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을 딛고 믿음으로 - 불확실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
필립 라이큰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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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나님을 의심하나요?”
라는 질문을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받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할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의심’한다는 것은 다소 금기 사항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앙의 연수가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찬양 속 가사처럼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찬양하는’ 확신에 찬 믿음으로만 살아갈까?

‘이렇게 하나님을 의심해도 괜찮을까?’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으로 서문을 여는 이 책은, 의심을 통해 믿음이 성장한 성경 인물 열 명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의심을 품는 것’에 대해 ‘믿음이 없음’이라 말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임을 여러 ‘믿음’의 선조들을 통해 보여 준다. 이 책의 각 소제목들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의심하는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약속, 소명, 보호, 후하심, 공의, 돌보심, 치유, 부활의 능력을 의심(했거나)하는 존재이다. 저자는 ‘우리의 의심을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식으로 그 의심을 다루’고자 한다(59쪽).

의심과 믿음은 서로 동떨어진 영역이 아니다. 저자가 인용한 필립 얀시의 표현이 아주 인상적이다. 우리는 ‘믿음의 국경지대’에 서 있다. 우리는 ‘의심하는 신자’이며, 믿음과 회의주의 사이를 자주 오가는 존재다. 믿음과 의심은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 아니라 조광기를 조절하는 것과 비슷하다(173쪽). 책에서 인용된 키스 존슨의 표현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의심은 믿음의 반대말이 아니다. 의심은 그리스도인들이 이해의 한계 밖으로 과감히 나아갈 때 나타나는 믿음의 한 형태일 뿐이다.’ (174쪽)

‘요한의 목표는 도마를 악한 의심을 품은 자, 절대 따르지 말아야 할 본보기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요한은 도마를 그리스도인의 모범으로 제시한다.’ (195쪽)

돌이켜 보면, 나의 믿음이 바닥을 친 때는 거센 풍파에 부딪혀 허덕일 때이기보다 오히려 내가 ‘선 줄로 여겼을 때’(고전10:12)였다. 거센 풍파를 만나면 물론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자연스럽게 주님을 바라보게 된다. 의심할 겨를이 없다. 빠지면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빠지기 직전에는 주변을 바라보고 의심하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에 제시된 베드로의 예가 그렇다. 그러나 믿음과 의심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까닭은 베드로가 물에 빠지기 직전에는 물 위를 걸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저자는 베드로의 이 발걸음을 ‘닐 암스트롱의 발걸음을 포함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과감한 발걸음’으로 표현하고 있다(207쪽).

성경은 믿음의 선진들이 사실은 의심하는 자들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흠이 없는 순전한 믿음을 가져서 성경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의심 위에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을 믿음의 자리로 이끌어 내었음을 성경은 보여 준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믿음을 위해 계속해서 싸우라고 격려하는 이야기’다(48쪽).

우리는 성경에 대한 확신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살 길은 오직 말씀을 굳게 믿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는 ‘의심하는 것을 의심’하라고 강력히 권한다.

‘우리의 의심을 의심하는 것. 이것은 때로 예수님을 믿기 힘든 모든 사람을 위한 건강한 마음의 습관이다.’(219쪽)

예수님은 물에 빠진 베드로를 건져 주신 후에 이렇게 질문하셨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마14:31)

예수님을 인격적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예수님에 대한 의심이 합리적일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의심하는 기적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의심해야 할 것은 복음이 아니라 ‘사탄이 우리로 하여금 믿게 만들려는 모든 것’(220쪽)이 되어야 할 것이다. 책에서 인용된 설교자 톰 스키너의 말에 큰 공감이 된다.

‘의심스러운 것들을 이해하려고 오랫동안 애쓰던 나는 믿는 것들을 보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다.’ (220쪽)

