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세우스 패러독스 안전가옥 오리지널 46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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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1 그건 자신이 만들었던 배와 같은 배가 아니었다. 아버지에 의해 바닥에 던져진 순간 그가 만든 배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아무리 똑같이 생겼어도 그건 엄마가 만든 배일 뿐이었다.

 

나를 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나의 육체? 두뇌가 보유한 기억?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라는 생명으로서 가지는 어떤 연속성? 그렇다면 그 중 하나가 손실되거나 신기술로 인해 대체되었을 때, 그것을 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또는 그것들이 모두 각각 분리되어 각자 존재할 때 그 중 무엇을 라고 정의해야 할 것인가? 이경희 작가가 테세우스 패러독스를 통해 독자들에게 상당히 철학적이고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그날, 그곳에서모래도시 속 인형들에서부터 보여준 이경희의 작품세계는 거대한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흡입력 있는 문장, 속도감이 휘몰아치는 전개, 한 편의 아침드라마 같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책 속에 모두 들어있다. 등장인물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결말을 향해 바쁘게 달려가 비로소 반전이 뒤통수를 후려칠 때까지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는 대단한 작가다. 테세우스 패러독스도 예상대로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내렸다.

 

소설은 이렇다할 빌드업이 없이 꽤 소란스럽고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 총이요? 의사가 다리를 들고 와요?) 이렇게 바로 시작된다고?!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장면이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흥미를 끌어낸다. 사실 시간 순으로 사건을 나열하자면 소제목 <컨티넘><미진><현석>의 다음으로 가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컨티넘>의 시점에서 소설이 시작되며 독자도 그 순간 아무것도 모르는 채 컨티넘과 함께 깨어나면서 진환의 삶, 정확히는 그가 앞으로 컨티넘으로서 살아가게 된 삶 속으로 그와 함께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현석과 미진, 교수와 여울, 석진환에게 깊게 매료된다. 남성이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를 물려받지 못한 미진은 과연 완전한 악역일까? 차명계좌를 위해 부당한 방법을 사용한 진환은 과연 완전한 선역인가? 여울은 조력자인가? 조력자라면 진환중 정확히 누구의 조력자인가? 드라마틱한 전개 속에서 작가가 계속해서 책 바깥의 독자를 향해 쏟아내는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허겁지겁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결말에 도달한다.

 

p.33 사람이 대체 뭔데? 의식? 육체? 아니면 기억? 인간을 살아 있게 하는 본질이 뭔지도 모르면서, 뭘 어떻게 되살렸다고 확신하는 건데?

 

인공 장기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점점 인간의 삶 속으로 다가온다. 이미 인공 관절을 포함해 몸 속에서 장기나 기관의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해주는 기계도 많다. 그러면 과연 내 몸은 어디까지가 내 몸인지, 모든 기관(심지어 뇌까지)이 교체되어도 그것을 나라고 부를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빠진 채 완독을 마쳤다. 스포일러 없이 읽어야 재미있는 책은 항상 서평에 줄거리를 늘어놓지 않기 위해 애쓰는 편이라 상세한 줄거리를 공개하기가 꺼려진다. 그러나 테세우스 패러독스처럼 만듦새가 좋은 책을 보면 분명히 출판사에서 사랑받는 작품이겠구나, 하고 기대를 갖게 된다. 과몰입 독자들의 몰입을 더욱 도와주는 주인공의 명함, 주황색 박이 시선을 끄는 표지, 표지 안쪽과 면지의 크라프트지, 시선을 단번에 끄는 마구리의 새파란 컬러까지. 마치 읽어 달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은 책이다. 누구든 읽게 되면 그 자리에서 에필로그를 덮을 때까지 멈추지 못할 것이라 확신한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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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군상
하인리히 뵐 지음, 사지원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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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할 필요도 없는 폐허 문학의 정수. 참상과 연대, 사회와 공생을 함께 보여주는 역작. 독자는 저자의 시선에 이입해 레니의 삶을 관망하는 위치에 서 있는 동시에 인터뷰이들의 목소리를 따라 레니의 삶 속에도 녹아들어 전후 독일과 자본주의의 괴로운 현실을 생생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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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사르와 함께 말씀 안에 머물기 - 그리스도인의 묵상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서명옥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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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1 우리가 머물도록 초대받은 곳은 무한히 신비로운 계약의 중심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계약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하느님께서 그를 통해 인류에게 말씀하시는 최고의 예언자이시며, 인류를 대신하여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최고의 사제이시다.

