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복궁 여행 - 조선 최고 전성기 경복궁을 거닐다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17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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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살면서 이사를 6번 했다. 50년도 안 살았으니 적으면 적고 많으면 많다. 태어나서 처음 살았던 아파트 주변을 어쩌다가 지날 때면, 옛 정취는 사라지고 많은 것이 바뀌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의 왕의 집인 궁궐은 어떨까? 500년이 넘는 조선 역사에서 현재 남아있는 궁궐만 5개이며, 각 궁궐의 건물 하나하나마다 조선 왕실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으며, 지금 남아 있는 궁궐의 모습은 당연하게도 조선의 처음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차이가 있다면 내 어릴 적 집은 지금 내가 사는 집보다는 (다행히도?) 좁지만, 조선의 왕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는 것.

황윤 작가의 이번 여행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아주 익숙한,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모르는 것이 많은 경복궁의 '처음'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도 경복궁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경복궁이 조선 역사의 풍파를 그대로 맞은 곳이어서,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그 모습이 상당히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궐의 아기자기함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창덕궁을 늘 최고로 손꼽았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창덕궁의 고즈넉함은 마치 조선이라는 흩어진 퍼즐과 손상된 부품들을 여기저기 끌어모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면, 경복궁의 웅장함 속에 공허함은 조선 역사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혼자 경복궁 여행>에서 떠나는 '조선 초기' 경복궁으로의 여행은 의미가 있다. 흔치 않은 조선 초기의 회화를 비롯한 여러 문헌들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실마리로 경복궁의 처음 모습을 그려 나가는 모습은 마치 문화유산 발굴 현장에서 조심스럽게 붓질을 해가며 유물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과정과 같다. 잃어버렸던 퍼즐 한 조각을 찾았을 때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며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경주 왕릉을 여행하며 왕릉을 바라보는 것보다 왕릉'에서'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뷰라는 것을 깨닫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궁궐도 그렇게 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껏 궁궐을 답사하면서는 시민, 신하, 백성의 시선으로 궁궐을 바라보았는데, 궁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는 왕의 시선으로 보는 안목이 갖춰지면 좋겠다.

이 책의 부제와 같이 '조선 최고 전성기 경복궁을 거닐다' 보면 우리가 아는 세종대왕이 더 위대해 보일 것이다. 세종은 정말이지 조선의 모든 것을 갖춰낸 왕임을, 조선의 후대 왕들은 세종의 유산으로 200년을 넘게 먹고 살았음을(아니 그 이후에도) 알게 된다.

복잡한 우리 몸의 여러 기관과 조직 중에서 필요 없는 곳이 없듯, 궁궐의 수많은 건물과 작은 공간 하나까지도 아무 이유 없이 있는 곳은 없다. 이 책을 따라 궁궐을 거닐다 보면 자연스럽게 궁궐의 하늘, 땅, 바람, 나무, 꽃 하나까지도 조선의 역사와 함께한 역사의 증인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올해 벌써 경복궁을 2번 다녀왔는데, 2주 뒤에 다시 답사가 예정되어 있다. 책과 함께 더 즐거운 답사가 될 것을 기대해본다.

#일상이고고학
#나혼자경복궁여행
#황윤
#궁궐답사
#책읽는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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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은 맞는 말일까? - 청소년을 위한 미국 역사 바로 보기
록샌 던바-오티즈 지음, 권상철 옮김, 진 멘도사 외 편저 / 공명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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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어떤 학문이든 개념 정의가 중요하다. 역사에서도 어떠한 집단이나 사건을 어떻게 이름짓냐에 따라 인식의 자세가 달라지기 때문에, 용어를 둘러싼 논의는 하나의 '세계관 전쟁터'가 된다. 이른바 '낯설게 보기'의 시작점이 개념 재정의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도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 역사에 대한 낯설게 보기이며, 일종의 뒤틀기다. 최근 한 작가가 '나는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봤는데, 그렇게 보니 비로소 세상이 바로 보이더라'는 말을 했다. 기존의 역사 인식을 뒤틀어서 바로잡아지는 부분이 있다면, 처음의 인식이 뭔가 뒤틀려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의 역사가 록샌 던바 오티즈가 소외된 사람들의 관점에서 미국 역사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여섯 권의 <재해석>(ReVisioning) 시리즈 중 세 번째 책인 <미국 원주민의 역사>(An Indigenous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진 멘도사와 데비 리즈가 청소년 버전으로 각색한 <청소년을 위한 미국 원주민의 역사>(An Indigenous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for Young People)를 미국 건국 250주년에 맞춰 한국어판으로 출간한 것이다.

