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선교 - 삶으로 드리는 예배
유경하 지음 / 소망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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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일요일과 월요일의 간극'(Sunday-Monday Gap)을 느껴본 적 있는가? 물론 주말을 어떻게 보냈건 상관없이 월요일을 앞둔 직장인의 마음은 무언가에 짓눌려 있다. 이는 단순한 육신의 피곤함일 수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정신적, 영적 반응일 수 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이신데, 왜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아무런 역사가 없으신 것 같은 것일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삶의 예배자'라는 구호는 구체적으로 어떤 삶인 것인가? 직장에서 전도하고, 신우회를 조직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는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해 보았다면, <일터선교>는 이 질문의 뿌리부터 건드리는 아주 적절한 책이다.

직장인 출신 일터사역자이자 일터신학자인 저자는 '일터선교'라는 개념을 너무 편협하게 사용해왔다는 지적과 함께 일터선교'학'의 개론 수준으로 이 책을 펴냈다. 1부에서는 복음의 총체성이라는 신학적 개념 아래 복음을 따르는 성도의 삶으로서의 총체성을 이끌어내며 성도의 삶의 공간 중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일터 또한 하나님의 통치 공간임을 밝힌다. 2부에서는 일터선교의 실천적 주체인 교회, 채플린(사목), 평신도의 역할을 성경과 역사를 통해 개략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3부는 일터선교의 역사적 발자취를 밟는데, 유럽과 미국에서의 종교개혁 및 근대화 과정과 맞물린 일터선교의 확장을 한 축으로, 우리나라의 다양한 영역(군, 노동, 다문화 등)에서의 선교 역사를 또 다른 축으로 하여 일터선교의 다양한 기둥을 촘촘히 살핀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현대사회의 핵심 이슈인 AI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이 일터에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제언한다.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선교의 주체를 하나님이라고 밝혔다. 팀 켈러도 <일과 영성>에서 일은 타락 이전부터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신, 인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주된 방법임을 말한다. 그런데 교회가 이제까지 일터를 다루는 깊이는 성경적 가치에 비해 상당히 제한적이었음이 사실이다. 포스트-크리스텐덤의 시대에서 교회의 생존과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다보니, '모이는' 교회를 강조하는 데 비하여 '흩어지는' 교회는 사상적, 학문적으로도 그 기반이 약했다. 이 책을 통해 그런 흩어지는 교회의 기반을 다질 수 있어 감사했다.

저자가 인용한 글과 같이, 현대사회에서 일과 예배의 관계는 거의 '이혼' 수준이다. 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영성을 추구하지만 그 영성 안에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상황은 일터가 결코 중립적인 공간이 아님을 역설한다. 이런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어떻게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왔는가를 3부의 긴 호흡을 통해서 여러 층위로 살펴볼 수 있다. 처음에 목차를 보고 '왜 이렇게 역사적인 이야기의 비중이 높을까?' 의아스러웠지만, 책을 덮으면서는 이렇게 기독교는 자기 스스로의 가치를, 진리의 힘을 삶의 여러 자리에서 증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편승하였다는 역사적 과오 또한 기억하고, 오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이슬람화를 이룬 인도네시아의 예를 반면교사삼아 참 의미의 '일터선교'를 이 땅에서 이루어낼 필요를 느끼게 된다.

추천사와 같이 이 책은 일터사역의 경험과 신학적 연구가 조화를 이룬 책이다. 그래서 마냥 쉽게 읽히진 않지만, 찬찬히 읽으며 고민하며 곱씹어볼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진정한 시작은 책을 덮고 나서가 아니겠는가. 오늘도 각자의 삶의 자리로 파송되는 일터선교사들이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인지 자각하게 되는 출발점이 되리라 기대한다.

#일터선교 #삶으로드리는예배 #유경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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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전·허생전·호질 외 - 연암 박지원 소설 전집 ㅣ 현대지성 클래식 74
박지원 지음, 한동훈 그림, 이명현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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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수능 준비로 고전소설을 공부했다면 양반전과 허생전을 읽어보았을 것이다. <열하일기>로 유명한 조선 후기의 학자 연암 박지원은 어떠한 생각과 시선으로 이런 작품을 펴낸 것일까?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의 연암 박지원 소설 전집은 시대의 전환점 즈음에 서 있던 한 명의 사색가의 삶과 작품을 다루고 있다.

