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타사르와 함께 말씀 안에 머물기 - 그리스도인의 묵상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서명옥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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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1 우리가 머물도록 초대받은 곳은 무한히 신비로운 계약의 중심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계약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하느님께서 그를 통해 인류에게 말씀하시는 최고의 예언자이시며, 인류를 대신하여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최고의 사제이시다.

 

우리는 신앙생활 중에 때때로 교리 중에 배웠지만 잘은 모른다는 감상에 부딪힌다. 내게는 묵상도 그 중 하나였다. 묵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 막연하게만 느껴져서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지 막막해지곤 했다. 성경을 읽는 것 만으로도 어려워하느라 그 뜻을 잘 들여다보지 못한 경험도 많았다. 발타사르와 함께 말씀 안에 머물기에서는 총 3장에 걸쳐 그런 그리스도교 묵상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내준다. 묵상을 할 필요를 몰랐던 신자부터 묵상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던 신자, 또는 이미 성경 묵상에 임하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더 마음 깊이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신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1장의 두 번째 챕터인 <묵상 소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무엇인가를 듣고자 하는 사람은 고요한 상태로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이 문장처럼 으레 묵상의 마음가짐이란 바깥과 나를 단절하여 나의 내면에 집중하는 형태로 요구된다. 그러나 그 다음 문단을 여는 문장은 이러하다. ‘그리스도교적으로 요구되는 침묵은 근본적으로 인간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두 문장이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아 어리둥절하게 느껴지지만 챕터를 꼼꼼히 읽다 보면 곧바로 이 말이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오듯이 이해된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께 가려고 노력하는 대신 우리 안에 존재하시는 그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1장에서는 묵상을 위한 마음가짐, 묵상이 필요한 까닭에 대해 이야기한다.

 

p.79 우리는 두드릴 수 있고 또 두드려야 하지만, 우리가 두드린다고 해서 반드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두드림에는 그러한 마법적인 힘이 들어 있지 않다. (중략) 변용은 주님께 달린 것이라는 점, 그런 다음에는 이제 우리가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장 여러 번 다시 읽은 부분은 2장으로, 2장에서 저자는 묵상의 실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주님께서는 현존하시기 때문에 어떤 관념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요구를 하시는 분으로만 묵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묵상으로 인한 변화는 내게 달린 것이 아니라 그분께 달려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기도와 묵상을 바칠 때마다 주님께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물어보기보다 무엇을 해 달라고만 말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의 마음이 문득 들었다. 우선 두드려보고 열리지 않는다면 그 문 속에 있는 것이 지금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니 포기할 줄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장과 2장에서 묵상에 대해 충분히 알았다면 3장을 통해 묵상의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 묵상을 통해 주님께 다가가는 경험은 신자 한 명 개인의 몫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께서 세우신 전례와 성사를 통해 교회적인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150페이지 정도의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이런 저자의 신학적 신념까지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굉장히 꼼꼼하고 섬세하다. 얼핏 훑어봤을 때는 성경 발췌와 신학적인 이야기가 많아 어렵다고 생각되었는데 챕터를 따라 집중해서 읽다 보면 의외로 놀랍도록 쉽고 빠르게 이해된다. 발타사르가 20세기의 중요한 신학자로 손꼽히는 까닭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공들여 읽으면 신앙생활 중 놓치고 살았던 부분들을 또렷하게 깨우쳐주는 동시에 발타사르의 설득력 있는 통찰과 깊은 신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신앙인으로서의 마음을 다잡고 싶은 형제, 자매분들께 이 책을 자신있게 추천드린다.

 

