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
대니얼 L. 샥터 지음, 박미자 옮김 / 한승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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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오류를 일곱 종류로 분류하고 죄악이라 칭하며 이 책은 시작된다.

단순히 잊어먹는다는 문제가 기억 문제의 다일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가 꼽은 일곱 죄악 중 세가지만이 기억 누락의 문제이고, 나머지 네 가지는 무언가가 기억에 추가되거나 생생해짐으로써 생기는 문제이다. 

첫번째- 소멸의 죄

이거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주제일 것이다. 까맣게 잊는 문제. 더 설명도 필요 없고.

두번째 - 정신없음의 죄

깜빡 하는 문제, 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평소와 다른 곳에 두는 바람에 열쇠를 찾지 못한다든가.... 하는 상황. 역시 많은 사람들이 겪으면서 살 걸?  

요건 해결방법을 살짝 알려주자면, 해야할 일을 '반드시 하게 되는 일'과 연관시킨다. 예컨대, 자기 전에 약을 먹어야 한다, 나는 자기 전에 꼭 양치질 한다.... 그렇다면 양치컵 옆에 약을 두면 안 잊을 수 있다. 약을 보고도 이게 여기 왜 있지? 한다면 치매를 의심해봐야 할거다... -.-;; 

세번째 - 막힘의 죄.

어떤 단어가 혀끝에서 맴돌기만 할 뿐 이미지는 떠오르는데 딱 맞는 명칭이 떠오르지 않던 경험, 대부분 있겠지.  그리고 또 그런 경험도 있을 것이다. 떠올리려는 단어와 비슷한 단어가 떠올라 목표단어 재생을 오히려 방해하는 경우. 그런 방해단어를 '못생긴 자매' 라고 부른다나! ^^;;

그런데 막힘이 이런 단순한 단어막힘만 있는 게 아니더라. 충격적인 사건의 경우 기억에서 차단되는 경우도 있다. 프로이트의 억압개념과 닮은 이런 차단의 경우는 나중에 재생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여기서 새롭게 발생하는 문제는 그게 정말 재생된 것인가.... 하는 오귀인의 문제. 바로 다음 죄. 

네번째 - 오귀인의 죄.

신문에서 읽은 이야기를 친구한테 들었다고 착각하는 정도는 애교로 봐줄만한 오귀인의 예이고,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을 실제로 경험했다고 기억하는 오류가 의외로 많다고 한다. 데자뷰를 오귀인의 예로 설명하려는 노력도 있는데, 뭔가 아직 좀 명확하진 못한 설명이다. 

다섯번째 - 피암시성의 죄 

이건 오귀인과 꽤 많은 부분 연결되어 있던데,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질문이나 설명을 듣게 되면, 거기에 스스로 살을 붙어 생생한 기억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용의자들을 보고 처음엔 잘 모르겠다.... 다시 열심히 살펴보고 첫번째 사람 같아요....라고 말한 후 긍정적 피드백을 받으면 다음엔 자신의 기억을 믿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재판에서는, 그 사람이 범인인 게 맞아요. 똑똑히 기억합니다가, 된다.

그러니까 질문을 암시적 내용이 없게 해야 바른 기억을 유도할 수 있다는 건데, 한때 미국에서 자신의 부모를 유아성폭행으로 고소했던 사건중 상당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섯번째 -편향의 죄

어떤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많이 말하는데, 그 사람들 모두 정말 결과를 알게 되기 전에도 그럴 줄 알고 있었을까?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대해 예전부터 자신은 그런 식으로 생각해왔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일곱번째 -지속성의 죄

잊는 게 문제지, 기억이 지속되는 게 무슨 문제야, 싶지만 커다란 상처가나 실망감 좌절감등이 기억에서 계속 사라지지 않고 자꾸만 떠오를 때, 어떻게 될까? 외상후장애증후군(PTSD)이나 우울증이 이 나쁜 기억의 지속성때문이다. 

'기억은 내키는 곳에 드러눕는 개'인줄로만 알았는데, 이 책에서 거짓기억에 대한 이야기며 지속성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기억은 떠돌이 친구까지 달고 다니며 내키는 곳에 눕고, 맛있는 음식(나쁜 기억)은 한번 물면 절대 내놓지 않는 개'인 모양이다.  

일곱가지 죄악을 설명한 후 저자는 왜 이런 엉성한 기억시스템으로 진화해왔는지 설명하려 애를 쓰는데, 그 설명, 기억 시스템 못지않게 엉성하다. 왜도 어떻게도 말끔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나중에 정리 되면 다시 설명해주쇼, 샥터 씨.

