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에 담긴 삶의 조건들
권이선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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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보통 글을 쓸 때, 본론과 결론을 먼저 쓰고 서론은 맨 뒤에 쓴다. 그리고 첫 문장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본론과 결론으로 가기 위한 물꼬를 서론에서 터야 하는데, 첫 삽질에서 물꼬를 트고자 하면 그만큼 힘이 들뿐더러 제대로 된 방향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훈도 <칼의 노래>의 첫 문장에서 조사 ‘이’와 ‘은’을 가지고 그렇게 씨름했더라나.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어떤 조사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할지.)

길게 첫 문단을 쓴 이유는, 이 책의 첫 문장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첫 문장 하나로 이 책을 읽을 이유를 정확히 찾았다.

“옛 문서를 찾아 읽고 연구하는 일은, 지난날 사람들의 숨결과 생각을 지금에 되살리는 일이다.”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1차 사료의 중요성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독자를 위해서 설명을 덧붙이자면, 당연한 말이겠거니와 역사학은 기록에 충실한 학문이며, 그 기록의 가치를 매기는 첫 번째 기준은 ‘정말로 그 기록을 그때 그 사람이 했느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문서라는 원천자료를 살피는 이 책은 전공자인 나에게는 매우 반갑고도 흥미로운 책이다. 비전공자라도 조선의 다양한 기록에 대한 짤막한 소개책을 통해 이전의 역사 관련 서적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맛을 경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3부에서는 그런 취지에서 ‘규탐(흥미롭게 들여다본다)’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사실 27편의 글 모두에게 붙일 수 있는 제목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큰 줄기는 ‘삶’이다. 특히 삶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철학(장자, 중용, 주역 등)이나 족보, 가계도 등에 대한 비중이 많다. 유교적, 특히 성리학적 세계관 아래 살아간 조선 사람의 삶은 신분마다 특이점도 있긴 하지만 신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공통적으로 갈구하는 부분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삶의 여러 양태를 증명하는 문서들을 통해서는 그들의 삶이 얼마나 얽히고설켜 있는지, 조선이라는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는지를 보다 실제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국가적으로 편찬되거나 역사적으로 가치가 뚜렷한 기록들도 많지만, 조금은 세부적이지만 역시나 나라를 운영하는 데 필수적이었던 여러 제도의 실무적인 문서들 또한 나름 그들의 색깔을 가지고 냄새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이 나와 더 가깝기에 동질감을 느끼게도 한다.

역사의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아카데믹한 책은 아닌데 책 제목은 상당히 그렇게 느껴진다. 딱히 생각나는 대안은 없지만, 조금 더 읽힐 수 있는 제목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본문은 상당히 시적이어서 은유도 많고 에세이 느낌도 나는데 제목은 소위 ‘궁서체’다. (왜인지 3부 부제목인 ‘옛 문서 규탐’이 눈에 자꾸 들어온다.)

역사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이런 류의 책이 가지는 묘미를 금방 알아챌 것이다. 역사의 잔근육을 키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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