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샬럿 버터필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라곰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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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293 그렇다고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어. 우리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되어야 해. 남의 길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당신이 내일, 또는 이번 달, 또는 올해 죽는다고 하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많은 자기계발서와 철학자들이 던져온 그 질문에 누군가는 원 없이 마구 놀 것이라고 대답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전할 것이라고, 누군가는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샬럿 버터필드의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은 그렇게 ‘죽는 날이 정해진’ 줄 알고 살아온 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넬이 자신이 죽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단지 예언가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책 밖의 독자들에게는 조금 기막힐 수도 있지만 넬은 무려 19년간 완벽하게 죽기 위해 준비해왔다. 그러나 넬은 죽지 않았고, 책의 원제인 『The Second Chance』대로 인생 2막이 시작된다. 넬은 이제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저질러놓은 일들은 또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가?


p.311 내가 언제 죽는지를 안다는 건 만사에 유효기간을 붙이는 거나 다름없었어요. 그래서 난 감정을 아주 신중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제목 번역이 참 잘 되었다고 느껴진다. 원제보다 훨씬 흥미롭고 호기심을 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스토리가 유머러스하고 코믹하면서도 읽을수록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톰과 그렉도 주인공만큼이나 매력적인 캐릭터여서 때로는 유머 소설처럼, 때로는 로맨스 소설처럼 즐겁게 읽었다. 다른 독자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그렉파였다ㅎㅎ... 또 하나의 중심 인물인 주노와 넬의 관계가 마치 인생 멘토와 멘티처럼 느껴져서 주노의 이야기에 많은 위안을 받기도 했다.


에필로그 앞의 마지막 챕터는 이런 대사로 끝난다. “이제 그만 가서 네 인생을 살아.” 내게는 이 대사가 책 밖의 독자들에게 해주는 말처럼 느껴졌다. 넬의 인생은 페이지를 덮으면 사라진다. 현실의 독자들에게 남은 건 스스로의 인생이다. 우리는 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넬처럼, ‘넬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까? 스토리 전개가 빠르고 서술이 상냥해서 독서에 취미가 없던 사람이라도 굉장히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동시에, 삶과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과 많은 질문을 남겨주는 소설이었다. 이제 책을 덮는 당신에게 책 속의 인물들이 질문을 남긴다. 두 번째 인생이 주어진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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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 두 자연 생활자의 교환 편지
김미리.귀찮 지음 / 밝은세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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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99 또 한 번 생각했습니다. 그 부러움은 해소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요. 만물이 궁금해 이름을 찾아보고, 만져보고, 용도를 찾아 이리 쓰고 저리 써보며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작가님만이 터득할 수 있는 삶의 요령일 테니까요.

 

시골살이, 낭만, , 편지를 좋아한다면 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시골도 글도 좋아하지만 특히 편지를 좋아한다. 별로 대단한 내용을 쓰는 일은 없지만 일상을 꼭꼭 눌러 쓰고는 왁스를 녹여 실링을 찍어 봉하고 나면, 무언가 대단한 사랑과 정성을 담은 듯한 기분이 든다. 나와 같은 독자라면 이 책을 반드시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일단 나는 김미리와 귀찮, 두 작가에게 홀리고 말았다.

 

자연과 편지의 공통점은 조금 느리다는 것이다. 당장 오늘 무언가를 해도 오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약간은 느린 낭만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주일 중 이틀 정도를 수풀집에서 보내는 김미리 작가와 문경에서 살아가는 귀찮 작가의 편지를 엮은 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에는 두 작가의 다정한 안부와 조금은 불안한 시골살이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페이지를 넘기며 독자는 어쩐지 그들의 계절을 함께 살아가는 기분이 된다.

 

p.239 일상을 지켜주는 소중하고 감사한 분들로 인해 우리도 무탈히 긴 터널을 지나왔으니 다가올 따스한 날들을 만끽합시다.

 

두 작가는 시골이 미디어에서 그리는 것처럼 편안하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당연히 도시보다 부족한 것도 많고, 손도 더 많이 간다. 날씨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도시에서는 슬리퍼를 끌고 갈 수 있는 거리에 마트와 편의점이 널렸는데 시골에서는 차를 끌고 간 마트에도 필요한 물건이 없어 헤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의 자연이 가지는 매력에 대해 김미리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서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다니 참 좋다라고. 생명력이 넘치는 새들을 보며 작가가 벅차게 쓴 문장을 오랫동안 되새기다 보면 책 바깥의 나도 어쩐지 같이 마음이 벅차오른다.

