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만큼 성실하게 - 교유서가 소설
이소호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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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1 나의 중독은 누군가에겐 배부른 투정이자, 재수없는 돈 자랑이었고, 의지가 부족한 여자의 철없는 소동일 뿐이었다. 쇼핑 중독은 동정조차 가성비가 안 나오는 병이었다. 


허구와 현실 사이 돈 없는 예술가를 상냥하게 위로하는 대신 발가벗겨 세상에 내던져 놓는다. 캣콜링』 『홈 스위트 홈의 이소호가 다시 한 번 독자를 미치게 만들고 있다. 이자만큼 성실하게를 다 읽고 가장 먼저 든 감상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글을 이소호 말고 누가 쓸 수 있을까. 수진의 목소리를 따라가고 있으면 정제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쾌감이 자꾸만 치밀어오른다. 비난이 목끝까지 차오른다. 수진아, 글을 때려쳐. 그리고 나가서 쿠팡 뛰어. 그러나 그렇게 비난할 수 없는 것은,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부터가 그 가난한 작가들이 가난과 체면과 삶을 박박 갈아넣어 쓴 빚조각 글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사랑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여기까지 쓰면 다시금 수진의 논문이 떠오른다. 예술은 공공의 것이 되는데 예술가는 알아서 밥을 먹어야 한다(이 논리가 너무나 대단해서 예술가도 공무원처럼 나랏밥 먹여 주라는 주장마저 하고 싶어진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너무 무섭다. 여름에 읽어본 그 어떤 공포소설보다도 두려운 글이다. 귀신은 허상이고 빚은 현실이니까. 결국 수진의 사치는 병이었고 성실하게 모은 돈은 믿었던 친구에게 등쳐먹혔고 예술을 알아줄 것만 같던 남자친구는 막상 그 예술이 자신의 삶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현실이 되자 계산기를 두드린다. 분명 수진의 상황은 안타까운데, 때로는 수진보다도 가기 싫다고 울면서까지 호주로 떠나가 수진에게 20만원을 따박따박 빌려주는 은진이 더 안타깝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시인이 수치심을 팔 때 가족은 건물을 판다. 독자가 그의 존엄과 가족의 현물 간 무게를 달아 보는 중에도 수진이 미안함이나 비참함보다 아직 비빌 언덕이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작태에는 잠시 책을 덮고 쉬고 싶어질 만큼 마음이 힘들어진다.



 

p.192 시는 나였다. 내 숨이고 내 침묵이고 내 행간이었다. 끝이 보였다. 내가 멈추면 시도 멈췄다. 근데 소설은 달랐다. 소설은 남이었다. 내가 아닌 사람을 만들어서 걷게 하고 말하게 하고 몇백 페이지를 살게 해야 했다. 그게 무서웠다.


이소호의 시들이 대체로 자전과 허구가 어울려 있다는 점과 서울예대 문창과, 광고회사 경력, 호주에서 일하는 동생, 등단 12년차 등 이소호와 주인공 수진의 공통되는 키워드를 생각해 보면 이자만큼 성실하게에도 어느정도 자전적 요소가 스며있다고 느껴지는데, 그런 부분에서 수진을 이토록 날것으로 묘사하는 기세가 대단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변호의 욕망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수진은 지독하게 현실적으로 빚어진 듯한 캐릭터다. 동생이나 가족에게 쉽게 손을 벌리고, 그러면서도 수치심 대신 합리화만 반복한다. 실존이니 쇼펜하우어니 거창하게 떠들지만 현실에서 손에 떨어지는 건 캐시워크 100. 돈이 없어 사치를 그만두었을 뿐이지 시인의 껍데기를 쓰기 위해 울 코트를 사던 순간에서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느껴지는 지경이다. 몇 번이고 책을 다시 읽어도 계속해서 감탄하게 된다. 이걸 이소호 말고 누가 쓰겠나.

