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덮인 세계를 본 적 있는가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8
공희경 지음 / 허블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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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9 우리는 때로 지켜야 할 것이 많아 살아남는 것보다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잊어버리고 마는데, 결국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같은 길을 가고 마니…….

 

이 거대한 서사의 첫 페이지에서는 그 어떤 특별한 인간도 아닌 상어 바나가 등장한다. 500살이 거의 다 된 바나는 기묘하게 달라진 지구의 자기장을 느낀다. 곧이어 사람을 증발시키는 비가 내리고, 인간은 그 비를 이라고 부르게 된다. 여기까지는 무난하게 흥미로운 아포칼립스 SF처럼 시작된 소설은 챕터를 구르고 구르며 점점 방대해져서, 정신을 차려 보면 상어 바나에게서 출발한 독자는 어느새 신인류 루시의 이야기에까지 다다른다. 이야기의 배경은 더 먼 미래가 되었는데도 루시와 사가르가 다른 계층으로 나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몇백 년간 피로 성장해 온 인권이란 얼마나 부질없는지, 하고 조금 허탈해지기도 한다.

 

짧고 간결한 문장에 더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문체가 조금 낯설지도 모르지만, 몸으로 덮인 세계를 본 적 있는가에는 어딘가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길게 늘어진 문장들은 조금은 고전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조금 가깝게 보자면 드래곤 라자가 유행하던 시절의 문장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더 멀리 거슬러가면 단어 수로 원고료가 책정되던 시대의 만연체가 주는 고유한 느낌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도 신기할 정도로 세련되었다. 숏폼처럼 치고 빠지는 단편들에 지친 독자들에게는 단비 같은(이 소설의 서평에서 비 같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존재가 되어주리라는 확신이 든다. 몸으로 덮인 세계를 본 적 있는가의 거대한 세계관은 독자 앞에 뚝 떨어져 전시되지 않는다. 대신 쉼없이 독자를 그 세계 속으로 빨아들인다.

 

p.214 서서히 번지는 소녀의 핏자국처럼 젖어드는 눈송이처럼 점점 불어나는 눈발처럼 시린 기억이 하나둘 쌓여갔다. 시린 기억들로 가슴이 아팠다. 그저 예쁨받는 게 세상 가장 큰 기쁨이었던 나는, 그날 이후 완전히 다른 눈을 갖게 되었다.

 

계층, , 신과 재난, 절망과 사랑…… 독자는 글 안에 떨어뜨려 놓고서 글 바깥에서 인간을 관망하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 몸으로 덮인 세계를 본 적 있는가는 미래의 이야기인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인 글이다. 재난은 멀리 있지 않다. 차별도 계층도 착취도 모두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고랑지의 죽음이 단지 픽션일 뿐 현실에는 정말로 없다고 확언할 수 있는가? 고랑지가 버스를 타지 못하는 사건은 과연 소설 속 가상의 것인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라면 이 책은 그쯤에서 덮는 게 좋을 것이다. 그것들을 픽션이고 나와 동떨어진 것으로 치부해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수 세기를 가로지르는 인류 단위의 사건들에 정신없이 휩싸이는 동시에 카와 아난의 사랑이 굳건히 남는다. 어떤 재난에서도 사랑은 그렇다.

 

