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애론 - 베르나르도가 말하는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지음, 암브로지오 M. 피아조니 엮음, 방종우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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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3 그러므로 사랑은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무상의 선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을 창조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본질적인 사랑은 우연적인 인간의 사랑을 낳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 안에 사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 가는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는(마태 22:37)’ 것이라고 하신 적이 있다. 얼핏 들으면 신자로서 당연한 말이라고 느껴지지만, 막상 이 계명을 실천하려고 하면 많은 의문이 생긴다.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연인이나 배우자를 사랑하듯이? 부모님, 선생님을 공경하듯이? 아니면 나 자신을 아끼듯이? 『신애론』은 이런 의문에 부딪힌 독자들에게 해답을 주는 책이다. 베르나르도의 저서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를 책의 1부로 두고 그에 대한 암브로지오 M. 피아조니의 해제를 2부로 두어, 베르나르도의 삶이나 가치관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도 쉽게 그의 신앙과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이 사랑에 이르는 여정을 ‘인간이 자신을 위해 자신을 사랑할 때’, ‘자신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사랑할 때’의 네 단계로 구분한다. 인간은 유약하기 때문에 우선 자기 자신을 돌보고, 하느님의 도움을 받은 다음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사랑과 다정을 느끼면 필요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저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 읽은 후에는 네 번째 단계가 결국 다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점이 조금 의아해지는 독자가 많을 듯하다. 필요나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게 왜 최고 단계의 사랑이 아닌 것일까? 저자는 마지막 단계의 사랑에 대해 ‘우리 자신이 오직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만 존재하기를 원하는’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이 부분이 베르나르도가 말하는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된다. 궁극적으로 주님과 결합해 한 영혼이 된다는 말은 보통의 평신도로서는 조금 어렵게 다가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주님을 향한 사랑을 통해 얻고자 하는 평화와 자비, 영원한 생명에 가장 가까운 말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p.157 인간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희망의 원천이며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인간에게는 낙관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모상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해제를 보면 ‘사랑’이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낭만적인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베르나르도는 의외로 십자군 원정이나 수도원 개혁 운동 등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던, 꽤 불안정한 시대의 성인이었다고 한다. 보통 성인들의 저서를 읽을 때 시대적 배경이나 그분의 사상적 뿌리를 알지 못해 어렵게 다가올 때가 많은데, 『신애론』에는 그의 유년 시절이나 영성생활을 엿볼 수 있는 해제가 함께 실려 있어 본서 부분인 1부만큼이나 해제인 2부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2부를 읽은 후 1부를 다시 읽으면 조금 의아하거나 어렵게 다가온 부분들도 더 잘 이해되는 것 같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여겨지는 사랑에 대한 베르나르도의 깊은 사유를 엿보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가진 사랑이 나아갈 방향을 깨달을 수 있는 책이었다.

 

*캐스리더스 활동으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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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의 삽목
마쓰시타 류노스케 지음, 마미영 옮김 / 반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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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4 그날 밤 나누었던 그 약속이 훗날 내 인생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고, 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갉아먹게 될지 그때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날부터 그 방은 시하루와 나만의 새로운 피난처가 되었다.

 

‘200년’ 전의 유골이 실종된 내 여동생과 DNA가 일치한다. 캐치프라이즈로 내세워진 이 사건과 함께 시작되는 소설은 결말에 다다를 때까지 강렬하고 속도감 있게 휘몰아친다. 그 와중에도 인물들 간의 관계는 촘촘히 얽혀 있고 약간은 불온한 분위기를 풍긴다. 게다가 사이비 종교나 각종 연구윤리 등 사회적으로 다소 민감한 주제까지 세련되게 녹여낸다. 작가가 91년생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일본 미스터리의 정석 같은 책이다. 하루카와 여동생 시하루, 조력자 유이, 그리고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는 아버지와 수상한 거구의 남자 우시오, 이 일을 파헤치는 기자들. 마치 드라마처럼 많은 인물들이 세밀하게 엮이며 스토리를 만들어나간다.

 

최근 들어, 장편에 불가피하게 따라오는 루즈함을 없애기 위해 짧은 챕터마다 여러 인물의 시점을 오가는 기믹을 사용하는 작품을 많이 마주치게 된다. 수시로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켜 주고 복선을 섬세하게 장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지만 이 방법의 가장 큰 문제는 독자가 모든 시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1차원의 삽목』은 챕터의 소제목으로 서술되는 시점과 인물을 표기하는 것으로 이 단점을 시원하게 타파한다. 7장에 걸쳐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될 때마다 복선이 차곡차곡 쌓였다가 풀려나가기를 반복한다. 스포일러를 줄이기 위해 직접 언급할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에는 반전에 깜짝 놀라 책을 덮고 도로 표지를 들여다본 적도 있었다.

