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에게
김멜라 외 지음 / 곳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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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8 안다고 다 드러내면 못 써. 쓸 줄 안다고 아무 데나 휘두르면 그 칼에 자기도 찔리는 거야. 제일 깊이 찔리지. 너는 이 동굴이 밉겠지만, 먹이가 되는 건 슬픈 게 아니야. 약한 것도 아니지. 먹지도 않을 거면서 죽이는 게 슬픈 거야. 인간은 그러기도 하니까.


문학은 언제나 사라지는 것의 편에 서 있다. 부수고 파괴하는 편에 서서 쓰는 것은 문학이 아니라 선전이 된다. 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사라지는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섯 작가의 목소리를 담는다. 글자조차 없던 시대에서 시작되어 익숙한 현대를 지나 커피 한 잔의 일상마저도 과거의 산물이 된 시대까지 도달하는 모든 목소리들은 저마다 다른 모양새로 적혀 있다. 죽어가는 것을 조명하기도,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것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 목소리가 글로 남아 언젠가 애리와 재윤의 시대의 누군가에게까지 닿으리라 생각하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한 사람에게라는 제목값을 톡톡히 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사실 특정 주제를 갖고 쓰고자 하는 글은 그 주제부가 너무 강해서 종종 읽는 도중 버벅거리게 되곤 하는데, 한 사람에게에 실린 글들은 만약 배경 정보 없이 우연히 책을 구매해 읽었더라면 그린피스 협업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주제부를 환기하는 목소리들 - 축제의 오염된 강과 둑으로 막힌 물길들, 기후 위기로 커피 재배가 어려워져 커피 대용 음료를 마시게 된 근미래를 그린 까마귀에게은 고스란히 담겨 있어 그들의 목소리의 독자의 연대도 기꺼이 보태고자 하는 의욕이 피어난다. 작품이 다다를 곳을 미리 정해두지 않고 협업이 갖는 의미에 작가들이 짓눌리지 않도록 이끄는 것을 중요시했다는 편집자(김대성 대표)의 관록이 상당히 돋보이는 부분이다.

 

p.105 아니, 그것은 더 강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강은 아득했고 호수처럼 넓었다. 주검처럼 직선이었다. 바람 한 점 없다. 새소리 하나 없다. 벌레조차도 울지 않았다. 강은 물고기에게는 너무 깊었고 새가 머물며 쉬기에는 모래톱 한 뼘 없었다. 강은 주검에게 삼켜져 있었다.


한 사람에게는 직접적인 행동을 촉구하거나 독자의 환경파괴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단지 담담하게, 고요하게, 그곳에서 사라지고 있는(또는 이미 사라졌거나 앞으로 사라질)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편지처럼 독자에게 내보인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죽음과 애도와 다음 세대로의 순환에 대해, 인간이 파괴하고 입맛대로 재단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 정착했음에도 거쳐가는 이로만 여겨지는 이주 노동자와 난민에 대해, 커피와 엽서가 과거의 산물이 되어버린 세상에 대해, 발전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는 지역들에 대해 사유하고 또 고뇌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재촉이나 지적이 없어도 한 사람에게는 그 자체로 충분한 연대이자 고발이 아닐까.

 

단순한 빙산이라고 생각했던 표지의 그림이 접은 쪽지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걸 뒷날개를 보고서야 알았다. 줄레자크 느낌의 질감이 살아있는 표지를 오래 매만지다 보면 그 다섯 개의 쪽지가 빙산처럼 물 위를 흘러흘러 독자들에게까지 다다른 기분이 든다. 미디어에서 흔히 보여주는 유리병 속 구조 요청처럼. 지구에게, 기후에, 기후를 돌보는 단체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모두가 한번쯤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아도 좋을 듯싶다.

 

 

* 그린피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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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신비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 지음, 조규홍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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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0 이웃 사랑의 계명은 성자께서 친히 보여 주신 것처럼, 이제 영원한 생명을 함께 누리는 영광을 위한 것임이 자명해졌다. 그로부터 인간은 저 영원한 나라에 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종교는 사람의 삶에서 많은 부분에 관여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태어나고 죽는 일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가톨릭뿐만이 아니라 어느 신앙에서도 삶과 죽음은 신의 영역으로 간주되고 저마다 다른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사후에 벌을 받게 될까 두려워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사랑한 신의 곁에서 영생을 얻으리라 기대한다. 이렇듯 종교적으로 말하는 죽음은 단지 인간의 몸이 생체기능을 잃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육체에 갇힌 삶을 마무리하고 그 너머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일을 의미한다. 함께 사도 신경을 떠올려보자. 전례 중 신앙 고백의 말미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그러나 이 기도를 매번 외우면서도 과연 죽음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죽음과 심판을 두려워해야 할지 영생과 부활을 기대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저자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가 죽음의 신비를 통해 세상에 내놓았다.

