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도노 하루카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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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생 젊은 작가인데다 단 두번째 작품으로 일본 문학계 최고 권위의 신인상인 아쿠타가와상은 물론 문예상까지도 받은 주목받은 신인 도노 하루카의 소설 <파국>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불안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제목인데다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나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평점이 극과 극을 보여주며 격렬한 논쟁을 야기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더욱 더 이 <파국>에 대한 호기심이 동해졌다.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는 요스케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공부를 하는 가운데도 스포츠 동아리에서 운동지도와 근육트레이닝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늘 규범과 매너를 중시여기는 그는 겉으로는 누구보다도 바르고 성실한 청년으로 보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규범에 집착하고 스스로를 억누르고자 하는 그의 본능과 욕구는 언제 터질지 모를 불안감을 암시해주기도 했다.

'난 다른 사람들과 다른 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까, 그게 괴로워, 아마 흔해 빠진 괴로움이겠지만, 그래서 괜히 더 괴로워, 나만이 맛볼 수 있는 나만의 괴로움 같은 건 어디에도 없는 걸까?'(p.26)

'어쩐지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자친구에게 음료를 사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성인남자가 울음을 터뜨리는 건 이상하다. 나는 자판기 앞에서 영문을 모른채 계속 눈물을 흘리다, 이윽고 하나의 가설에 도달했다. 그건 어쩌면 내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전부터 슬펐던 건 아닐까 하는 가설이다.'(p.152)

정치의원의 조수역할을 하며 의원으로 입후보예정인 여자친구인 마이코가 바쁘다는 이유로 시험이 끝난 해방감에 들뜬 그는 친구 공연장에서 만난 경영학부의 아키라와 만나게 되고 이후 마이코와는 헤어지고 둘은 본격적인 만남을 이어가게 된다. 19살 미성년자였던 그녀와의 만남은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불안감을 조성해주는 분위기로 몰아갔고 결국 그는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 삶의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설정으로 이어가게 된다. 끝을 향해가던 자신을 막아 세웠던 경찰에게서 그가 느꼈던 감정묘사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경찰관이 내 몸을 부드럽게 누르고 있었다. 그의 손은 무척 따뜻해서, 따뜻한 물속에 잠겨 있는 듯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대로 잠들기로 했다. 나는 언제든, 자고 싶을 때면 금방이라도 잠들 수 있으니까 말이다.'(p.200)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성실하고 모범적인 남자가 본능에 충실한 여자를 만나 자신의 억눌린 본능을 표출해가지만 결국 그녀를 통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어가는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동시에 연민마저 불러일으키게 했다. 성실히 공부하면서 자신이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경찰에 의해 결국 진압당하면서 마침내 편안함을 느끼는 장면은 무서울 정도로 섬뜩함과 동시에 슬프기도 했다. 책을 덮는 순간 '시대의 광기에 가장 민감한 세대가 선보이는 새로운 감각의 소설'이라는 글귀에 대한 공감이 절로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평범해보였지만 그렇다고 치기에는 많이 신선했고, 보편적이라고 하기에는 개인적인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하는 인간상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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