 

우리는 신앙생활 중에 때때로 교리 중에 배웠지만 잘은 모른다는 감상에 부딪힌다. 내게는 묵상도 그 중 하나였다. 묵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 막연하게만 느껴져서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지 막막해지곤 했다. 성경을 읽는 것 만으로도 어려워하느라 그 뜻을 잘 들여다보지 못한 경험도 많았다. 발타사르와 함께 말씀 안에 머물기에서는 총 3장에 걸쳐 그런 그리스도교 묵상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내준다. 묵상을 할 필요를 몰랐던 신자부터 묵상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던 신자, 또는 이미 성경 묵상에 임하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더 마음 깊이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신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1장의 두 번째 챕터인 <묵상 소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무엇인가를 듣고자 하는 사람은 고요한 상태로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 문장처럼 으레 묵상의 마음가짐이란 바깥과 나를 단절하여 나의 내면에 집중하는 형태로 요구된다. 그러나 그 다음 문단을 여는 문장은 이러하다. ‘그리스도교적으로 요구되는 침묵은 근본적으로 인간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두 문장이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아 어리둥절하게 느껴지지만 챕터를 꼼꼼히 읽다 보면 곧바로 이 말이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오듯이 이해된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께 가려고 노력하는 대신 우리 안에 존재하시는 그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1장에서는 묵상을 위한 마음가짐, 묵상이 필요한 까닭에 대해 이야기한다.

 

p.79 우리는 두드릴 수 있고 또 두드려야 하지만, 우리가 두드린다고 해서 반드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두드림에는 그러한 마법적인 힘이 들어 있지 않다. (중략) 변용은 주님께 달린 것이라는 점, 그런 다음에는 이제 우리가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장 여러 번 다시 읽은 부분은 2장으로, 2장에서 저자는 묵상의 실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주님께서는 현존하시기 때문에 어떤 관념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요구를 하시는 분으로만 묵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묵상으로 인한 변화는 내게 달린 것이 아니라 그분께 달려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기도와 묵상을 바칠 때마다 주님께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물어보기보다 무엇을 해 달라고만 말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의 마음이 문득 들었다. 우선 두드려보고 열리지 않는다면 그 문 속에 있는 것이 지금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니 포기할 줄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장과 2장에서 묵상에 대해 충분히 알았다면 3장을 통해 묵상의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 묵상을 통해 주님께 다가가는 경험은 신자 한 명 개인의 몫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께서 세우신 전례와 성사를 통해 교회적인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150페이지 정도의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이런 저자의 신학적 신념까지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굉장히 꼼꼼하고 섬세하다. 얼핏 훑어봤을 때는 성경 발췌와 신학적인 이야기가 많아 어렵다고 생각되었는데 챕터를 따라 집중해서 읽다 보면 의외로 놀랍도록 쉽고 빠르게 이해된다. 발타사르가 20세기의 중요한 신학자로 손꼽히는 까닭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공들여 읽으면 신앙생활 중 놓치고 살았던 부분들을 또렷하게 깨우쳐주는 동시에 발타사르의 설득력 있는 통찰과 깊은 신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신앙인으로서의 마음을 다잡고 싶은 형제, 자매분들께 이 책을 자신있게 추천드린다.

 

*캐스리더스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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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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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6 그 광경은 순식간에 불이 붙고 남김 없이 타버리는 종이의 속성, 그 연약한 종이로 이루어진 것이 책의 본질임을 새삼스레 일깨워주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글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그런 확신이 들었다. 김혜진의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은 편집자 홍석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홍석주는 사실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이렇다 할 특이함이 없는 인물이다. 그의 대학 시절의 배경이 되는 시위의 중심에 서 있지도 않고, 국문과 청강에서 엄청난 재능을 발견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조금 소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석주는 그저 때로는 글을 쓰고, 때로는 이방인이 되고, 때로는 어떤 책을 세상에 내보이기 위해 매달린다.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간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박진감이 느껴지거나 소위 말하는 도파민이 터진다기보다는 꽤 슴슴하고 고요하다. 어쩌면 그런 점이 김혜진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세계가 고증에 맞춰 담긴 단정한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독자는 홀린 듯 이 고요한 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크게 지치거나 피로해지지 않고 어느새 주인공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기분으로 이야기를 즐기게 된다. 교열부 신입이던 석주는 책의 말미에서는 예순을 바라보는 주간이 되어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을 곁에서 함께 지켜본 것 같은 기분으로 책을 덮고 나면 석주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p.51 단어의 조합에 불과했던 문장은 석주를 전쟁터 한가운데로 데려갔다. 등장인물과 축축한 숲길을 함께 걷게 했고, 오래전 전소되어 확인할 수 없는 어떤 화가의 그림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을 다닐 때는 시위를 피해 다녔던 석주가 경력있는 편집자가 되었을 때 망국의 밤의 출판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망국의 밤은 정부와 사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탄압받는 작가의 원고이다. 그의 글을 싣던 신문에는 사과문이 게재되고 각종 출판사에서는 그의 원고를 출판하기를 포기한다. 석주가 다니는 산티아고북스 내에서도 석주와 묘하게 부딪히던 규한이 강한 반대의사를 보인다. 심지어는 여기저기서 항의 전화가 오고 석주가 하는 말 한마디가 마치 출판사의 입장인 것처럼 왜곡되어 기사로 나오기도 한다. 어쩌면 석주는 이번에도 그 일을 외면할 수도 있었다. 시위를 피해 후문으로 등교해 일찍 하교했던 것처럼 사회적 논란이나 출판사의 사정을 핑계로 이 원고는 포기하겠다고 해도 석주가 회사에서 잘리거나 편집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석주는 포기하지 않았고 끝끝내 석주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망국의 밤이 세상에 나온다. 이 에피소드가 홍석주라는 인물의 성장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고 느껴졌다.

