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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전·허생전·호질 외 - 연암 박지원 소설 전집 ㅣ 현대지성 클래식 74
박지원 지음, 한동훈 그림, 이명현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5월
평점 :
[도서협찬]
수능 준비로 고전소설을 공부했다면 양반전과 허생전을 읽어보았을 것이다. <열하일기>로 유명한 조선 후기의 학자 연암 박지원은 어떠한 생각과 시선으로 이런 작품을 펴낸 것일까?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의 연암 박지원 소설 전집은 시대의 전환점 즈음에 서 있던 한 명의 사색가의 삶과 작품을 다루고 있다.
아무리 번역된 내용이라 하더라도, 당시의 용어나 사상, 문체가 다르기 때문에 고전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연암의 소설 또한 당시의 지명, 관직명, 관용구, 고사의 인용 때문에 내용을 즉각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소설을 읽는 재미가 있다. 당시 조선에 팽배했던 사대부들의 의식과는 다르게 박지원은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짧은 문장의 흐름이라는 문체의 변화에서부터 다양한 신분과 직업을 가진 주인공들과 그들이 펼치는 촌철살인의 이야기까지 시대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벼슬에 욕심을 갖지 않고 살았지만, 조선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은 강하게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학문과 글의 배경은 당연히 옛 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래서 짐짓 개혁적인 것 같은 주인공들의 언행에서도 기존 체제와 질서를 바탕으로 한 표현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머물러 안주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임에도 실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여, 마치 요즘 잘 만들어진 팩션(Fact+Fiction) 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상당한 몰입감과 현장감을 준다. 자신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것 또한 그러한 재미를 증폭시킨다. 현대의 시선에서 그 당시를 비추어본다 하여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세련된 감각이다.
선구자적 시선과 삶은 순탄하지 않다. 시대의 기득권을 따르지 않으니 부와 명예가 따라올리 없다. 당시 문예부흥을 이끌었던 정조에게서도 박지원의 문장은 고문과 다르다는 이유로 평가절하가 되었다니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김신선전에서 '신선이란 마음이 답답해서 뜻을 얻지 못한 사람이 아니겠는가.'라는 표현이 더욱 처량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젊은 시절 경험한 우울증이나 서슬퍼런 당파 싸움의 칼날을 지척에서 경험해야 했던 아픔 또한 바람 잘 날 없던 당시 조선 사회의 한복판에 그가 서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무기력한 학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의 처지와 신변의 위협과는 다르게, 그의 글과 이야기는 힘이 있었고, 분명 앞으로는 다른 세계가 펼쳐지리라는 것을 예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호질>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중원의 혼란이 맑아질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책 읽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은 꼭 고전을 읽어보기를 권하는데, 고전의 높은 문턱에 헤매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현대적 감각을 지닌 고전은 추천할 만하다. 이야기당 분량이 많지 않지만, 비슷한 주제의식으로 뭉쳐 있는 이야기들이라 옴니버스적인 느낌도 있다. 단편영화 보듯 시각적으로 상상하며 읽으면 어떨까. 마침 상상을 시각화한 삽화도 곁들여져 있고, 당대의 민화도 수록되어 있으니 금상첨화다.
박지원의 문장을 읽으며, 이 시대의 실학은 어떠한 학문이어야할지도 생각해본다면 더욱 뜻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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