 

살아 숨쉬는 자연과 살을 맞대며 살아가는 두 작가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따뜻하다. 자극적인 사건이나 커다란 미스터리가 없어도 술술 읽히는 좋은 글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에 온기가 돌고, 때로는 어떤 모양의 불안이 나의 것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위로받기도 한다. 소망이도 마루에게, 그리고 김미리 작가와 귀찮 작가에게 좋은 일만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언니들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것만 같은 상냥한 이야기를 곱씹으며, 함께 온 씨앗 연필을 부지런히 쓰고서 토마토 씨앗을 심어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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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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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 시간이 절대적인 세계는 위안거리가 있는 세계다. 사람들의 움직임을 내다볼 수는 없지만 시간의 움직임은 내다볼 수 있으니까. 사람들을 의심할 수는 있어도 시간을 의심할 수는 없으니까.

 

책을 읽기 시작해서부터 덮을 때까지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인슈타인의 꿈은 혁신적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과학과 문학 사이를 넘나든다. ‘시간을 주제로 하는 짧은 챕터들로 구성된 한 권의 책이, 우리 인생의 여러 가지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단순히 문학이라기에는 너무나 과학적이고, 그저 과학이라기에는 너무나 철학적이다.

 

매일의 꿈에서 시간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빠르게 흘러가거나, 느리게 흘러가거나, 되돌아가거나, 멈추거나, 영원하거나… …. 가지각색의 시간들 속에서 사람들도 그 시간을 살아가는 방법을 저마다 터득한다. 빨리 가는 시간을 쫓아가기도 하고 느린 시간을 여유롭게 살기도 하며, 시간이 빨리 가는 중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주 높은 곳에 집을 짓기도 하고 영원을 각자의 방법으로 사는 나중족과 지금족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특이한 시간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얼핏 보면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현실에 이렇게 별난 시간들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문장 하나하나를 오래도록 곱씹다 보면 단지 시간만이 특이할 뿐,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현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뭐든지 빨리빨리 해치우거나 모든 것을 미루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모습도, 정신을 차려 보니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있는 모습도 마치 평범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p.84 그보다는 산들바람이 머리칼을 스칠 때 어떻게 살랑이는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며 손을 힘 있게 잡는다. 그런 사람들은 젊은 시절과 마찬가지로 가벼운 걸음걸이로 걷는다.

 

아인슈타인의 꿈만이 가지는 특별함은 이렇게 과학적이면서도 묘사가 섬세하고 문체가 수려하다는 점이다. 그 꿈에서 등장하는 특정 시간을 굉장히 알기 쉽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도 자연이나 인간의 마음을 말할 때는 다정하고 황홀한 표현을 사용한다.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 페이지를 궁금해할 수 있는 이유도 그런 까닭이다.

 

몇 번을 반복해 읽어도 매번 더 깊은 감상을 갖게 되는 책이었다. 앨런 라이트먼이 써낸 경이로운 시간들 속에서 이 두근거리는 마음이 다 빠져나오려면 꽤 오래 걸릴 듯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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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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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9 더는 사랑하지도 심지어는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와 계속 사는 건 그가 불쌍해서일까? 아니면 남편과 한통속이 되어 사이먼을 타지로 보내버린 것을 속죄하는 마음에서일까?

 

샐리 페이지의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주인공 재니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이다. 특이한 점은, 이야기의 독보적 주인공인 재니스의 직업이 남의 집 가사일을 하는 청소노동자라는 점이다. 물론 작중에서 굉장히 유능해 고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묘사되기는 하지만 소설에서 주인공의 직업으로 흔하게 볼 수 있는 설정은 아니었기에 첫 페이지부터 흥미롭게 느껴졌다. 재니스는 청소일을 하기 위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고객들의 집을 드나들며 그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독자도 점점 그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게 된다.

