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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뇌과학은 최근 몇십 년동안 급속도로 발전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반응을 하고, 행동을 할 때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될지에 대한 지도를그려놓고 있다. 예전엔 면밀한 관찰을 하고 추측을 해야했던 기괴한 행동들도 뇌스캔으로 간단하게 파악하고 어느 부위의 오류인지 설명할 수 있다.
올리버 색스 박사는 이러한 기술의 진보를 반기는 한편으로 지금까지 행해지던 '구식' 관찰의 중요성도 무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력한 것은 환자와 실험참가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경험한 것을 상상하며 그 경험 속으로 들어가보는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라고 강조한다.
나도 이 점이 바로 올리버 색스 저서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절망적인 환자에서라도 인간다움의 징후를 찾으려는 그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그의 문장들이 말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음악을 통해 그 희망을 찾아보고 있다.
1. 클라이브 웨어링은 저명한 음악가였다.1985년 그는 치명적 헤르페스 뇌염에 감염되어 기억력에 손상을 입는다. 보거나 느끼기는 하지만 그 기억을 1분도 지속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기억도 잊어 2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 기억만을 갖고있다. 그가 의식적으로 아는 것은 현재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한정된 지식만 끊임없이 떠벌려대며 순간을 살아가는 고통을 떠올리기를 회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기억이 없는' 그이지만 자신의 자식들은 알아보고 언제 이렇게 장성했는지 매번 놀라며, 아내는- 비록 어떻게 만났는 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심리적으로 기억하고 모든 것을 의존한다. 올리버 색스는 이 부분에서 기억에도 분명 여러 종류가 있으며 이런 정서적 기억이야말로 가장 심층적인 기억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모든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인간이 늘 그렇듯이 정서적 기억이 가장 우리에게 덜 밝혀진 기억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아직 갖고 있는 능력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주를 할 때면 병에 걸리기 전의 그처럼 자신있고 생기 넘치는 모습이 된다.
공간과 시간에서 뚝 떨어져 나온 그의 삶은 분명 정상적 의미의 삶이 아니다. 그렇지만, 자기 아내가 책을 냈다고 할때마다 뛸듯이 기뻐하는 현재, 음악을 연주하며 느끼는 현재, 그 현재의 연속이 의미 있다고 보는 것이 올리버 색스의 관점이고 클라이브 웨어링의 아내의 관점이다.
기억은 없지만 순간순간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인생에 대해 누가 기억이 없는 인생이 무의미하다느니 떠들어댈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순간순간이 쾌활하고 평안하며 사랑과 음악으로 충만한 것일진대.
2. 윌리엄스증후군에 대해서는 여기서 처음 접했다. 세상엔 정말 별별 증후군이 다 있구나. 이런 유쾌한 정신질환도 있었다니. 윌리엄스증후군은 자폐증과 정반대라 생각하면 된다. 다운증후군처럼 외모상의 특징으로도 드러나는데 그에 더해 음악사랑-그야말로 뮤지코필리아-으로 알아볼 수 있다. 지능은 현저하게 떨어지나 낯선 사람들에게 친밀하게 말을 걸고, 함께 모여 노래하고 연주하기를 즐긴다.'이들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기초적인 답을 뇌스캔 영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음악을 들을 때 일반인들은 뇌의 일부분만을 사용하지만 이들은 거의 모든 부분이 활성화된다. 그래서 음악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이 증후군 아이들 중에 절대음감 소유자가 많은 것도 뇌의 시각영역과 다른 부분이 발달하지 못하면서 청각을 발달시켰다고 지금까지의 뇌의학적 지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만하면 윌리엄스증후군에 대해 '설명완료'라고 마무리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또 올리버 색스 씨는 운명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기도 하나, 그게 다는 아니라고 덧붙인다. 표면적으로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처럼 경험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개성도 분명 존재한다고. 증후군의 '무엇'을 뚫고 '누군'가가 나타나리라 기대하며 아이들을 바라본다.
윌리엄스증후군인 열아홉의 헤이디는 케이크를 장식하고 디저트를 만들고 싶어 제빵사가 되겠다고 하며 기대에 부푼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최근에는 회복기 환자 요양원에서 활달하게 봉사하며 환자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기쁨을 준다. 그리고 그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고 하고 있으며 엄마도 그 일이 그 애에게 천직이라 동의한다. 전형적 윌리엄스증후군이던 아이가 주위의 기대와 노력속에 종알대고 노래하며 생기를 전파하는 아가씨가 된 모습이 흐뭇하다.
세상에는 음악에서 희망을 찾게 되는 존재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모든 면에서 정상이지만 음악의 감성,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 올리버 색스는 음악을 접할 때만 생기를 보이는 이들을 존중했듯이, 음악에 무감각한 이들에게선 다른 면에서의 인간다움을 찾아내줄 것이다.
얼마전 자폐인인 템플 그랜딘의 자서전을 읽었다(매우 비음악적인 인물로 이 책에서도 잠깐 언급된다. 그녀는 시각적으로 생각한다). 그 자서전 말미에서 그녀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폐인이건 정상인이건 모든 아이들은 제각각 다르며 부모나 보호자가 할 일은 사랑을 주고, 그 아이만의 특별함을 찾아내어 주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든 소음처럼 느끼든, 절대음감 소유자이든 음치이든 인간은 모두가 특별하며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할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