 

사실 죽음의 신비를 대강 몇 부분 펴서 읽었을 때, 다양한 대목의 성경 인용과 신앙에 대한 깊은 사유에 감탄하며 이 책의 저자가 오랫동안 신학에 몰두한 성직자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저자 슈파이어가 의사였으며 심지어는 지병으로 인해 대부분의 집필을 구술로 진행했다는 것을 알고는 굉장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책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처벌로만 보는 대신, 하느님을 상대로 자신이 둘러친 단단한 껍질을 깨부수어야하는 순간으로 보는 시선을 제시한다. 인간은 누구나 원죄를 가진다. 그러나 죽음을 처벌이나 심판으로만 생각해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볼 수가 없고,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분을 감히 두려워하고 피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을 죄인으로서의 삶을 끝내고 주님의 자애 속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받는 구원의 시작으로 본다면,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삶을 주님께 맡길 수 있을 것이다.

 

p.155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아버지에 의해 창조되었고, 저마다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소명을 받았다. 더 나아가 사람은 다른 모든 이를 위한 연대책임도 져야 하는데, 그 때문에 당연히 인격적인 책임이란 것도 존재한다.

 

책은 매 장마다 주제가 나뉘어져 있어 성경에서의 죽음은 어떠했는지, 또 성인들의 죽음은 어떠했으며 죽음 앞에서 병자성사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저자의 고찰을 나눈다. 죽음이라는 내용 자체가 무겁기도 하고 저자의 신학적 고견이 많이 담겨 있어 약간은 교리와 신앙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느낌이 있지만, 동시에 신앙심이 깊고 대중적인 교리 공부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온 교우들에게는 무엇보다 좋은 성찰이자 사유의 폭을 넓혀 주는 일종의 발제문이 되어 주리라는 생각도 든다. 봄꽃이 피고 새잎이 나는 계절, 사순 시기가 끝나고 모든 성당에서 부활을 축하하는 소리가 드높이 울려퍼졌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동시에 우리는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믿는 사람이 되기 위해(요한 3:15)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한번쯤 깊이 생각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 가톨릭출판사의 캐스리더스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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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카 새소설 23
강지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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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4 기승전결은 이미 음악 안에 있기 때문에 리듬을 타오르게 할 수 있는 기폭제를 찾아야 했다. 절정을 지나 몸과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혔다. 호흡과 스텝 안에 마무리를 위한 실마리가 있었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탭댄서예요.” 소설의 도입에서 지나치게 되는 이 짧은 대화부터가 지금껏 읽어온 책들과 인디카는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도 어디 가서 취미로 독서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는 책을 읽는 편인데,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주인공이 탭댄서인 작품이 있었는지 생각해내려 애를 써 봐도 딱히 떠오르지가 않았다(굳이 고르라면 영화 스윙키즈정도일까?). 탭댄서라는 다소 낯선 직업을 가진 주인공 태일의 일상은 의외로 엄청나게 화려하거나 특별하지는 않다. 때로는 춤을 추고, 수시로 일을 하고, 돈이 생기면 위드를 피우고…… 오히려 지나치게 자유롭고 유유자적한 분위기에 가까워, 쉴 새 없이 사건이 몰아치는 기믹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단조롭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꾸 두근거리며 마음이 동한다.

 

태일은 여러 도시를 오가며 여러 사람을 만난다. 이곳에 정착하는 건가, 싶으면 또 호스텔을 옮기고 이 사람이랑 깊어지는 건가, 예상하면 어느새 그는 떠나가고 없다. 폭발적인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으면서도 태일의 발자취는 계속해서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러면 독자는 또 태일이 옮겨간 곳으로 허겁지겁 그를 따라가야 한다. 그런 주인공의 모습은 때로는 외로워 보이고 때로는 자유로워 보인다. 비선형적인 리듬과 어디로 갈지 모르는 방향성 속에서도 태일은 리듬의 완급을 조절할지언정 리듬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인디카는 이야기 전반에 걸쳐 결국 태일의 어떤 리듬도 틀리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빠른 리듬도, 느리거나 꼬인 리듬도, 모두 각자의 삶의 궤적일 뿐이다.

p.110 딱히 브롱크스가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중략) 누군가에게 이런 곳도 가봤다며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었지만 동시에 그 모든 것이었다. 또 그 모든 것이어야만 했다. 어떤 숨 막힘이나 불편함을 안은 채 그 지역을 계속 걸었다.

