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겁쟁이 보디가드
곽선조 지음 / 대영문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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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4 경호는 형식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단 한 번의 실수가 모든 걸 무너뜨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말한다. 경호는 폼이 아니라, 계속 주변을 살피고 생각하고 평안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보디가드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많은 사람들이 강인하고, 굳건하고, 두려움이라고는 없는 모습만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표지는 사뭇 다르다. 나는 겁쟁이 보디가드라는 아이러니한 제목과 함께 한 보디가드의 얼굴이 보인다. 얼굴의 오른쪽 반을 손으로 덮고 보면 그는 영락없이 멋진 경호원이다. 동요하지 않는 얼굴 위로 멋들어지게 씌워진 선글라스, 지시를 받고 내리느라 바쁠 인이어와 직업에 걸맞는 단정한 차림새. 그러나 반대로 왼쪽 절반을 손으로 덮고 보면 그는 상당히 놀란 것처럼 보인다. 당황하거나 겁을 먹은 것처럼 한껏 올라간 눈썹과 동그래진 눈이 다소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만든다. 아마 우리가 보아 온 보디가드는 항상 왼쪽의 얼굴이었겠지만, 그 속에 숨겨진 모습은 오른쪽 얼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전체적으로 짧고 가벼운 볼륨의 책이어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재미있는 팟캐스트나 술자리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기도 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저자의 말재간 속으로 금세 빠져들어 저자의 유튜브를 찾아보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주된 내용은 경호를 하면서 일어난 에피소드들을 엮은 것이었지만 글 사이사이 저자의 직업정신과 가치관이 드러나는 점이 좋았다. 보디가드를 보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차갑고 피도 눈물도 없는, 매서운 느낌의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적이라고 느껴졌다. 화장실이 급해서 애를 먹기도 하고 부당한 지시에 무조건적으로 응하는 대신 차선의 해결책을 내놓는 모습을 보며 경호가 단지 누군가를 폭력이나 힘으로 제압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p.131 경호는 사실 싸움이 아니라 예방과 통제다. 가장 이상적인 경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거다. 돌발 상황이 터지고 나서 몸을 던져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상황 자체를 막는 게 더 중요하다.

 

사실 나같은 일반인이 경호원을 가까이서 접할 일은 많지 않다. 아이돌을 쫓아다니던 시절이었다면 또 모를까(요즘은 시큐라고 부른다면서요? 라떼는 강친이라고 불렀는데...). 평소에는 쉽게 듣지 못할 이야기들을 적절한 선에서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필력이 상당히 유쾌하다. ‘겁쟁이보디가드라는 단어만 보면 우스꽝스럽고 나약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저자는 겁이 많기 때문에 더 많은 상황을 대비하고 더 많이 준비해 남들보다 한 발짝 앞에 설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책이 경호원을 꿈꾸는 많은 학생들에게도, 또 경호원이라는 직업의 딱딱한 대중적 이미지를 바꾸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 이 서평은 모도 @knittingbooks79 서평단 자격으로 대영문화사 @daeyeongmunhwasa 로 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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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인데요, 집수리 기사입니다
안형선 지음, 조원지 그림 / 크래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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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8 주거침입 범죄가 늘어가고 낯선 타인에 대한 불안이 큰데 나의 공간에 들어와 평균 30, 한 시간 이상을 함께 있는 게 얼마나 불편할까? 타인을 의심하게 되는 죄책감 역시 여성의 몫이겠지.


집수리 기사입니다.” 이 말을 보고 당신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어떤 모습인가? 많은 사람들이 남성을 떠올릴 것이다. 몸을 쓰고 기계, 설비를 다루는 직종이라는 점에서 대체로 힘이 센 남성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많은 1인 가구 여성들이 집수리 기사를 부르기를 꺼려한다. 단순히 모르는 남성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불안하기도 하고, “여자 방이라 깨끗하네.” “여자 방이 이게 뭐예요.” 같은 소리를 심심찮게 듣게 되는 탓이다. 여자인데요, 집수리 기사입니다는 이런 차별 속에서 여성 집수리 기사로 일하고 있는 안형선 대표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 에세이다.