그나저나 이 책을 읽고나니, 대화할 때 남들 말 속에 등장하는 지난시간 이야기가 다 의심스럽고, 나도  말하면서 내 생각, 내 기억에 확신이 안 서고.... 후유증이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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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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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은 최근 몇십 년동안 급속도로 발전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반응을 하고, 행동을 할 때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될지에 대한 지도를그려놓고 있다. 예전엔 면밀한 관찰을 하고 추측을 해야했던 기괴한 행동들도 뇌스캔으로 간단하게 파악하고 어느 부위의 오류인지 설명할 수 있다.
올리버 색스 박사는 이러한 기술의 진보를 반기는 한편으로 지금까지 행해지던 '구식' 관찰의 중요성도 무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력한 것은 환자와 실험참가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경험한 것을 상상하며 그 경험 속으로 들어가보는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라고 강조한다.
나도 이 점이 바로 올리버 색스 저서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절망적인 환자에서라도 인간다움의 징후를 찾으려는 그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그의 문장들이 말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음악을 통해 그 희망을 찾아보고 있다.

1. 클라이브 웨어링은 저명한 음악가였다.1985년 그는 치명적 헤르페스 뇌염에 감염되어 기억력에 손상을 입는다. 보거나 느끼기는 하지만 그 기억을 1분도 지속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기억도 잊어 2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 기억만을 갖고있다. 그가 의식적으로 아는 것은 현재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한정된 지식만 끊임없이 떠벌려대며 순간을 살아가는 고통을 떠올리기를 회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기억이 없는' 그이지만 자신의 자식들은 알아보고 언제 이렇게 장성했는지 매번 놀라며, 아내는- 비록 어떻게 만났는 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심리적으로 기억하고 모든 것을 의존한다. 올리버 색스는 이 부분에서 기억에도 분명 여러 종류가 있으며 이런 정서적 기억이야말로 가장 심층적인 기억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모든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인간이 늘 그렇듯이 정서적 기억이 가장 우리에게 덜 밝혀진 기억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아직 갖고 있는 능력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주를 할 때면 병에 걸리기 전의 그처럼 자신있고 생기 넘치는 모습이 된다.
공간과 시간에서 뚝 떨어져 나온 그의 삶은 분명 정상적 의미의 삶이 아니다. 그렇지만, 자기 아내가 책을 냈다고 할때마다 뛸듯이 기뻐하는 현재, 음악을 연주하며 느끼는 현재, 그 현재의 연속이 의미 있다고 보는 것이 올리버 색스의 관점이고 클라이브 웨어링의 아내의 관점이다.
기억은 없지만 순간순간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인생에 대해 누가 기억이 없는 인생이 무의미하다느니 떠들어댈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순간순간이 쾌활하고 평안하며 사랑과 음악으로 충만한 것일진대.

2. 윌리엄스증후군에 대해서는 여기서 처음 접했다. 세상엔 정말 별별 증후군이 다 있구나. 이런 유쾌한 정신질환도 있었다니. 윌리엄스증후군은 자폐증과 정반대라 생각하면 된다.  다운증후군처럼 외모상의 특징으로도 드러나는데 그에 더해 음악사랑-그야말로 뮤지코필리아-으로 알아볼 수 있다.  지능은 현저하게 떨어지나 낯선 사람들에게 친밀하게 말을 걸고, 함께 모여 노래하고 연주하기를 즐긴다.'이들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기초적인 답을 뇌스캔 영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음악을 들을 때 일반인들은 뇌의 일부분만을 사용하지만 이들은 거의 모든 부분이 활성화된다. 그래서 음악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이 증후군 아이들 중에 절대음감 소유자가 많은 것도  뇌의 시각영역과 다른 부분이 발달하지 못하면서 청각을 발달시켰다고 지금까지의 뇌의학적 지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만하면 윌리엄스증후군에 대해 '설명완료'라고 마무리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또 올리버 색스 씨는 운명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기도 하나, 그게 다는 아니라고 덧붙인다. 표면적으로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처럼 경험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개성도 분명 존재한다고. 증후군의 '무엇'을 뚫고 '누군'가가 나타나리라 기대하며 아이들을 바라본다. 
윌리엄스증후군인 열아홉의 헤이디는 케이크를 장식하고 디저트를 만들고 싶어 제빵사가 되겠다고 하며 기대에 부푼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최근에는 회복기 환자 요양원에서 활달하게 봉사하며 환자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기쁨을 준다. 그리고 그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고 하고 있으며 엄마도 그 일이 그 애에게 천직이라 동의한다. 전형적 윌리엄스증후군이던 아이가 주위의 기대와 노력속에 종알대고 노래하며 생기를 전파하는 아가씨가 된 모습이 흐뭇하다. 