 

이 책을 읽는 내가 이렇다 할 일탈 없이 틀에 박힌 듯 살아와서일까, 작중의 태일은 늘 덤덤하고 서술도 평온하고 고요한데 읽어나가는 나만 사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 자꾸 불안해지곤 했다. 아니, 불법체류를 고민하면 어떡해! 지금 경찰에게서 전화 오잖아, 통장대여가 얼마나 큰일인데?! 그렇게 황당하게 마음을 졸이며 페이지를 넘겨도 태일은 조급해하거나 허둥지둥 돌아가는 대신 어딘가의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독자들도 그의 리듬을 따라, 나무판을 두드리는 탭 슈즈의 금속음이 어디에선가 내 맥박에 맞춰 들려오는 기분으로 마음을 조금 내려놓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태일은 댄서이기 때문에, 그가 길을 헤매느라 빙빙 돌며 발을 붙여댄 자리까지도 결국은 리듬이 되고 탭댄스가 될 테니까.

 

박자를 따라 걷고, 여행하고, 마음껏 헤매는 것. 젊은 예술가만이 살 수 있는 삶이라고 느껴져 동경과 걱정이 동시에 차오른다. 괜히 선 자리에서 출 줄도 모르는 탭 댄스를 추듯 발을 굴러보게 되는 책이다. 내 삶의 리듬을 찾고 싶은 마음으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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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위스키봉봉
고민실 지음 / 비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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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4 재미있게 읽던 소설을 불편한 표현 때문에 포기한 경험이 동규 씨에게는 없겠지. 흐린 눈을 하고 보다가 죄책감을 느낀 적도 없겠지. 소설 속 주인공들이 모두 자신과 다른 성별이라는 데에서 오는 괴리감 역시 알지 못하겠지.

 

젊은 작가들의 책을 읽을 때 으레 기대하게 되는 신선함이 있다. 그 시대의 청년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소재, 말투, 스토리라인 같은 것들. 기성 작가들의 글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시기가 지나면 그런 것들을 아무리 베껴 쓰려 해도 '오케이, 휘비고' 밈의 수준이 되어버리는 것이 슬픈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챗 위스키 봉봉은 완벽하게 신선하고 트렌디했다. AI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인물들은 검색엔진 대신 '챗 지피티'를 사용하는 게 더 익숙해진 젊은 독자들의 마음에 더 가깝게 성큼 다가오며, BL 동인지 같은 특이하고 낯선 소재는 제목과 키워드만으로도 그 소재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는 여성 독자들의 호기심이 동하게 만든다. 책에는 표제작 챗 위스키 봉봉을 포함해 7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고민실이 쓰는 이야기 속 인물들은 굉장히 평범하고 일상적이기 때문에 책을 넘기는 내내 마치 함께 현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몰래 엿보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특히 시선을 끈 단편은 두 번째 단편 아빠는 비엘을 읽지 않는다.였다. 혹시 내가 잘못 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참신한 제목을 몇 번이고 다시 읽다가 도저히 내용이 짐작조차 되지 않는 상태로 본문을 펼쳤으나 의외로 흡입력은 물론이고 이혼 가정 속 단절된 부녀 관계를 묘사하는 리얼리티가 근사해 지금이 2026년이 아니라 2226년 정도였으면 이게 표제작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2026년의 서점에 꽂히기에는 다소 파격적인 제목이기는 하다). 이 단편에서는 아버지의 수술로 인해 함께 살게 되어 물리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가까워졌으나 여전히 마음은 단절된 채 멀리 있었던 부녀의 관계가 웹 소설 계정 공유라는 사건으로 인해 점차 회복되는 모습이 보여지는데, 끊어진 관계가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다시 복구될 수 있다는 메시지와 동시에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상대를 향한 의견의 피력과 조율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도 함께 보여준다. 결혼 전까지(또는 결혼 후에도) 부모님과 사는 게 당연했던 기성세대에 비해 요즘 세대, 소위 말하는 '엠지세대'들은 대학이나 취업 등을 이유로 일찍 독립하는 일이 많아졌다. 가족 내의 정체성보다 또래 친구들 속 청년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해지며 부모와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져 감정적으로 단절되어 있다고 느끼는 청년 세대에게 생각의 환기점이 되어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p.121 나는 기어이 어머니의 안락사에 동의하는 사인을 했다. (중략) 무슨 소용인가 싶으면서도 안락사와 자살과 살인의 차이를 계속 고민했다. 어차피 어머니는 되살아날 수 없는데. 자칫했으면 아버지처럼 고통스럽게 연명했을지도 모르는데.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비해 글이 전체적으로 담담하지만 그 안에 담긴 소재들은 사실 결코 평온하지만은 않다. 치매와 안락사, 자료 서치뿐만이 아니라 감정까지도 AI에게 맡기게 된 사람들, 단절된 가족 관계, 가정폭력 등은 조금 낯설고 불편하면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번쯤은 꼭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를 제시한다. 마치 겉은 달고 속은 씁쓸한 위스키 봉봉처럼. 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대사회가 고스란히 담긴 글이다. 작가의 차기작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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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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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1 결국 예술가는 정치에 참여할 수밖에 없고, 국제 예술가 협회 같은 단체를 스스로 조직해야 한다. 예술가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두 가지 가치가 벼랑 끝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예술가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창조하는 예술이 살아남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를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댈러웨이 부인이나 자기만의 방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를 읽은 독자들은 아마도 이 책이 오히려 그에 대한 입문서로 더 적절하다고 느낄 것이다. 여기에 엮인 에세이들은 대체로 볼륨이 작고 간략하지만 울프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상당히 명확하고 또렷하다. 날카로운 통찰과 사유가 촘촘히 조직되어 있는 글 사이에서 종종 울프 특유의 신랄한 유머가 돋보이기도 한다. 마치 트렌드에 따라 그의 책을 펼쳐보았다가 의식의 흐름 기법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서, 페미니즘의 시대적 배경을 읽기 어려워서 울프를 멀리하게 되어버린 독자들을 위해 세상에 나온 책처럼 느껴진다.