*캐스리더스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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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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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6 그 광경은 순식간에 불이 붙고 남김 없이 타버리는 종이의 속성, 그 연약한 종이로 이루어진 것이 책의 본질임을 새삼스레 일깨워주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글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그런 확신이 들었다. 김혜진의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은 편집자 홍석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홍석주는 사실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이렇다 할 특이함이 없는 인물이다. 그의 대학 시절의 배경이 되는 시위의 중심에 서 있지도 않고, 국문과 청강에서 엄청난 재능을 발견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조금 소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석주는 그저 때로는 글을 쓰고, 때로는 이방인이 되고, 때로는 어떤 책을 세상에 내보이기 위해 매달린다.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간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박진감이 느껴지거나 소위 말하는 도파민이 터진다기보다는 꽤 슴슴하고 고요하다. 어쩌면 그런 점이 김혜진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세계가 고증에 맞춰 담긴 단정한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독자는 홀린 듯 이 고요한 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크게 지치거나 피로해지지 않고 어느새 주인공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기분으로 이야기를 즐기게 된다. 교열부 신입이던 석주는 책의 말미에서는 예순을 바라보는 주간이 되어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을 곁에서 함께 지켜본 것 같은 기분으로 책을 덮고 나면 석주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p.51 단어의 조합에 불과했던 문장은 석주를 전쟁터 한가운데로 데려갔다. 등장인물과 축축한 숲길을 함께 걷게 했고, 오래전 전소되어 확인할 수 없는 어떤 화가의 그림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을 다닐 때는 시위를 피해 다녔던 석주가 경력있는 편집자가 되었을 때 망국의 밤의 출판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망국의 밤은 정부와 사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탄압받는 작가의 원고이다. 그의 글을 싣던 신문에는 사과문이 게재되고 각종 출판사에서는 그의 원고를 출판하기를 포기한다. 석주가 다니는 산티아고북스 내에서도 석주와 묘하게 부딪히던 규한이 강한 반대의사를 보인다. 심지어는 여기저기서 항의 전화가 오고 석주가 하는 말 한마디가 마치 출판사의 입장인 것처럼 왜곡되어 기사로 나오기도 한다. 어쩌면 석주는 이번에도 그 일을 외면할 수도 있었다. 시위를 피해 후문으로 등교해 일찍 하교했던 것처럼 사회적 논란이나 출판사의 사정을 핑계로 이 원고는 포기하겠다고 해도 석주가 회사에서 잘리거나 편집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석주는 포기하지 않았고 끝끝내 석주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망국의 밤이 세상에 나온다. 이 에피소드가 홍석주라는 인물의 성장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고 느껴졌다.

 

글을 써본 사람, 책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원고를 쓰는 일부터 편집과 출판을 거쳐 책을 읽는 독자까지도, 모두가 이 소설을 사랑할 것이다. 회사 생활이 다소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때로는 마음이 아파진다. 마치 내가 혼나는 것처럼 기가 죽거나 괘씸한 동료가 미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현실적인데도 이 책은 충분히 낭만적이다. 마음속에 어느 고요한 도서관에서 아주 좋아하는 책의 빛바랜 표지를 쳐다보던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김혜진이 당신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흔들러 왔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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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한 장례와 애도 - 왜 어떤 죽음은 애도가 불가능한가
김순남 외 지음 / 산지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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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8 단절된 원가족을 대신해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이자, 마지막까지 누구보다 강한 유대감을 나누는 관계가 되기도 했다. 남겨진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상복을 입지 못할 뿐 유족과 다름없는 슬픔과 상실감을 경험한 적이 많았다.

 

생동법 이슈로 나날이 소란스럽다. 특정 종교에 기반을 두는 보수 단체와 진보 활동가들이 끊임없이 부딪힌다. 처음에는 동성혼 합법화였고 차금법을 지나 생동법까지, 투쟁이 계속되는 동안 다소 농도가 옅어졌다고 생각하는데도 한국의 뿌리 깊은 정상가족 관념을 깨는 일은 쉽지가 않은가보다. 퀴어한 장례와 애도는 그런 보편적인-결혼제도와 혈연에 기반을 두는- ‘가족에게만 장례를 치를 권리를 허용하는 것이 왜 부당한지, 왜 사회적 차별이고 퀴어 배제적 시스템인지 낱낱이 파헤쳐 이야기한다. 사실 책의 소개를 볼 때는 단지 배제된 목소리를 담은 수기나 에세이 형태의 사례집에 가까울 것이라 가늠했었지만, 현행법이나 퀴어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와 전통적 장례 절차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꽤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남은 사람들은 장례를 치르고 애도의 기간을 가지며 세상을 떠난 이가 안녕하기를 비는 동시에 그를 삶에서 떠나보낸 스스로의 마음도 추스른다. 떠난 사람이, 또는 남은 사람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그런 애도를 박탈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3장의 사연들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 만약 누군가의 배우자가 사망했다고 하면 모두가 그를 위로하고 그 슬픔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회사에서는 당연히 휴가를 보장해 줄 것이고 다들 그가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오도록 도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법적 가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슬픔이 그럴 만한슬픔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너무나도 서글펐다. 오랫동안 사랑한 연인의 죽음을 그저 친구의 죽음으로 말해야 하는 것, 그리고 친구의 죽음에 그렇게까지 슬퍼해야 하는지 의아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 것.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p.70 한국 사회에서 장례는 애도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친족을 단위로 한 가산 승계의 절차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법적 가족이 아닌 사람이 가족 대신장례를 주관한다는 것은 재산을 노리는 사람이라는 사회적인 범주를 통해서만 그 의미가 공유된다.

