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정체(政體) - 개정 증보판 헬라스 고전 출판 기획 시리즈 1
플라톤 지음, 박종현 옮김 / 서광사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황상 전체가 아니라 여성에 대해 언급했던 4장과 5장을 중심으로 읽는다. 플라톤이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하여 여성에게 우호적이며 사람에 따라 여성주의자로 불리는 것을 비판하는 논문을 함께 읽었다.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기에 판단보다는 그저 그 모든 논쟁이 재미있을 뿐이다. 그런데 4장을 읽으며 새로운 형식의 시가를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어 강하게 비판하는 플라톤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정조의 문체반정이 떠올랐다. 개혁군주이면서도 보수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이는 정조처럼 플라톤은 여성이 사회지도층이 될 수 있고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면서도 죄 지으면 다음 생에 여자로 태어난다는 식으로 당대의 편견을 고스란히 보여 주기도 한다. 두 사람 모두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기면서도 지금 보기엔 왔다갔다 하는 것 같은 공통점이 있다고 느꼈다. 당시 세상의 병폐를 누구보다 절감하며 변화를 꿈꾸었지만 두 사람 모두 그 이상적인 세상을 과거에서 찾았기 때문일까? 플라톤과 정조의 삶을 따라가다보면 어떤 절박함 같은 게 느껴진다. 그들은 주류 남성이었지만 자신을 주류로 대하는 세상이 불완전하다 느끼며 그것을 바꾸고자 했다. 플라톤이 여성에 대한 금기를 깨고 정조가 신분제를 넘어 서얼을 등용한 것은 어쩌면 오늘날의 평등 사상보다는 한시라도 급한 개혁을 위해서는 당대의 차별이고 뭐고 쓸만한 사람부터 찾아 골라서 함께해야 한다는 다급함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많은 것을 가진 현재에 만족하기보다 변화에 대한 의지가 훠~~~얼씬 컸던 것 같다. 플라톤과 비교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에 대해 훨씬 단호하게 차별을 고수하는데 그의 사상을 보다보면 대중교육 어린이 교육 등 오늘날 교육의 기회균등에 가까운 모습들이 보여서 또 뭐라 단정하기 어렵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가까웠지만 저물어가는 아테네에서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스승이 부당하게 죽음을 맞르며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자신의 이상을 펼치려했던 기회는 세 차례나 무참히 좌절했던 플라톤의 슬픔은 안테네에 사는 똑똑한 외국인으로 겪어야 했던 차별이 만든 것과는 또 결이 다르기에 그들의 경험도 생각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차이로 플라톤은 절박하게 과거에서 미래를 찾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보다는 좀 원만하게 미래를 바라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나 저러나 나는 2000년이 훨씬 지나 아이 하교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는 양육자이니 그들 생각과 처지를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하지만 한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는 언제나 그들이 몸담은 사회가 함께하기에 그것을 같이 봐야 한다는 건 알겠다. 위대한 이성과 지성으로 큰 성취를 이뤘지만 그들 역시 불완전한 세상을 살아간 사람이기에 완벽하지는 않았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줄기의 전후가 어떻게 지금으로 이어지는지 함께 살피며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월요일은 4교시라 다른 날보다 아이가 일찍 온다. 이제는 지나갔기에 짧게만 느껴지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분명 긴 시간 속에 많은 것들이 교차했다. 과거를 납작하게 보지 않아야 막연한 환상도 배척도 하지 않을 수 있다. 한 사람의 삶도 그러하니 세상은 오죽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