장면들은 강렬한데 문장들은 시처럼 유려하다. 세대를 건너 마지막 대이동까지 다다른 독자는 숨을 참고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생각해보면 라는 것은 언제나 신의 영역으로 여겨지지 않았는가. 노아의 방주만을 세상에 남기고 모든 것을 휩쓴 창세기의 대홍수를 포함해 많은 신화에서 홍수가 신의 벌로 등장한다. 비가 멈추지 않거나 강이 범람해 땅 위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죄 없는 새로운 생물들만 살아가게 하는 일종의 종말과 탄생의 순환, 마지막 장은 독자에게 그런 이미지를 남긴다. 3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인데도 지루하다고 여겨지는 구간이 없었다. 오히려 더 길게, 몇 부로 나뉘어지는 초장편이어도 좋겠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찬바람이 부는 연말, 깊게 몇 번이나 읽기에 손색없는 근사한 SF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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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양장) - 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 Memory of Sentences Series 4
다자이 오사무 원작, 박예진 편역 / 리텍콘텐츠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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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 그러나 상실과 몰락이 반드시 종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즈코가 그랬던 것처럼 영감을 통해 자기 삶의 진정한 방향을 찾고, 고통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면 어떨까요. 중요한 것은 절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까요.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을 좋아한다. 특히 사양사랑이라고 썼더니 더는 쓸 수 없어졌다.” 라는 문장을 굉장히 좋아해 오직 이 문장 때문에 사양을 여러 번 읽었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여러모로 감탄이 나온다. 때로는 인간 내면을 꿰뚫어 보는듯한 통찰이 심금을 울리다가, 때로는 다소 역겹고 추악한 인간성까지도 적나라하게 마주해버려 심란하게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인 인간실격은 어느 독자에게는 인생책으로 손꼽히지만 또 어떤 독자들은 불쾌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의 책에 불호평을 남기는 독자들도 한 가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다. 다자이 오사무는 문장을 잘 쓴다. 독자가 인간실격에 공감하든 그렇지 못하든, 요조를 어떻게 평가하든 간에 다자이 오사무가 문장을 잘 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다가 소름이 돋고 불쾌해질 때 우리는, 외면하고 있던 인간 내면을 너무 고스란히 마주한 나머지 불쾌해지는 게 아닌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은 그런 그의 작품들에 수록된 문장을 담은 책이다. 네 개의 파트로 나뉘어진 책은 각 파트 내에서 다시 세 개의 장으로 나뉜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품인 인간 실격』 『사양』 『달려라 메로스부터 국내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진 사랑과 미에 대하여』 『여학생』 『늙은 하이델베르크등의 단편들까지도 다루고 있어 다자이 오사무 팬들에게는 크게 환영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읽지 않은 작품에 대해서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지만 작품을 읽기 전에 전반적인 시놉시스를 접하는 일을 크게 개의치 않는 독자라면, 오히려 그의 작품세계를 더 깊게 이해하고 입문할 수 있는 일종의 길잡이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p.52 우리는 누구나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조차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내면의 영역을 품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내면의 고독은 피할 수 없겠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마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성장합니다

 

책은 단순히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을 나열하거나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어떠했는지,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도 간략하게 설명한다. 또한 그러한 인간 내면의 고찰과 작품 내에 드러나는 가치관, 정서가 현대에는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제시함으로써 그의 애독자들이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마음에 오랫동안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고 있다.

 

평소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한 독자들에게, 또는 입문하고 싶은데 시대적 배경이나 주변의 불호평이 마음에 걸려 한번쯤 그의 작품세계를 훑어보고 싶었던 예비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쌀쌀한 겨울의 독서 시간, 요절한 천재가 써낸 고독을 고스란히 필사해보고 싶을 때 꼭 펴보게 될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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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베무스 파팜 - 새 시대의 교황, 레오 14세
크리스토프 에닝 지음, 김상우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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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7 상냥한 지성인처럼 보이는 레오 14세 교황에게서는 확고함과 온유함이 함께 깃든 열정과 헌신이 느껴진다. 폭풍우 한가운데를 헤치고 걸어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몇 달이 지났지만, 시스티나 굴뚝에서 흰 연기가 나오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를 포함한 모든 신자들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유난히 일이 많은 것만 같은 2025년의 끝에서 하베무스 파팜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주님의 곁으로 떠나보내고 새 교황님을 맞이한 신자들에게 앞으로 가톨릭 교회가 나아갈 길은 무엇인지, 우리가 맞이한 새 교황 레오 14세는 어떤 분인지 자세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미디어로만 보아 왔던 콘클라베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꽤 흥미롭게 읽었다. 한국의 언론매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주요 교황 후보들에 대한 내용이 4여전히 중요한 일곱 추기경에 상세히 쓰여 있어서, 앞으로 레오 14세를 도와 교황청을 이끌어 갈 주역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6역사가 가르쳐 준 교훈에서는 역대 교황들이 콘클라베에서 몇 표를 받았는지, 당시의 콘클라베는 어떤 분위기였는지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비교적 고령이었던 역사 속의 교황들에 비해 이번의 젊은 교황님이 기대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p.21 잘 준비된 연설문은 복음서에 근거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특히 평화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했는데, 이는 수도자이자 선교사인 새 교황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였다.