세상에는 음악에서 희망을 찾게 되는 존재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모든 면에서 정상이지만 음악의 감성,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 올리버 색스는 음악을 접할 때만 생기를 보이는 이들을 존중했듯이, 음악에 무감각한 이들에게선 다른 면에서의 인간다움을 찾아내줄 것이다.
얼마전 자폐인인 템플 그랜딘의 자서전을 읽었다(매우 비음악적인 인물로 이 책에서도 잠깐 언급된다. 그녀는 시각적으로 생각한다). 그 자서전 말미에서 그녀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폐인이건 정상인이건 모든 아이들은 제각각 다르며 부모나 보호자가 할 일은 사랑을 주고, 그 아이만의 특별함을 찾아내어 주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든 소음처럼 느끼든, 절대음감 소유자이든 음치이든 인간은 모두가 특별하며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할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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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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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인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생명현상은 최종적으로는 물리학 혹은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 예언한다.
그 예언은 지난세기 말 이루어진듯 보인다. 생명의 본질을 파고 드는 유전공학은 급속히 성장하여 인체에 비해 몹시 작은 세포 안에 무엇이 들어있으며 어떤 작용을 하는지 하나하나 분석해낸다. 
세포내부를 조사하는 그 학문이 몇십년동안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그 실험실 내에선 실제로 어떤 장비로 어떤 실험이 어떻게 진행되어왔을까. 이 책은 그 최신과학사를 친절하게 보여준다. 

바이러스를 발견하게 되는 반복적 실험, 그리고 기술의 발달.
DAN를 구성하는 네 개의 염기 A(아데닌),G(구아닌),T(티민),C(시토신) 를 발견하고 짝을 이루고 있음을 알게되는 과정.
DNA의 나선구조가 밝혀지기까지의 과정과 연구자들 사이의 알력.
동위원소로 세포 내에 표지하여 관찰하는 방법.
한 부품(!)만 정제하고 채집하는 기술.
녹아웃 실험을 이용한 역할 규명 등 비과학계의 사람들은 잘 알수없는 실험내용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크게 보아 두가지로 이야기가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첫번째는 생물은 유전자의 활동으로 운영되는 다이내믹한 세포덩어리에 지나지않는다는 이론을 만들어가는 과정.
즉,  미시생물과학사.
미시라고 이름 붙인것은 에드워드 윌슨의 <자연주의자>란 책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책에서 윌슨은 분자생물학이 뜨면서 자신 같은 거시생물학자들이 한물 간 취급을 받는 듯한 분위기를 묘사하기도 했었다. 특히 왓슨과 관계가 좋지 않은 모양이었는데, 이 책에서 보니 그런 '왓슨 = 나쁜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 분자생물학자들 사이에도 있는듯해, 흥미로웠다.  
과연 윌슨은 그 책이나 이책에서 본대로 거만하고 로잘린 플랭클린을 무시했나? 궁금하기도 하고 논문의 주요문구로 몇번이나 등장하는 '이 대칭 구조가 바로 자기 복제 기구를 시사한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게 아니다'란 문장이 영 어색하단 생각에 서점에 들러 왓슨의 책 <이중나선>을 찾아보았다.
<이중나선>에선 '우리가 제창하는 이 특이한 염기쌍은 곧바로 유전물질을 만들어내는 복제 기구를 밝히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음을 우리는 잘 인식하고 있다'라고 되어있었다. 사실 이문장 찾느라 휙휙 넘겨봤을 뿐 왓슨이 쓴 내용을 상세히 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왓슨의 후기에 나온 플랭클린에 대한 언급은 후쿠오카의 지적과는 좀 달랐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그녀도 죽고, 서로간의 날카로운 갈등이 사라져서인지 플랭클린에 대해 자신이 오해하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여자라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니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론상의 대립을 보였던 것도 고집불통이어서가 아니라 실험데이터를 근거로 한 철저한 과학자적 태도였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물론 젊은 시절 DNA 구조를 밝히던 상황에선 서로가 싫어하긴 했던 모양이다.  왓슨은 당시 성실하게 매달려 귀납적 결과를 추구하는 타입이 아니었고 뭔가 한방을 찾는 젊은이였는데, 클릭이나 플랭클린은 묵묵히 한발한발 나가는 타입이라.... 서로 맞지도 않았고 후대의 성실한 과학자들도 왓슨을 좋지않게 보는 것이 아닐까.....뭐,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이부분은 아무래도 왓슨의 책, 플랭클린의 책, 클릭의 책 다 읽어보고 평가해야할 듯.
에구, 완전 삼천포로 샜네.ㅋㅋ 미시생물과학사에 관해선 직접 읽어보시라~ 