 

페이지를 넘기며 참 많이도 웃었다. 에세이 속에는 안형선 대표가 현장에서 마주친 차별도 담겨 있지만 따뜻하게 친절을 베푼 고객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여러 번 재방문을 거쳐서야 수리가 완료되고 식사를 권한 고객도 있고, 워크숍에서 꽃을 선물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 작은 친절과 연대가 모여 저자가 남초 직업군에서 여성 기사로 살아가는 일이 조금은 덜 힘들어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워크숍에 와서까지 맨스플레인을 해대는 사람이나 여자가 무슨 집수리 일을 하냐고 한마디씩 얹는 말들을 볼 때는 황당하고 짜증스러웠지만 그런 목소리를 이겨내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사업을 이끌어 나가는 저자가 존경스러웠다.

 

p.175 워크숍에서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맘껏 경험하고 충분히 실패해도 괜찮아요.” 실패든 성공이든 해봤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의 삶은 분명 바뀔 거라 믿는다. 


소제목 <왜 하면 안 돼요?>에서는 공구를 가지고 노는 저자에게 어른들이 왜 여자애가 공구를 가지고 노냐고 말하는 장면이나, 남아들에게는 흔히 권해지던 조립 완구를 가지고 놀 기회가 없어 오빠 몰래 조립해 보다가 싸우게 된 친구의 이야기가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많은 여성 독자들이 이 장면들에 깊이 공감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여자라서, 또는 남자라서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성별 고정관념이 많이 옅어진 추세이지만 여전히 특정 직업군은 여초, 남초의 모양을 하고서 그 속의 소수자들을 차별한다. 여자인데요, 집수리 기사입니다가 그런 이유로 꿈을 포기하는 많은 학생들, 취준생들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성별에 따른 차별이라는 다소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는 부분을 귀여운 그림으로 유쾌하게 풀어내는 센스가 탁월하다. 여성 수리기사 창업을 꿈꾸게 된 이야기부터 따스한 고객들의 사연, 도로에서 화장실이 급할 때나 졸음이 몰려올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 등 현직 종사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다. 마지막 페이지에 담긴 작가의 꿈처럼 여성 기술자만 모여 건물 하나 뚝딱하는 날이 오기를, 그게 누구의 눈에도 이상할 게 없는 사회가 오기를함께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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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왕국 - 식물은 어떻게 문명과 권력을 설계했는가
데이비드 스펜서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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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32 식물과 인간은 기본적으로 똑같은 실존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둘 다 음식과 물이 필요하고, 자신을 방어하고 상호작용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번식하고 죽는다. 이것이 삶이다.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인간은 종종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45억년이라는 길고 긴 지구의 삶 중에 인간이 살아온 기간은 선행인류부터 셈해도 몇백만 년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가 쉽게 이입하고 공감하는 포유류가 지금처럼 다양한 종으로 분화되어 크게 번성하게 된 것도 5~6천만년 전 K-T 대멸종과 PETM을 거친 후의 일이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떠한가? 뿌리 왕국에서는 식물의 출현에 대해 남세균 시절부터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는 아마 식물학자가 아닐 것이고, 거기에 더해 이 서평을 쓰고 있는 나는 이공계 출신조차도 아니므로 내 수준에서 식물이라고 느껴지는 육상식물부터 셈해 보자. 그래도 47천만 년 전, 그러니까 최초의 조류니 균류니 하는 것들을 죄다 제해도(제하면 안 된다. 그러나 내 상식이 거기까지 못 갔다.) 식물은 지구에서 4억 년 이상을 살아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실 지구는 식물의 것이고, 우리는 거기에 얹혀살고 있는 게 아닐까? 뿌리 왕국의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나는 이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책은 7개의 장에 걸쳐 식물의 생태계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한다. 지구에 식물이 출현해 진화해 온 과정부터 그 식물이 어떤 체계와 역사를 갖고 있는지, 인간과는 어떻게 함께 살아왔으며 그들만의 세상에서 갖고 있는 능력은 무엇인지 굉장히 상냥한 언어로 쓰여 있다. 단순히 읽어나가는 것만으로 평생 모르고 살 뻔 했던 식물에 대한 상식을 굉장히 많이 알 수 있었다. 식물은 몸의 90퍼센트를 잃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거나(p.83)(그런데 우리 집 화분들은 왜 그렇게 쉽게 죽을까...) 호두나무는 특정 물질을 방출하여 자신 이외의 식물을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p.158) 사실을 살면서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는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런 현상들이 식물의 전투 구호’ ‘식물 간의 전쟁’ ‘식물 왕국의 정보 위기같은 친근한 별명을 달고 끊임없이 소개된다. 우리가 내심 동물에 비해 열등하다고 여겨 왔던 식물의 거대한 정보 체계와 상호작용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p.187 식물과 인간은 함께일 때 강하다. 그러니 내면의 향을 모두 모아, 조금이나마 평화와 사랑을 퍼뜨려보자. 무장, 호전적 언어, 해충과의 생물학적 전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식물은 역시 사회성 생물이다.