아무리 번역된 내용이라 하더라도, 당시의 용어나 사상, 문체가 다르기 때문에 고전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연암의 소설 또한 당시의 지명, 관직명, 관용구, 고사의 인용 때문에 내용을 즉각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소설을 읽는 재미가 있다. 당시 조선에 팽배했던 사대부들의 의식과는 다르게 박지원은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짧은 문장의 흐름이라는 문체의 변화에서부터 다양한 신분과 직업을 가진 주인공들과 그들이 펼치는 촌철살인의 이야기까지 시대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벼슬에 욕심을 갖지 않고 살았지만, 조선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은 강하게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학문과 글의 배경은 당연히 옛 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래서 짐짓 개혁적인 것 같은 주인공들의 언행에서도 기존 체제와 질서를 바탕으로 한 표현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머물러 안주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임에도 실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여, 마치 요즘 잘 만들어진 팩션(Fact+Fiction) 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상당한 몰입감과 현장감을 준다. 자신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것 또한 그러한 재미를 증폭시킨다. 현대의 시선에서 그 당시를 비추어본다 하여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세련된 감각이다.

선구자적 시선과 삶은 순탄하지 않다. 시대의 기득권을 따르지 않으니 부와 명예가 따라올리 없다. 당시 문예부흥을 이끌었던 정조에게서도 박지원의 문장은 고문과 다르다는 이유로 평가절하가 되었다니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김신선전에서 '신선이란 마음이 답답해서 뜻을 얻지 못한 사람이 아니겠는가.'라는 표현이 더욱 처량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젊은 시절 경험한 우울증이나 서슬퍼런 당파 싸움의 칼날을 지척에서 경험해야 했던 아픔 또한 바람 잘 날 없던 당시 조선 사회의 한복판에 그가 서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무기력한 학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의 처지와 신변의 위협과는 다르게, 그의 글과 이야기는 힘이 있었고, 분명 앞으로는 다른 세계가 펼쳐지리라는 것을 예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호질>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중원의 혼란이 맑아질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책 읽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은 꼭 고전을 읽어보기를 권하는데, 고전의 높은 문턱에 헤매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현대적 감각을 지닌 고전은 추천할 만하다. 이야기당 분량이 많지 않지만, 비슷한 주제의식으로 뭉쳐 있는 이야기들이라 옴니버스적인 느낌도 있다. 단편영화 보듯 시각적으로 상상하며 읽으면 어떨까. 마침 상상을 시각화한 삽화도 곁들여져 있고, 당대의 민화도 수록되어 있으니 금상첨화다.

박지원의 문장을 읽으며, 이 시대의 실학은 어떠한 학문이어야할지도 생각해본다면 더욱 뜻깊을 것이다.

#연암박지원 #고전소설 #현대지성 #양반전_허생전_호질_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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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출근 수업 ㅣ 하나님의 수업
서창희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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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나는 직장인 13년차, 두 번째 육아휴직 중이다.
(당연히) 육아를 목적으로 하는 휴직인데, 처음 육아휴직을 할 때 주변에서 '휴직 때 뭐 할거냐?'고 많이 물어봤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육아휴직을 할 때는 보통 이직 준비를 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내가 속한 직업군은 다행히도 그런 분위기에서는 자유롭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쉼'을 명분으로 다음 '일'을 준비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내가 쉬고 있는데 굳이 읽을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쉴 때 읽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상에 쫓기며 살아갈 때는 주변을 둘러보거나 내 삶을 천천히 관조하기 쉽지 않다. (그런 중에 이 책을 집어든 분이 있다면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육아의 현장도 사실 만만치 않은, 계속되는 출근터이므로 지금의 나에게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개혁주의 신앙의 출발은 근대 사회의 태동과 깊은 관계가 있다. 더 나아가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삶의 목적은 노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하나님이 일하니시 나도 일한다'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수직적인 거룩을 강조하는 교회의 분위기는 '모이는 교회'는 강조하되 '흩어지는 교회'는 살피지 못하는 한계를 가져왔고, 나 또한 청년 때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향성을 잡지 못해 적잖은 고민을 해야 했다.

이 책은 직장인 출신 목회자의 글이라는 점에서 힘이 있다. '일'이 가지는 성경적인 의미를 짚으면서, 커리어의 전환이나 일터에서의 관계 등 직장인과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고민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과 성경적인 원리를 동시에 제시하기에 일반 목회자의 글보다 설득력이 있다.

