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할 용기 - 주저앉은 나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이야기
라영환 지음 / 두란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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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다시 시작할 용기 (라영환 지음, 두란노 펴냄)

📖 p.58
"용기는 두려움에서 생긴다. 용기가 필요한 시점은 두려움이 가득할 때다. 용기는 위대하지만 두려움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두려움을 넘어 순종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대 사회를 '불안사회'라고들 말한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불안하다. 사람들은 어디엔가 믿고 의지할 구석을 원하는데 '언제 어디서나' 믿을만한 존재는 없다고 여기기에 더욱 불안함을 느낀다. 구속이 없는 존재로서의 자유를 추구하고 갈망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사람들은 만족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면서 아름다움과 동시에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이유다.

기독교 신앙은 이 점에서 특이하고 특출나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는 이유는 그들에게 믿고 의지할 절대적인 대상,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용기는 순종을 요구한다.

청년 멘토이자 유명 강사인 저자는 성경의 여러 인물과 사건들을 통해 우리의 삶에 펼쳐질 수 있는 다양한 낙담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성경적 해법을 제시한다.

인생은 누구나 한 번 산다. 10대든, 40대든, 70대든 그들의 인생에서 그 날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하는 날이다. 그래서 늘 두려울 수 밖에 없다. 처음이니 자신만만 할 수 없다. 때로는 너무 막막해서 두렵고, 때로는 너무 변변찮은 삶 같아 두렵고, 때로는 너무 혼자같아 두렵고, 때로는 너무 나를 돌보지 못해 두렵다. 하나님은 그런 나의 상황을 다 알고 계실까? 알고 계신들, 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주실까?

이런 고민들을 때로 할 것이다. 그런 원망이 들 때, 이런 책을 펴 볼 마음이 든다면 두려움을 돌파할 한 줄기 빛이 비추이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 p.70
"참된 용기는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용기는 문제를 향해 돌진하는 그런 용기가 아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용기는 말씀에 순종할 용기다."

개인적으로 삶을 돌이켜 볼 때,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비슷한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분명 내가 믿음의 선택을 할 때도 있었다. 모든 상황에 일반화시켜서 쉽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적어도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문제보다 하나님께서 더욱 크신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관건은 그 사실이 나에게 얼마나 와닿느냐는 것, 그동안 내가 만나온 하나님이 정말로 그러하다는 것을 삶으로 경험했냐는 것, 또 하나는 내가 그만큼 하나님 앞에 그 문제를 가지고 매달려보았냐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하나님 앞에 선 많은 성경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오미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 노아의 하나님, 바울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인물들의 표현에서 '하나님'을 제외해보자. 그들의 인생에서 무엇이 남고, 무엇을 우리는 배울 수 있을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필요 가운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충분한 응답은 주님 그 자체이시다.

인생의 여러 문제 가운데 고민하고, 때로 기도할 힘도 내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숨을 한 번 고르고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아니,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 읽는다면 더 좋겠다.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말이다.

#두란노 #도서협찬 #두란노서평단 #다시시작할용기 #라영환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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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신경 형성기 - 신경의 불완전한 말들을 형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신경의 불완전한 말들이 형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곽계일 지음 / 다함(도서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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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의 불완전한 말들을 형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신경의 불완전한 말들이 형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의 부제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게 만들었다.
‘신경’을 뜻하는 헬라어 ‘심볼론’은 본래 고대 그리스인들이 상거래를 마치면서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거래에 대한 증표로써 나눠 갖는 물건을 의미한다고 한다.(220쪽 인용) 하나에서 여럿으로, 여럿에서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일치성과 다양성이 신경의 핵심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사도 신경’에는 익숙하다(물론 교단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신경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은 채 타성적으로 외우고만 있는 경우가 많다. 대중적인 사도 신경이 그러할진대 ‘니케아 신경’은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나도 역사를 전공하기에 로마의 기독교 공인 과정과 연계되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이 책은 니케아 신경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하여 자세히 파헤치는데, 그것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약간은 서사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니케아에서 시르미움을 거쳐 콘스탄티노플까지 이어지는 60여 년의 여정은 마치 가나안을 코앞에 두고 광야를 빙글빙글 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을 보는 듯 하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성령의 역사로 초대 교회가 세워지고, 숱한 박해를 이겨내고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공인되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인간의 언어로 설명해내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과 갈등이 있었다. 삼위일체라는 표현은 성경에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으며 하나가 셋이 되고, 셋이 하나가 되는 신비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명이 완성된 적은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없다.