나는 원주민으로 번역된 '인디저너스'(Indigenous)라는 용어를 캐럴라인 도즈 페넉의 <야만의 해변에서>(On Savage Shores, 까치 역간)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Naming is Framing'이라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으나, 이번 책을 통해서는 소위 '미국사'라는 것이 얼마나 기득권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가득한지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 책은 미국의 역사서술이 '정착민 식민지주의'에 의해 기록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고발한다.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백인-앵글로색슨족-개신교인)로 대표되는 집단이 '발견', '최초', '개척'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 이전에 대륙에서 살고 있었던 수많은 Nation을 억누르고 쫓아내고 죽였는지를 밝힌다. 미국 정부는 연방 정부와 그 아래 속한 시민의 정체성을 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공존이 이루어지는 이른바 'Salad Bowl'이라 말하지만, 소외된 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다양성을 하나의 미국이라는 틀에 녹여내는 'Melting Pot' 즉, 용광로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바라보는 미국 역사의 정의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미국의 역사는 주권을 가진 원주민 부족들이 정착 식민주의 세력에 맞서 끊임없이 저항해 온 이야기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는 여러모로 전무후무하다. 분명히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탄생과 그 성장 과정에서는 미국에서만 찾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 또한 오늘날의 다원주의적인 시각에서 미국 개척의 역사를 오롯이 평가하는 것도 마냥 옳다고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다양성이 올바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집단의 옳음을 가지고 다른 집단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일을 올바르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한 원주민 역사가의 이야기를 인용하는데, 이는 식민주의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곱씹어볼 만하다.

"한 원주민 역사가는 '살아있는 사람은 조상이 한 일에 책임이 없지만, 과거의 산물인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1492년 10월 12일, 항해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현재 바하마 제도에 있는 산살바도르 섬에 도착하며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딛었다. 미국과 중앙 아메리카의 일부 국가들은 이 날을 콜럼버스의 날로 정하고 기념해 왔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원주민 학살, 노예화, 문명 파괴 등의 인식이 확산되면서부터는 이 날을 '발견의 시작'이 아닌 '침략의 시작'으로 보고,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로 대체하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미국 행정부의 주인이 바뀜에 따라 정책적으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미국 내에서는 원주민에 대한 이슈가 뜨거운 감자라는 말이다.

다양성에 대한 여러 입장을 뒤로 하고서라도, 역사의 주체가 다양해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점차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이 있다면 공감하고, 문제가 있다면 해결책을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이 그러한 자세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고 하지만, 원주민이 당한 폭력에 대한 서술은 다소 수위가 높다. 그만큼 그들이 겪은 역사가 처절했다고 이해하면 좋겠다.

요즘 AKMU의 앨범이 화제다. 컨트리 장르를 중심으로 화해와 환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아픔의 역사를 넘어 개척자와 원주민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그야말로 '소문의 낙원' 아니겠는가.

