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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론
가와카미 하지메 지음, 송태욱 옮김 / 꾸리에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100여년 전 가와카미 하지메는 부유한 나라에도, 일본에도 가난한 사람이 늘어만 가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한다. 열심히 일해도 입에 풀칠 하기 어려운 빈곤 문제를 해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하던 그는 개인의 정신 개조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생활 필수품이 많이 만들어져지만 분배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필수품 생산이 부족하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왜? 부자들의 사치때문에.
그래서 부자들이 사치하지 않는 것을 빈곤 해결의 첫번째 방책으로 보고 있다.
부제를 단다면 선비 경제학자 유토피아를 꿈꾸다 쯤?
이래저래 공자님 생각이 난다.
첫 느낌이 공자님 말씀이군... 싶고 저자도 책 속에서 공자를 많이 들먹인다.
가와카미 씨는 인치 (人治)와 덕치 (德治)를 꿈꾸는 공자처럼, 바른 위정자가 등장해서 경제를 바로잡기를, 덕으로써 가난한 이도 생각하는 경제를 운영해주기를 바란다.
부자들이 사치하면 물건 만들어내는 이들이 사치품 생산에 몰리고 그러면 생필품 생산량은 더욱 줄어들면서 가격이 오른다. 그러면 가난한 이들은 생필품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러니 부자들이 사치품을 원하지 말하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바로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한 이들이란 요새말로 하면 '최저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이'를 말하는 거니 생필품 생산이 제대로 이루어져도 여전히 그것을 구입할 돈이 없다. 그래서 가와카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자는 공공을 위해 자기 재산을 쓸 각오를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사업가는 돈벌이를 함에 있어서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해야 하고 운운....
그의 이상향은 개인의 마음가짐이 바뀐 사회이다. 장삿꾼이나 생산자나 부자가 공공의 이익을 위하고 가난한 자를 걱정하는 사회, 소비자는 물건을 남용하지 않는 사회.
개인이 그렇게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는 힘든 일이므로 그런 마음으로 경제를 관리할 위정자가(仁을 아는 이?)가 등장하여 국가가 틀어잡고 관리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본다. 당시(1916년) 전쟁을 위해 경제를 통제하던 독일처럼.
올해가 그가 태어난지 130주년이라는데,
왜 100주년이 아닌 130주년에 떠들썩한가? (아, 우리나라선 떠들썩 아니구나... 일본에선 재조명에 열심인 듯하다. )
지난달 아사히 신문 사설에서 이 책을 언급한 걸 보고 읽게 됐는데, 그 글에서는 가와카미 씨가 내린 가난의 정의에 주목하고 있었다.
"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육체, 지능, 영혼. 이 세 가지인데 이를 건전하기 유지하고 발육시킬 경제력이 안 되는 사람을 가난한 사람이라고 한다. " (34쪽)
그러면서 교육의 평등이 흔들리는 지금을 우려하던데, 우리나라라고 다를까..
얼마전 '성적은 집값순'이란 기사도 떴었고 (사실 요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싶은 소리긴 해....)
요즘 화제의 중앙에 있는 어떤 인물은 '교육은 추려내는 것'이라며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우리나라도 그가 말하는 가난의 정의에 주목해야할 때이다.
양국 모두 30년 전보다 퇴보, 100년 전과 비슷해진 요즘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