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목소리를 보네
올리버 W 삭스 지음, 황지선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청각장애인과 수화, 그리고 좌반구의 발달과 언어, 생각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통해 또 한번 올리버 색스는 내게 생각도 못해본 세상을 알려준다. 

말을 배운 후 청력을 잃은 경우- 데이빗 라이트의 경우는 입술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소리를 느낀다. 이미 알고 있던 목소리가 알고 있던 언어로 말을 한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들어본 일이 전혀 없는 사람은 단순히 어떤 소리가 들리고 안 들리고 문제가 아니라 언어라는 체계에 대한 개념이 없다. 눈으로 보아, 사물들의 존재를 알지만 보는 것만으론 추상적인 개념을 발달시킬 수 없으며, 언어의 구조가 저절로 완성되지도 않는다. 

말을 못하는 환자는 그가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다는 평이한 감각에서뿐만 아니라 충만감에 있어서도 말을 잃는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말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말을 한다. 말을 한다는 것은 생각의 일부이다. (본문 31쪽)

말을 못하면 생각도 못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아, 과연 그렇겠구나....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었는데....
그래서 오랜 세월 청각장애인들은 인간취급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귀족의 자녀인 경우는 종종 따로 개인교사를 두고 자신의 이름 등 몇마디를 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은 후 인간으로 인정받고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냥 저능아처럼 살다 가는 수밖에 없었다.
건청부모에게서 자란 청각장애아들은 모두가 이야기를 나눌 때 혼자만의 세계에 갖혀 지낸다. 그 세계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저절로 풍성해지는 곳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종 자폐아나 정신지체아로 오인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경우는 다르다. 부모와 손으로 대화를 나누며 의사소통을 하고 생각을 키워갈 수 있게 된다.

농아교육이 시작되고, 한동안 수화를 금지하고 입술을 읽고 소리를 내는 구화연습에 치중해야 한다는 이론이 지배적이기도 했다. 구화언어는 일대일로 오랜시간 공을 들여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선천적 청각장애의 경우 교육이 끝나면 또 급속하게 잊혀지며, 도대체 사고력의 진보를 보이는 정도까지 발전하지를 못한다. 애초에 소리언어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소리언어의 그림을 보고 이해하는 일은 너무 난감하다.
반면 그들에게 수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특한 구조를 갖춘 동작언어라고 한다. 마임이나 단순한 수신호 이상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나는 수화가 그냥 입으로 하는 언어를 손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식의 수화도 있긴 한데 - 티브이에 종종 등장하는 수화는 대개 소리언어를 손으로 바꾼 것 - 청각장애인들이 자신들끼리 소통하는 언어는 그것만의 체계를 갖춘 어느정도 자생적인 것이다. 수화의 동작을 보는 것은 우뇌가 담당하는 일이지만 그 수화를 익히면서 그 아이들은 좌뇌의 언어영역이 활성화되고 추상적 개념을 알게 된다. 그 연습은 말로 하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2세 이전에 시켜줘야 한다. 2세가 될때까지 감금된다든가, 야생에 버려졌다든가 하면 소리를 낼 수 있음에도 말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 토픽이나 책 등을 통해 알려져 왔는데, 수화도 마찬가지로 그 언어영역의 초기화가 끝나기 전에 접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수화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과학적 접근에 한참 충격을 받고 이해하고 나면 마지막 장에선 <듣지 못하는 이들의 혁명> 이야기를 보게 된다.
1988년, 꽤 괜찮은 학교이던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시위가 벌어진다. 이젠 청각장애인이 총장이 될거라 기대했는데 건청인이 선임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위에 대해 이사회에선 "듣지 못하는 이들은 듣는 세상에서 아직 제대로 역할을 다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라고 말했고, 이 말은 시위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된다. 그들은 '언젠가'나 '아마도'가 아니라 '지금 곧' 이루어지기를 원했다. 청각장애인들 자신이나, 가까이서 보던 이들이나 이전까지는 청각장애인들이 보호받는 자, 어린애같은 존재라 느껴왔다. 넌 들리는 세상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왔다. 그랬던 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얻어내게 되었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이것이 시작에 불과하기를 바란다.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그들의 정당한 위치를 획득하기까지,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언어를 쓰는 것임을 모두에게 인정받기까지 계속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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