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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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196 그 광경은 순식간에 불이 붙고 남김 없이 타버리는 종이의 속성, 그 연약한 종이로 이루어진 것이 책의 본질임을 새삼스레 일깨워주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글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그런 확신이 들었다. 김혜진의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은 편집자 홍석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홍석주는 사실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이렇다 할 특이함이 없는 인물이다. 그의 대학 시절의 배경이 되는 시위의 중심에 서 있지도 않고, 국문과 청강에서 엄청난 재능을 발견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조금 소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석주는 그저 때로는 글을 쓰고, 때로는 이방인이 되고, 때로는 어떤 책을 세상에 내보이기 위해 매달린다.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간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박진감이 느껴지거나 소위 말하는 도파민이 터진다기보다는 꽤 슴슴하고 고요하다. 어쩌면 그런 점이 김혜진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세계가 고증에 맞춰 담긴 단정한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독자는 홀린 듯 이 고요한 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크게 지치거나 피로해지지 않고 어느새 주인공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기분으로 이야기를 즐기게 된다. 교열부 신입이던 석주는 책의 말미에서는 예순을 바라보는 주간이 되어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을 곁에서 함께 지켜본 것 같은 기분으로 책을 덮고 나면 석주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p.51 단어의 조합에 불과했던 문장은 석주를 전쟁터 한가운데로 데려갔다. 등장인물과 축축한 숲길을 함께 걷게 했고, 오래전 전소되어 확인할 수 없는 어떤 화가의 그림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을 다닐 때는 시위를 피해 다녔던 석주가 경력있는 편집자가 되었을 때 망국의 밤의 출판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망국의 밤은 정부와 사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탄압받는 작가의 원고이다. 그의 글을 싣던 신문에는 사과문이 게재되고 각종 출판사에서는 그의 원고를 출판하기를 포기한다. 석주가 다니는 산티아고북스 내에서도 석주와 묘하게 부딪히던 규한이 강한 반대의사를 보인다. 심지어는 여기저기서 항의 전화가 오고 석주가 하는 말 한마디가 마치 출판사의 입장인 것처럼 왜곡되어 기사로 나오기도 한다. 어쩌면 석주는 이번에도 그 일을 외면할 수도 있었다. 시위를 피해 후문으로 등교해 일찍 하교했던 것처럼 사회적 논란이나 출판사의 사정을 핑계로 이 원고는 포기하겠다고 해도 석주가 회사에서 잘리거나 편집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석주는 포기하지 않았고 끝끝내 석주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망국의 밤이 세상에 나온다. 이 에피소드가 홍석주라는 인물의 성장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고 느껴졌다.

 

글을 써본 사람, 책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원고를 쓰는 일부터 편집과 출판을 거쳐 책을 읽는 독자까지도, 모두가 이 소설을 사랑할 것이다. 회사 생활이 다소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때로는 마음이 아파진다. 마치 내가 혼나는 것처럼 기가 죽거나 괘씸한 동료가 미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현실적인데도 이 책은 충분히 낭만적이다. 마음속에 어느 고요한 도서관에서 아주 좋아하는 책의 빛바랜 표지를 쳐다보던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김혜진이 당신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흔들러 왔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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