니케아 신경의 형성기는 바로 이 ‘하나님’을 설명하려는 시도이며, 그러한 시도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스도인은 말 그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는 실제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어본 질문이기도 하다.

pp.215-216
「니케아 신경」은 성부-성자-성령을 계시한 성경에 대한 해석과 거기서 파생되는 신앙의 요약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성자 예수의 질문에 답한 고백이었으며, 동시에 다른 해석과 고백에 대한 교정이었다.

오리게네스, 아리오스, 아타나시우스, 에우세비오스 등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와 주장들을 나와 같은 일반인들이 분별해내기는 쉽지 않다. 또한 신경의 형성 과정은 단순히 신학적이지만은 않으며, 당대 로마 정치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복합적이다. 그러나 그런 점이 어쩌면 세상 권세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는 반증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이후에도 수많은 공의회와 선언들이 등장하였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는 더 이상 새롭게 논의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 신경의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의미가 어떠함을 드러낸다.

니제이 굽타도 「기독교, 로마를 뒤흔든 낯선 종교」(IVP 역간)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었다’고 했다. 삼위일체야말로 사람이 믿을 수 없는 것, 그러나 은혜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역동적이고도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진수를 누릴 수 있다.

성경은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시96:1)고 명령한다. 신경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노래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기독교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떠한 하나님을 믿는가?’에 대해 명확하게 선포할 수 있는 신경은 그 의미에 맞게 고백되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신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주기도문에 기도가 빠지면 주문이 되듯, 신경에도 믿음이 빠지면 한낱 경전의 문장이 되어버릴 뿐이다.

기독교 역사에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들, 교리와 교리 교육 등에 관심이 있는 교회 교사들은 한번쯤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내용이 다소 어렵긴 하지만 장마다 저자의 친절한 요약과 함께 이해를 돕는 질문이 있어서 함께 독서모임을 하기에도 적절하다 생각된다. 물론 교회사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분이 모임을 인도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니케아신경형성기 #도서출판다함 #곽계일 #니케아신경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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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로마를 뒤흔든 낯선 종교 - 이상하고 위험하고 매력적인 1세기 그리스도인을 만나다
니제이 굽타 지음, 박장훈 옮김 / IVP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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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초대 교회.
현대의 교회가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단어다. 이 단어만 들어도 뭔가 가슴이 뛰고,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구약에 에덴 동산이 있다면, 신약에는 초대 교회가 있다.

일견 합당한 생각일 것이다.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세상이 보기에 ‘심히 좋았’던 것처럼, 초대 교회는 성령의 역사 아래 역동성이 있는 교회였음에 분명하다. 성경이 그렇게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서두에서는 기독교가 ‘이상한’ 종교였음을 말한다. 제국의 통치 아래 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낯설고, 이상하고, 위험했다. 내가 이 책에 끌리게 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낯설게 하기’를 저자가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초대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다소 추상적이라는 것을 이 책을 접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이상했다! ... 내가 ‘이상하다’거나 ‘특이하다’고 말할 때는 문화적 규범과 사회적 기대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18쪽 중에서)