 

p.324 사람을 만드는 건 유전이냐, 환경이냐. 오래전부터 인류가 품어온 명제지. 난 유전이 전부라고 생각해. 유전자가 그 사람의 모든 운명을 결정한다고.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지를.

 

DNA 연구의 많은 부분을 소재로 사용하고 있지만 관련 상식이 없어도 이해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허겁지겁 페이지를 넘기기 바빴다. 미노타우루스의 미궁 개념을 접목시킨 스토리도 좋았고, 의외의 인물이 조력자가 되거나 서사가 생각지 못한 부분으로 흘러가 사람을 놀라게 하는 반전도 꽤 있었다. 앞서 말했듯 정말로 일본 미스터리, 하면 떠오르는 종류의 정석적인 책이면서도 현대적으로 잘 정제된 스토리였다. 사실 가장 일본 소설이라고 느껴지는 설정은 약간 불안정하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에게 많은 여성들이 이성적 호감을 내비친다는 부분이기는 하지만...단기간에 조력자를 얻기에는 가장 쉬운 방법인 만큼 적재적소에 과하지 않게 잘 사용되었다고 생각한다.

 

인물들이 각자 다채롭게 입체감이 느껴져 독자의 몰입을 유도한다. 사이비 종교의 행태에 소름이 돋기도 하고, 센바나 교이치의 언행을 보며 유전자 연구 윤리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장을 가르는 간지마다 뼈와 꽃이 어우러진 X선 분위기의 사진이 들어가 있는데, 본문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느껴진다. 여러모로 파격적이고 대단한 미스터리였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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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의 만화 그리스로마 신화 2 - 헤라클레스
이우일 지음, 이준석 감수 / 비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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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4 신의 의지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지. 고대 희랍인들은 고통을 통해 배움을 얻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어. 최악의 시련을 극복할 때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비채에서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가 나온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든 생각 : 제발 저요...)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미리 말씀드리자면, 오늘의 서평은 진지하게 쓰던 평소의 서평과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 왜냐면 나는 독자의 마음이 아닌 오타쿠의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



 

그리스 로마 신화는 원래도 끝없이 인용되는 세계적 스케일의 대-메이저 장르였기는 하지만, 나를 포함한 그로신 덕후들은 각종 방송에서 영화 《오디세이》가 언급되고 출판사마다 관련 도서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 매일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홍은영 선생님 보고 계시나요 당신이 키운 세대가 오디세이를 10탕씩 뛰는 어른으로 컸습니다). 그래서 『이우일의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 출간 소식도 너무너무 반가웠다. 《노빈손 시리즈》로 일찍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만화가의 작품인 만큼, 그리고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 번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저명한 고전학자 이준석 교수가 감수를 맡은 만큼 기대도 굉장히 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우일의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정말로 대단했다. 제2권 <헤라클레스> 편을 읽으며 그의 열두 과업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신화 속으로 빠져든다. 주인공 헤라클레스는 다소 투박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흥미를 끌고, 지하 세계의 케르베로스나 디오메데스의 식인 암말들 등 작중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크리처들은 굉장히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감탄을 자아낸다. 말이 이렇게 잘생겨 보여도 되는 건가요.


책은 제우스가 암피트리온으로 변해 알크메네와 함께하는 것부터 시작해 기간토마키아 이전, 헤라클레스가 올림포스에 입성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만화라고 해서 중요한 부분들을 생략하지도 않는다. 방랑 음유시인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해 서사시라는 원전의 형태를 존중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전승된 신화의 특성상 사건의 시간 순서가 맞지 않는 오류나 여러 판본이 존재하는 부분들도 놓치지 않고 알려준다(p.217 시간이라, 누군가 그러더군. 그것만이 인간의 유일한 주제라고. 신들의 시간은 인간의 그것과 다르게 심술궂게 흐르지.). 그러나 고리타분하게 설명만 늘어놓는 학습 만화는 아니다. 원전에 충실하되 유머와 재미를 모두 챙긴, 이우일이라는 대중 만화가의 관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끊임없는 헤라의 방해 속에서도 제우스의 비호를 받으며 과업을 완수해 나가는 헤라클레스를 보고 있으면 영웅 서사에서 이 끔찍한 고난들이 왜 필요한지 자연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열두 개의 과업과 고난을 거쳐 헤라클레스는 21세기에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힘’과 ‘영웅’의 대명사가 되었다.