물론 이 책은 모든 직장인들의 물음에 답을 해 줄 수 있는 만능 도구는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내가 커리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커리어를 나 대신 이미 준비하셨다."(16쪽 중에서) 그렇다면 나의 질문은 "나는 무엇을(어떤 직업을) 하고 살까?"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조금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하나님 은혜 100%, 나의 노력 100%' 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무시하는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강조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나의 무력감을 반대하는 말이다. 하나님이 나의 삶을 이끌어가신다는 확신 아래 있는 사람은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경영할 수 있다.

이 책의 자매품으로 [현장 실천편] 책이 있다. 본 책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고, 자신의 삶을 점검할 수 있는 질문과 소그룹에서 나누기 좋은 질문들이 제시되어 있다. 자신의 진로를 설계하는 청년들은 이 두 책을 통해 성경적인 직업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직장인들의 경우에는 이제까지 자신의 직업관을 돌아보고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예배당을 나선 뒤에 때로 내가 삶의 전선에서 홀로 서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기억하자. 하나님은 늘 나와 함께 하신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충분히 하나님은 영광 받으실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는 내가 삶의 예배자로 준비할 차례다.

#하나님의출근수업 #하나님의출근수업_현장실천편 #서창희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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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복궁 여행 - 조선 최고 전성기 경복궁을 거닐다 ㅣ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17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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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살면서 이사를 6번 했다. 50년도 안 살았으니 적으면 적고 많으면 많다. 태어나서 처음 살았던 아파트 주변을 어쩌다가 지날 때면, 옛 정취는 사라지고 많은 것이 바뀌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의 왕의 집인 궁궐은 어떨까? 500년이 넘는 조선 역사에서 현재 남아있는 궁궐만 5개이며, 각 궁궐의 건물 하나하나마다 조선 왕실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으며, 지금 남아 있는 궁궐의 모습은 당연하게도 조선의 처음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차이가 있다면 내 어릴 적 집은 지금 내가 사는 집보다는 (다행히도?) 좁지만, 조선의 왕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는 것.

황윤 작가의 이번 여행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아주 익숙한,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모르는 것이 많은 경복궁의 '처음'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도 경복궁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경복궁이 조선 역사의 풍파를 그대로 맞은 곳이어서,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그 모습이 상당히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궐의 아기자기함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창덕궁을 늘 최고로 손꼽았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창덕궁의 고즈넉함은 마치 조선이라는 흩어진 퍼즐과 손상된 부품들을 여기저기 끌어모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면, 경복궁의 웅장함 속에 공허함은 조선 역사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혼자 경복궁 여행>에서 떠나는 '조선 초기' 경복궁으로의 여행은 의미가 있다. 흔치 않은 조선 초기의 회화를 비롯한 여러 문헌들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실마리로 경복궁의 처음 모습을 그려 나가는 모습은 마치 문화유산 발굴 현장에서 조심스럽게 붓질을 해가며 유물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과정과 같다. 잃어버렸던 퍼즐 한 조각을 찾았을 때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며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경주 왕릉을 여행하며 왕릉을 바라보는 것보다 왕릉'에서'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뷰라는 것을 깨닫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궁궐도 그렇게 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껏 궁궐을 답사하면서는 시민, 신하, 백성의 시선으로 궁궐을 바라보았는데, 궁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는 왕의 시선으로 보는 안목이 갖춰지면 좋겠다.

이 책의 부제와 같이 '조선 최고 전성기 경복궁을 거닐다' 보면 우리가 아는 세종대왕이 더 위대해 보일 것이다. 세종은 정말이지 조선의 모든 것을 갖춰낸 왕임을, 조선의 후대 왕들은 세종의 유산으로 200년을 넘게 먹고 살았음을(아니 그 이후에도) 알게 된다.

복잡한 우리 몸의 여러 기관과 조직 중에서 필요 없는 곳이 없듯, 궁궐의 수많은 건물과 작은 공간 하나까지도 아무 이유 없이 있는 곳은 없다. 이 책을 따라 궁궐을 거닐다 보면 자연스럽게 궁궐의 하늘, 땅, 바람, 나무, 꽃 하나까지도 조선의 역사와 함께한 역사의 증인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올해 벌써 경복궁을 2번 다녀왔는데, 2주 뒤에 다시 답사가 예정되어 있다. 책과 함께 더 즐거운 답사가 될 것을 기대해본다.

