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한 장례와 애도 - 왜 어떤 죽음은 애도가 불가능한가
김순남 외 지음 / 산지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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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128 단절된 원가족을 대신해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이자, 마지막까지 누구보다 강한 유대감을 나누는 관계가 되기도 했다. 남겨진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상복을 입지 못할 뿐 유족과 다름없는 슬픔과 상실감을 경험한 적이 많았다.

 

생동법 이슈로 나날이 소란스럽다. 특정 종교에 기반을 두는 보수 단체와 진보 활동가들이 끊임없이 부딪힌다. 처음에는 동성혼 합법화였고 차금법을 지나 생동법까지, 투쟁이 계속되는 동안 다소 농도가 옅어졌다고 생각하는데도 한국의 뿌리 깊은 정상가족 관념을 깨는 일은 쉽지가 않은가보다. 퀴어한 장례와 애도는 그런 보편적인-결혼제도와 혈연에 기반을 두는- ‘가족에게만 장례를 치를 권리를 허용하는 것이 왜 부당한지, 왜 사회적 차별이고 퀴어 배제적 시스템인지 낱낱이 파헤쳐 이야기한다. 사실 책의 소개를 볼 때는 단지 배제된 목소리를 담은 수기나 에세이 형태의 사례집에 가까울 것이라 가늠했었지만, 현행법이나 퀴어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와 전통적 장례 절차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꽤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남은 사람들은 장례를 치르고 애도의 기간을 가지며 세상을 떠난 이가 안녕하기를 비는 동시에 그를 삶에서 떠나보낸 스스로의 마음도 추스른다. 떠난 사람이, 또는 남은 사람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그런 애도를 박탈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3장의 사연들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 만약 누군가의 배우자가 사망했다고 하면 모두가 그를 위로하고 그 슬픔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회사에서는 당연히 휴가를 보장해 줄 것이고 다들 그가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오도록 도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법적 가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슬픔이 그럴 만한슬픔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너무나도 서글펐다. 오랫동안 사랑한 연인의 죽음을 그저 친구의 죽음으로 말해야 하는 것, 그리고 친구의 죽음에 그렇게까지 슬퍼해야 하는지 의아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 것.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p.70 한국 사회에서 장례는 애도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친족을 단위로 한 가산 승계의 절차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법적 가족이 아닌 사람이 가족 대신장례를 주관한다는 것은 재산을 노리는 사람이라는 사회적인 범주를 통해서만 그 의미가 공유된다.

 

많은 연구들이 성소수자의 우울증 유병률이 전체 청년층 유병률에 비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청년 성소수자의 절반 가량이 우울 증세를 겪고 그 중의 또 절반이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설문 결과도 있었다(다움,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 실제로 많은 성소수자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일찍 세상을 뜬 자녀의 장례를 치르지 않거나 간소화하는 것이 관례이기도 하고 원가족과 연락을 단절한 채 살아온 이들도 많기 때문에 그들의 장례는 남들처럼치러지지 못한다. 원가족이 고인과 어떤 사이였느냐고 물을 때 사실대로 말하지도 못한다. 퀴어한 장례와 애도에는 그런 사례들이 가득 담겨 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외동이고 비혼주의자인 나의 장례는 과연 누가 치르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을 오래 곱씹었다.

 

애도는 감정인 동시에 절차고 어떤 관습이다. 장사법이 바뀌고 생활동반자나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이 불편한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은 퀴어와 죽음을 터부시하다 못해 언급조차 꺼리는 문화가 너무나도 강하다. 말하지 않는다고 그곳에 실재하는 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모두에게 동등한 애도의 권리가 주어지기를, 그 누구도 사회적 차별로 인해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페이지를 덮었다. 끝으로 차금법과 생동법의 빠른 제정을 촉구한다. 투쟁.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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