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왕국 - 식물은 어떻게 문명과 권력을 설계했는가
데이비드 스펜서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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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 232 식물과 인간은 기본적으로 똑같은 실존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둘 다 음식과 물이 필요하고, 자신을 방어하고 상호작용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번식하고 죽는다. 이것이 삶이다.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인간은 종종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45억년이라는 길고 긴 지구의 삶 중에 인간이 살아온 기간은 선행인류부터 셈해도 몇백만 년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가 쉽게 이입하고 공감하는 포유류가 지금처럼 다양한 종으로 분화되어 크게 번성하게 된 것도 5~6천만년 전 K-T 대멸종과 PETM을 거친 후의 일이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떠한가? 뿌리 왕국에서는 식물의 출현에 대해 남세균 시절부터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는 아마 식물학자가 아닐 것이고, 거기에 더해 이 서평을 쓰고 있는 나는 이공계 출신조차도 아니므로 내 수준에서 식물이라고 느껴지는 육상식물부터 셈해 보자. 그래도 47천만 년 전, 그러니까 최초의 조류니 균류니 하는 것들을 죄다 제해도(제하면 안 된다. 그러나 내 상식이 거기까지 못 갔다.) 식물은 지구에서 4억 년 이상을 살아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실 지구는 식물의 것이고, 우리는 거기에 얹혀살고 있는 게 아닐까? 뿌리 왕국의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나는 이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책은 7개의 장에 걸쳐 식물의 생태계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한다. 지구에 식물이 출현해 진화해 온 과정부터 그 식물이 어떤 체계와 역사를 갖고 있는지, 인간과는 어떻게 함께 살아왔으며 그들만의 세상에서 갖고 있는 능력은 무엇인지 굉장히 상냥한 언어로 쓰여 있다. 단순히 읽어나가는 것만으로 평생 모르고 살 뻔 했던 식물에 대한 상식을 굉장히 많이 알 수 있었다. 식물은 몸의 90퍼센트를 잃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거나(p.83)(그런데 우리 집 화분들은 왜 그렇게 쉽게 죽을까...) 호두나무는 특정 물질을 방출하여 자신 이외의 식물을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p.158) 사실을 살면서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는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런 현상들이 식물의 전투 구호’ ‘식물 간의 전쟁’ ‘식물 왕국의 정보 위기같은 친근한 별명을 달고 끊임없이 소개된다. 우리가 내심 동물에 비해 열등하다고 여겨 왔던 식물의 거대한 정보 체계와 상호작용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p.187 식물과 인간은 함께일 때 강하다. 그러니 내면의 향을 모두 모아, 조금이나마 평화와 사랑을 퍼뜨려보자. 무장, 호전적 언어, 해충과의 생물학적 전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식물은 역시 사회성 생물이다.

 

뿌리 왕국의 문장은 전체적으로 다정하다. 몇몇 문장들은 과학서로 분류된다는 것이 아까울 만큼 낭만적이기도 하고, 7장에 다다라서는 독자를 뜨끔하게 만드는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거대한 식물의 세계를 통해 인간의 세계를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상호 존중하는 지속 가능한 공존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인간과 식물이 함께 부딪힌 문제를 풀기 위해, 단 한 번도 멸종하지 않고서 지구를 갈고 닦아 인간을 재배해 낸식물의 공존법을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진다. 탄트지나 빌리지같은 고급 수입지에서나 볼 수 있는 오밀조밀한 엠보싱이 느껴지는 겉표지도 책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 이끼의 질감이 더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 같아 어쩐지 자꾸만 만져보게 되고 만다. 종이의 대부분이 목재펄프로 만들어진다는 걸 생각해보면 독서계인 우리들도 언제나 일종의 식물을 끼고 사는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식물을 손에 쥐고 식물을 먹으며 식물에 기대어 살아가면서도 식물에 대해 전혀 모르던 삶에 좋은 환기가 되어 준, 자꾸만 정이 가는 책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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