 

1권 신들의 우화, 3권 오뒷세이아도 탐날 만큼 사랑스러운 책이다. 흔히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하면 대중적으로 알려진 트로이 전쟁을 주로 내세우는데 어째서 이런 순서가 되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비코가 인간 역사를 나눌 때 신들의 시대, 영웅들의 시대, 인간들의 시대로 구분한 것에 따라 세 편이 나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2권 <헤라클레스>를 통해 반인반신 헤라클레스가 괴물을 물리치고 신들의 시대, 즉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전반부를 닫으며 후반부 트로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시대를 열었던, 과도기 역할인 ‘영웅의 시대’를 즐겁게 엿볼 수 있었다.



 



그리스 신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포근한 수채화 그림과 도입부의 인물 설명, 상세한 스토리 표현으로 쉽게 입문할 수 있을 것이고, 이미 그로신 덕후인 사람이라면 매 페이지에서 이걸 이렇게 표현한다니! 하는 감탄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ai가 모든 것을 요약하고 그려내주는 세상에 너무나도 귀한 도서다. 즐거운 리뷰 이벤트를 열어 주신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p.s. 독서계 여러분의 그로신 최애는 누구인가요? 저는 오디세우스입니다...두뇌캐 순애남 절대 지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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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백나무성의 라푼젤
배명은 지음 / 고블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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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 폭력과 억압은 언제 어디에나 있었어요. 그런 게 아니면 신분 계급과 탐관오리, 나라를 팔아먹은 이들이 어디서 갑자기 솟아났겠어요? 그리고 앞날도 장담할 수 없다면, 그렇게 만들지 않는 게 우리들의 몫이라고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라푼젤』 등을 떠올리게 하는 컨셉의 단편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동화처럼 따스하지도 않고, 무조건적으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지도 않는다. 토속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모자 장수와 나」로 시작되는 일곱 개의 단편은 일제강점기나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성소수자 배척 등 독자들이 공감할 법한 여러 가지 사회적 토픽을 담고 있으면서도 ‘공포’라는 장르에 충실하게 오싹한 스토리를 보여준다. 단편 하나당 볼륨이 그렇게 크지 않은데도 몰입도가 좋아서, 페이지를 넘기고 있으면 괜히 바닥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고 만다.



 

배명은의 호러는 단편적인 텍스트 고어나 화려한 연출은 덜하면서도 마치 시각 미디어를 보는 것처럼 화면 전환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어딘가 뒷맛이 으스스하다. 묘하게 찜찜한 기분으로 책을 덮고 나면, 괜히 벽 귀퉁이 벽지가 낡아 보이는 부분이나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사소한 소음이 신경쓰이게 된다. 『측백나무성의 라푼젤』을 읽은 많은 독자들은 더 이상 창밖으로 드리운 나무 그늘이나 아파트의 잠긴 지하실을 무심결에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사회 어딘가에 존재할 지수나 다원을 응원하게 된다. 호러는 이야기 속의 장치로만 남기를, 현실의 모든 여자들이 안전하기를.

 

p.252 선영의 말이 옳았다. 교수가 가증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교수의 모든 행위를 묵인했던 자신 또한 가증스러운 인간이었다. 실낱같은 존경심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렸다.

 

『측백나무성의 라푼젤』에는 분명 여러 명(?)의 귀신이 등장한다. 그러나 「1월 16일생」에서 다원에게 실제로 위협이 된 건 귀신이 아닌 폭력적인 전 남자친구였고, 「벌레 대왕」에서 벌레보다도 더 끔찍하고 기괴하게 느껴지는 건 악의와 자격지심으로 가득 찬 영달이라는 인물 자체이다. 「측백나무성의 라푼젤」에서 택영이 보여주는 태도와 악행은 사실상 「결계의 방」에서 지하실 천장에 붙어 있던 무당 귀신보다도 더 괴롭고 더 현실적인 형태의 공포다. 어떤 독자들에게는 허구 속의 귀신보다도 이런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하는 폭력이 유독 무섭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간결하고 트렌디한 문체로 호러의 문법을 빌려 이러한 사회 이슈를 시원하게 꼬집어내는 작가의 역량에 감탄했다.



