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바람 속 끝까지 남는 것은 대나무의 정신이어라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
오주석 지음 / 월간미술 / 2009년 4월

요 근래 오주석 선생님 책을 집중적으로 읽고 있다. 몇 권 되지 않는 도서목록에 조금 슬퍼진다. 그래도 그 많지 않은 책에 들어간 공력과 시간이 아주 잘 느껴진다. 이 책의 분량은 많지 않다. 일간지에 연재되던 글인만큼 여백 많은 디자인이 아니었다면 아마 더 얇은 책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글이란 게 양이 많다고 좋은 것도 아니요 정성이 더 들어갔다 여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짧은 글로 소개되는 그림들은 그 전 책들에서도 본 것이고 다른 책에서 본 내용과 비슷한 부분도 많다. 하지만 완전히 같은 글은 없으니 선생님의 글이란 글은 다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아직도 줄지 않는다. 이것 또한 집착일 터인데. 

<그림 속에서 노닐다>였던가. 강연과 연재 등으로 많은 사람을 만난 선생님이, 자신의 그림 해석에 이의를 제기했던 분들과의 인연을 소개한 적이 있다. 다른 책에서도 몇 번 반복이 되기도 했고. 아무튼 그 분들 덕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그림을 새롭게 혹은 더 깊게 보게 되었다 고백하셨는데, 그 가운데 하나였던 <월하정인>의 '조각달'에 관한 내용이 이 책에 나와 있었다. 그 부분을 확인하는데 괜히 혼자 마음이 들떠서ㅋㅋㅋ 여백 많은 디자인 편집도 마음에 든다. 책 두께를 늘리려는 얄팍한 속임수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간지에 연재된 짧은 글을 긴 호흡으로 여유를 느끼며 읽을 수 있었다. 넉넉함이 느껴졌다고 할까. 

어느 그림 하나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이 없고 마음을 빼앗기지 않은 것이 없지만, 책을 덮고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탄은 이정의 '풍죽도'였다. 바람에 휘날리는 대잎, 분명 그림이건만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보면 얼마나 멋질까. '거친 바람 속 끝까지 남는 것은 대나무의 정신이어라'는 선생님의 글은 또 얼마나 가슴을 치던지. 그 구절을 고스란히 선생님께 돌려드리고 싶었다. 스산한 인생 속에서 우리 그림, 우리 문화를 사랑했던 선생님의 마음은 끝까지 남았다고. 선생님의 글 한 편 낱말 하나에서 백 마디로도 못할 진정이 느껴졌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