두번째는 생물은, 유전자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결정하고 있지는 않은, 신비로운 것이란 깨달음.  
즉, 지금까지 밝혀온 것이 다가 아니란 반전.
저자 후쿠오카 신이치가 특별히 주목하고 있던 것은 췌장 내의 한 단백질-GP2라 명명한-이었다.
이제 인간 세포 내부에 대해 개략적인 구조는 아는 셈이고, 이제 각각의 부품들의 기능을 밝혀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꾸준히 실험하고 등을 향해 매진한다. 필요한 부품만 정제해내고 실험 쥐에 빼내어보고 넣어보고....
그런데 결과는 예측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아니, 어떤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분명 부속품 하나가 없어졌는데 멀쩡하게 작동하는 생물을 보고 아연해하던 저자는 깨닫는다.
생명을 단순한 부속품의 총합이 아님을. 생명을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 없음을.

우리는 뭔가 중대한 착오를 했거나 뭔가 못 보고 지나친 것이 있었던 것이다. 중대한 착오란 단적으로 말하면 "생명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미천한 인식이다. 그리고 간과했던 것은 '시간'이라는 단어였다.
생명이란 텔레비전 같은 기계가 아니다. 그 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바로 커다란 착오인 것이다.(227page)


 그렇게 약간의 오류는 수정하고, 평상시에는 자연스럽게 생명을 유지시키는 기능을 동적평형기능에서 찾으며, 책의 서두에서 던진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 '생명이란 동적 평형상태에 있는 흐름이다'란 명제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내가 감히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생명에 대한 이 새로운 정의를 기존의 '자기복제 가능한 시스템'이란 정의와 함께(and 개념으로) 받아들여야하리라는 점이다.
생물이란 동적평형상태를 유지하는 자기복제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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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목소리를 보네
올리버 W 삭스 지음, 황지선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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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과 수화, 그리고 좌반구의 발달과 언어, 생각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통해 또 한번 올리버 색스는 내게 생각도 못해본 세상을 알려준다. 

말을 배운 후 청력을 잃은 경우- 데이빗 라이트의 경우는 입술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소리를 느낀다. 이미 알고 있던 목소리가 알고 있던 언어로 말을 한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들어본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은 단순히 어떤 소리가 들리고 안 들리고 문제가 아니라 언어라는 체계에 대한 개념이 없다. 눈으로 보아, 사물들의 존재를 알지만 보는 것만으론 추상적인 개념을 발달시킬 수 없으며, 언어의 구조가 저절로 완성되지도 않는다. 

말을 못하는 환자는 그가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다는 평이한 감각에서뿐만 아니라 충만감에 있어서도 말을 잃는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말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말을 한다. 말을 한다는 것은 생각의 일부이다. (본문 31쪽)

말을 못하면 생각도 못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아, 과연 그렇겠구나....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었는데....
그래서 오랜 세월 청각장애인들은 인간취급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귀족의 자녀인 경우는 종종 따로 개인교사를 두고 자신의 이름 등 몇마디를 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은 후 인간으로 인정받고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냥 저능아처럼 살다 가는 수밖에 없었다.
건청부모에게서 자란 청각장애아들은 모두가 이야기를 나눌 때 혼자만의 세계에 갖혀 지낸다. 그 세계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저절로 풍성해지는 곳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종 자폐아나 정신지체아로 오인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경우는 다르다. 부모와 손으로 대화를 나누며 의사소통을 하고 생각을 키워갈 수 있게 된다.