 

작중의 수많은 대사 중 유독 속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대사들이 있다. 지들은 남의 나라도 빼앗아 놓고 그깟 모자 하나 훔쳤다고 죽이려 드느냐는 갓귀의 투덜거림에는 웃음이 나오고, 지수는 네놈 물건이 아니라고 소리치는 도희의 절규에는 속이 아려온다. 인물 하나하나가 주변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입체적이고 매력적이다.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틈날 때마다 읽어도 좋지만 한번 펴면 후루룩 읽게 되는, 장르에 대한 작가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소설집이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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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천주교 출판사 - 프랑스 선교사 훈민정음 인쇄 출판 이야기
가톨릭출판사 역사 연구회 지음, 조광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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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 우리는 왜 선교사들이 쓴 한문서학서에 주목해야 할까? 이 책들은 저술되자마자 조선의 연행사를 통해 조선에 유입되어 지식인들에게 전해졌고, 천주교 신앙이 확산되는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출판’과 ‘종교’는 과연 무슨 관계를 가질까? 얼핏 생각하면 서로 다른 영역에 있을 것만 같은 두 분야가 『조선 천주교 출판사』라는 하나의 제목으로 묶인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조선의 천주교는 첫 전파부터 공식적인 선교까지 ‘책’이나 ‘출판’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조선의 인쇄 기술은 종교와 함께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조선시대 천주교 선교에서는 한글 교육 또한 선교활동의 중요한 영역으로 손꼽혔다. 『조선 천주교 출판사』는 이런 천주교가 처음 서양의 학문이라는 관념으로 조선의 양반들에게 전해지던 순간부터 종교로 자리잡고 박해를 거치며 살아남는 역사적 순간들을 당시 유통된 천주교 서적이나 출판의 역사를 통해 주목한다.



 

이미 알고 있는 독자도 있겠지만, 조선의 천주교 유입은 상당히 특이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대개 서양의 선교사들이 직접 종교를 전파한 것에 비해, 조선은 중국과의 교류 과정에서 유입된 한문서학서를 통해 천주교가 유입되고 가톨릭 공동체가 생겨났다. 평신도들로부터 자생적으로 창립된 가톨릭 공동체는 가톨릭교회 역사상 유일하고 유례없는 일이기 때문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방한 중에 이루어진 한국순교복자 시성식에서 언급한 바 있었다. 책을 통해 깨우치고 그 책을 서로 빌리고 빌려주며 돌려보고, 또 손으로 직접 베껴 써 소장하거나 교류하며 박해를 견뎌 온 종교라고 생각하니 당대 교인들의 신심이 얼마나 깊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말끔히 인쇄된 교리 교재로 종교의 자유를 누리며 교육받을 수 있는 시대를 너무 당연하다고 여겨왔는지도 모르겠다는 반성의 마음도 들었다.



 

p.258 신앙의 선조들은 책을 통하여 신앙을 키웠고, 그 신앙은 우리 문화 안에 뿌리내렸다. 이 과정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관련 서적에 대한 정밀한 분석까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책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서술되어 있지만 빼곡하게 적힌 교인들의 이름이나 책의 제목을 보고 있으면, 그 행간마다 교리 서적이나 성물을 압수당하고 순교와 유배를 거치면서도 종교를 포기하지 않은 마음이 읽힌다. 사실상 낯설고 멀기만 한, 가난했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인쇄소를 세워 가며 선교에 몸바쳐 희생한 외국인 신부들의 이야기도 가슴 깊이 울림을 주었다. 사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SNS도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 대규모 박해를 거치며 종교가 어떻게 살아남았을지 의아했는데, 오히려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유배를 떠나며 전국 각지로 천주교가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에는 꽤 놀라기도 했다.


   


상당한 두께 때문인지 『조선 천주교 출판사』의 첫인상은 어려워 보인다는 걱정에 가까웠지만 본문 내에 삽입된 이미지 자료나 간결하게 정리된 표 등이 이해를 도와줘 생각보다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하드커버 표지에 음각으로 새겨진 글자들을 잘 읽어보니 책 속에 등장하는 한불자전, 성교요리문답 등의 제목이 새겨져 있어 괜히 반갑기도 했다. 참고문헌과 미주만 해도 몇십 페이지에 달하는 굉장히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책이다. 학술적 의의는 물론이고 우리 선조들이 종교를 어떻게 지켜왔는지에 대한 의지와 종교인으로서의 긍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순교자 성월을 마무리를 앞두고, 박해받은 교인들의 영혼이 주님 곁에서 평온하기를 기도드린다. 아멘.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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