 

매 장을 넘어가는 사이에 레오 14세의 강론이나 인터뷰가 짤막하게 실려 있는 점도 특히 좋았다. 강론을 읽으며 새 교황님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교회가 해결해 나가야 할 기후 위기, 성소수자 배려, 이민자 문제 등의 이슈들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새 교황님께서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실지, 또 나는 그런 주제들에 대해 가톨릭 신자이자 진보주의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깊게 고심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레오 14세가 강조하는 평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기다. 수시로 발생하는 혐오 범죄와 팔-이 전쟁, -우 전쟁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주님께서 이 땅에 평화를 보내주시기를 간절히 바랐다. 가톨릭이라는 종교 자체가 갖는 보수성과 교황이라는 자리의 무게로 발생하는 한계가 분명히 있겠지만, 그래도 새 교황님께서 현명한 발걸음을 보여주시리라 굳게 믿는다. 최초의 미국인 교황이라는 파격적인 타이틀에 걸맞게 새로운 교회의 모습으로 힘차게 나아가시기를 기도드린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하시길. 아멘.

 

 

*캐스리더스 활동으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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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읽기 - 날씨와 기후 변화,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공기에 숨겨진 과학
사이먼 클라크 지음, 이주원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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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0 다만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이 암울한 미래는 우리에게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대기와 지구 자체는, 그 표면에 달라붙어 살아가는 생명체와는 별개로, 살아남을 것입니다. 현재 인류는 자신이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스스로 톱질하고 있습니다.


기후와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거주 지역의 기후는 인간의 의식주에 큰 영향을 끼친다. 홍수가 잦은 곳에서 집터를 높게 하거나 더운 지역에서 음식을 오래 보관하는 기술이 발달하는 것이 그 예시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후는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우리가 막연히 하늘, 날씨, 기후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제각기 어떤 자연 현상이고 과학 원리인 것일까? 하늘 읽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대기물리학자 사이먼 클라크의 하늘 읽기9개의 장에 걸쳐 기후와 날씨, 하늘과 대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기 전 그저 날씨라는 관념으로만 머릿속에 존재하던 일들이 이 책을 통해 과학적이고 개별적인, 경이로운 자연 현상으로 재탄생한다.

 

이 책의 제목이 왜 하늘 알기나 하늘 배우기가 아니라 읽기인지 궁금했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 기후를 연구하는 것도 일종의 현상을 읽어내는행위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책을 읽기 위해서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처럼 하늘을 읽기 위해서도 관련된 화학, 역사, 물리 등의 지식이 필요했다. 또한 현상을 있는 그대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원리로 발생하는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연구하고 읽어낼 필요도 있었다. 과학 교과서에서 간단하게 배우고 잊어버렸던 엘니뇨와 라니냐 등의 기후 현상을 읽다 보면 독자도 어쩐지 기후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p.242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분명히 전달되기를 바라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과학이 결코 한 개인의 산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중략) 그러한 성취는 언제나 특정한 환경적 조건이 뒷받침될 때에만 가능해집니다.