 

뿌리 왕국의 문장은 전체적으로 다정하다. 몇몇 문장들은 과학서로 분류된다는 것이 아까울 만큼 낭만적이기도 하고, 7장에 다다라서는 독자를 뜨끔하게 만드는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거대한 식물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세계를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상호 존중하는 지속 가능한 공존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인간과 식물이 함께 부딪힌 문제를 풀기 위해, 단 한 번도 멸종하지 않고서 지구를 갈고 닦아 인간을 재배해 낸식물의 공존법을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진다. 탄트지나 빌리지같은 고급 수입지에서나 볼 수 있는 오밀조밀한 엠보싱이 느껴지는 겉표지도 책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 이끼의 질감이 더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 같아 어쩐지 자꾸만 만져보게 되고 만다. 종이의 대부분이 목재펄프로 만들어진다는 걸 생각해보면 독서계인 우리들도 언제나 일종의 식물을 끼고 사는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식물을 손에 쥐고 식물을 먹으며 식물에 기대어 살아가면서도 식물에 대해 전혀 모르던 삶에 좋은 환기가 되어 준, 자꾸만 정이 가는 책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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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 - 음모론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관계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법
정재철 지음 / 원더박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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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5 알고리즘이 사회적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법적 규제와 함께 시민의 감시가 필요하다.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숨길 것인지, 이제는 기술자만이 아닌 시민 모두가 논의해야 할 시대라는 의미다.

 

당신이 오늘 접한 정보는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소위 말하는 믿어도 되는 정보라고 하면 대체로는 공신력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학계에서 권위 있는 전문가의 저서나 발언, 대형 출판사에서 검수를 거쳐 출간된 책 등을 떠올리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유튜브와 sns가 급격한 성장을 보여 온 근 십 몇 년간, 사람들은 품을 들여 찾아봐야 하는 양질의 정보보다 앉은 자리에서 흘러들어오는 미디어를 더 열심히 믿게 되었다. 물론 4음모론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음모론과 헛소문이라는 것 자체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틱톡이 없던 시절에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있었으니까. 그러나 미디어를 통해 그런 음모론을 접하기가 더 쉬워지고 댓글과 커뮤니티 활동으로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당위성을 부여하게 되면서, 음모론은 더 이상 질 나쁜 헛소문 수준에 그치지 못하고 민주주의와 사회도덕에 대한 실질적 위협으로 우리의 세계에 성큼 다가왔다.

 

30년 경력의 언론인 정재철 기자가 쓴 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에서는 이러한 음모론이 어떤 구조로 자라나는지, 사람들이 왜 음모론에 쉽게 빠져들고 믿게 되는지를 이야기한다. 또한 그렇게 음모론에 빠지는 이들을 되돌리는 방법이나 빠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책의 프롤로그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2024123일 밤 1023, 대한민국이 멈췄다.’ 그로부터 일 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우리는 음모론이 얼마나 사람을 쉽게 파고드는지, 어떻게 세상을 망치는지 극우 집회와 서부지법 사태를 통해 분명히 목도했다. 나의 중년 부모님은 유튜브를 보고서 종종 중국 사람들이 몰래 선거에 가짜표를 넣는다더라같은 말을 하게 되었다. 음모론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홧병의 연속이다. 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렇게 쌓이고 쌓인 홧병이 차분히 해소되는 기분이다. 쉽고 정돈된 언어로 음모론의 구조에 대해 알게 되면 속아 넘어간사람들보다도 그런 미디어 리터러시 취약 계층을 상대로 속여 넘기는집단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

 

p.30 음모론은 사회의 불평등, 신뢰의 붕괴, 고립과 소외를 비추는 거울에 비유되곤 한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위안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분노의 언어다. 때때로 그것은 정치적 무기로 변하기도 한다.

 

음모론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것이 팩트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가 반박하는 진짜 팩트는 언제나 외면해버린다. 저자는 이런 점을 꼬집어 음모론은 이성적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성으로 인해 빠져들게 된다고 지적한다. 내면의 불신이나 불안에 대한 근거를 찾았다는 안도감, 나의 비도덕적 행동이나 패배는 내 탓이 아니라 조작된 사회 탓이라는 피해자성,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고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효용감이 그들을 확증편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음모론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책에서는 다섯 가지 방법이 제시된다. 서평을 쓰며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지양하는 편이지만 이 부분만큼은 더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붙여 둔다.

