인터넷 상의 만리장성이랄 검열 프로그램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으며 왕민들도 속속 해킹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며 대항하고 있다. 

 

아큐 기질을 논하느라 폐쇄적 이야기만 늘어놓았는데, 이 책에서 처음 등장하는 이야기는 대륙적 하오커 기질과,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성심성의껏 친구를- 나아가서는 친구의 친구도- 환대하고 돕는 모습이었다. 

분명 중국은 폐쇄성만으로 형성된 나라가 아니다. 그랬다면 이리 오랜 세월 유지될 수 없었겠지.

개방성과 폐쇄성이 변주되던 곳인데, 언제 다시 중원이 열릴지.

공론의 장, 기회의 땅이 될 때가 언제 올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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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론
가와카미 하지메 지음, 송태욱 옮김 / 꾸리에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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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전 가와카미 하지메는 부유한 나라에도, 일본에도 가난한 사람이 늘어만 가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한다. 열심히 일해도 입에 풀칠 하기 어려운 빈곤 문제를 해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하던 그는 개인의 정신 개조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생활 필수품이 많이 만들어져지만 분배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필수품 생산이 부족하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왜? 부자들의 사치때문에.

그래서 부자들이 사치하지 않는 것을 빈곤 해결의 첫번째 방책으로 보고 있다.  

 

부제를 단다면 선비 경제학자 유토피아를 꿈꾸다 쯤?

이래저래 공자님 생각이 난다. 

첫 느낌이 공자님 말씀이군... 싶고 저자도 책 속에서 공자를 많이 들먹인다.  

가와카미 씨는 인치 (人治)와  덕치 (德治)를 꿈꾸는 공자처럼,  바른 위정자가 등장해서 경제를 바로잡기를, 덕으로써 가난한 이도 생각하는 경제를 운영해주기를 바란다. 

 

부자들이 사치하면 물건 만들어내는 이들이 사치품 생산에 몰리고 그러면 생필품 생산량은 더욱 줄어들면서 가격이 오른다. 그러면 가난한 이들은 생필품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러니 부자들이 사치품을 원하지 말하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바로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한 이들이란 요새말로 하면 '최저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이'를 말하는 거니 생필품 생산이 제대로 이루어져도 여전히 그것을 구입할 돈이 없다. 그래서 가와카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자는 공공을 위해 자기 재산을 쓸 각오를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사업가는 돈벌이를 함에 있어서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해야 하고 운운....

그의 이상향은 개인의 마음가짐이 바뀐 사회이다. 장삿꾼이나 생산자나 부자가 공공의 이익을 위하고 가난한 자를 걱정하는 사회, 소비자는 물건을 남용하지 않는 사회. 

개인이 그렇게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는 힘든 일이므로 그런 마음으로 경제를 관리할 위정자가(仁을 아는 이?)가 등장하여 국가가 틀어잡고 관리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본다. 당시(1916년) 전쟁을 위해 경제를 통제하던 독일처럼.

 


올해가 그가 태어난지 130주년이라는데,

왜 100주년이 아닌 130주년에 떠들썩한가? (아, 우리나라선 떠들썩 아니구나... 일본에선 재조명에 열심인 듯하다. )

지난달 아사히 신문 사설에서 이 책을 언급한 걸 보고 읽게 됐는데, 그 글에서는 가와카미 씨가 내린 가난의 정의에 주목하고 있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육체, 지능, 영혼. 이 세 가지인데 이를 건전하기 유지하고 발육시킬 경제력이 안 되는 사람을 가난한 사람이라고 한다. " (34쪽)

 

그러면서 교육의 평등이 흔들리는 지금을 우려하던데, 우리나라라고 다를까..

얼마전 '성적은 집값순'이란 기사도 떴었고 (사실 요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싶은 소리긴 해....)

요즘 화제의 중앙에 있는 어떤 인물은 '교육은 추려내는 것'이라며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우리나라도 그가 말하는 가난의 정의에 주목해야할 때이다.

양국 모두 30년 전보다 퇴보, 100년 전과 비슷해진 요즘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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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의 사막여우 - 교과서에 살아있는 과학체험 학습프로그램, 해피페이퍼
엠아이페이퍼 편집부 엮음 / 엠아이페이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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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가한 날 오후 친구 딸래미- 일곱살 먹은-와 나란히 앉아 떼어내고 풀칠하기를 시작했어요. 


  

조각 조각 떼어내서 붙이게 되어 있네요..

처음에 '서영아, 너 혼자 해봐~' 했더니 자신이 없나봐요.  '이모도 같이 해~~ ' 라는 걸 보니.

평소엔 '내가 내가! 내가 다 할꼬야!'하는 앤데요. ㅋ

일점 쇄선과 점선 접는 방향이 다른 거, 가르쳐줬는데 좀 헷갈리나봐요.  애가 자꾸 반대로 접어요.