농아교육이 시작되고, 한동안 수화를 금지하고 입술을 읽고 소리를 내는 구화연습에 치중해야 한다는 이론이 지배적이기도 했다. 구화언어는 일대일로 오랜시간 공을 들여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선천적 청각장애의 경우 교육이 끝나면 또 급속하게 잊혀지며, 도대체 사고력의 진보를 보이는 정도까지 발전하지를 못한다. 애초에 소리언어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소리언어의 그림을 보고 이해하는 일은 너무 난감하다.
반면 그들에게 수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특한 구조를 갖춘 동작언어라고 한다. 마임이나 단순한 수신호 이상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나는 수화가 그냥 입으로 하는 언어를 손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식의 수화도 있긴 한데 - 티브이에 종종 등장하는 수화는 대개 소리언어를 손으로 바꾼 것 - 청각장애인들이 자신들끼리 소통하는 언어는 그것만의 체계를 갖춘 어느정도 자생적인 것이다. 수화의 동작을 보는 것은 우뇌가 담당하는 일이지만 그 수화를 익히면서 그 아이들은 좌뇌의 언어영역이 활성화되고 추상적 개념을 알게 된다. 그 연습은 말로 하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2세 이전에 시켜줘야 한다. 2세가 될때까지 감금된다든가, 야생에 버려졌다든가 하면 소리를 낼 수 있음에도 말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 토픽이나 책 등을 통해 알려져 왔는데, 수화도 마찬가지로 그 언어영역의 초기화가 끝나기 전에 접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수화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과학적 접근에 한참 충격을 받고 이해하고 나면 마지막 장에선 <듣지 못하는 이들의 혁명> 이야기를 보게 된다.
1988년, 꽤 괜찮은 학교이던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시위가 벌어진다. 이젠 청각장애인이 총장이 될거라 기대했는데 건청인이 선임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위에 대해 이사회에선 "듣지 못하는 이들은 듣는 세상에서 아직 제대로 역할을 다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라고 말했고, 이 말은 시위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된다. 그들은 '언젠가'나 '아마도'가 아니라 '지금 곧' 이루어지기를 원했다. 청각장애인들 자신이나, 가까이서 보던 이들이나 이전까지는 청각장애인들이 보호받는 자, 어린애같은 존재라 느껴왔다. 넌 들리는 세상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왔다. 그랬던 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얻어내게 되었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기를 바란다.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그들의 정당한 위치를 획득하기까지,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언어를 쓰는 것임을 모두에게 인정받기까지 계속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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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떠나는 여행 Tokyo (도쿄)
스토리나무 편집부 엮음 / 스토리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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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게, 가볍게를 모토로 만든 가이드북.
심지어 앞쪽에 나온 일본전도까지도 사각형이 몇 개 모여 이루어진 단순화시킨 간략도라, 이거 모양만 가이드북 아냐? 싶었으나, 다시 살펴보니 일본내 공항을 모두 표시하고 유명 도시 몇 곳을 추가로 표시해 준, 직관적으로 한 눈에 파악하게 만든 간략지도구나, 납득이 간다. (굵은 글씨는 이 책에 대한 출판사측의 설명이었다)

남들은 가이드 북 앞쪽에 나오는 일반정보를 읽는지 어쩌는지 모르겠는데, 난 가이드북마다 지겹게 이런 거 없어도 되잖아? 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또 나는 전부 읽는다. 꼼꼼하게. ^^v
입국심사에서 얼굴촬영얘기 쓰여있는 거 보곤 새로 나온 책임을 실감하고, 오미야게로 많이들 사오는 히요코의 유래 설명에 오호, 그렇구나 하고, 1일패스가 유용할 것 같은 설명은 흠, 쫌.... 아무리 따져봐도 도쿄내 1일 패스는 이득보기 힘들다. 예전엔 꼭 이득이 안되더라도 계산할 필요 없이 탈 수 있다는 잇점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던 듯 하지만, 이젠 파스모나 스이카가 다 커버해주니까, 뭐. 
편의점 화장실을 이용하라는 정보는, 다른 가이드북에선 본 적없는 이야기인데.... 거기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부디 점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용할 것. 일본 사람들은 친구집 가서도 "화장실 좀 써도 돼?"라고 묻는 이들이란 사실을 기억하라.  한국사람 많은 곳의 편의점 화장실 문앞에 한글로만 "직원에게 말하고 사용하세요"라고 쓰여있는 걸 본 적도 있다.

각 지역별 페이지로 들어가보면, 신주쿠나 하라주쿠 처럼 볼거리 많은 지역의 경우는 첫 페이지엔 전체지도를 중심에 두고 빙 둘러 볼만한 곳들이  유용한 설명과 더불어 나열되어 있다.  그러고 나서 다음 페이지엔 기타 추가 설명, 자세한 지도 등이 심화학습(?)을 시켜준다. 일단 한 눈에 파악되는 분위기 맞는데, 아무래도 본격 가이드 페이지의 활용도는 직접 가져가서 써봐야.... 다음 달에 여행가서 확인해볼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 그런데 나의 이번 여행 일정 중 에노시마랑 키치조지는 이 책에 없네? 아쉽....
그러면서 또 뒤적뒤적.... 또 들여다보니 또 욕심이 막 난다.
하코네도 가고 싶고, 슈젠지도 좋아보이고... 아, 그만 보고 덮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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