 

많은 연구들이 성소수자의 우울증 유병률이 전체 청년층 유병률에 비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청년 성소수자의 절반 가량이 우울 증세를 겪고 그 중의 또 절반이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설문 결과도 있었다(다움,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 실제로 많은 성소수자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일찍 세상을 뜬 자녀의 장례를 치르지 않거나 간소화하는 것이 관례이기도 하고 원가족과 연락을 단절한 채 살아온 이들도 많기 때문에 그들의 장례는 남들처럼치러지지 못한다. 원가족이 고인과 어떤 사이였느냐고 물을 때 사실대로 말하지도 못한다. 퀴어한 장례와 애도에는 그런 사례들이 가득 담겨 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외동이고 비혼주의자인 나의 장례는 과연 누가 치르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을 오래 곱씹었다.

 

애도는 감정인 동시에 절차고 어떤 관습이다. 장사법이 바뀌고 생활동반자나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이 불편한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은 퀴어와 죽음을 터부시하다 못해 언급조차 꺼리는 문화가 너무나도 강하다. 말하지 않는다고 그곳에 실재하는 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모두에게 동등한 애도의 권리가 주어지기를, 그 누구도 사회적 차별로 인해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페이지를 덮었다. 끝으로 차금법과 생동법의 빠른 제정을 촉구한다. 투쟁.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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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젠다, 시간이 빨라지는 주문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이동현 지음 / 우리학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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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3 운이는 수학 시간에 삼각형과 마주할 때마다 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삼각형의 세 꼭짓점은 너무나도 날카로웠다. 거꾸로 세워 놓으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운이에게 있어 이별은 그렇게도 날카로웠다.

 

대부분의 청소년 소설이나 소년만화가 주는 메시지의 핵심이 사실은 너도 특별하다인 것에 비해 젠젠다, 시간이 빨라지는 주문의 주인공 운이는 그다지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공부를 잘하지도 않고 친구가 아주 많거나 굉장히 잘생기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문제아도 아니다. 이 책이 청소년 성장 소설이 아니라 학원 로맨스나 액션물이었다면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 지나가는 학생 1로 그쳤을 아이. 살을 빼지 못해 헬스장에 가서는 다소 중2병스러운 길드 모임에 들어가고 가게 일을 돕느라 소개받은 여학생과 만나지 못해 울어버리는 아주 평범하고 흔한 소년이다.

 

반복할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젠젠다, 마음이 진정되는 우추추, 반대로 시간이 느리게 가는 단단디조금은 허무맹랑하고 유치하게 보이는 주문들은 운이가 힘들 때마다 마음을 버티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된다. 사실 그런 주문이 아무 효과도 없다는 것을 독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간절하게 주문을 비는 운이의 마음이 느껴져 페이지를 넘길 때 괜히 속으로 주문을 같이 외우게 된다. 젠젠다, 젠젠다. 어쩌면 이 주문들의 의미하는 건 어른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청소년들만의 어떤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어릴 때는 누구나 어디서 주워들은 이상한 미신이라거나 문방구에서 5백 원에 파는 우정 반지의 색깔 따위에 쉽게 마음을 주고 믿어버리게 되니까. 유치하고 무의미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청소년의 세상이란 그런 법이다.

 

p.201 주문들은 나를 도와 줄 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주문은 엉터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그래서 주문을 거는 거고.

 

살을 빼서 갑자기 잘생겨지고 좋아하는 학생과 이루어진다는 드라마틱한 서사는 없다. 어느날 싸움을 잘하게 되어 운이를 독수리라고 부르며 괴롭히던 아이들을 시원하게 한 방 먹이는 사이다 스토리도 아니다. 그러나 운이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사랑하는 손주가 오래 살라는 마음을 담아 매일같이 복숭아를 깎아 주셨던 할머니, 운이를 언제나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삼촌과 고모, 멀어지는가 싶다가도 운이의 편이 되어 주는 동수, 조금은 이상해 보이지만 결국은 모두가 자기의 길을 찾고 운이를 응원해주는 블랙 윈도우 길드. 아이들에게는 모두 그렇게 아이들만의 세상이 있다. 아주 특별하거나 특출나지 않아도,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세상 속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성장해간다.