유다서 22절은 이렇게 권면한다.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의심은 정죄 받을 태도라기보다는 믿음의 한 걸음을 떼기 위한 아기의 넘어짐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의심하는 태도만을 유지해서는 걸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과 같이 의심을 ‘딛고’ 믿음으로 걸어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많이 생각났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으려는 세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려고 애쓰지만 의구심이 들고, 그런 의구심을 드러내려 해도 터부시 되는 현실 속에서 주저하다 믿음의 길을 벗어날까 염려스럽다. 이들을 예수님의 사랑과 긍휼로 품어 안아주는 믿음의 선배들이 교회 공동체에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부모와 교사, 목자 등의 리더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늘 주님 앞에 믿음이 부족한 자였고 지금도 그러함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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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 재 - 아편의 감춰진 이야기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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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없는 무역도 무역 없는 전쟁도 있을 수 없다.” (얀 피터르스존 콘, 네덜란드 식민지 개척자, 이 책 146쪽에서 인용됨.)
인간 문명의 역사는 교류와 전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둘은 언뜻 상반된 것 같지만 실상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물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 문명의 핵심적인 물건들은 단순한 물건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책에서 인용된 미국의 역사가 윌리엄 매컬리스터(William B. McAllister)의 표현대로 ‘그 자체로 하나의 행위자’인 셈이다.

‘아편’이라는 소재는 그중에서도 독특하면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의약품 또는 마약류라는 점에서 독특하며, 근현대 제국주의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런데 제국주의라는 소재는 동양과 서양의 대립이지만 그 역사적 기록의 축이 서양에 치우쳐 있어서 이것을 동양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료는 가치가 있다.

아미타브 고시의 『연기와 재-아편의 감춰진 이야기』는 저자가 소설 『아이비스 3부작(Ibis Trilogy)』을 쓰면서 조사했던 자료를 바탕으로 아편이 현대 세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책이다. 말하자면 소설가의 눈으로 바라본 제국주의의 민낯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아편 무역이 단순한 약물이나 상품을 넘어서서 제국주의의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동양 국가들에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강요했던 대표적인 사례임을 제시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가족사를 비롯한 경험의 측면(주관)과 역사적 자료(객관)가 적절히 결합되어 복잡다난한 아편 무역의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은 점이 이것이다. 주로 제국주의의 피해자인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경험과 증언 등의 기록이 중심을 이루어 그들 국가들이 경험한 피해들을 감정적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고, 제국주의의 가해자였던 국가들은 그들의 입장을 여러 이론과 편향된 역사적 자료로 정당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둘 사이의 균형을 적절히 이루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역사교사의 입장에서 이 책은 ‘제국주의’라는 거대 담론을 세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중학교 교육과정에서도 ‘아편’이라는 소재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대영제국이 청나라와의 두 차례 전쟁을 통해 중국을 무너뜨리는 과정은 우리 역사의 흐름에도 아주 상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편이라는 소재가 식민지화를 겪는 나라들의 상호 관계에 영향을 주는 부분까지는 다루지 못하기 마련이다. 중국과 인도의 긴장관계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만, 이정도까지를 수업시간에 접근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중심적인 세계사교육을 벗어나고자 하는 차원에서, 이 책에 나타난 다층적인 인식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다. 이 책에서 인용된 파시교도 인도인 다다바이 나오로지의 『인도에서의 빈곤과 비영국적 통치』(1901)에서 살펴볼 수 있는 식민지 아편 무역 반대론이나, 고팔 크리슈나 고팔레의 “나는 사실상 중국인의 타락과 도덕적 파탄에서 비롯된 이러한 아편 수익을 떠올리면 언제나 깊은 굴욕감을 느낀다.”는 언급은 탐구활동 과제로 사용하기에 적절해 보인다.

역사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학생들이 역사교사의 판단을 요구하는 질문을 자주 한다. “이 사람은 착한/나쁜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우리는 ‘피아식별’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인식이 이항대립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의 모양은 매우 다층적이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그렇다. 영국과 인도, 영국과 중국이라는 두 축을 비교하면 간단해 보인다. 그러나 영국 내부, 중국 내부, 인도 내부의 각 사회 계층으로 들어가면 어떨까? 영국과 중국의 경우에도 아편 전쟁 이전의 불균등한 무역 구조에 대해서는 어떨까? 위의 언급과 같이 인도와 중국간의 관계는? 이렇든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역사적 판단력을 요구하는 질문은 교사와 학생 모두의 역사인식 변화에 유효하다.

아편 무역은 지나가 버린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대 영국, 중국, 인도를 비롯한 주요 제국주의 국가와 정복을 당한 국가들 사이에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아편 무역 구조를 생생하게 바라봄으로써 국제 사회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이해를 갖추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마약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을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는 작업이 될 것이다.

