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폰, 그대는 행복은 사치와 낭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구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신적이고 되도록 적게 필요로 하는 것이 신적인 것에 가장 가까우며, 신적인 것이 최선이고 신적인 것에 가까운 것이 차선이라고 생각하오.한창 읽던 중인데 1권 6장 안티폰과의 대화 부분에서 에리히 프롬이 떠올랐다. 자아와 가짜 자아의 차이는 결국 자신에 대해 무얼 아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무지를 인정할 때 비로소 앎이 시작된다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아니 절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보다 웃기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빵 터지는 중. 크세노폰의 글이 플라톤에 비해 저평가 받은 이유를 알 것 같지만 너무 재미있다. 소크라테스의 턱은 괜찮았을까? 말 많은 거 하면 빠지지 않는 내가 20년 전에 룸메이트랑 저녁부터 해가 뜰 때까지 떨던 수다가 그친 것은 목이 아파서가 아니라 턱이 아파서였는데. 모른다는 것을 아는, 영혼을 돌볼 줄 알았던 사람. 크세노폰과 플라톤의 글에서 서로 다른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다가가지 않고 저마다 다르게 접근했던 그의 대화법에 따른 차이 같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소크라테스와 빨간머리 앤과 함께 이야기하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턱만 괜찮다면 며칠이고 멈추지 않을 만큼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여성의 출산과 양육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다시 한번 놀랐다. 고대 그리스의 편견에서 벗어나는 그 말은 산파였다는 어머니의 영향일까? 소크라테스 알면 알수록 궁금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