#아메리카신대륙발견은맞는말일까 #록산던바오티즈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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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에 담긴 삶의 조건들
권이선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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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글을 쓸 때, 본론과 결론을 먼저 쓰고 서론은 맨 뒤에 쓴다. 그리고 첫 문장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본론과 결론으로 가기 위한 물꼬를 서론에서 터야 하는데, 첫 삽질에서 물꼬를 트고자 하면 그만큼 힘이 들뿐더러 제대로 된 방향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훈도 <칼의 노래>의 첫 문장에서 조사 ‘이’와 ‘은’을 가지고 그렇게 씨름했더라나.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어떤 조사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할지.)

길게 첫 문단을 쓴 이유는, 이 책의 첫 문장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첫 문장 하나로 이 책을 읽을 이유를 정확히 찾았다.

“옛 문서를 찾아 읽고 연구하는 일은, 지난날 사람들의 숨결과 생각을 지금에 되살리는 일이다.”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1차 사료의 중요성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독자를 위해서 설명을 덧붙이자면, 당연한 말이겠거니와 역사학은 기록에 충실한 학문이며, 그 기록의 가치를 매기는 첫 번째 기준은 ‘정말로 그 기록을 그때 그 사람이 했느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문서라는 원천자료를 살피는 이 책은 전공자인 나에게는 매우 반갑고도 흥미로운 책이다. 비전공자라도 조선의 다양한 기록에 대한 짤막한 소개책을 통해 이전의 역사 관련 서적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맛을 경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3부에서는 그런 취지에서 ‘규탐(흥미롭게 들여다본다)’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사실 27편의 글 모두에게 붙일 수 있는 제목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큰 줄기는 ‘삶’이다. 특히 삶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철학(장자, 중용, 주역 등)이나 족보, 가계도 등에 대한 비중이 많다. 유교적, 특히 성리학적 세계관 아래 살아간 조선 사람의 삶은 신분마다 특이점도 있긴 하지만 신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공통적으로 갈구하는 부분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삶의 여러 양태를 증명하는 문서들을 통해서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얽히고설켜 있는지, 조선이라는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는지를 보다 실제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국가적으로 편찬되거나 역사적으로 가치가 뚜렷한 기록들도 많지만, 조금은 세부적이지만 역시나 나라를 운영하는 데 필수적이었던 여러 제도의 실무적인 문서들 또한 나름 그들의 색깔을 가지고 냄새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이 나와 더 가깝기에 동질감을 느끼게도 한다.

역사의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아카데믹한 책은 아닌데 책 제목은 상당히 그렇게 느껴진다. 딱히 생각나는 대안은 없지만, 조금 더 읽힐 수 있는 제목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본문은 상당히 시적이어서 은유도 많고 에세이 느낌도 나는데 제목은 소위 ‘궁서체’다. (왜인지 3부 부제목인 ‘옛 문서 규탐’이 눈에 자꾸 들어온다.)

역사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이런 류의 책이 가지는 묘미를 금방 알아챌 것이다. 역사의 잔근육을 키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추천드린다.