 

남의 애는 금방 자란다더니 페이지가 넘어가는 동안 열셋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운이가 어느새 훌쩍 자라 열여덟이 된다. 글에 걸리는 부분이 없이 술술 읽혀서 짧은 시간에 금방 읽을 수 있다. 그 와중에도 시위하는 노동자라거나 검정고시를 택하는 학교 밖 청소년의 모습까지 섬세하게 담아내는 필력이 근사하다. 운이는 특별한 아이가 아니지만 젠젠다, 시간이 빨라지는 주문이라는 운이만의 이야기 하나에서만큼은 결국 주인공이다. 그런 점에서 꽤 다정한 소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든 소년들이 1등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세상에서는 그렇게 평범한 주인공으로, 자신만의 주문을 외우며 한 명의 근사한 어른으로 성장해가기를 바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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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오브 어스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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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2 다만 남자의 시선으로 여자 사기꾼 이야기를 만들 경우 평면적인 내용이 될 게 뻔했다.

 

장편 소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흡입력이다. 아무리 좋은 가치관과 스토리를 담고 있어도 독자를 단번에 빨아들이지 못하면 장편으로써 성공하기는 힘들다. 줄리 클라크의 투 오브 어스는 그런 흡입력이 대단한 작품이었다. 블랙 커버에 마치 영화관 조명처럼 책 테두리를 따라 어둡게 칠해진, 상당이 특이한 내지 디자인과 짧은 챕터로 여러 번 캣과 메그의 시점을 넘나드는 구성이 다소 난해할 수 있는데도 깔끔하고 매력적인 문체가 순식간에 독자를 매료시킨다. 긴박한 동시에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동시에 속 시원하다. 앉은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드라마를 읽은 기분이었다.

 

메인 주인공 메그는 엄마에게서 집을 빼앗은 론에게 복수하기 위해 사기를 치는 인물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었거나 범죄를 저지르고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은 남자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 돈을 빼앗고 그들을 추락시킨다. 또다른 주인공 캣은 그런 메그에게 복수할 목적으로 접근한 기자인데, 사실 책을 읽는 동안은 캣이 메그에게 복수하려는 이유가 조금 아리송하다고 느껴질 때도 많았다. 복수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하고 자신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는 메그보다 도박 중독 남자친구의 말을 믿을 때마다 갑갑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말을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입체성이 캣을 더 현실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두 주인공은 완전히 무결하거나 막연히 도덕적이지 않다. 속고 속이고, 때로는 비윤리적이고 답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고 앞으로 나아간다.

 

p.407 어른이 된 나는 이 나라의 사법 제도가 둘로 나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론 애시턴 같은 부유한 백인 남자에게 적용되는 법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투 오브 어스의 첫 페이지는 다음과 같은 대사로 시작한다. “우리는 연약하지 않아. 남자에게 기대서 얻는 안락은 필요 없어. 너와 내가 힘을 모아 바라는 걸 쟁취하면 돼. 오직 우리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어.” 줄리 클라크의 글은 언제나 이 목소리를 담고 있다. 여성들은 연약하지 않다. 오직 그들 스스로만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구원을 위해 남자에게 기대야 할 필요가 없다. 어렵고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여성학 도서가 아닌 쉽게 읽히는 드라마틱한 서사의 소설에서 이런 메시지를 준다는 점이 꽤 근사하게 여겨졌다. 희망과 연대, 재미와 스릴을 동시에 전하는 작품이다.

 

메그가 그런 사기로 그들을 심판해야 했던 까닭은 법이 그들을 심판해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로즈의 집을 빼앗고도 떵떵거리며 살아온 론, 크리스틴이 학교를 떠나게 하고도 여전히 교사직에 있는 코리, 아내를 폭행하고도 재산분할을 해주기 싫어하는 필립. 그런 남자들이 메그에게 속아 넘어가 사회적 명성이나 부를 잃는 모습을 보면 독자들은 통쾌해지고 웃음이 나온다. 더 글로리모범택시처럼 사적 제재를 통한 복수를 그려낸 작품들이 흥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국가가, 법이, 사회가 약자를 향한 폭력을 암묵적으로 눈감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자의 편에 선 사회가 지쳐 창작물로나마 그런 속시원한 복수극이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너무나도 매력적인 여성의 복수극 투 오브 어스를 추천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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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연약하지 않아. 남자에게 기대서 얻는 안락은 필요 없어. 너와 내가 힘을 모아 바라는 걸 쟁취하면 돼. 오직 우리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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