 

흡입력 있는 문체로 쓰여진 글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데뷔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글이었다. 특별히 어렵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박진감 있는 진행이 페이지를 놓지 못하고 결말까지 단숨에 읽게 만든다. 베키의 다음 이야기는? 제니스의 무능한 남편은 어떻게 됐을까? 그래그래그래 부인과 아니지금은안돼 씨의 진짜 속내는 뭘까? 재니스가 B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다음 내용을 궁금해하듯이 독자도 재니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 바쁘게 책을 읽어내리게 된다.

 

p.178 그녀와 비교하면 재니스는 울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계속 자신에게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있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특히 B부인이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느껴진다. 주인공인 재니스나 작중에서 호감적으로 그려지는 유언보다도 더 특이하고 더 흥미를 끈다. 전래동화도 아닌 현대소설에서 고령의 여성 캐릭터가 이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사실 이야기를 들려주는역할이 주로 할머니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껏 이런 롤의 캐릭터가 없었던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주인공 외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이 전직 스파이인 할머니 캐릭터라니, 샐리 페이지의 기막힌 센스에 경의를 표한다.

 

결국 재니스를 무너지지 않게 잡아주는 것도,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주고 계속 나아가게 해 주는 것도 모두 이야기이다. 누구나 살아 있는 것만으로 이야기가 생긴다. 그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여 삶이 되고 삶과 삶이 만나 인연이 된다. 쉽게 후루룩 읽히지만 여운이 오래 남는 소설이다. 재니스가 동생과 아들, B부인과 유언처럼 자신을 생각해주는 이들과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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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민트 맛 소녀시대 - 20세기 소녀의 레트로 만화영화 에세이
백설희 지음 / 참새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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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7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은 전부 어딘가로 가는 것일까. 우리가 사랑했던 동네는, 내가 아끼던 그 완구는 전부 어디로 갔는지.

 

정식 학술 용어는 아니지만 종종 쓰이는 말 중에 투니버스 세대라는 말이 있다. 출생년도로 가르는 밀레니얼이나 젠지, 시대배경으로 나누는 에코나 N포세대처럼 투니버스, 즉 어린이 애니메이션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 세대에 해당하는 80~90년대생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만화영화의 황금기였다. 아침의 공중파부터 야심한 시각의 만화 채널까지, 온갖 애니메이션이 쏟아져 나왔다. 나의 민트 맛 소녀시대에는 그 세대의 낭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달의 요정 세일러 문, 카드캡터 체리, 꾸러기 수비대》 … 동시대를 살아온 작가가 풀어놓는 추억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은 순식간에 빠져든다. 책을 펴는 동시에 독자는 퇴근 후 책상 앞에 앉은 어른에서 순식간에 TV 앞에 엎드린 어린아이가 된다. 아무리 놀라운 반전이나 흥미로운 복선도 이길 수 없는 공감이라는 가치가 나의 민트 맛 소녀시대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단순히 만화 이야기를 하는 에세이에 그치지 않고, 방과 후 싸구려 간식을 물고 반질반질한 캐릭터 책가방을 끌어안고서 TV 속 마법소녀들을 하염없이 동경했던 어느 여름날의 시간 속으로 독자의 손을 잡고 뛰어드는 책이다.

 

p.101 앞서 말한 <슬램덩크>에서 다루는 농구나 여타 다른 만화영화들로 접한 축구, 야구 등은 남자아이들의 전유물이 되었는데, <피구왕 통키>의 피구는 여자아이들의 것, 그것도 우리가 스스로 쟁취한 스포츠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지는스포츠가 된 걸까?

 

동시에 작가는 애니메이션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성별 고정관념을 꼬집는다. 사회에는 마법소녀와 순정만화는 여자아이의 것이고 로봇과 스포츠는 남자아이의 것이라는 편견이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작가는 남자아이의 로망? 아니, 모든 어린이의 로망!이라는 챕터를 통해 여성도 얼마든지 스포츠나 공룡, 로봇같이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소재들을 좋아하고 꿈꿀 수 있음을 말한다. 이런 점이 이 에세이를 더 트렌디하게 만든다.

 

페이지를 넘기며 추억에 울고 웃고, 맞아 나도 이 만화 좋아했는데! 하고 무릎을 치거나 깔깔거렸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추억은 모두 잊어버리고 재미없게 나이먹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되살려주는 책이다. 읽는 내내 동물원의 노래 혜화동이 생각났다.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나를 마음껏 꿈꾸게 했던 어린 날의 사랑하는 캐릭터들을 다시 떠오르게 해 준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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