풀칠해 붙이는 영역이 좁은 경우도 많고, 요거 제법 세밀한 작업을 요구하는군요.



 둘이서 이게 맞네 저게 맞네 다퉈가여 머리를 완성했어요!

내가 자꾸 그렇게 하는 거 아냐, 풀칠 잘 해, 반대로 접었잖아... 잔소리 해대서 표정이 살짝... ^^;

미취학 아동에겐 조금 어려운 게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도 꼬리는 일곱살 꼬마 혼자서 다 붙였답니다.

귀도 크고, 꼬리도 긴 사막여우 완성!

귀는 열을 발산하는 역할을 하느라 크다는데 꼬리는 왜 긴 걸까?

사막여우에 대한 책을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 어리버리 작품 감상시 공통 주의사항 - 자세히 보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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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읽는 CEO -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읽는 CEO 8
김진애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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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은 도시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러질 않아서 할 수 없이 혼자서 궁리해본다. 언젠가 '도시란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곳, 시골에 의지해서 존재하는 곳' 그런 정의도 들어본 것 같지만, 이 시점에 들이대기엔 어색한 것 같고...  

순전히 사람들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진 곳이라고 정의하면 이상할까.

물론 논밭이나 목장 등도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지만, 그 모습을 만드는 데는 사람의 의지나 계획 이상으로 자연의 힘이 많이 작용하니까...

바로 그 '사람의 의지'에 따라 도시가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형성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로 쿠리티바와 두바이를 들 수 있다.

저자는 쿠리티바와 두바이를 "지속 가능성"이라는 주제 하에 상반된 도시로 묶여 비교하고 있다. 

갑자기 세계의 이목을 끄는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고 화려하게 변신한 사막의 도시 두바이. 세계 자본과 세계 부자를 겨냥한 전략으로 성공을 꿈꾸는 곳이다. '환상의 도시, 최고의 창조력, 최고의 상상력'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도시지만 저자는 고개를 갸우뚱 한다.

야자수를 키우기 위해 거미줄 같은 수도관을 설치해 끊임없이 물을 공급하는 장면을 단적인 예로 들면서 이 도시가 과연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 지, 유령도시가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한다.

'보통 땅은 자칫 사막화해 버리지만 사막은 절대 보통 땅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두바이는 막대한 관리 비용을 계혹 투입하지 않는 한 유지될 수 없는 구조적 특성을 안고 있는 도시인 것이다.'

반면 쿠리티바는 가난 탈피, 경제생활 안정을 위한 정책 수립에 지속 가능한 환경 정책도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정책을 수립 할 때 그 안에서 생활하는 서민들을 중시한다. 서민들의 입장에서 교통계획을 수립하고 주택을 짓고 환경정책을 편다. 홍수 방지를 위해서는 토목사업을 피하고 자연습지에 가까운 호수와 도랑을 조성한다. (서울의 교통정책을 쿠리티바에서 따왔으니 4대강 정비사업도 부디 이쪽을 모방해주길...)

두 도시의 차이는 지속 가능성을 꿈꾸는가, 대박을 꿈꾸는가이다.

도시와 사회를 운영하려면 어느 쪽 모델을 따라야 할까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위에서 처럼 이 책은 한 가지 주제 하에 비슷한 도시, 혹은 상반되는 도시들을 묶어 비교하며 설명한다. 

파리와 런던의 구조를 질서라는 측면에서 비교하고, 중화권 도시의 모델로서 싱가포르, 홍콩, 상하이를 비교한다. 도시 전체를 파악해보자는 내용으로, 중심의 도외지에서부터 나이테처럼 커간  비엔나와 중심부에 녹지를 유지하고 주변부에 고르게 발달한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들을 비교한다.

한 순간의 재해로 사라진 도시- 폼페이와 짝 지워진 도시는 어디였을까? 근년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던 뉴올리언스였다. 

전자가 여기서 당부하는 내용은 

'부디 개인, 가족, 기업, 단체, 도시,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가상 위기'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위험에 대한 상상, 재난에 대한 상상, 재앙에 대한 상상은 우리의 근간을 튼튼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얼마전 읽은 단편집 (길이 상 콩뜨라고 해야하는 건가... 스와보미르 므로제크라는 첨 보는 작가의 '초보자의 삶')에 어떤유적이 발굴되는 장면이 나왔다. <캠코더를 들고 있는 모습 그대로 보존된 사람이 발견되고, 더 파보니 소니 카베라를 든 일본인이 발견되고, 더 발굴하니 커다란 카메라를 든 미국인이 발굴되고.... 발굴팀장이 이 사람들은 고대 유적지를 관광하다가 다시 화산에 파묻혔고 그 관광객 미라를 구경하던 이들이 또 파뭍혀 새로운 층을 형성한 거라고 설명하는 순간 조용하던 화산이 갑자기 폭발을 일으킨다.> 는 내용. 그땐 풋 웃고 넘긴 이야기였는데 폼페이와 뉴올리언스를 비교한 챕터를 읽고 나니 진지하게 와 닿는다.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건물이 얼마나 멋있나, 거리가 어떻게 배열되었나가 아니고 인간의 의지와 사고방식이다. 사람에 의해 계획되고 사람에 의해 유지되고 사람들이 살며 운영하고 있는 곳이 도시이다. 자연의 경고를 얼마나 잘 듣는가, 위기에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준비하는가, 서로 어떻게 소통하는가에 따라 살만한지, 지속될 수 있는지 결정되는 곳이 도시이다. 