 

글을 써본 사람, 책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원고를 쓰는 일부터 편집과 출판을 거쳐 책을 읽는 독자까지도, 모두가 이 소설을 사랑할 것이다. 회사 생활이 다소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때로는 마음이 아파진다. 마치 내가 혼나는 것처럼 기가 죽거나 괘씸한 동료가 미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현실적인데도 이 책은 충분히 낭만적이다. 마음속에 어느 고요한 도서관에서 아주 좋아하는 책의 빛바랜 표지를 쳐다보던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김혜진이 당신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흔들러 왔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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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한 장례와 애도 - 왜 어떤 죽음은 애도가 불가능한가
김순남 외 지음 / 산지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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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8 단절된 원가족을 대신해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이자, 마지막까지 누구보다 강한 유대감을 나누는 관계가 되기도 했다. 남겨진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상복을 입지 못할 뿐 유족과 다름없는 슬픔과 상실감을 경험한 적이 많았다.

 

생동법 이슈로 나날이 소란스럽다. 특정 종교에 기반을 두는 보수 단체와 진보 활동가들이 끊임없이 부딪힌다. 처음에는 동성혼 합법화였고 차금법을 지나 생동법까지, 투쟁이 계속되는 동안 다소 농도가 옅어졌다고 생각하는데도 한국의 뿌리 깊은 정상가족 관념을 깨는 일은 쉽지가 않은가보다. 퀴어한 장례와 애도는 그런 보편적인-결혼제도와 혈연에 기반을 두는- ‘가족에게만 장례를 치를 권리를 허용하는 것이 왜 부당한지, 왜 사회적 차별이고 퀴어 배제적 시스템인지 낱낱이 파헤쳐 이야기한다. 사실 책의 소개를 볼 때는 단지 배제된 목소리를 담은 수기나 에세이 형태의 사례집에 가까울 것이라 가늠했었지만, 현행법이나 퀴어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와 전통적 장례 절차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꽤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남은 사람들은 장례를 치르고 애도의 기간을 가지며 세상을 떠난 이가 안녕하기를 비는 동시에 그를 삶에서 떠나보낸 스스로의 마음도 추스른다. 떠난 사람이, 또는 남은 사람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그런 애도를 박탈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3장의 사연들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 만약 누군가의 배우자가 사망했다고 하면 모두가 그를 위로하고 그 슬픔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회사에서는 당연히 휴가를 보장해 줄 것이고 다들 그가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오도록 도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법적 가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슬픔이 그럴 만한슬픔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너무나도 서글펐다. 오랫동안 사랑한 연인의 죽음을 그저 친구의 죽음으로 말해야 하는 것, 그리고 친구의 죽음에 그렇게까지 슬퍼해야 하는지 의아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 것.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p.70 한국 사회에서 장례는 애도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친족을 단위로 한 가산 승계의 절차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법적 가족이 아닌 사람이 가족 대신장례를 주관한다는 것은 재산을 노리는 사람이라는 사회적인 범주를 통해서만 그 의미가 공유된다.

 

많은 연구들이 성소수자의 우울증 유병률이 전체 청년층 유병률에 비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청년 성소수자의 절반 가량이 우울 증세를 겪고 그 중의 또 절반이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설문 결과도 있었다(다움,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 실제로 많은 성소수자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일찍 세상을 뜬 자녀의 장례를 치르지 않거나 간소화하는 것이 관례이기도 하고 원가족과 연락을 단절한 채 살아온 이들도 많기 때문에 그들의 장례는 남들처럼치러지지 못한다. 원가족이 고인과 어떤 사이였느냐고 물을 때 사실대로 말하지도 못한다. 퀴어한 장례와 애도에는 그런 사례들이 가득 담겨 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외동이고 비혼주의자인 나의 장례는 과연 누가 치르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을 오래 곱씹었다.

 

애도는 감정인 동시에 절차고 어떤 관습이다. 장사법이 바뀌고 생활동반자나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이 불편한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은 퀴어와 죽음을 터부시하다 못해 언급조차 꺼리는 문화가 너무나도 강하다. 말하지 않는다고 그곳에 실재하는 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모두에게 동등한 애도의 권리가 주어지기를, 그 누구도 사회적 차별로 인해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페이지를 덮었다. 끝으로 차금법과 생동법의 빠른 제정을 촉구한다. 투쟁.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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