#연기와재 #아마타브고시 #아편무역 #Smoke_and_ashes #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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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믿음이 필요하다 - 종교는 있지만 진짜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강정훈 지음 / 두란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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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종교의 시대, 탈기독교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이란 무엇인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있어 반드시 나름의 대답을 가져야 하는 질문이 되었다. 저자는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고별 설교를 하던 모세의 심정으로 자신이 목회한 교회의 성도들을 포함한 한국 교회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믿음의 본질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무신론자의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무신론조차도 하나의 ‘믿음’이라는 역설 아래 여러 종교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진정한 ‘행복’을 얻는 방법은 오직 기독교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논증하고 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히11:1)라고 성경에서 정의되는 믿음에 대해 이 책은 수용, 동의, 의존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이 세 단어는 모두 믿음의 ‘내용’보다는 ‘대상’이신 하나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구원이 인간의 노력과 공로를 통해 얻어지고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따른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정립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믿음은 결과라기보다는 하나의 여정이다. 책에 인용된 “믿음은 계단 전체를 보지 못하더라도 한 발짝 내딛는 것이다.”라는 마르틴 루터 킹의 말(95쪽)처럼 기독교의 믿음은 맹신(盲信)과 인지(認知)의 그 어디쯤에 위치해 있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어디로 길을 가는지 다 알지 못하더라도 부모님을 신뢰하기에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듯이.

그래서 이 책에서는 나만의 ‘신앙고백’과 ‘간증’을 강조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으로는 고백이 나올 수 없다. 말로 그치고 삶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간증’이란 다른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내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을 나의 언어로 얼마나 고백할 수 있느냐는 하나님을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만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표현할 수 있다. 나의 간증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이 나의 삶을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 자체는 나와 공동체 가운데 확증할 수 있다. 한국 교회의 동력이 약해지게 된 계기도 바로 이런 신앙고백과 간증 대신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예배를 통해 얻어지는 나의 만족이라는 감정적인 요소가 더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끝으로 저자는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 특히 근현대사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한국 역사에 교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저자의 질문은 그래서 중요하다.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역사와 현재를 조금만 살펴봐도 쉽게 답변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기에 ‘비난을 멈추고 느헤미야의 영성을 되찾자’는 저자의 고언은 정말로 새겨들어야 한다.

‘똥오줌 묻은 아기를 씻겨 보니 대야의 물이 더러워졌다. 더러운 물을 버린다는 것이 대야의 아기까지 던져 버렸다. 그러면 아기를 씻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255쪽)

‘이미’와 ‘아직’의 혼재 속에 살아가는 말세의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한 것이 믿음이다. 존 파이퍼가 강조한 ‘구원하는 믿음’이 우리에게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한 시기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그 믿음이 나를 정말로 구원하는가? 나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고 있는가? 나의 고백과 간증은 살아있는 고백과 간증인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지금,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며, 세상 풍조에 떠내려가지 않는 든든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라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특히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자 하는 사명을 받은 부모와 교회의 제직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래도믿음이필요하다 #강정훈 #두란노 #두란노서평단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기독교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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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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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는 기록에 묻혀 있는 역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역사학도에게 답사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의 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홍준 선생님의 답사기 시리즈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전의 책들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답사기의 특장점이 전문적이지만 마냥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생생한 문화유산 내러티브와 그 속에 녹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자서전에 가깝다 할 정도로 저자 본인의 인생이 잘 드러나 있다. 장르상 잡문으로 분류하긴 했지만, 독자로서는 저자 본인의 인생 답사기라 느껴질 정도였다.

1장과 3장은 여러 분야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글들을 엄선해 놓았다. 담배, 잡초, 꽃, 바둑, 예술, 고서점, 어머니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1장_인생만사]는 저자의 표현대로 ‘인생이 녹아’ 있다. [2장_문화의 창]을 통해서는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저자의 이력답게 과거-현재-미래를 아울러 우리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관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100년 뒤 지정될 국보․보물이 있는가’에서는 과거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행적인 시각을 깨는 하나의 울림이었다. ‘국토를 아름답게 가꾸며 삶을 건강하게 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104쪽 중에서)이라는 지적은 숨가쁘게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우리 사회가 한번 쯤 멈추어 생각할 가치가 충분하다 생각한다. [3장_답사 여적]도 그와 마찬가지로 북한, 중국, 일본 등 우리와 가까운-그러나 상당히 복잡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나라를 답사하며 느낀 바를 저자 특유의 내러티브로 서술하고 있다.