 

이 글은 빚에 허덕여 본 적도 빚을 진 가족을 건사해본 적도 없는 이들에게는 마음껏 수진을 헐뜯을 수 있는 블랙코미디고, 단 한 번이라도 그렇게 살아본 적 있는 이들에게는 다큐멘터리다. 거지방이나 탄원서, 논문의 디자인을 살려 넣은 부분이 소설의 글맛을 더욱 살려준다.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고발인지 유머인지 끝까지 읽고도 알 수 없는 괴롭고 맵고 쓰고 짠 책이다. 감사하게도 작가님이 남겨주신 사인 속 흑야의 빛이라는 표현을 되새겨본다. 그런데 제가 빛이 되는 거 맞나요, 이 책을 출판사에서 무료로 받았는데. 어쩐지 서점에 가서 한 권을 더 카드로 긁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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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절대로 멋진 첫 문장으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나는 현학적인 형용사를 포기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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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
윤지현 지음, 박지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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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4 사람들은 귀신이 되는 걸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 (중략) 그 마음 때문에 죽고 만 거야. 마크, 그게 전부란다. 귀신이 되는 건 단 하나, 놓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야. 우리를 괴롭히는 건 우리가 놓아 줘야 떠나는 거야.

 

굉장히 그리워했던 죽은 사람이 돌아온다면, 그것이 과연 살아 있는 자들에게 행운일까? 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는 수진이 기르던 쥐 밀키스를 되살리는 것을 통해 수진의 집안 여자들이 공유하는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수진이 능력을 마크에게 들킨 후 마크가 그녀의 죽은 언니 미래도 그 능력으로 되살릴 것이냐고 물었을 때 수진은 강하게 부정하지만, 이 작품이 자매 관계를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소개를 생각하면 이미 독자는 그녀가 언니를 되살리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예상대로 수진에 의해 살아난 미래는 차츰차츰 복수를 해나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수진의 가족이 한국계라는 설정에 걸맞게 이야기 곳곳에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들이 보이고, 수진이 그곳의 경찰서장에 의해 인종차별을 겪는 모습도 드러난다. 작가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본인이 겪어 온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미래가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자들을 차례차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마치 한국의 주된 귀신 소재인 처녀귀신을 떠올리게 한다. 수진이 죽음을 거슬러 미래를 되살린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되면서도 너무나 애틋한 이 자매를 바라보고 있으면, 미래가 건강히 잘 살아가기만 한다면 이대로도 괜찮지 않나 하는 착각에 독자도 수진과 함께 사로잡히고 만다. 그러나 마크도, 수진도, 그리고 이야기 밖의 독자도 알고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된 미래는 완전히 살아난 것이 아니며 앞으로 완전하게 살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독자는 불안한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긴다. 과연 미래는 어떻게 될지, 그리고 미래를 다시 잃을지도 모르는 수진은 어떻게 될지, 마크는 끝까지 그녀의 편이 되어 줄지.

 

p.420 복수의 끝에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미래가 증오하는 이들이 모두 익사하고 나면, 이미 제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망령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미래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존재로 변하고 나면 앞으로 나아가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수진은 미래를 절대 죽음으로 되돌려보내지 못할 것처럼 굴지만 작가는 주변인의 입을 빌려 수없이 메시지를 던진다. 마크의 어머니가 우리를 괴롭히는 건 우리가 놓아 줘야 떠난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야기는 수진이 어머니를, 미래를, 밀키스를 놓아줘야만 한다고 소리친다. 그래서 종래에는 수진도 미래가 원하는 복수를 모두 실행해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그래서는 미래도 자신도 과거를 두고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으스스한 스릴러 속에서 독자는 수진의 모습을 통해 은연중에 미래의 애도를 함께하면서 이야기가 완성된다.

