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와 재 - 아편의 감춰진 이야기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쟁 없는 무역도 무역 없는 전쟁도 있을 수 없다.” (얀 피터르스존 콘, 네덜란드 식민지 개척자, 이 책 146쪽에서 인용됨.)
인간 문명의 역사는 교류와 전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둘은 언뜻 상반된 것 같지만 실상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물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 문명의 핵심적인 물건들은 단순한 물건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책에서 인용된 미국의 역사가 윌리엄 매컬리스터(William B. McAllister)의 표현대로 ‘그 자체로 하나의 행위자’인 셈이다.

‘아편’이라는 소재는 그중에서도 독특하면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의약품 또는 마약류라는 점에서 독특하며, 근현대 제국주의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런데 제국주의라는 소재는 동양과 서양의 대립이지만 그 역사적 기록의 축이 서양에 치우쳐 있어서 이것을 동양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료는 가치가 있다.

아미타브 고시의 『연기와 재-아편의 감춰진 이야기』는 저자가 소설 『아이비스 3부작(Ibis Trilogy)』을 쓰면서 조사했던 자료를 바탕으로 아편이 현대 세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책이다. 말하자면 소설가의 눈으로 바라본 제국주의의 민낯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아편 무역이 단순한 약물이나 상품을 넘어서서 제국주의의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동양 국가들에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강요했던 대표적인 사례임을 제시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가족사를 비롯한 경험의 측면(주관)과 역사적 자료(객관)가 적절히 결합되어 복잡다난한 아편 무역의 스토리를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은 점이 이것이다. 주로 제국주의의 피해자인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경험과 증언 등의 기록이 중심을 이루어 그들 국가들이 경험한 피해들을 감정적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고, 제국주의의 가해자였던 국가들은 그들의 입장을 여러 이론과 편향된 역사적 자료로 정당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둘 사이의 균형을 적절히 이루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역사교사의 입장에서 이 책은 ‘제국주의’라는 거대 담론을 세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중학교 교육과정에서도 ‘아편’이라는 소재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대영제국이 청나라와의 두 차례 전쟁을 통해 중국을 무너뜨리는 과정은 우리 역사의 흐름에도 아주 상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편이라는 소재가 식민지화를 겪는 나라들의 상호 관계에 영향을 주는 부분까지는 다루지 못하기 마련이다. 중국과 인도의 긴장관계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만, 이정도까지를 수업시간에 접근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중심적인 세계사교육을 벗어나고자 하는 차원에서, 이 책에 나타난 다층적인 인식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다. 이 책에서 인용된 파시교도 인도인 다다바이 나오로지의 『인도에서의 빈곤과 비영국적 통치』(1901)에서 살펴볼 수 있는 식민지 아편 무역 반대론이나, 고팔 크리슈나 고팔레의 “나는 사실상 중국인의 타락과 도덕적 파탄에서 비롯된 이러한 아편 수익을 떠올리면 언제나 깊은 굴욕감을 느낀다.”는 언급은 탐구활동 과제로 사용하기에 적절해 보인다.

역사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학생들이 역사교사의 판단을 요구하는 질문을 자주 한다. “이 사람은 착한/나쁜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우리는 ‘피아식별’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인식이 이항대립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의 모양은 매우 다층적이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그렇다. 영국과 인도, 영국과 중국이라는 두 축을 비교하면 간단해 보인다. 그러나 영국 내부, 중국 내부, 인도 내부의 각 사회 계층으로 들어가면 어떨까? 영국과 중국의 경우에도 아편 전쟁 이전의 불균등한 무역 구조에 대해서는 어떨까? 위의 언급과 같이 인도와 중국간의 관계는? 이렇든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역사적 판단력을 요구하는 질문은 교사와 학생 모두의 역사인식 변화에 유효하다.

아편 무역은 지나가 버린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현대 영국, 중국, 인도를 비롯한 주요 제국주의 국가와 정복을 당한 국가들 사이에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아편 무역 구조를 생생하게 바라봄으로써 국제 사회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이해를 갖추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마약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을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는 작업이 될 것이다.

#연기와재 #아마타브고시 #아편무역 #Smoke_and_ashes #에코리브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