 

책의 포문을 여는 에세이 제인 오스틴, 모두가 두려워하는 부지깽이의 제목을 처음 마주하면 독자는 그 수식어가 다소 특이하다고 느끼게 된다. 부지깽이라고 하면 볼품없고 깡마른 사람이 생각나는데 어째서 모두가 두려워한다는 것일까? 의문은 쏜살같이 달리는 문장을 따라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금세 해소된다. 이 글에서 울프는 어느 익명의 목소리를 실어 두었는데 그는 제인 오스틴에 대해 이제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부지깽이예요.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 글로 인물 묘사를 날카롭게 하니까 어찌 두렵지 않겠어요?” 라고 묘사한다. 이 문장을 본 후 에세이의 제목과 이 책의 제목을 다시 읽으면 어쩐지 웃음이 나오면서도 많은 생각이 든다. 역자 서문이나 책 소개 어딘가에 적혀 있었던 것을 내가 놓쳤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이 책의 제목이 올비의 희곡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를 차용한 일종의 패러디라고 생각했다. 사실상 이 희곡과 버지니아 울프는 거의 무관하지만 누가 환상 아닌 삶을 두려워하는가?-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를 말하는 희곡의 제목에 제인 오스틴을 빗대어 보면 역자의 서문에서 이 제목을 통해 오스틴에 대한 울프의 시선을 강조하고 싶었다는 대목도 충분히 공감을 이끌어낸다. 오스틴은 어느 환상 속 낭만적인 고전 작가가 아니라 차별의 시대에 살아 숨쉬었던 현실의 여성이었으며, 우리는 그를 넘을 수 없는 고전으로 눈감아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레퍼런스이자 여성 문학의 역사로 똑바로 마주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p.71 작가란 책상 앞에 앉아 특정 대상에 시선을 단단히 고정한 채 그 본질이 보일 때까지 파고드는 사람이다. 이 비유를 잠시 생각해 보면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제인 오스틴에 대한 비평보다도 추락하는 자에게는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예술가는 정치와 무관하다는 이들에게가 굉장히 인상깊었다. 특히 울프의 아버지가 유명 작가였으며 울프 본인도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그리스어 등을 공부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추락하는 자에게는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에서 보여주는 계급에 대한 통찰과 평등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상당히 놀랍게 다가온다. 동시에 그가 말하는 대로 계급도 탑도 전쟁도 없는(현재로서는 전쟁이 없다고 말하기 애매해졌지만) 당대에서 과연 작가는 얼마나 더 다채로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는가를 독자 역시 고찰해보게 되며, 자유롭게 문학을 향해 무단 침입하자는 목소리에는 이 글을 읽는 독자도 문학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마음껏 쓰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언제나 울프의 글이 그랬듯 재독을 거칠수록 깊은 사유를 안겨주는 책이다. 울프를 사랑한, 울프의 글이 궁금했던 모든 이에게 자신있게 권하고 싶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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