#고문서에담긴삶의조건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해냄에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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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교회가 살아난다
톰 레이너 지음, 송동민 옮김 / 두란노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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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규장이 펴낸 <한국교회 트렌드 2026>의 첫 주제어가 ‘심플 처치’다. 교회의 핵심 사명을 중심으로 사역을 재설계하여 복음의 중심을 드러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강조점을 둔 것이 ‘강소 교회’인데, 소형 교회이지만 뚜렷한 목회 철학과 공동체성으로 힘 있게 사역하는 교회를 일컫는다. 이 둘의 공통점은 바로 ‘목적성’이다. 결국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어떤 공동체이며, 어떠한 공동체여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나 성도라면, 이 책 <동네 교회가 살아난다>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처음에 이 책의 제목만 접했을 때에는 지역 교회가 살아나게 된 몇 가지 사례들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원리를 발견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어보니 위 내용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교회를 향한 저자의 냉철한 분석과 깊이 있는 제안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의 원제목 <Crucial Commitments(중대한 헌신)>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죽은 교회를 부검하다>와 <살아나는 교회를 해부하다>를 지은 저자의 오랜 교회 컨설팅의 노하우가 이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오늘날 교회는 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을까? 소위 ‘바람 빠진 풍선’마냥 신자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 단순히 숫자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가졌던 여러 가지 활력들이 사라지고 있다. 바람 빠진 풍선에서 그 ‘바람’은 교회에게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이것을 ‘헌신’이라 말한다. 오늘날 교회의 약화는 헌신의 부재에서 기인했다는 진단이다. 격하게 동의가 된다. 이 지점에서 ‘라떼는 말이야’의 이야기가 많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약간 화법이 달라진다. ‘요즘 청년들/직분자들에게는 이렇게 말 못해요’ 등으로 화법이 묘하게 바뀐다. 자칫 헌신을 요구하는 메시지는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것으로 읽히기 쉽다. 물론 헌신을 빙자한 착취가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현대 교회에 이미 ‘효율’은 진리 위에 서 있는 듯함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라떼’식 표현으로 읽힐 수 있음을 감수하고서라도 복음의 진리에 입각한 이전의 좋았던 전통을 회복할 것을 요구한다. 그 5가지가 바로 ‘급진적 기도’, ‘성실한 예배 참석’, ‘친밀한 소그룹’, ‘순전한 나눔’, ‘열정적 전도’다. 개인적으로는 급진적 기도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저자의 표현을 살릴 필요가 있어 문장을 그대로 인용해본다.

“급진적인 그리스도인은 정상적인 신자다. 여기서 ‘정상적’이라는 것은 곧 그가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임을 뜻한다. 급진적인 그리스도인은 변혁적인 신앙을 품은 이들로서, 주변 문화 속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구별되는 모습을 보인다.” (143쪽 중에서)

정상적인 신자가 ‘급진적’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사회, 반대로 말하면 이 사회가 무언가 성경이 추구하는 사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다. 위 5가지를 충실히 하는 신자라면 세상과 (아마도) 교회 내부에서도 ‘유별나다’는 (말을 직접 듣지는 않을지라도)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 제국 당시 초대 교인들이 딱 그랬다. 그들은 참으로 유별났다. 그리고 그들은 참으로 성경적이었다.

본질로 돌아가자는 말은 짧다. Ad Fontes! (한글로) 다섯 글자면 된다. 그러나 본질에 돌아가는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함께 하면 조금 더 쉬워질 수 있다.

헌신은 관계를 전제한다. 내가 나를 위해 애쓰는 삶은 헌신이라 할 수 없다. 헌신은 사랑을 전제한다. 사랑하지 않고 나의 가진 것을 내어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헌신은 예수님을 전제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먼저 헌신하셨기에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교회가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아시는 주님은 여전히 우리의 기도를 원하신다(겔36:37). 추수할 곡식을 앞두고 추수할 일꾼을 찾으신다(눅10:2). 이제 우리가 나설 차례다.

#독서모임 #도서추천 #동네교회가살아난다 #톰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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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 제국의 역사 - 국내 최초 출간! 페르시아와 로마보다 먼저 세계 제국의 시스템을 설계한 최초의 제국 더숲히스토리
야마다 시게오 지음, 박재영 옮김, 이희철 감수 / 더숲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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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제국’이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흔히 로마 제국, 몽골 제국, 이슬람 제국, 대영 제국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열 손가락으로 다 세어 보아도 ‘아시리아 제국’은 나올 확률이 적겠다. 세계사 교육이 많이 확장된 지금에도 아시리아 제국은 두 문장으로 요약되는 것이 전부다.

“기원전 7세기에 아시리아 제국이 메소포타미아 대부분을 정복하고 이집트까지 위협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정복지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고 과도한 세금을 걷는 강압적 통치 때문에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멸망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역사 1 교과서 중에서>

이 시기의 역사를 가르치는 부분에서 중심축은 아시리아가 아닌 페르시아다. 아시리아의 무자비한 정복 정책과 페르시아의 관용 정책을 비교하는 것이 일반적인 접근 방식이다. 넓고 방대한 세계사를 한꺼번에 다루자면 어쩔 수 없는 축약이지만 때로는 축약이 비약이 되곤 한다. 역사를 가르치는 입장에서 각 문명, 제국, 나라와 민족의 역사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책은 그래서 반갑다.