 

흡입력이 굉장한 소설이다. 400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두꺼운 책인데도 지루하거나 답답한 부분이 전혀 없다. 독자를 글 속으로 순식간에 빨아들여서는 수진의 성장을, 미래의 애도를, 마크의 풋풋한 사랑을 함께하게 만든다. 단지 스릴러에 그치지 않고 미래가 K-장녀로서 짊어져야 했던 짐을 보여준다는 것이, 그리고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과 끝내는 것이 모두 수진이라는 점이 굉장히 좋았다. 가장 가까운 연대자이자 가장 아픈 덧니같은 이 자매가 끝난 페이지 속 각자의 자리에서 영원히 행복하기를 바라게 된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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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공포
이종산.정보라.허진희 지음 / 스프링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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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 사람이 죽어 나간 베이글 가게. 빵집에서 일하다 죽는 사람들. 공사 현장에서도 사람들이 일하다 죽었고, 창문을 닦거나 엘리베이터를 수리하다가 죽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대학이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거나 아직 고등학생인 사회 초년생도 많았다. 


친구들과 종종 우스갯소리로 귀신보다 사람이, 사람보다 벌레가 무섭다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호러라고 하면 귀신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혼자 사는 집에 귀가했을 때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벌레, 귀신, 사람 중에서 아마 가장 안 무서운 것이 귀신이다. 태양 공포는 그런 우스갯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앤솔로지다. 도시 괴담을 소재로 하는 호러 앤솔로지지만 급박한 귀신 출몰 에피소드나 심한 텍스트고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약간은 사람이 아닐 주현 포함)이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글을 빌려 사회를 말하는 작가가 좋다. 표제작인 이종산의 태양 공포는 주인공 주현이 부모를 잃으면서 시작된다. 어른이라고 불릴 나이가 되기도 전에 일하다 죽는 아이들, 그리고 부모 없이 사회에 덜렁 내쫓겨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청년들. 주현은 흡혈귀 혼혈이라는 특이한 설정을 가지지만 그의 모습은 마치 가정 밖 청소년이나 보호종료아동의 힘겨움을 떠올리게 한다. 탈출기는 몸을 던져서까지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피해자가 도리어 가해자 취급을 받는 안타까운 현실을, 피터와 모는 가정 내의 남아선호, 외로움이 사람을 좀먹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쩌면 이것들이야말로 귀신이나 저주보다도 우리 사회에 더 깊게 뿌리박힌, 실체 없는 공포이자 호러일 것이다.

 

p.101 그녀의 인생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며 열심히 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떤 사람이 화면 뒤에 숨은 채 잼있으니까자신의 삶을 망쳐 놓았다.


태양 공포에 실린 세 편의 글들은 도시 속의 절실한 고독을 조명한다. 주현과 그녀, 남지우는 모두 어느 섬의 골짜기 외딴 집 따위가 아닌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저마다의 고독을 갖고 있다. 남들과 다른 존재여서, 국가와 사회가 충분히 보호해주지 않아서, 자신만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가족들 속에서 살아와서. 마지막 단편 피터와 모를 읽고 나면, 만약 지우가 주현과 그녀를 보았더라면 아마 그들의 어깨에도 어두운 덩어리가 붙어있는 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각 단편들은 저마다 공포스럽게 연출된 장면을 가지지만 글 속에는 더한 공포들이 숨어있다. 주현이 피를 빠는 장면보다는 사람을 죽이고도 돌아가는 공장이 더 끔찍하다. 그녀가 징그러운 환각 속을 헤매는 것보다 사이버 성범죄에 아무런 대처조차 되지 않는 현실이 더 기괴하다. 피터와 모가 몸을 자르는 것보다 어린 딸에게 어깨의 어둠을 만들어 준 하란이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까지도 그 어둠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독자를 괴롭게 한다.