저자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로마 제국의 통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왜 다신교를 수용하는 로마에서 ‘유일신교’라는 이유로 그리스도인을 핍박했는지에 대해서 설명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의문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었다. 그들이 강조한 ‘믿음’의 파급 효과는 비단 종교개혁에서만 발휘한 것이 아니었다. 현대 문화에서 기독교를 대하는 자세와 로마 제국의 그것이 아주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사람들이 보기에 믿을 수 없는 존재를 믿었다. 예배의 형식도 이상했다. ‘5무 교회’라는 키워드가 요즘 핫한데, 그 당시에 로마 사람들에게 기독교도 그랬다. 연기, 피, 제사장, 예배당까지도 없는 종교가 기독교였다. 로마 사람들은 신과 거래를 했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서 은혜와 사랑을 입었다. 직업적 제사장이 아니라 공동체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지도자들이 있었다. 제국의 위계적 신분 질서를 과감히 거부하고 모든 구성원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했다. 그것이 로마인들에게는 이상하게 여겨졌고, 자신과는 다르면서도 확신에 찬 그들의 태도에 위협감을 느꼈다. 그것이 제국이 기독교를 핍박한 이유고, 한편으로는 기독교가 최종적으로는 제국의 종교가 된 원동력이기도 했다.

우리는 합리적인 다수의 결정을 지지하던 시대에서 개인의 올바름이 기준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 물밑에는 개인의 올바름을 기준으로 삼는 것을 ‘다수’가 인정하는 역설적인 시대를 살고 있기도 하다. 그것이 진리의 복음 안에서 공동체를 회복하고자 하는 기독교의 정신과 강하게 부딪히고 있다. 어쩌면 이 지점이 우리가 견뎌야 하는 박해와 핍박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우려 섞인 표현처럼, 1세기의 그리스도인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충분히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는 낯설었고, 이상하고, 위협감을 줄 정도로 힘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교회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현실과 타협하고, 전혀 낯설지 않고, 위협은 고사하고 오히려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인 것 같다. 그래서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이 때로 공허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초대 교회로 돌아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 타락이 있었고, 아담과 하와는 그 곳에서 쫓겨났지만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령의 불같은 임재로 세워진 초대 교회도 여러 문제들이 있었고, 그들의 교회는 결국 제국을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지만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지 못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바로 요한계시록에서 약속된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이다. 그 뒤에는 더 이상의 타락도, 실패도 없을 것이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 우리는 알 수 없으니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기까지 부단히 힘쓰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 믿는다.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 힘을 얻은 것이 아니다. 그들 사역의 출발점이 가정이었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가정에게 적잖은 위로와 도전이 될 것이다. 특별히 기독교 역사에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아주 놀라운 통찰을 안겨주는 책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모두 그런 ‘이상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ivp #ivp독서단 #ivp독서단21기 #기독교로마를뒤흔든낯선종교 #니제이굽타 #초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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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도 그랬어 - 고단한 당신에게 전하는 위로
강정훈 지음 / 두란노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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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하나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이야기이다. 성경에는 3천 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의 삶이 성경에 기록된 대는 다 나름의 이유와 교훈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 (완전한 신이면서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님을 제외하고) 모세의 삶을 통찰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기회이다. 때로는 냉철하게, 때로는 따스하게 독자들을 독려하는 강정훈 목사님의 모세 이야기는 충분히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뭔가 에세이 같은 책 이름도 한몫했다!)

저자는 모세라는 인물의 하이라이트만을 살펴보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고, 그의 삶 전체를 관조하면서 그를 이끌어가시고 빚어가시는 하나님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모세가 겪었을 여러 감정들(특히 두려움, 지침, 절망함, 외로움 등)에 대해 주목하고자 했다. 그것은 단순히 '모세도 그랬'으니 너도 참아!라는 일종의 윽박지르는 처방이 아니라, "너희가 나를 알아?" 로 시작하는 질문과 "당신, 참 애썼다."라는 마지막 말을 모세에게, 그리고 저자 자신에게,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건네는 공감과 위로였다.

히브리인의 아기 > 이집트 왕자 > 광야의 목자 > 이스라엘 민족의 인도자에 이르기까지, 40년씩 3부작에 달하는 대서사시의 주인공 모세. 풍부한 신학적, 사회문화적 식견과 함께 소설가적 상상력을 더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모세의 일대기를 한 편의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로 초대한다.

그의 인생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에필로그에 인용된 드와이트 무디의 표현이 인상깊다.