#일상이고고학
#나혼자경복궁여행
#황윤
#궁궐답사
#책읽는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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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은 맞는 말일까? - 청소년을 위한 미국 역사 바로 보기, 2026 상반기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선정
록샌 던바-오티즈 지음, 권상철 옮김, 진 멘도사 외 편저 / 공명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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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어떤 학문이든 개념 정의가 중요하다. 역사에서도 어떠한 집단이나 사건을 어떻게 이름짓냐에 따라 인식의 자세가 달라지기 때문에, 용어를 둘러싼 논의는 하나의 '세계관 전쟁터'가 된다. 이른바 '낯설게 보기'의 시작점이 개념 재정의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도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 역사에 대한 낯설게 보기이며, 일종의 뒤틀기다. 최근 한 작가가 '나는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봤는데, 그렇게 보니 비로소 세상이 바로 보이더라'는 말을 했다. 기존의 역사 인식을 뒤틀어서 바로잡아지는 부분이 있다면, 처음의 인식이 뭔가 뒤틀려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의 역사가 록샌 던바 오티즈가 소외된 사람들의 관점에서 미국 역사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여섯 권의 <재해석>(ReVisioning) 시리즈 중 세 번째 책인 <미국 원주민의 역사>(An Indigenous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진 멘도사와 데비 리즈가 청소년 버전으로 각색한 <청소년을 위한 미국 원주민의 역사>(An Indigenous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for Young People)를 미국 건국 250주년에 맞춰 한국어판으로 출간한 것이다.

나는 원주민으로 번역된 '인디저너스'(Indigenous)라는 용어를 캐럴라인 도즈 페넉의 <야만의 해변에서>(On Savage Shores, 까치 역간)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Naming is Framing'이라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으나, 이번 책을 통해서는 소위 '미국사'라는 것이 얼마나 기득권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가득한지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 책은 미국의 역사서술이 '정착민 식민지주의'에 의해 기록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고발한다.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백인-앵글로색슨족-개신교인)로 대표되는 집단이 '발견', '최초', '개척'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 이전에 대륙에서 살고 있었던 수많은 Nation을 억누르고 쫓아내고 죽였는지를 밝힌다. 미국 정부는 연방 정부와 그 아래 속한 시민의 정체성을 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공존이 이루어지는 이른바 'Salad Bowl'이라 말하지만, 소외된 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다양성을 하나의 미국이라는 틀에 녹여내는 'Melting Pot' 즉, 용광로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바라보는 미국 역사의 정의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미국의 역사는 주권을 가진 원주민 부족들이 정착 식민주의 세력에 맞서 끊임없이 저항해 온 이야기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는 여러모로 전무후무하다. 분명히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탄생과 그 성장 과정에서는 미국에서만 찾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 또한 오늘날의 다원주의적인 시각에서 미국 개척의 역사를 오롯이 평가하는 것도 마냥 옳다고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다양성이 올바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집단의 옳음을 가지고 다른 집단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일을 올바르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한 원주민 역사가의 이야기를 인용하는데, 이는 식민주의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곱씹어볼 만하다.

"한 원주민 역사가는 '살아있는 사람은 조상이 한 일에 책임이 없지만, 과거의 산물인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1492년 10월 12일, 항해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현재 바하마 제도에 있는 산살바도르 섬에 도착하며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딛었다. 미국과 중앙 아메리카의 일부 국가들은 이 날을 콜럼버스의 날로 정하고 기념해 왔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원주민 학살, 노예화, 문명 파괴 등의 인식이 확산되면서부터는 이 날을 '발견의 시작'이 아닌 '침략의 시작'으로 보고,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로 대체하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미국 행정부의 주인이 바뀜에 따라 정책적으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미국 내에서는 원주민에 대한 이슈가 뜨거운 감자라는 말이다.

다양성에 대한 여러 입장을 뒤로 하고서라도, 역사의 주체가 다양해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점차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이 있다면 공감하고, 문제가 있다면 해결책을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이 그러한 자세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고 하지만, 원주민이 당한 폭력에 대한 서술은 다소 수위가 높다. 그만큼 그들이 겪은 역사가 처절했다고 이해하면 좋겠다.

요즘 AKMU의 앨범이 화제다. 컨트리 장르를 중심으로 화해와 환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아픔의 역사를 넘어 개척자와 원주민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그야말로 '소문의 낙원' 아니겠는가.

#아메리카신대륙발견은맞는말일까 #록산던바오티즈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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