 

1. 프리벙킹 : 퍼지기 전에 막는 것

2. 스트리트 에피스테몰로지 : 논쟁 대신 질문으로 근거를 스스로 점검하게 만드는 대화법

3.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4. 알고리즘 규제와 허위 사실 유포 플랫폼의 법적 책임 부여

5. 심리적 개입 : 공감과 정체성 접근

 

지금도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 음모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포기하는 대신 그들을 공동체 속으로 다시 데리고 돌아와야만 한다. 이 책이 당신에게 길을 알려 줄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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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정명섭 외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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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2 한 형사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행인들이 하나같이 바쁜 걸음으로 어디론가 밀려가고 또 밀려오고 있었다. 저들 중 누구는 이 도시에 안착하겠지만 누구는 조용히 도시를 떠날 것이다. 끝내 막을 올리지 못한 대학로의 어느 연극처럼.

 

서울은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고향인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섞일 수 없는 이질적인 공간이다. 서울이라는 고유명사는 언젠가부터 세련되고 트렌디하다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서울에만 가면 큰돈도 벌 수 있고 잘살게 되어 고향에 있는 가족도 건사할 수 있다고. 그러나 그렇게 고향을 두고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 젊은이들이 점점 모이고 모여 2025, 서울을 차씹도라고 부르는 작금에 이른다. 차가운 OOO들의 도시. 이 두 가지 이미지의 갭을 아는 독자는 레트로풍의 빳빳한 표지를 넘기기 전부터 그날,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에서 네 작가가 그려내는 서울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지 궁금해진다.

 

사라진 소년」 「선량은 왜?」 「천사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죽는다」 「(신촌에서) 사라진 여인네 개의 미스터리 단편으로 이루어진 앤솔로지는 표지부터 시선을 끈다. 한문 혼용, 장음 하이픈을 표기한 고채도의 레트로 표지가 독자를 순식간에 과거의 서울로 끌어들인다. 뒷표지에서 서울 지도 위에 장소 아이콘으로 표시된 곳들이 각 단편의 작중 배경이 되고 있는 곳이라는 점도 좋았다. 이런 디테일이 서울에 살아 보지 않은 독자들도 그날,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에 호기심을 느끼게 한다.



 

p.119 선량의 마음은 어느덧 황폐해져 갔다. 가까운 이웃들은 이사했고 두부 트럭마저 출입을 금지당했다. 집 안에 있어도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생각에 불편했고 그렇다고 마당으로 나가자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다.

 

내게 서울이란 비즈니스, 그리고 뮤지컬 관람이라는 취미생활을 위한 공간이었으므로 지역적 무드가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랐거나 거주 경험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구체적인 지명이 더더욱 깊게 다가올 듯하다. 그런 면에서 개중에서 좀 더 익숙한 대학로 배경인 천사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죽는다는 다른 단편들보다도 더 즐겁게 읽었다. 사라진 소년천사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죽는다에는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청소년 탐정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도 꽤 흥미로웠다.

 

네 개의 단편이 모두 재미있었지만 책을 덮고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인물은 아무래도 선량이지 않을까 싶다. 선량은 옆집 할머니의 병뚜껑을 열어 주고 아픈 강아지의 임보를 흔쾌히 받아들일 만큼 도덕적인 사람이다. 그때의 선량을 알던 사람들이 선량이 일으킨 사건을 접하면 분명 그렇게 물을 것이다. “선량이 대체 왜?” 그 질문은 작품 바깥의 독자들에게도 단편의 제목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선량은 왜, 왜 그랬어야만 했을까. 무엇이 선량을 선량하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물론 템플 스테이에서 선량에게 반박한 이들의 말도 일리는 있다. 자본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자본을 쫓는다고 해서 비도덕적이라 비난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본이 인간보다 위에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자본도 피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나 스스로가 번화가의 아파트보다 외곽의 주택을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선량에게 더 깊이 이입했는지도 모르겠다. 결말부에서 선량의 집도 결국은 재개발 빌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현실적인, 통찰력 높은 미스터리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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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미쳐 돌아가는 거겠죠."
"그렇게 따지면 서울이 무슨 죄가 있어.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문제지."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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