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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돼지의 눈
제시카 앤서니 지음, 최지원 옮김 / 청미래 / 2020년 11월
평점 :
지금껏 살면서도 땅돼지라는 이름의 동물에 대해 들어본 기억이 없다. 아프리카 초원지대에서만 서식하며, 중생대시대 때부터 존재했다는 이 원시동물 땅돼지는 책표지의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이름만큼이나 겉모습은 흉하고 다소 천해보이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작가 제시카 앤서니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 낯선 동물 <땅돼지의 눈>이라는 소설을 통해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는가 문득 궁금했다.
책을 펼치자마자 지구의 탄생과정과 생물의 진화과정이 먼저 등장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장관을 연출하듯 지구상에 원시동물 땅돼지가 등장하게 되고, 무한의 시간의 흘러 다시 현대인류도 탄생을 하게된다. 이후 책은 바쁘게 두 시대를 오고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1875년 나미비아에 속한 땅에 영국인 동물학자 리차드 오슬릿경이 고용한 사냥꾼에 의해 땅돼지 한마리가 포획이 되고, 이후 영국으로 데려온 땅돼지는 유명한 박제가 티투스 다우닝에 의해 새롭게 탄생되는 과정에서 하나둘 새로운 비밀들이 벗겨진다. 반면 성정체성을 부인하던 버지니아주의 하원의원 알렉산더 페인 윌슨에게 페덱스 배달원으로부터 거대한 박제 땅돼지 상자가 배달이 되어오고. 6주 후 자신의 파면조사 청문회와 향후 재선운동에서도 이 땅돼지가 걸림돌이 될 것을 직감한 그는 이를 없애기로 마음을 먹으며 벌어지는 추격전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100년이라는 시간적 공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두 이야기는 묘하게 얽혀있다. 각기 다른 인물들이 그려내는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당시에는 금기시된 동성애에 대한 사랑이야기가 그렇고, 시대를 풍자하는 정치와 사회적 모순이 담겨져있는 사건들 역시 그러했다. 두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서 결국 미래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듯 보였으며, 눈이 있으나 장님과 다름이 없는 현실의 자신의 모습과 진짜 인간의 눈을 담은 박제 땅돼지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인간세상 역시도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땅돼지의 운명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보는 과정내내가 흥미롭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긴장감을 선사해준다. 또한 이 책이 트럼프 행정부 이후에 집필이 된 것으로 정치인을 땅돼지로 비유해 조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자 최지원님의 후기글에서의 해제를 보며 책 속의 접근과 이해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땅돼지의 눈>이라는 제목만큼이나 이 책은 굉장히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의 소설이었다. 100년전의 이야기 역시 우리 인생사였듯이 현재도 그렇고, 미래의 100년후 이야기 역시 많이 달라있지 않을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소 아프고 슬픈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서로가 옳다고 믿으며 새롭게 바라고 꿈을 꾸며 다시 시도해나간다면 우리의 미래도 조금씩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도 찾아낼 수 있을것이라는 기대도 갖게 되었다.
책 속에서 기억나는 문구들을 몇가지 기록해본다.
- 데자뷔이다. 파란 눈의 땅돼지를 처음 본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속에서는 그리움이 솟구친다.(p.117)
- 땅돼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개의치 않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다. (p.155)
- 너는 장님이야. 아무것도 못보는 장님이야.(p.205)
- 자연은 인간과 달리 헛된 일을 하지 않아요. 신도 자연이죠. 신은 자연이기 때문에 헛된 것을 창조하지 않아요. 따라서 영혼은 결코 소멸하지 않죠. 그것은 불명하여 끊임없이 돌고 돌아요.(p.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