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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정명섭 외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평점 :

#도서제공
p.232 한 형사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행인들이 하나같이 바쁜 걸음으로 어디론가 밀려가고 또 밀려오고 있었다. 저들 중 누구는 이 도시에 안착하겠지만 누구는 조용히 도시를 떠날 것이다. 끝내 막을 올리지 못한 대학로의 어느 연극처럼….
서울은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고향인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섞일 수 없는 이질적인 공간이다. 서울이라는 고유명사는 언젠가부터 세련되고 트렌디하다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서울에만 가면 큰돈도 벌 수 있고 잘살게 되어 고향에 있는 가족도 건사할 수 있다고. 그러나 그렇게 고향을 두고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 젊은이들이 점점 모이고 모여 2025년, 서울을 ‘차씹도’라고 부르는 작금에 이른다. 차가운 OOO들의 도시. 이 두 가지 이미지의 갭을 아는 독자는 레트로풍의 빳빳한 표지를 넘기기 전부터 『그날,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에서 네 작가가 그려내는 서울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지 궁금해진다.
「사라진 소년」 「선량은 왜?」 「천사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죽는다」 「(신촌에서) 사라진 여인」 네 개의 미스터리 단편으로 이루어진 앤솔로지는 표지부터 시선을 끈다. 한문 혼용, 장음 하이픈을 표기한 고채도의 레트로 표지가 독자를 순식간에 과거의 서울로 끌어들인다. 뒷표지에서 서울 지도 위에 장소 아이콘으로 표시된 곳들이 각 단편의 작중 배경이 되고 있는 곳이라는 점도 좋았다. 이런 디테일이 서울에 살아 보지 않은 독자들도 『그날,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에 호기심을 느끼게 한다.

p.119 선량의 마음은 어느덧 황폐해져 갔다. 가까운 이웃들은 이사했고 두부 트럭마저 출입을 금지당했다. 집 안에 있어도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생각에 불편했고 그렇다고 마당으로 나가자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다.
내게 서울이란 비즈니스, 그리고 뮤지컬 관람이라는 취미생활을 위한 공간이었으므로 지역적 무드가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랐거나 거주 경험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구체적인 지명이 더더욱 깊게 다가올 듯하다. 그런 면에서 개중에서 좀 더 익숙한 대학로 배경인 「천사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죽는다」는 다른 단편들보다도 더 즐겁게 읽었다. 「사라진 소년」과 「천사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죽는다」에는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청소년 탐정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도 꽤 흥미로웠다.
네 개의 단편이 모두 재미있었지만 책을 덮고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인물은 아무래도 선량이지 않을까 싶다. 선량은 옆집 할머니의 병뚜껑을 열어 주고 아픈 강아지의 임보를 흔쾌히 받아들일 만큼 도덕적인 사람이다. 그때의 선량을 알던 사람들이 선량이 일으킨 사건을 접하면 분명 그렇게 물을 것이다. “선량이 대체 왜?” 그 질문은 작품 바깥의 독자들에게도 단편의 제목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선량은 왜, 왜 그랬어야만 했을까. 무엇이 선량을 선량하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물론 템플 스테이에서 선량에게 반박한 이들의 말도 일리는 있다. 자본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자본을 쫓는다고 해서 비도덕적이라 비난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본이 인간보다 위에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자본도 피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나 스스로가 번화가의 아파트보다 외곽의 주택을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선량에게 더 깊이 이입했는지도 모르겠다. 결말부에서 선량의 집도 결국은 재개발 빌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현실적인, 통찰력 높은 미스터리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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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미쳐 돌아가는 거겠죠." "그렇게 따지면 서울이 무슨 죄가 있어.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문제지."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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