 

그러나 주현은 살아갈 것이다. 그녀는 살아남았고, 지우는 그 집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로 한다. 우리는 이 도시 속에서 살아가면서 주현을, 그녀를, 지우를 만나게 될 것이다. 태양 공포는 그렇게 우리 사이를 살아가는 이들이 겪어야 했던 공포를 조명한다는 점이 가장 도시괴담스러운 부분이었지 않나, 싶어진다. 차분하고, 고요하고, 스산하게.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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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힘 - 복음을 여는 레오 14세 교황의 10가지 단어
레오 14세 지음, 로렌조 파치니 엮음, 이재협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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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2 그리스도인의 삶은 머릿속이나 마음속에만 머무는 단순한 지적 탐구나 감정의 동요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 안에 갇혀 고립된 삶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다른 이들과 함께, 한 모임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실천합시다(전합시다).” 모든 신자들이 매주 파견 때 이 말을 듣는다. 우리는 당연하게도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하지만, 정말로 복음을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복음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모호하고 일상에서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복음의 힘은 그렇게 낯설기만 한 복음을 교황 레오 14세의 언어로 일상 속에 가져다주는 책이다. 일일이 찾아 읽지 않으면 일상에서 마주치기 힘든 강론을 그리스도, 마음, 교회, 선교, 친교, 평화, 가난한 이, 연약함, 정의, 희망이라는 열 개의 주제로 나누어 10개 장에 걸쳐 편집하였다. 독자는 자신이 원하는 주제의 말씀을 골라 읽을 수 있으며, 인용된 복음 구절도 장과 절이 모두 쓰여 있어 하나하나 검색해보지 않고도 언급된 연관 구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서문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을 인용하며 책의 포문을 연다. “우리 시대는 우리 자신입니다.” 이 말과 함께 우리가 폭력을 목격하여도 낙담하지 않을 것을, 성령의 힘을 내려 주실 것을 하느님 아버지께 청할 것을 촉구하며 서문이 마무리된다. 이 서문을 통해 독자는 레오 14세가 이 책을 통하여 하고자 하는 말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신자들이 시대를 분리하지 않는 것, 시대의 폭력이나 가난, 불의, 괴로움을 나와 동떨어진 것이라 치부하거나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 낙담하지 않고 그 시대 속에 평화가 꽃피기를 기도하며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 복음의 이란 바로 그런 것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p.58 이처럼 다양성을 존중하며 친교를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참된 친교는 서로 다른 은사들이 하나의 신앙 고백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 복음 선포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깊이 와닿은 챕터는 3시대의 도전에 응답하는 교회였는데, 평소 젊은 여성 신자로서 앞으로 가톨릭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혐오의 근거로 성경을 제시한다. 성경에서 그것을 금지하였으니 내가 너를 혐오하여도 타당하다, 는 목소리가 수시로 들려온다. 그러나 <신임 대주교 팔리움 수여 미사> 강론에서 레오 14세는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이야기로 예를 들어 다양성에 대해 신자들에게 이야기한다. 평신도와 사제가, 교회와 세상이 맺어나가는 형제애와 같은 우정의 관계로 참된 친교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런 친교야말로 서울세계청년대회 기도문에서 언급되는 시노드 교회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이 종교에 요구하는 것도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레오 14세 교황의 교회는, 그 요구와 부름에 친교로서,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서 모든 이가 선교사가 되는 시대의, 모든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걷는 시노드 교회로 나아가겠다고 기꺼이 응답하였다.

 

6무장을 내려놓게 하는 평화7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전해지는 복음을 통해서 가톨릭교회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 소외된 자들의 곁에 있는 교회, 전쟁이 아닌 평화가 사람을 일으켜 세우게 하는 교회. 빈곤과 전쟁으로 병들어가고 있는 시대를 조명하는 챕터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6장에 실린 <이탈리아 주교 회의 주교들에게 한 연설>에서 레오 14세는 각 교구가 비폭력 교육의 길을 마련하고 갈증을 중재하며 타인을 환대하는 활동을 추진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가톨릭교회가 단지 관념적인 위로자의 역할에 그치는 대신 실제로 행동하는 공동체로서 평화에 기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이것을 느껴 보는 경험이 많은 신자들에게 좋은 메시지가 되어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톨릭이 걸어온 길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상냥하고 다정한 메시지로 알려주는 책이었다.