하늘 읽기의 가장 큰 장점은 책이 상당히 상냥하고 친절하게 쓰여 있다는 점이다. 과학이라고는 고등학교 시절 문과반에서 필수 수업으로 들은 게 전부여서 책을 읽기 전에 조금 걱정했는데, 워낙 설명이 자세해서 조금만 집중해서 읽으면 이해할 수 있었다(슬프게도 원시 방정식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땅에 발을 붙이고서 위성으로 연구하는 날씨를 역사 속 누군가는 열기구를 타고 질식할 위기에 놓여 가며 연구했다고 생각하면 놀라워져 가슴이 두근거렸다. 콕스웰과 글레이셔, 페렐, 헬리 등 지금처럼 인간이 날씨를 예측하고 기후 재난에 대비하는 시스템을 만들기까지 하늘에 도전하고 대기를 연구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또 앞으로도 그런 도전과 연구가 거듭되어 지금은 모르는 부분까지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기후 위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 속에서 대기는 거인으로 비유되는데, 저자는 이 거인이 지금은 발밑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느껴 몸부림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이상기후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대기는 괜찮다. 대기는 그냥 그 상태로 그곳에 계속 존재하고, 오직 인간만이 그 영향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곽재식 작가의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가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2100년의 황폐해진 지구를 상상하면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사회 전체가 자연 환경의 가치를 인식한다면 우리의 2100년에는 더 나은 지구가 있을 것이다. 책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대기는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기가 필요합니다.’ 독자들이 단지 이 책을 재미있는 과학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에게 필요한 대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더 이상 개발과 발전을 핑계로 자신이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톱질하는 일을 그만두기를.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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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봄을 건너는 법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정은주 지음, 김푸른 그림 / 우리학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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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9 사실, 장애인 별거 아닙니다. 장애라는 그 껍질 한 꺼풀 딱 걷어 내고 보면 다 똑같은 사람이거든요. 우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그 장애라는 걸 빼고 보면, 멋진 아이들이 정말 많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만의 사회가 있다. 사실 어른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그 사회가 별로 대단하지는 않다. 우정이 몇 년이 지나도록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고 아주 사소한 이유로 끊어지거나 다시 이어지기도 한다. 친구 문제로 애를 먹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자주 고작 그런 걸로 왜 그래?” “걔랑 놀지 말고 다른 애랑 놀아” “사이좋게 다 같이 놀아야지하고 말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나잇대 그 아이에게는 학급 내의 무리가 곧 정체성이고 자신을 지지해주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봄을 건너는 법의 주인공인 선아는 이런 무리때문에 애를 먹는다. 끼고 싶은 투현 그룹에 속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른 여학생 무리에도 속하지 못하고, 가뜩이나 힘들어하는 가운데 전학 온 소꿉친구 산에 때문에 학교생활이 자꾸만 꼬이게 된다.

 

처음 이 책의 서평단 모집 안내를 받았을 때 내가 대중적 시선으로 이 책을 잘 읽을 수 있을까, 싶은 고민이 있었다. 지금 현직에 종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언어치료와 청각학을 전공했고, 자격증이 있는 발달재활 서비스 제공자이다(출판사에서는 아마도 모르고 책을 제공하셨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장애를 다루는 책을 보면 어쩐지 날이 선 채로, 조금은 눈을 홉뜨고 읽게 된다. 장애를 극복하자거나 장애우따뜻하게’ ‘도와주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장애 이해라고 떠드는 책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봄을 건너는 법에서 햇살이와 산에의 장애는 극복이나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어떤 학생은 축구를 좋아하고 어떤 학생은 공부를 잘하듯이, 둘의 장애도 그냥 그 인물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p.101 내 마음은 자꾸 가해자와 피해자를 헷갈려했다. 왜 이다지도 현실은 뉴스에서 보는 거랑, 사람들이 떠드는 거랑 다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장애가 있지만 장애진단을 받지 않은 햇살이의 존재가 특히 마음 깊이 다가왔다. 임상에서는 실제로 양육자가 아동이 장애진단을 받는 것을 거부해 치료 시기가 늦어진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햇살이의 엄마는 마치 나쁜 사람처럼 느껴지지만, 햇살이 엄마가 그런 오해를 해버린 게 아주 이해가 안 되지도 않는다. 산에의 엄마가 산에가 학폭 피해자가 될까 걱정을 해 본 적이 있듯이, 햇살이의 엄마도 늘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 책에는 다양한 가정이 등장한다. 주인공 선아의 집은 이혼 가정이다. 산에 엄마는 장애아동을 키우고 있고, 민준이는 바쁜 아버지 대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와 살고 있다. 햇살이 엄마는 할머니와 햇살이 아빠 때문에 장애진단을 받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마음을 나누기도 하며 각자의 방법대로 성장해간다. 물론 아이들이기 때문에 때로는 서툴다. 남의 말에 휩쓸리기도 하고 별 것 아닌 듯한 일에 전전긍긍 슬퍼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치며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우리들의 봄을 건너 다른 계절까지 나아간 아이들은 분명 그 전보다 더 나은, 더 자란 모습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도 특수학교를 세우기 위해 부모들이 무릎을 꿇어야 하는 현실이다. 우리가 봄을 건너는 법에서 아이들이 보여준 우정의 모습이 현실에서도 벚꽃처럼 번지게 되기를 기대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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