이 한권의 도시 이야기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던 것은 그 안의 건물이나 거리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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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터넷
최민호 지음 / 따뜻한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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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간에 교감하고 소통하는 장치인 인터넷의 대척점을 생각하며 만든 단어 아웃터넷.

소설 속 발명품인 텔레스코프라를 이용하여 식물과 소통하는 시스템을 칭하는 것이다.

 

실제로 예전에 벡스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거짓말 탐지기를 식물에 연결하여 모니터에 나타나는 파장의 변동을 보며 그 것이 식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거라고 설명하여 인기를 끌었더랬다. 자신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나타나면 불안해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보이면 기뻐하고... 더 나아가선 자신을 돌봐주던 주인이 여행 중 위험한 상황이 되면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그걸 감지하고 불안한 파장을 나타낸다거나...

그런데 어느날, 식물을 태우는 등 위협적인 실험을 하던 사람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거지말 탐지기는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는다. 벡스터는 식물이 겁에 질려 죽은 척 위장을 한 거라고 변명했던가... 뭐 그랬지만 그의 신뢰도는 바닥을 치게 되지...
그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뭐야, 완전 사기꾼이구만~'하면서 넘어갔는데, 그 책의 저자는 중립적으로 소개하면서도 뭔가 아쉬워하는 듯 보였었다. 식물을 오래 가까이하다보면 애완동물을 기를 때처럼 소통하고 사람보다 더 자신을 이해하는 듯 느끼게 되어 벡스터의 주장도 믿고 싶어져 그런 건지...

 

후르마쓰 부녀는 식물이 어쩌면 인간보다 고등한 사고를 하는 존재라 여기고 있고 어쩌면 벡스터의 뒤를 잇는 듯한 연구를 계속한다.  인간이 알아듣지 못할 뿐이지 식물을도 사고하며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식물의 감정을 인간의 언어로 변환하는 기계를 개발한다.

반면 막스 쉬뢰더 연구원의 소장 쉬뢰더 씨는 식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개발하고 이용할 대상으로 여기고 유전자 합성을 통한 품종 개발을 계속한다. 벡스터 실험실에 마지막에 등장해서 벡스터에게 사기꾼이란 낙인을 찍었던 그 남자 같은 존재랄까...  쉬뢰더 씨가 골몰하고 있는 것은 식물과 동물의 유전자를 결합한 꽃 튜라플라네스의 개발이었다.

그리고 그 두 식물관 사이에 젊은 주인공 마순원이 있다고 해야할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그 학생은 독자에게 설명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일 뿐 (그앤 식물 전공이 아니다보니 여기저기 가서 이런저런 설명을 듣게 된다) 그리 중요하지 않고, 제프가 그 중간에 존재하는 중요한 인물인 듯하다.

제프는 과학자이긴 하지만 개발보다 보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산업적 이용보다 관찰과 분석 자체에서 의의를 찾는 젊은이이다.

여러차례 순원에게도 자연 앞에 오만하지 말것, 식물 등 다른 생명체를 함부로 다루다가는 오히려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랬던 그인데.. 어째서 막상 튜라플라네스가 완성되자 스스로 나서서 더욱 독성을 강화하는 실험을 제안하고 직접 수행하고 끝내 사람이 죽도록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게다가 박사도 동의하고 함께 수행하던 실험이었는데 왜 끝끝내 그 실험 내용을 숨겼던 건지도.
저자는 어쩌면 문명을 이용하면서 환경보전을 외치는 서양식 환경주의자를 곱게보고싶어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드네? 전통적 동양식 환경주의랄 수 있는 - 나무 신령을 숭배하는 모습 등은 곱게 봐주면서 말이다.

또 한가지 신경쓰이는 내용은 뜬금없이 등장한 사막 녹지화 계획. 꽃 하나 합성했다가 그 사단이 났는데 거대한 사막을 별 고민 없이 녹지로 만들겠다고 나서도 괜찮은 걸까.... 우려 된다.

텔레스코프를 연결해서 사막의 선인장이나 습지의 식물들 그리고 오래 살아온 나무 신령에게 부디 물어보고 착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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