 

 

* 캐스리더스 활동으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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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 : 기념 림LIM 젊은 작가 소설집 7
고수경 외 지음, 조연정 해설 / 열림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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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 그냥 시간을 보낸 거예요. 어떤 아이들한테는, 누군가한테는 그런 곳이 필요하다고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곳이 그럴 만한 공간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대체로 친밀감을 내포한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장 친밀한 관계, 나를 보호해주는 울타리, 든든한 우군이자 따뜻한 지원군. 그러나 정말로 모든 가족이 그러한가? 일곱 번째 림 소설집인 : 기념은 가족을 소재로 하는 여섯 편의 글을 통해 독자에게 묻는다. 가족이란 반드시 아름다운, 필수불가결한 존재일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미묘하게 불편했다. 불편함은 글에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한 번도 가족이 불편해본 적 없는 누군가는 이 글들에 영원히 공감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이 자꾸만 글 밖의 나를 좀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에 대한 이 신선한 글들을 기쁘게 읽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울고 때로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가족이라는 정서는 각기 다른 모양일지언정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갖는 정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는 가족이 없는 사람마저도 가족이 없다라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정서가 된다.

 

: 기념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대체로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이었던 가족, 즉 부모와 자녀 둘 정도로 구성된 가정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어느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다. 어느 글에서는 여동생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어느 부부 슬하의 일남일녀, 굉장히 흔한 가족의 형태로 보이는 이 가족은 별거 중이다. 이들이 서로 형태가 다르다고 해서 누구 하나 가족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존재하고, 그들이 때로는 서로를 갉아먹고, 옮아매고, 또 지지했다가, 또 괴롭게 하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어쩌면 이것이 : 기념의 첫 번째 의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p.142 나와 의견이 다른 이를 굴복시키려는 호승지심이 2할이라면 나머지 8할은 선도에 가까웠다. 상대가 좋은 쪽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 그 믿음은 아집이 강한 아버지와 사는 동안, 기분파에 다혈질인 엄마와 소통하는 동안 서서히 깎여 나간 것 같다.

 

표제작 기념祈念이 굉장히 사랑하는 작가 성해나의 작품인지라 이 책이 더 반가웠을지도 모르겠다. 성해나의 글은 때로 너무 현실적이어서 사람을 소름 돋게 만들었다가, 때로는 너무 나와 동떨어져 보여서 자꾸만 내 스스로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기념祈念은 전자였다. 굳이 병기된 한자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문득 깨달은 것은, 기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결혼기념일’ ‘기념 촬영따위의 기념紀念과는 다른 한자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빌 기자에 생각 념자를 쓰는 기념祈念. 글 속의 는 무엇을 빌고 싶었을까. 글의 말미에서는 별다른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상상도 못 할 사고를 쳐 버린 자성의 호적을 파거나, 이번에야말로 기어이 이 부부가 이혼하거나, ‘가 절연을 선언하고 집을 박차고 나가지도 않는다. 어쩔 수 없다. 그것이 가족이니까. 그러나 독자는 이 결말에 자꾸만 의문이 남는다. 가족이라는 게, 평온한 방조와 회피를 이어 가며(p.156) 반드시 유지해야만 하는 것인지.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숨 돌릴 곳을 제공해 주던 이선이, 금붕어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던 진주가 책을 덮고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요한에게 더 부모 같은 이는 이선이 아니었을까, 진주의 가족은 기석이 아니라 그 금붕어이지 않았을까. 비교적 글의 맵시나 관록이 덜함에도 젊은 문학을 읽는 까닭은 바로 이런 글들을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기성 문단이 쉽사리 조명하지 않는 예민하고 까다로운 소재들을 거침없이 사용해 적나라하게 고발하거나 독자를 위로하는 것. 사실상 이쪽이 문학의 본질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이토록 날것인 젊은 작가들의 글을 선보여주는 열림원에 깊이 감사드린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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