[4장_예술가와 함께]와 [5장_스승과 벗]은 저자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일단 저자가 이만큼 많은 현대사의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과 직접적인 교류를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문사답게 이분들의 인생에 대한 추도사를 많이 남기셨는데, 저자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누가 어떤 글을 쓸지도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부록: 나의 글쓰기]에는 글쟁이로서 사회에서 요구받은(?)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쓴 것이다. 요즘에는 SNS나 브런치 등 작가라는 개념이 더 보편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보통 사람의 글쓰기가 어느 때보다 각광받는,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양질의 글을 읽고 싶은 욕구도 동반 증가하는 시점에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조언은 상당히 유익하다. 좋은 글을 읽고 필사하고 모방하는 가운데, 자신만의 문체를 형성하면서도 ‘글이란 내가 아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것’(302쪽 중에서)이라는 저자의 대전제를 유념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글쟁이, 유홍준 선생님의 글을 앞으로도 많이 많이 읽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나도 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나의 생각과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다. 유홍준 선생님의 글을 사랑하고, 그런 글쓰기를 희망하는 독자 겸 작가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유홍준 #나의인생만사답사기 #에세이추천 #북스타그램 #유홍준잡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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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날이 은혜스럽다 - 오늘의 행복을 나누어 드립니다
김병삼 지음 / 두란노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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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감사의 달이다. 추수감사절이 있기도 하고, 1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접어들면서 지난 한 해를 조금씩 되돌아보게 된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을 지나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더위가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는 옷깃을 여미게 되는 겨울이 오게 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당연한 것은 없다’는 명제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 책은 그래서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끌로드 모네의 그림과 콜라보를 이루는 저자의 일상의 생각들이 잘 어울린다. 왜 모네의 그림을 함께 삽입했을까? 생각을 나름 해 보았다. 인상주의는 빛의 잔상에 아주 민감하다. 그래서 특정한 시점에서 사물을 바라본 결과물을 표현한다. 그래서 아주 정밀하지는 않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여운을 가지게 만들고 특정 사물에 대해서 더욱 집중하게 된다.

저자는 대형교회 목회자라는 타이틀보다 한 명의 예배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상을 묵상하며 남긴 소소한 글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낸 신앙 에세이다. 조금은 가볍게, 그러나 일상에서의 진한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인의 관점과 태도를 이 책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화가가 작품으로 표현하는 대상물은 아주 특이한 풍경이 아니라 일상의 풍경이다. 그러나 화가는 자신만의 시선, 특유의 붓 터치 등을 통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묵상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살아내는 일상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그분의 말씀을 렌즈삼아 바라본다면 우리의 삶은 누구에게도 비견할 수 없는 하나의 작품이 될 것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다.

카터 콜론 목사님의 설교를 유튜브를 통해 접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콜론 목사가 캐나다에서 사역하던 때, 집에 돌아와 보니 불이 나서 온 집안이 다 타버렸답니다. 그런데 잿더미 속에 유일하게 타지 않은 것은 벽난로와 굴뚝이었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벽난로와 굴뚝의 벽돌이 불에 타지 않는, 오히려 불에 닿으면 더 단단해지는 소재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늘 장밋빛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상이 우리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간다.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이 좋아하시는 구상 시인의 시 ‘꽃자리’가 생각난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여러 삶의 풍경들을 글로 그려낸다. 그 자리가 기쁨의 자리일 수도, 시련의 자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빚어내는 묵상이 함께한다면, 그 자리는 어디나 꽃자리가 될 수 있다. 이것을 경험한다면, 이 책의 제목처럼 ‘모든 날이 은혜스럽다’고 고백할 수 있지 않을까?

2024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한 해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돌아보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일상에 지쳐 신음하는 청년들이 많이 생각났다. 사역의 어려움 가운데 씨름하는 교회의 목사님과 사역자들이 생각났다.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모네의 그림처럼,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는 때로 흐릿하게 보이긴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마음에 진한 여운을 남겨 준다.

#모든날이은혜스럽다 #두란노서평단 #김병삼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두란노 #신앙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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