역사는 기록의 학문이다. 따라서 기록에 입각한 역사 서술이 중요하다. 구약성서에도 아시리아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기록 자체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아시리아의 시점에서 기록된 기록물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량의 점토판과 거기에 새겨진 쐐기 문자는 아시리아에 대한 풍부한 시각을 제공하고 있고, 이 책은 방대한 기록에 의거 도시 국가 아수르의 탄생부터 제국의 흥망성쇠를 차근차근 풀어간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원래 방대한 쐐기 문자로 유명한데, 유독 아시리아에 대한 이미지는 포악하고 잔인한 정복 정책으로 일관되어 있다. 단적인 이미지가 제국 전체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되어버린 셈인데, 정복 전쟁에 대한 평가를 아시리아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아시리아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는 평가라고 본다.

같은 역사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입체적인 역사 이해에 도움을 준다. 오래 유지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제국의 지배 방식이라는 포맷을 형성한 것은 분명 아시리아 제국의 공적이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려운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인 원리일 뿐.

‘아시리아 제국의 광역 지배는 뒤를 이은 대영역 국가인 신바빌로니아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여러 제도에 영향을 주었다.’ (174쪽 중에서)

초기 아수르 상인들의 아나톨리아 무역에 대한 기록이나 아수르와 바빌로니아 지역에 대한 균형 있는 통치 방식을 고민한 부분, 왕명표와 연대기, 림무표 등의 편년 기록,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 등을 통해 아시리아가 가진 정치, 경제, 문화적인 응집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여전히 역사가 신의 영역에 머물고 있는 고대의 특징을 뚜렷이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록은 ‘대역 왕’ 의식에 대한 부분이었다. 일식과 월식 때 행해진 이 의식은 왕을 대신해 흉조가 암시하는 불운을 떠안고 희생되는 ‘대역 왕’을 세우는 것이었는데, 거친 자연 환경과 수많은 외적의 침입이 끊이지 않아 염세주의적인 면모를 띄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종교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된다. 요즘 여러 책을 읽으며, ‘기록은 살아남은 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생각하고 있는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남고자 했던 아시리아인들의 영광스러우면서도 처절한 기록의 역사는 이를 잘 뒷받침해주는 것 같다.

아시리아의 제국의 한계점은 책에서도 언급하듯 ‘늘 확장되는 국가였던 아시리아의 국가 경영이 정체 상태에 빠진 것’이었다. 전쟁을 통한 영역의 확대가 한계점에 다다를 때, 제국은 통치의 엔진이 멈추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어떠한 제국도 이 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떤가? 근현대의 제국들과 현재 세계를 주름잡는 나라들의 성장 원리들도 같은 맥락이다.

성서 속 ‘잔혹한 정복자’라는 오명은 아시리아를 오랫동안 설명한 주홍글씨와 같다. 사실 나는 이것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도 분명 아시리아의 모습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모든 제국에게 그런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오히려 그런 제국의 단면을 아시리아를 통해 보편적인 것이었음을 밝히고 그렇게 문명이라는 것이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분열과 갈등, 혐오와 차별, 폭력이 여전히 가득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가 왜 세계는 이런 힘의 논리 가운데 움직이는지 이해할 수 있고, 그 안에서 밝게 빛나는 문명의 빛을 향해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를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이런 책은 더없이 반갑다.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 낱낱이 가르칠 수는 없다 하여도, 적어도 편견 속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나라는 없어져도 기록은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아시리아제국의역사 #야마다시게오 #더숲 #더숲히스토리 #아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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