"모세는 120년을 살다 갔다. 처음 40년은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왕궁 생활이다. 중간 40년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미디안 광야 목자의 생활이다. 나중 40년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광야 지도자의 생애이다." (290쪽 중에서)

회심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구도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물론, 앞의 두 기간이 짧으면 짧을 수록 좋겠다는 것이 모두의 생각일테다.

우리 모두는 광야를 지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듯이, 광야는 상황과 환경의 문제만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절박하게 붙들고 사느냐는 문제일 것이다. 인생이 여러 광야를 만나 고민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책을 통해 모세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다시금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길로 힘차게 걸어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p.15
이 책으로, 모세의 일생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다루시는가도 알았으면 한다. 그런 면에서 모세는 훌륭한 멘토이다. 그도 광야에서 살았고 우리도 광야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p.75
어떤 사람도 하나님이 일을 정해 주시지 않는 사람이 없고, 또한 그 일을 성취하기에 알맞은 힘을 주시지 않는 사람도 없다. (존 러스킨의 말을 인용)

p.201
모세의 일생에서 우리는 이 시기를 놓치고 만다. 모세는 80일을 연이어 금식하며 묵상하며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는 깊은 영적 체험을 했다. 모세의 영성은 이때 강력하게 형성되었다.

p.264
육체적으로 건전한 생활을 하고, 마음을 곱게 쓰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일을 처리하면서 만족하며 보람을 느끼며 살 때 건강하고 아름다운 종말을 맞게 된다. 이것이 웰다잉이다. 가장 아름다운 죽음은 가장 아름다운 삶의 열매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p.288
그래도 하나님은 보고 계신다.

#두란노 #두란노서평단 #모세도그랬어 #강정훈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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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 처치 - 파도 타는 교회
제레미 윤 지음 / ikp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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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무엇일까? 교회를 생각할 때 흔히 우리는 예배당(건물)을 생각한다. 물론 공간이 주는 의미는 크다. 우리는 모두가 시간과 공간 아래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 공간이 가지는 성격에 따라 우리의 자세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역시 흔히들 말하듯,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이 모이는 공동체 자체를 말한다. 그렇다면 그 곳이 ‘어디’인가보다 먼저 질문해야 할 것은 ‘누구와 무엇을 하는가’일 것이다.

서핑 처치, 이 교회의 무대는 바닷가다. 초현대식 건물이 아니라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지는 바다와 파도, 그리고 반짝이는 모래알이 예배의 자리가 된다. 복장은 또 어떠한가? 정갈하게 갖춰 입은, 그래서 때로는 복장으로 그들의 위치를 설명해 주는 포멀(Formal)한 공동체가 아니라 래쉬가드 하나와 보드 하나로 모두가 동등한 위치가 되는 곳이다. 파도 앞에서는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성도도 그저 서퍼일 뿐이다.

서핑에 관심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꼭 서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이런 교회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먼저 서핑 선교 커뮤니티의 모토가 성경적이기 때문이다.

“Big C, and small S”
서핑(S)이 먼저가 아닌, 크리스천(C)으로 사는 삶이 먼저라는 크리스천 서퍼스의 모토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가져야 할 우선순위를 잘 보여준다.

두 번째 서핑 처치의 필요성은 그들이 복음을 들고 사람들(특히 젊은 세대)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복음이 필요한 자들에게 직접 먼저 찾아가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이전에 먼저 그들과 대화하시고, 식사하시고, 교제하셨다.

마지막으로 서핑 처치는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통일에 대한 생각이었다. 서핑과 통일, 사실 연결점이 없는 것 같지만 강원도 고성과 양양 바닷가에서 또 다른 고성(북한의) 바닷가를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육지는 갈라져 있지만 바다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기에.

서핑은 ‘복음의 도구’라는 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 우리는 복음을 들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삶의 터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선교적 교회는 시작된다. 책을 덮으며, 내가 사는 일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또다른 ~처치가 많이 생겨나기를 기대하게 된다.

#서핑처치 #Surfing_Church #제레미윤 #파도타는교회 #북서번트서평단 #ik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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